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255화 (255/538)

255. 챕터37. 공성하다 (1)

지난날 끊이질 않던 전쟁 기간동안, 기사대는 그 첨병에 서서 적을 상대했다.

기사대 만큼이나 육중한 몽골기병과 싸웠고, 이들보다 기병을 더 잘 상대할 줄 아는 북평군과 싸웠고, 이들보다 훨씬 날렵한 여진기병과 싸워왔다.

마을 안으로 들어오면서 기병의 돌파력과 달릴 수 있는 공간을 잃었다지만, 정예병 중에서도 정예병인 기사대는 육박전을 벌여 두툼한 인의 장막을 결국 찢어버렸다.

마을 출입구의 좁은 도로에 백여명이 훌쩍 넘는 적병이 우글거리고 있었건만, 그걸 몸으로 다 밟아버리며 결국 뚫어낸 것.

“...!”

온몸에 피칠을 한 기사대는 한명의 부상자도 없이 결국 적을 분쇄시켰고, 입구에서부터 시작된 붉은 내천은 강 대위의 장화 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에 이어져 있었다.

“빠진다!”

삐빅! 강 대위가 호각을 불기 무섭게 외치자, 기사대는 좁은 골목길로 잠시 비켜났고... 이내 곧 폭풍이 몰아닥쳤다.

가시대가 길을 뚫어놓자, 마을 밖에서 기회만 보면서 몸을 달구고 있던 수백기의 연대기병이 마을로 쏟아져 들어왔다.

“성공했군. 일이 귀찮게 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되나?”

“화포를 쓰는 것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창칼에도 눈이 없지만, 화포는 아예 장님이니까요.”

“큭.”

조비형은 대대장의 농담에 피식 웃고 말았다.

화포를 쏴댔으면 분명 적뿐만 아니라, 애꿎은 염장들도 무지막지하게 죽어나갔을 테니까.

“홍 대위에게 마을 저편 갈대밭을 경계하라 전해라. 적이 매복해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 절대 갈대밭으로 들어가지 말고.”

“옛!”

이곳은 소금을 만드는 마을이고, 중국은 자염을 생산하는 터라 엄청난 양의 땔감이 필요했다.

이곳은 그런 면에선 최적의 장소로, 해안을 따라서 화력이 좋은 흰 갈대가 자생하고 있었다.

‘혹시 모르니...’

적이 매복을 한다고 해서 이미 마을이 무너진 이상 뭘 할 수 있겠냐만... 그래도 괜히 피해를 입으면 곤란하지.

‘설령 적이 매복해 있다고 한들, 마을이 점령당하면 끝 아닌가. 다른 곳으로 돌아가든 아니면 창을 내려놓고 도망가든 하겠지.’

조비형을 그리 생각을 정리하다가... 오히려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군. 적이 그렇게 많을 수가 있나?’

“저 마을의 가호가 대충 천오백호 정도 된다고 했던가?”

“예. 아마 그 정도 될 겁니다.”

천오백호면 마을이라기 보단 거의 도시에 가깝지만, 남통에도 병력을 보냈을 테니 지키는 병력은 그리 많지 않을 거다.

“마을에 목책이 있어서 의아했는데, 특별한 건 없나보군?”

“저 자의 말이 맞지 않겠습니까?”

대대장이 힐끔 뒤를 돌아보며 입을 열자,

“그... 그렇습니다!”

기회를 잡았다는 듯, 아까 기죽어서 뒤로 빠졌던 현령이 열심히 침을 튀겼다.

과거 원말명초. 장사성이 이곳을 차지하고 있을 시절, 그의 든든한 자금줄이 된 게 바로 소금이었다. 절강과 남직례의 해안에서 나는 소금을 팔아 막대한 자금을 충당했었지.

명이 들어서자 염매권을 실시. 예전 조선과 흡사하게 소금장인은 소금가마에서 소금을 그대로 생산하게 했지만, 그 유통과 판매는 관이 허락하는 상인만 가능하게끔 했다.

하지만 내륙으로 들어가면 소금값이 열배, 스무배로 껑충 뛰는데, 이 꿀단지를 그냥 놔둘 수 있을까.

자연스럽게 밀염상이 등장하게 됐고, 이들은 잔혹하기로 악명 높았다.

관병에게 붙잡히면 어차피 죽을 처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니, 관병이건 뭐건 할 것 없이 일단 칼부림부터 부리고 봤던 거지.

잔혹했던 홍무제 치세에 그랬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거다.

그렇게 칼잡이가 가득해진 밀염상은 소주, 항주, 영파와 같은 해안도시의 뒷골목과 암흑가로 흘러들어가서, 관에 뇌물을 왕창 먹여가며 세력을 확장해갔다.

하지만 그런 호시절도 이내 끝.

내전이 벌어졌는데, 밀염상이든 파락호든 군병들이 가렸을까.

죄다 전쟁터로 끌고 가서 갈아버렸고, 밀염상 조직은 일대 격변이 일어났다.

“그런데 명이 망해버렸지.”

“예. 관염이 없어졌으니, 밀염도 없어지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우려처럼 대단치 않은가 봅니다.”

“음...”

조비형은 현령의 설명을 들으면서, 대대장과 대화를 이어갔다.

그렇게 밀염상 조직이 평지풍파를 겪는 동안 명이 망해버렸고, 이젠 관이 아닌 호족과 상인이 권력자로 대두되기 시작.

관이 없으니 밀염 또한 없어졌고, 안 그래도 사분오열됐던 밀염상 조직은 이제 호족과 상인이 대놓고 개입해 소금상인으로 변신을 꾀했다.

어찌 보면 이게 백성들에게는 더 나은 걸지도 모르겠다.

자유시장경제와 유사하게 돌아가니 소금값이 명나라 시절보다 훨씬 떨어졌으니까.

반대로 이젠 목숨 걸고 밀수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밀염상 조직은 독기가 쫙 빠져서 칼잡이 조직이 아니라 평범한 상인으로 변해갔다.

이후 남통에 자리 잡은 진주광 또한 꿀단지를 놓칠 리가 만무.

그는 연주부를 차지하기 무섭게 동쪽에도 손을 뻗혀, 염전마을을 전부 집어삼켜 소금장사를 시작했다.

“맞습니다! 제가 확실히 보증합니다. 진주광의 부하 놈들이 소금마을을 만들려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항복한 현령은 아까의 실수를 만회하려는 양, 계속해서 열변을 토했다.

이 해괴한 목책마을의 탄생배경도 여기에 있었다.

진주광은 옛 황제군 출신 군벌이고, 그 휘하에는 어쩌다보니 그의 지휘를 받게 된 다른 지방 출신의 중간지휘관들이 존재했다.

이들을 대우해줘야 자신의 권력이 탄탄해지니 먹을거리를 던져줄 수밖에 없었고, 각자가 돈이 될법한 염전마을을 하나씩 꿰차고 주저앉은 것.

진주광에게 보내는 소금 말고도, 자신만의 뒷주머니를 만든 거지.

이 염전마을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거대하고 어설픈 목책을 만들어 놓았던 건, 외부의 침입을 방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끌고 온 염장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막는 용도라 했다.

“허. 웃기는군.”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소금 만드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니니까요.”

“음...”

조비형은 대대장의 쓴웃음에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어찌 보면 예전 조선과 똑같은 상황 아닌가.

조선의 자염 생산방법과 크게 다를 게 없으니, 이곳 염장들 또한 일이 고돼서 도망치는 이들이 빈번했다.

조선은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아예 염장을 신량역천인으로 만들어 신분을 통제해버렸지만, 진주광은 그건 못하니 무력으로 강제해왔던 거지.

“그래서 남통으로 병력을 소환했는데도, 이곳에 꽤 많은 병사가 남아 있던 거군.”

“그렇지 않겠습니까. 지키는 이들이 없으면 염장들을 통제할 수도 없을 거고, 사실상 이곳 병사는 진주광의 직속부하가 아니라 휘하 장군의 사병과도 마찬가지일 테니...”

“혹시 몰라서 자기 병사는 또 빼놨다 이거군? 우리가 이렇게 움직일 줄 모르고 말이야.”

“예. 아마 지금쯤이면 돌아가는 사정을 알아차렸을 테니, 남통에 있을 장군들과 진주광은 언성을 높이고 있을 겁니다.”

“하하핫.”

조비형은 보지 않아도 짐작되는 탓에, 자기도 모르게 시원하게 웃고 말았다.

아마도 진주광은 “병력을 다 데려오지 왜 안 데려왔냐!?”라고 떠들고 있을 거고, 부하장군은 역으로 “이렇게 갇혀 있다가는 죽은 목숨이니, 밖으로 나가서 싸웁시다!”라고 외치고 있지 않을까.

“좋아. 다른 연대보다 뒤처지면 곤란하지. 계속 접수해 나간다.”

“옙!” “충성!”

조비형은 어느새 마을을 시커멓게 물들인 검은 깃발의 파도를 보며, 환하게 웃으며 명을 내렸다.

*****

“으...”

“괜찮나?”

“자네는?”

“나도 뭐...”

회안부 해안 방가의 후계자인 방회는 친우인 학명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보아하니 그 또한 자신과 마찬가지로, 바지에 똥을 싼 것 마냥 발을 질질 끌면서 갈지자를 그리며 걷고 있었으니까.

조선군이 남통을 포위한지 벌써 2주가 다되었건만, 아직도 허벅지와 엉덩이에 박힌 울혈은 빠지지가 않았다.

길 안내를 하며 신나게 쫓아온 건 좋았는데, 조선군의 정신 나간 속도에 맞췄더니 허벅지가 남아나지 않은 거지.

특히나 방회나 학명처럼 회안부 북부에서부터 함께 온 호족자제들은 다 똑같은 꼴을 하고 있었다.

“지독하군? 요동변경에서 말만 타고 다녔던 모양이야.”

“으... 그렇겠지. 난 아직도 아파 죽겠는데.”

어기적거리며 걷는 둘과 반대로, 쌩쌩하게 말을 타고 돌아다니는 검은 갑옷을 보며 중얼거렸다.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보면 볼수록 ‘얘들은 정체가 뭔가?’라는 의문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숙영지를 짓는 것도 그렇고...’

혹시나 모를 침수에 대비해서, 조선군은 연대별로 묶어서 마을이나 낮은 산어귀에 숙영지를 건설했는데, 그 속 알맹이는 게르가 아닌가.

하는 짓을 보면 이들이 조선군인지 몽골군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

“...”

둘은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고, 지나가는 곳마다 곳곳에서 말과 마차, 짐수레가 요란하게 돌아다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점점이 뿌려진 이들 사이론, 황금빛 벌판에서 우르르 모여 추수하는 농부들이 눈에 들어온다.

“에헤라디야. 어해라.”

아스라이 노동요 소리가 들려오고, 이따금씩 웃음소리가 퍼지기도 하는데... 이게 지금 공성을 하는 게 맞는 지 헷갈릴 지경.

“이곳 출신이 아니라 외부에서 온 사람들도 꽤 된다고 하지?”

“그럴걸? 이 땅을 경작할 사람들은 죄다 남통에 들어가 있으니까.”

“흐음...”

학명이 입맛을 다시며 쩝쩝거리자, 방회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읽혀진다.

“조선에 넘겨주기 아깝나?”

“아니라곤 말을 못하지만... 그냥 속이 쓰려서 말일세.”

“어차피 자네 것도 아니고, 솔직히 우리 것도 아니지 않나. 진주광 거였지.”

“그야 그렇지...”

큰 도시는 최소한의 자립과 생존을 위해서, 무조건 전답을 비롯한 식량생산지를 도시 인근에 만들어 놔야 한다.

한성 외각에 성저십리가 존재하는 것처럼, 남통 또한 마찬가지.

허나 남통을 제외한 양주부 전역이 조선군에게 점령당했고, 대부분의 마을에선 백성들의 환호를 받으며 조선군이 입성했다.

진주광은 군세를 유지하기 위해 50%에 가까운 세금을 뜯어갔는데, 조선군이 30,40%만 떼어가도 만세를 부르며 환영했지.

이렇게 일당을 받고서, 주인 잃은 논에 자발적으로 와서 추수를 대신해줄 정도로 말이다.

“약탈을 안 하는 게 어딘가.”

“맞네. 이 정도에 그친 게 어디야.”

둘은 조선이 참으로 노련, 아니 약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금 쓴웃음을 머금고 말았다.

비틀거리며 논두렁을 한참 걸어가자, 저쪽 한편에선 대로를 따라 끊임없이 밀려드는 수레와 마차의 물결이 눈에 들어왔다.

“운하가 확실히 열린 모양이야.”

“진주광의 수군이 전멸했다고 하지 않나. 태주와 태령은 손도 못써보고 제풀에 무너졌으니, 온갖 상인들이 다 몰려들겠지.”

“음...”

둘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머릿속에 훤히 그려졌다.

조선해군은 남통을 봉쇄하기 무섭게, 일단의 병력을 빼서 장강과 운하의 교차점에 위치한 태주와 태령을 공격했다.

무지막지한 포격에 얻어맞았는데, 대체 뭔 수로 버틸 수 있을까.

그렇게 포격으로 쑥대밭을 만들어놓고 난 후. 며칠이 지나기 무섭게 육군이 태주와 태령으로 밀고 들어왔다.

여기서도 연주부 모든 곳에서 벌어진 사건이 똑같이 일어났다.

진주광의 압제에 벗어날 기회를 얻은 이들은 조선군을 환영했고, 아직 진주광의 줄을 놓지 않은 이들은 거칠게 반항했다.

태주와 태령은 원래 역사가 깊은 도시고, 그만큼 번성한 곳이니 진주광의 최측근이 다스리는 게 당연한 말.

하지만 하급지휘관이라 할 수 있는 몇몇 천호장과 많은 백호장들이 반기를 들고 일어나 작은 내전 비슷한 게 벌어졌다.

그동안 단물만 쪽쪽 빼먹은 건 진주광의 최측근들이고, 그들의 줄을 탄 몇몇 이들만 혜택 받았다. 나머지 대다수는 허드렛일만 하며 자리만 지키던 사람들 아닌가.

그런데 이미 수군이 다 작살났고, 화포와 기병이 달려와 두들겨 패는데, 이런 조선군하고 싸우라고?

“대체 뭘 위해서? 너희들을 위해서?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라며 밑에서부터 들고 일어선 거지.

“그래서 남통 못지않게 큰 도시인 태주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는 거군?”

“맞네. 겉으로 보기엔 튼튼한 성벽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속엔 이미 이빨이 다 빠진 흙무더기만 남아 있었던 거지.”

“흐음...”

“저기 보게.”

학명은 익숙히 봐왔지만, 볼 때마다 신기한 광경을 손을 들어 가리켰다.

추수를 끝마친 논바닥 한곳엔 간이천막이 여럿 서있었고, 여러 양식의 갑옷, 특히나 비갑을 죄다 팔에 차고 있는 병사들을 가리켰다.

저들은 항복하거나 포로가 된 진주광의 병사들로, 군호에 속해서 억지로 끌려온 백성들이었다.

저들의 갑옷과 무기를 죄다 회수해서, 맨몸으로 고향에 돌려보내는 중이었다.

저것만 봐도 조선군의 자신감이 드러난다. 조선에 반기를 들 거라고는 생각도 안하는 게 분명했다.

“진짜 군병이나 포로들은 따로 처리했다고 하던데...?”

“그렇다고 들었네. 아마 절강으로 끌고 갔을 걸? 그 뭐라더라. 절강에도 산동의 청도와 같은 조차지를 만든다고 했으니까.”

“조차지라...”

방회는 조차지라는 말을 혀에 굴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만약 남직례에도 항구를 만들 만한 곳이 있었다면 조선군이 땅을 빌려갔을까? 문뜩 이런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

조차라는 건 들어본 적도 없는데, 참 잘도 써먹는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포로가 많을까?”

“적지 않을 걸? 남통수군이 전멸 당했다고 하니, 그 수가 만만치 않겠지.”

“음.”

진주광의 주력은 어디까지나 수군이었고, 그들은 일반 군호보다 훨씬 긴 복무기간을 치러야 했다. 반쯤 직업군인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은 수준이었지.

조선해군은 진주광의 수군 절반을 박살내고, 절반은 사로잡지 않았나.

나포한 누선과 사로잡은 포로는 죄다 상해로 끌고 갔고, 기타 거칠게 반항하던 병사들 또한 풀어주지 않고 포로로 삼았다.

그리곤 남통이 아직 점령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상해조차지를 건설하고 있었다.

물론 둘은 보지도 못했지만, 들리던 소문은 그러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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