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254화 (254/538)

254. 챕터36. 질주하다 (10)

착호군은 체계적인 집체훈련을 통해서, 병사들의 전투력을 엇비슷하게 끌어올렸다.

연오랑이라는 훌륭한 스승, 지금 시대에는 상상 못할 미래의 과학적인 운동법, 경쟁자이자 동반자로 항상 함께 하는 동료들, 점점 늘어가는 실력을 눈으로 확인시켜주는 맹수사냥, 실력향상을 부채질하는 확실한 포상까지.

과거에 각자 알아서 하던 훈련방식에 비하면, 아예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실력이 급상승할 수밖에 없었지.

그간 조선이 몽골이건, 여진이건, 한족이건 따지지 않고 앞도적인 교환비를 뽐내며 두들겨 팰 수 있었던 건, 화포의 역할도 컸지만 개개인의 실력이 한계치까지 올라왔기 때문.

하지만 평범한 사람의 한계치를 뛰어넘는 재능을 가진 이들도 존재했다.

헌데 군대는 통일성과 효율성, 규율이 중요하니, 이렇게 홀로 톡 튀어나온 이들을 썩혀두거나 묻어두는 건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 마련.

연오랑은 튀어나온 못들을 긁어모아 새로운 편제를 만들었다.

말 위에서 하는 서커스나 다름없는 마상재에 능숙한 이들. 유독 기마술이 뛰어난 이들은 특전대로 빠졌다.

마상재에 능하면서도 마상무술이 뛰어난 이들은 기사대로 빠졌고, 마상재는 부족하지만 무기술 만큼은 뛰어난 이들은 훈련대로 빠졌다.

헌데... 스스로 조선제일의 명궁이라 자부하며, 그만큼 활을 사랑하는 조비형은 여기서 살짝 아쉬움을 느꼈다.

연오랑은 무예도감까지 편찬하며 지금껏 없던 장도, 월도, 편곤, 전투도끼 등을 만들었으면서, 어째서 활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걸까?

물론 강찰장갑을 끼면 깍지를 사용하지 못하니, 손가락만으로 쏘는 새로운 사법을 만들긴 했지만... 그거로는 한참 부족하다고 생각했지.

이는 사실 조비형의 오해인데, 연오랑은 칼질 전문가지, 활질 전문가가 아니라서 그랬던 거였다.

아무튼. 그래서 그는 직접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육군 중에서 명궁이라 소문난 이들을 긁어모아서, 활을 개량하고 활 쏘는 법을 연구해 사법도감을 만들기 시작.

그런 그의 움직임에 순풍이 불어왔다.

조선의 강역이 넓어지자 몽골, 여진, 중국, 일본 등의 활과 화살, 쇠뇌, 사법 등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됐고.

무역에 제한이 없어지면서, 천하의 모든 활 재료를 가져와 신형국궁을 만들 수 있게 됐으니까.

그렇게 궁술을 갈고닦은 이들이 바로 홍사석이 이끄는 중대였으니, 조비형이 뿌듯함을 느낄 수밖에.

저들 하나하나가 다 그의 자식이나 마찬가지였다.

조비형과 모든 지휘관, 연대병의 응원을 받으며, 저격중대는 착실히 마을을 압박해 나갔다.

어느새 백보 가까이 다가갔는데 적이 쏘는 화살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기 일 수였고, 반대로 저격중대는 화살을 날리는 적을 역으로 맞추며 꼬꾸라뜨렸다.

몽골군이 재림한 것 마냥, 꼴에 백명밖에 안 되는 이들이 마을을 빙빙 돌며 인간사냥을 하고 있건만... 어째 적은 대응은커녕 더욱더 움츠려들었다.

몇몇 분기탱천한 이들이 화살을 날리자, 오히려 역으로 보이지도 않는 편전에 맞아 쓰러지니 목책 위로 몸을 내미는 이들이 없어질 정도.

“계속 몰아붙여라!”

삐삑! 기세가 완전히 넘어온 걸 느낀 홍사석은 고함에 가까운 소리를 내지르고선, 목에 걸고 있던 호각을 연거푸 불었다.

소대장들 또한 중대장의 명령에 부응해 함께 호각을 불었고, 눈이 핑핑 돌 정도로 말을 달리던 중대원들은 더욱더 목책에 가까이 다가가 화살을 날려댔다.

“좋군.”

“예.”

망원경으로 거북이 등껍질마냥 웅크린 마을을 보며, 조비형은 다시금 감탄을 늘어놨다.

약속한 시간이 다됐는데, 저격중대는 확실히 자기 몫을 톡톡히 해냈다.

이젠 목책 가까이 가더라도 화살한발 날아오지 않을 거다.

“굳이 화포를 쓸 필요도 없겠군. 강 대위. 자네에게 맡기지. 목책을 열게. 문을 열면 연대가 뒤를 따르지.”

“충성!”

저격중대의 노련함에 자극이라도 받은 걸까?

유독 과하게 갑옷을 껴입은 강 대위. 그는 냉큼 경례를 하고선 연대병들 사이로 스며들었다.

“진군!”

뒤이어 검은깃발이 휘날리기 무섭게, 기사대 1개 소대가 연대무리에서 빠져나왔다.

빳빳한 가죽으로 만든 마갑을 우람한 전마에 입히고, 눈만 내놓고 온몸을 갑옷으로 꽁꽁 싸맨 기사대.

손에 끼고 있는 강철장갑과 기병장화 위로 덧댄 강철각반이 유독 햇빛을 반사하며 번뜩였다.

검은빛과 은빛이 묘하게 섞인 강철기마가 천천히 나아가자, 그들이 쥐고 있는 월도와 편곤 또한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기사대는 빠르게 달리지도 않고 느긋하게 다가갔지만, 목책의 문 앞에 올 때까지 공격 한번 받지 않았다.

“안에서 기다리고 있나 보군.”

“숨소리가 들리는 군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부하의 말에 강 대위는 피식 웃으며 전투도끼를 꺼내들었고, 이내 목책 틈으로 사이로 보이는 빗장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쾅쾅쾅! 빗장을 내리치는 소리가 시끄럽게 터지건만, 어째 목책 위로 올라와 기사대를 방해하는 적은 보이질 않았다.

화살은 못 쏴도 하다못해 돌멩이라도 내던질 줄 알았건만... 매섭게 날아드는 편전의 엄호사격 때문인지, 근처에 오지도 못하는 모양이다.

“이놈들은 여기서 제대로 싸워본 적이 없나보군? 수성을 해본 적도 없고?”

“염상이라 했으니... 배타고 돌아다니기만 했지, 이곳 마을에 뭐 얼마나 머물러봤겠습니까. 게다가 지난세월동안 누가 여길 공격했겠습니까.”

“그런가? 멀쩡한 마을에 토성도 아닌 목책을 쌓아놔서 뭐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군?”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야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맞아. 후합!”

만담을 끝마친 강 대위는 기합을 내지르며 뒤로 빠졌고, 이내 곧 기사대원들이 돌아가면서 사정없이 목책과 빗장에 도끼질을 날려줬다.

양념에 절인 고기마냥 목책에 난도질을 끝마치자 다시 말 위에 올라탔고.

“당겨라!”

“히랴!”

소대깃발이 휘날리기 무섭게 목책 위에 밧줄을 던져 옭아맨 기사대는 한 덩어리가 되어 목책을 끌어내렸다.

우당탕. 뿌지직. 과연 열심히 도끼질을 한 보람이 있는지, 목책문은 사정없이 쪼개져 속살을 훤히 내놓고 말았다.

두두두. 쥐고 있던 밧줄을 내던진 기사대는 가볍게 반전하며 편곤과 월도를 꺼내들었고, 목책을 향해 점점 속도를 높여 달려갔다.

농담처럼 말했는데 어째 진짜였던 모양이다.

무너진 목책문 뒤로, 흙먼지를 마셔서 켁켁 헛기침을 하는 적병들이 우글우글 몰려있는 게 아닌가.

“다른 곳에서 적이 오기 전에, 먼저 입구를 정리한다. 돌격!”

“하!” “이랴!”

강 대위는 거의 백여명이 넘는 적을 앞에 두고도, 용맹무쌍하게 외치며 앞서 나갔다.

그래도 돈 많은 염상답게 나름 갑옷을 껴입고 무장한 이들이 대다수. 게다가 몇몇은 특이하게도 몽골식 가죽갑옷을 입고 있었다.

‘우리가 판 물건을 저들이 사간 건가?’

인마일체가 되어 질주하는 와중에도, 강 대위는 문뜩 그런 생각이 피어올랐다.

허나 상념의 꽃봉오리는 피어오르기 무섭게 시들었다.

점점 두근거리는 심장의 고동소리, 적들이 내지르는 고함과 비명소리, 눈을 타고 들어와 귀를 간지럼피우는 바람소리에 흠뻑 빠져들었으니까.

그리곤 이십명의 강철기사가 곧장 적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막... 헙!”

지휘관쯤 보이는 누군가가 목청을 높이며 소리치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육중한 기마의 가슴이 먼저 다가왔다.

쿵! 그냥 냅다 마갑으로 무장한 전마로 들이받자, 적은 빙그르 몸이 튕겨나더니 옆에 있던 다른 적과 부딪쳐 쓰러졌다.

그가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보이지도 않게 찾아온 죽음의 그림자가 쓰러지는 그의 머리통을 때렸다.

파삭! 투구채로 박살나는 머리통을 따라 피가 치솟아 흩날렸다.

죽음을 그린 그림자는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인다.

휙! 붕붕 허공을 빙글 돈 편곤은 반원을 그리며 땅에서 치솟았고, 퍽! 적은 어디서 날아온 건지도 모를 편곤에 턱을 얻어맞아 “컥!” 단발마의 비명만 지르며 쓰러졌다.

쾅! 앞에 걸리적거리는 적은 징을 박아 넣은 강철장화로 그대로 걷어차 날려버리고, 퍽퍽! 허리를 비틀며 편곤을 양쪽으로 휘두르자 적들은 제대로 막지도 못하고 머리통이 펑펑 박살났다.

뚝배기 학살자라는 위명은 여전해서, 왜구와 몽골인의 머리통을 날려주던 편곤이 지금은 한족 머리통도 날려버리고 있다.

순식간에 완전무장한 전마에 짓밟혀 전열은 완전히 헝클어졌고, 목책 입구를 몸으로 막던 적들은 혼비백산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크헉!” “막아라!”

누군가는 비명을 내지르면서도 자리를 사수하라 외쳐대고.

“도... 도망가!” “끄엑.”

누군가는 등을 보이며 도망치려다가 동료와 부딪쳐 뒹굴고 있다.

‘밀염상이라고 해서 걱정했건만, 정말로 기병과 싸우는 방법을 모르는군?’

강 대위가 빠르게 주위를 살피기 무섭게, 자기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기병이 돌파력을 잃으면 보병의 밥이 된다고들 흔히 생각하지만, 그것도 기병을 상대할 줄 알아야 가능한 일이다.

기병은 그 자체로 덩치가 있고 높이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말 위에 올라타 있는 것만으로도 적을 상대하기가 쉬워진다.

적은 기병을 공격하기 위해 위를 올려다보며 엉거주춤하게 위로 공격을 해야 하지만... 기병은 자연스럽게 위에서 내리치는 형태의 공격을 할 수 있어서, 적의 머리와 상채를 손쉽게 공략할 수 있기 때문.

방어할 때도 마찬가지.

적은 힘을 온전히 싣지 못하고 허공에 붕붕 칼질을 하는 꼴이니 기병이 막기 쉽지만, 기병의 공격은 위에서 날아오는 터라 적은 땅에 파묻히지 않는 이상 힘을 흘리지도 못하고 온전히 받아낼 수밖에 없다.

강 대위의 눈에 전형적인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쾅쾅! 편곤을 든 기사대원이 사정없이 내려치기만 하는데도 적의 머리통은 펑펑 터져나가고 있었고, 기창을 든 이는 흡사 작살처럼 기창을 역수로 잡고 내리찍고 있었다.

단면적이 좁아서 안 그래도 창의 찌르기는 막기가 쉽지 않은데, 그게 위에서부터 내리 꽂히니 더욱 손발만 어지러워진다.

“컥.” “끄엑.”

가죽갑옷과 찰갑옷을 입고 있다지만, 기창은 매섭게 적의 안면부와 어깨를 내리찍었고 퍽퍽! 소리가 날 때 마다 피도 함께 튀며 허물어지고 있다.

월도를 상대하는 쪽은 더 우악스럽게 구겨진다.

박도가 비록 두툼한 날을 가지고 있다지만, 월도도 그에 못지않다.

붕! 가볍게 한 바퀴 돌아서 내리 꽂히는 단순한 형태의 공격이지만, 원심력을 받은 월도는 적의 예상보다 더 빠르게 떨어졌다.

날아드는 속도와 무게중심이 머리로 쏠린 월도날에 실린 거력은 막강해서, 혜성처럼 내리꽂힌 월도날과 박도가 부딪치자. 쾅! 적은 박도를 손에 쥐고 있지도 못하고 떨어뜨렸다.

“헉!” 놀란 적이 비명을 내질러보지만 이미 늦었다.

박도를 날려버리고도 힘이 남은 월도날이 적의 어깨를 갑옷채로 우그러뜨리며 어깨뼈를 박살내 버렸으니까.

“말! 말을 노려!”

“다 달라붙어서 찌르라고!”

“흥!”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순 없지만, 적이 무작정 달려드는 걸 보며 강 대위는 비웃음을 흘리며 박차를 때렸다.

호기롭게 달려와 전마를 향해 칼을 휘둘러보지만, 튼튼한 마갑을 믿고 날뛰는 전마는 칼을 몸으로 다 흘려내고 거꾸로 강 대위에게 역습의 기회를 넘겨줬다.

“어?” 뚫리지 않는 마갑을 보며 적이 당황해서 머뭇거릴 때. 쾅! 어느새 떨어진 편곤이 적의 머리통을 깨부셨고.

“헙!” 날뛰는 전마의 거력을 이기지 못해 칼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 균형을 잃자, 쾅! 아니나 다를까 반대편에서부터 내려친 편곤에 맞아 쓰러졌다.

가죽갑옷이 왜 갑옷이겠나. 갑옷은 가죽옷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물건이 아니다.

기름을 먹여 압착시켜 겹쳐놓은 가죽갑옷은 손으로는 접을 수도 없을 정도로 단단했고, 바닥에 딱 고정시켜서 힘을 줘서 찌르지 않는 이상 쉽게 뚫리지도 않는 물건이다.

그걸 전마에 입혀놨고, 전마는 제대로 맞추기도 힘들게 날뛰고 있는데 뭔 수로 마갑을 뚫어낼 수 있을까.

그저 죽죽. 마갑은 칼질에 맞아 작게 상처만 날 뿐이었다. 이건 오히려 괜히 전마의 성질만 돋은 꼴이 됐다.

“건방진 놈들!”

강 대위의 외침에, 히힝! 안 그래도 흥분한 전마가 더욱 흥분해서 이리저리 날뛰자, 뭍에 나온 물고기마냥 펄떡거리며 적병을 날려버렸다.

“어... 어!”

“몸으로라도 막아!”

뒤쪽에 있던 적들 중 누군가가 그리 외쳐보지만, 사람보다 몇배는 몸무게가 나가는 말을 뭔 수로 막을 수 있을까.

제자리에서 빙글 돌때마다 쿵! 전마의 엉덩이에 얻어맞은 적은 버티지 못하고 뒤로 나가 떨어졌고, 가슴팍에 얻어맞아 쓰러진 이는 사정없이 발굽질을 하는 전마에 밟혀 “컥컥...” 가슴이 함몰되어 피기침을 뱉어내다가 눈이 감겼다.

‘역시 기병을 상대할 줄 몰라.’

강 대위는 다시금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전마를 더욱더 앞으로 내몰았다.

창과 같은 장병기로 전마 자체가 움직일 공간을 만들지 못하게 포위해서 한꺼번에 달라붙어야 하는데, 이들은 그걸 모르는 모양이다.

‘아니지. 머리론 알지만 몸으로 하진 못하는 거겠지.’

진흙탕을 뚫고 나가는 것 마냥 전마를 앞세워 적을 몸으로 들이받고, 편곤을 사방으로 휘둘러 적병의 머리통을 박살내면서도 생각은 이어졌다.

말이야 누가 못하고,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전술을 누가 못 짤까.

하지만 눈앞에서 창칼이 횡횡하고 산처럼 거대한 전마가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날뛰는 와중에, 자기 목숨을 내놓고 자리를 지키는 건 쉽지가 않다.

그걸 위해서 미친 듯이 대기병 훈련을 하는 거고, 그게 되어 있지 않으면 지금처럼 허둥지둥 거리다가 뚫리는 거지.

“하!”

“비켜라!”

“그냥 밟아버려!”

강 대위뿐만 아니라 다른 기사대원 또한 이제 적에게 적응했는지, 서로에게 고함을 내지르며 거침없이 전마를 밀어붙여 적을 압사시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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