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252화 (252/538)

252. 챕터36. 질주하다 (8)

이순몽의 호언장담대로, 두시진이 지나자 후발대가 도착. 그 뒤로 시간차를 두고 줄줄이 연대가 도착했다.

야간행군은 너무 위험하고, 제대로 수면을 취하지 못하면 전투력이 떨어지니 조금 늦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몇몇 연대는 밤에도 느긋하게 관도를 따라 걸으며 달려와 제시간에 도착했다.

그렇게 이틀 사이에 6개 연대가 모이자, 안 그래도 어쩔 줄 몰라 하던 남통성은 성문을 꽉 틀어 잠갔다.

자고 일어나면 병력이 쭉쭉 불어나니, 성벽 위에서 내려다보면 검은 이끼가 바닥에 증식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

안 그래도 성 밖으로 나가기 껄끄러웠는데, 이젠 두려워질 지경이었지.

그렇게 웅크리고 앉아 탁상공론만 하는 동안.

나흘에 걸쳐 조선육군은 모두 남통에 도착했고 후발대가 도착하기 무섭게, 푹 쉬면서 기력을 보충한 7개 연대가 반으로 뚝 떨어져 움직였다.

3개 연대는 장강과 운하를 이어주는 서쪽의 태령, 태주로 향했고, 나머지 4개 연대는 여사항, 회룡, 인양, 여동현 등의 동부 해안가로 질주를 시작했다.

자박자박. 무릎까지 올라오는 얕은 내천을 조심스럽게 넘어가자, 말울음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호각소리가 울려 퍼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수심 깊은 곳을 알리려는 모양인 걸까.

얌전히 잘 지나가는 줄 알았는데, 저쪽에서 갑자기 풍덩 물속에 빠져서 목만 내밀고 헤엄을 치는 전마와 자기도 모르게 말에서 떨어져 허우적거리는 병사가 눈에 들어왔다.

“큭큭.”

“하하.”

어째 위험해 보일 수도 있는 모습이지만, 어째 도하하고 있던 병사들은 킬킬 거리며 웃음소리를 냈고...

물에 빠졌던 병사는 한참을 혼자 허우적거리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발을 내딛었다.

“어...?”

안보여서 몰랐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하천바닥에 발이 닫지 않나. 당황했던 전마마저도 목만 내밀고 조심스럽게 걷고 있는데, 이게 대체 무슨 망신인가.

괜히 얼굴이 붉어진 병사는 옆에서 반쯤 헤엄치며, 반쯤 걷고 있는 전마의 고삐를 낚아채며 씩씩거렸다.

“거참...”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군요.”

“목에 닿을까말까 하는 수심인데, 뭘...”

한편의 경극 같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며, 먼저 건너서 기다리고 있던 연대장과 대대장들마저도 차마 한소리 하지 못하고 웃고 말았다.

“흐음...”

다만 연대장. 당성군 홍해가 묘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일까. 대대장은 그의 안색을 살피고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주의를 줄까요?”

“아니. 그런 게 아닐세.”

“...?”

“옛 생각이 떠올라서 말이야. 기억나나? 우리가 돌가하(도르호치)를 쫓아서 창주에 갔을 때 말이야.”

“예.”

그걸 영광스러운 기억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조선은 물론이고 고려 때를 통틀어도, 군대를 이끌고 그 먼 북방까지 나아간 이는 자신들이 처음일 거다.

“그곳과 이곳이 어떤 면에선 굉장히 비슷해서 말이야.”

“아...!”

대대장은 홍해가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곧장 알아차렸다.

끝도 없이 펼쳐지는 지평선, 조선내지만큼이나 넘쳐나는 하천들. 어째 땅 모양새는 거의 비슷했지만 완전히 다른 부분이 존재했다.

“거긴 너무 춥고, 여긴 따뜻하니 살기가 좋군요.”

“맞네. 그 생각을 하고 있었네. 아마 그래서 북방에선 농사를 못하고 유목생활을 했던 거겠지.”

“그럴 겁니다.”

“지금 우리가 펼치는 작전도 따지고 보면 유사하지 않나?”

“음...”

순식간에 깊게 찔러오자, 대대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여진정벌 당시에 우라홍니에 박힌 가호랍을 포위하고 사방을 휩쓸었다면, 지금은 남통성에 박힌 진주광을 포위하고 사방을 휩쓸고 있으니까.

그걸 생각하면 당연히 긍정적인 전망이 눈에 그려졌다.

“거친 여진부락도 정리를 했는데, 한족들이야 더 쉽게 되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렇겠지만, 이 땅에 한족이 오죽 많아야지. 발에 차이는 게 사람이고 전답이니, 시원시원하게 질주를 못하니 은근히 갑갑하단 말이지.”

“그건 그렇습니다.”

대대장도 같은 심정인터라, 쓴웃음을 머금고 말았다.

여진정벌 이후에도 둘이 이끄는 연대는 만주신도시에 남아 주둔하지 않았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방초원에서 바람처럼 말을 달리던 이들이, 지금은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으니 답답해 죽을 지경이다.

그렇다고 막 달릴 수도 없다.

추수도 못한 논을 다 짓이겨 놓으면, 농부들의 원망과 분노는 모두 조선에게 향할 터... 괜히 변수를 만들었다가, 다잡은 물고기가 그물을 찢고 나오는 일은 없어야 했다.

“도하를 끝냈습니다.”

“가지.”

“옙!” “충성!”

하천을 모두 건넨 연대는 다시금 깃발을 높이 세우고 관도를 따라 잔걸음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과연 중국은 중국인지, 전답이 이렇게 널려 있는데도 나름 관도를 잘 만들어 놨다.

물론 죄다 흙먼지가 휘날리는 흙도로, 나쁘게 말하면 그냥 도로형태를 한 공터지만, 그래도 이렇게 평평하고 일직선으로 뚫려 있는 게 어딘가.

“중국에 와서 느끼는 거지만, 확실히 대로가 있으면 좋긴 좋단 말이지.”

“그야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관도가 없었으면, 저희가 이렇게 빨리 남하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음... 아국도 도로를 더 확충해야 할 텐데.”

“...”

이들은 만주신도시에서부터 호주,의주를 거쳐 한성, 끝내는 평택까지 한걸음에 달려왔다.

반쯤 전국일주를 한 셈인데, 그때 겪은 조선의 도로와 산동,남직례의 관도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물론 조선이 산과 하천이 워낙 많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걸 생각해도 조선의 도로는 열약했다.

특히 도로의 상태야 그렇다 쳐도 도로의 폭이 너무 좁았지.

대대장도 같은 심정인지, 아쉬움을 털어내고 기대를 드러냈다.

“그래도 대로를 야금야금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도 이것보다 훨씬 나은 자갈도로로 말이지요. 시간과 인력이 들어가는 일이니, 지금은 미흡해도 언젠가는 만들어질 겁니다.”

“그래야지.”

지금도 구슬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하고 있을 관리와 인부들을 떠올리며, 홍해는 가볍게 웃고 말았다.

느긋하면서도 가벼운 발걸음은 계속 이어졌다.

이게 전쟁을 하러 온 건지, 산보를 나온 건지 헷갈릴 정도로, 평화롭고 나른한 행군이 이어진다.

조선군이 쳐들어왔다는 소문은 이 촌구석에도 이미 다 퍼진 터라,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익은 벼들은 덩그러니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죄다 집에 틀어박혔는지 추수를 나온 이들도 없었고, 이따금씩 몇몇 농부들이 보이긴 했으나... 검은 물결을 보고선 소스라치게 놀라서 죄다 도망쳐버렸다.

기병연대는 그러거나 말거나 걸음만 계속 재촉했다.

어차피 목적지에 도착하면 만나게 될 것 아닌가. 괜히 애꿎은 농부를 잡겠다고 먼지구름을 일으킬 까닭이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관도의 귀퉁이에 위치한 마을에 도착.

과연 중국답게 이 작은 마을에도 대궐만한 호족가문의 장원이 떡하니 마을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었고, 마을 사람들은 죄다 호족가문으로 피신했는지 유령마을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이 집안은 나름 인심을 샀던 모양인데?”

“그러게 말입니다.”

홍해가 피식 웃으며 말하자, 대대장은 물론 다른 이들도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착호군을 거친 탓에, 조선군 지휘관들은 대다수가 양반사대부, 지방호족출신 아닌가. 여기서 벌어지는 일은 이들에게 훌륭한 반면교사가 되고 있었다.

진주광에게 협력해서 혹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워 마을을 착취하던 호족과 무관들은, 기병연대가 모습을 드러내기 무섭게 알아서 정리됐다.

마을사람들이 먼저 나서 굴비처럼 엮어서 떡하니 대령하고선. “저희가 나쁜 놈들을 알아서 치웠습니다. 제발 우리 마을은 건드리지 말아주세요!”라고 눈빛으로 외쳐댔다.

이런 일이 일개 마을에서만 벌어졌나.

현청이 있는 도읍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져서, 심지어 현감과 아전을 비롯한 관원들을 마을사람들이 죄다 잡아서 바치는 경우도 있었고.

본래 진주광 밑에 있던 병사들이 소집령을 거부하고, 창을 거꾸로 들고 조선군을 오히려 반기는 경우 또한 부지기수였다.

‘상왕전하와 전하께서 어째서 백성들을 이주시키고, 중앙집권과 교육부에 목을 매는지 알겠구나.’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홍해는 남직례를 돌아보며 이걸 느끼고 말았다.

홍혜는 태종의 부마이니 당연히 왕실편을 들 수밖에 없지만, 지방 세력을 분해시키는 개혁조치에 대해서 “너무 과한 거 아닌가? 그래도 저들은 조선건국에 일조한 이들인데...”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직접 체감하니 한참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조선 백성들이라고 해서, 남직례의 백성들과 다를 게 있을까.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이 미흡하고, 조선조정에 대한 충성심보다 지방세력가의 눈치를 더 많이 본다면... 지금과 같이 외부의 공격에 있을 때, 대항은커녕 죄다 손을 벌리고 반길 것 아닌가.

이래서는 조선을 조선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거다.

특히나 지금 조선은 조선인뿐만 아니라, 몽골,여진,중국,일본인들이 죄다 섞여 살고 있다.

이들을 차별하면 분열로 나아갈 거고, 그 후폭풍은 도무지 감당할 수가 없다.

이 차별과 분열을 막는 첨병이 바로 교육부이니, 태종과 세종이 깊은 관심을 보일 수밖에.

홍해가 딴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기병연대는 마을을 향해 계속 나아갔고, 이내 마을 입구에 도착하자 대대장이 연대를 멈춰 세웠다.

“연대장님.”

“어? 어.”

“전처럼 하시겠습니까.”

“당연히 그래야지.”

대대장이 뜻 모를 말을 내뱉었으나, 홍해는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쓱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니, 잔뜩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휘주상인들, 항복한 다른 현의 현령이 눈에 들어온다.

조선군은 남직례 호족과 손을 잡았으니, 조선군의 진격에 맞춰 끊임없이 호족과 휘주상인이 합류해 길안내 및 보급을 책임졌다.

당연히 함께 따라왔고, 항복한 현령 또한 이렇게 부려먹으려고 직접 끌고 다니지 않았나.

데려왔으면 써먹는 게 인지상정이다.

“나오게.”

통역을 거치자, 휘주상인 한명과 현령이 앞에 나와 공손히 읍을 했다.

“고경.”

“아미타불.”

뒤이어 이어지는 호명에 회색갑옷을 입은 군종승이 튀어나와, 경례 대신 합장을 했다.

“자네도 함께 가는 게 좋겠군.”

“알겠습니다.”

군종중대장인 고경은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여진정벌 때부터 홍해와 함께 했으니, 이런 일을 무수히 해보지 않았나. 여진부족이나 한족마을이나 크게 다를 건 없을 거다.

“소문이 퍼졌을 테니 문제가 생기진 않을 걸세. 혹시 아나? 저기 효씨 집안이 불자집안인지 누가 알겠나.”

“...”

히죽 웃는 홍해를 보며, 고경 또한 뜻 모를 미소만 가볍게 얼굴에 피워냈다.

조선이 청도 건설을 시작하면서 함께 진행한 작업은, 청도에서 살짝 떨어진 산기슭에 청도사를 건립하는 일이었다.

산동에 있는 그 어떤 사찰보다도 규모가 크면서도, 속 알맹이는 중국식이 아닌 조선식으로 꾸며진 청도사.

산동인들은 이 청도사에 대해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호의적으로 변해갔다.

연대에 포함된 군종승들은 산동전역에 흩어져 있던 암자의 고승과 승려들을 긁어모아 교류를 시작했고, 청도의 건설일꾼들에게 법문을 읊어주며 마음을 사로잡았다.

빈민이나 다름없는 이들이니, 당연히 조선불교에 빠르게 흡수될 수밖에.

산동상인이나 호족이 보기에도, 명이 건국된 후부터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산동불교계보단 조선불교가 훨씬 세련되게 느껴지기 마련.

그 응원의 손길이 이어져서인지, 청도보다 청도사가 먼저 완공됐고 산동불교계와 군종승간의 교류는 더욱 깊어졌다.

이 기세에 쐐기를 박아 넣은 사건은, 효령대군이 조선의 고승과 함께 청도사를 방문한 일이다.

산동인들도 옛 고려를 당연히 알고, 그 고려가 불교로 이름 높았던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적어도 불교라는 측면에선 원, 명보다 고려의 이름값이 더 높을 정도였으니까.

그런 법력 높은 고승이 산동을 찾아왔고, 그것도 조선왕의 형이 직접 데려왔다고? 놀라 자빠질 일이지.

불심 깊은 이들 사이에선, 홍형청이 박살난 일보다 이게 더 큰 사건이었다.

효령대군은 그렇게 청도에서 잠시 머물다가, 고승과 산동승려들을 죄다 이끌고 하남의 소림사로 향했다.

이건 뭐랄까... 성지순례 아닌 성지순례의 느낌을 강하게 풍긴 터라, 산동뿐만 아니라 하남에서도 한바탕 난리가 났다.

조선군이 청도에 머무는 동안, 이 소문은 불교신자들의 입을 타고 중국전역으로 퍼져나갔고, 당연히 군종승에 대한 소문 또한 함께 퍼졌지.

조선군을 모르는 이들조차도, 회색갑옷을 보면 승려인 걸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거다.

고경을 내세운 홍해는 다시금 뒤를 돌아보며, 딴청을 피우고 있는 인물을 콕 꼬집어 냈다.

“유 대위. 자네도 함께 가지.”

“에휴... 굳이 제가 필요하겠습니까.”

연대장이 불렀건만, 붉은 갑옷을 입은 인물은 미적거리며 얼굴을 구기고 다가왔다.

“군의중대장인 자네가 빠지면 되겠나? 혹시 아나? 효씨집안이 자네에게 진맥을 요청할지 누가 아나.”

“돈 많은 호족집안에 의원이 없겠습니까. 게다가 저를 뭘 믿고요.”

군의중대장 유정열이 투덜거리며 말을 늘어놓자, 홍해뿐만 아니라 다른 지휘관들 모두 피식 웃고 말았다.

계급을 뛰어넘어 막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군의관은 연대병의 건강을 책임지는 존재 아닌가. 이 정도는 충분히 애교로 봐줄 수 있었다.

“자네를 뭘 믿긴, 군의관에 대한 소문도 쫙 퍼졌을 테니, 효씨집안도 소문을 들었을 걸세. 안 그런가?”

“예? 예...”

뜬금없이 화살이 자신에게 날아오자, 회주상인과 현령은 통역의 말을 듣기 무섭게 고개를 마구 끄덕여댔다.

그들 또한 붉은갑옷을 입고 다닌다는, 조선군 군의관에 대한 소문을 들어봤으니까.

조선이 청도에 왔을 때. 산동인들은 의아함을 숨기지 못했다.

맹수갑옷이야 그렇다 치자. 나머지는 죄다 검은갑옷을 입고 있는데, 대체 회색갑옷과 붉은갑옷을 입고 있는 이들은 누굴까?

처음에는 신분이나 계급을 상징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군종승과 군의관이었던 거지.

승려와 의원이 대체 왜 갑옷을 입고 다니나. 중국에는 아예 있지도 않은 편제이니, 상상도 못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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