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 챕터37. 공성하다 (4)
포격이 시작된 지 벌써 일주일이 넘었고, 조선군은 압도적인 화력을 앞세워 남통의 포대를 완전히 침묵시켰다.
남통도 화포를 몇 가지고 있긴 했지만, 양과 질 모두 부족하니 버틸 수가 있나.
그렇게 미친 듯이 쏴댄 탓에 남통의 성문은 아예 박살나서 거대한 돌무더기가 되어 있었고, 높디높던 남통 성벽도 군데군데 이빨이 빠진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저긴 전부다 포대가 있던 곳이겠지.’
화포를 성벽 위에 올려놓고 쏘는 건 당연한 말이니, 조선군에 의해 포대든 화포든 다 얻어맞고 날아갔을 거다.
특히 심한 곳은 아예 성벽 자체가 무너져서, 거대한 돌산, 흙산이 만들어진 곳도 있었다.
“성벽 보수는 꿈도 못 꾸나 보군.”
“자네 같으면, 포탄이 날아드는데 보수하고 싶겠나?”
그의 혼잣말에 누군가 대신 답을 해줬다.
“맞네. 보수하러 온 병사들을 포격으로 날려버리더군. 지옥도가 펼쳐졌는데, 거길 누가 들어가려 하겠나. 저들끼리 한바탕 난리가 나는 걸 봤네.”
‘맞는 말이지.’
무너진 성벽을 급히 보수를 하고 목책을 세워봤자, 성벽조차 부셔버린 화포 앞에서 목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밤마다 수리해서 목책을 만들어놓으면 아침마다 화포의 매운맛을 보여주니, 이젠 보수를 포기한 모양이다.
“밤마다 탈주가 이어지고 있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인가 보군?”
“맞아. 조선군이 관리하고 있어서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도망쳐왔을 걸세.”
“음...”
‘충분히 그럴 거야.’
방회는 학명과 윤표가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며, 머릿속으로 남통성 상황을 그려봤다.
남통은 완전히 포위됐고, 대응하기 어렵게 포격은 불규칙적으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성문은 물론이고 성벽조차도 군데군데 구멍이 뚫렸다.
병사들은 둘째치고 남통성에 살던 백성들 입장에서 도망칠 생각이 굴뚝같지 않을까.
그리하여 공성 첫날 성문이 날아가기 무섭게, 수백의 백성들과 병사들이 남통성에서 도망쳐 조선군에 투항했다.
친절하게도 성벽에 구멍이 너무 많이 뚫려서, 도망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으니까.
이후 밤마다 탈주행각이 이어졌고, 심지어는 백성들을 막으라고 배치해 놓은 병사들마저도 함께 도망치는 경우도 있었지.
진주광은 그걸 막으려고 꽤 살벌한 조치를 취했겠지만, 그럴수록 분위기만 더 안 좋아질 게 분명. 남통성 내부에선 불만이 부글부글 끓고 있을 거다.
“야습을 해온 적은 없나?”
“없었겠나. 당연히 화포를 공격하러 나온 이들이 있었는데, 전부 실패로 돌아갔지. 애초에 야습을 하기도 힘들었거든.”
“...?”
무슨 뜻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자, 윤표가 얼른 설명을 이어갔다.
“산동상인들이 운하를 타고 내려온 건 알고 있지?”
“아네.”
“그치들이 가져온 물건은 대부분 석탄일세. 대체 그걸 왜 가져왔나 했더니, 조선군은 알뜰살뜰하게 써먹더군.”
“아...”
“하긴. 야전진료소에서 물 끓일 때 쓰는 걸 봤네.”
“야전진료소 뿐일까. 조선군 진지에도 엄청나게 들어갔을 걸세.”
남직례 출신인 둘은 석탄이 꽤 낯설었지만, 그 쓰임에 대해서 모르는 건 아닌 터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석탄은 중국북부에선 널리 쓰이는 물건이나, 남부에선 잘 안 쓰지 않았다.
이곳은 기후가 좋아 겨울에도 난방걱정을 크게 안 해도 되고, 석탄 대용으로 쓸 땔감이 꽤 있으니까.
그런 석탄을 대체 왜 가져왔나 했는데, 조선군은 그걸 이용해서 물을 끓이는 데 사용했다.
끓인 물로 몸을 씻는 건 당연한 거고, 차를 끓여 먹는 수준을 넘어서 조선군이 음용하는 모든 식수를 끓인 후에 식혀서 먹었지.
모두는 “저렇게까지 해야 되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지만, 조선군이 한다는데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남직례 사람들은 “물을 끓이고 그대로 식혀서 먹을 거면, 귀찮게 뭐 하러 끓이는 거야?”라며 속으로 빈정거렸고.
조선군은 “멍청한 놈들. 이렇게 관리해야 병에 안 걸린다고.”라며 무식을 타박했지.
아무튼. 그렇게 사용하는 석탄 외에도, 더 많이 쓰이는 곳은 따로 있었는데, 바로 남통성을 감싸는 거대한 불길의 띠를 만든 것이었다.
“아...! 밤마다 불을 피워놨던 게 그런 이유였나?”
“그렇지.”
학명이 전에 구경한 적 있는 광경을 떠올리자, 윤표는 히죽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조선군은 산동에서 가져온 석탄, 추수하고 남은 볏짚, 강가와 해안가에서 긁어온 갈대와 몇 안 되는 장작을 전부 모아서 밤마다 불을 피웠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커다란 모닥불을 피워서, 남통성 전체를 감싸는 불의 띠를 형성. 밤하늘의 은하수를 땅에 재현해 놨지.
“그렇게 불을 환하게 밝혀 놨는데, 야습이 쉽게 되겠나? 성 밖으로 나오기 무섭게 오히려 조선군이 어둠에 숨어 있다가 역습을 하더군.”
“밤에는 기병이 기동하기 힘들었을 텐데...?”
“조선군은 말을 안 타도 잘 싸우는 것 같더군. 정확히는 모르지만 야습을 할 때마다 남통성 병사들의 포로와 시체가 수북이 쌓였고, 도망친 병사를 굴비 엮듯 사로잡았으니까.”
“허허...”
둘은 작게 혀를 차고 말았다.
흔히들 야간작전을 적의 방심을 노리고 혼란한 틈을 타서 전과를 확대시킬 수 있는 비장의 수. 효과적인 작전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은 정 반대다.
야간작전은 오히려 정예병만 할 수 있는 전유물이기 때문.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대낮에도, 전열과 제대에 파묻힌 병사는 자신의 앞뒤에 있는 동료 밖에 안 보인다.
저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저 옆과 뒤에서 무슨 일이 펼쳐지고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괜히 지휘관의 깃발을 장대마냥 높이 세우는 게 아니지.
그런데 달빛에만 의지해야하는 이 시대에, 밤에 움직이면 어떻게 될까. 코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 발을 더듬거리며 움직여야 한다.
길을 잃어버리는 건 당연한 거고, 부대 전체가 움직이는 와중에도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리는 것 또한 당연한 일.
그 상태에서 가벼운 공격을 받아 비명소리가 터지기 시작하면, 눈에 보이는 게 없으니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며 혼란은 극대화되기 시작.
이게 조금만 심해지면 피아 식별을 못하고, 아군끼리 칼부림을 벌이게 된다.
툭 찌르면 알아서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거지.
“아... 그런가?”
“조선군 군의관이 그렇다고 했으니 맞지 않을까?”
윤표도 병법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하니, 그저 군의관에게 들었던 말을 되풀어냈을 뿐이지만... 둘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야간작전의 문제는 또 있다.
사기가 떨어지고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이들은, 싸우기는커녕 밤 그림자에 파묻혀서 그냥 도망치는 거다.
어차피 보이지도 않으니, 도망치는 건지 이동하는 건지 어떻게 알아보겠나.
“그래서 포로가 엄청나게 잡혔다는 거군?”
“그렇지. 얼마 떨어지지도 않은 포대진지까지 오지도 못하고, 그저 장강 방향으로 무작정 도망친 모양인데 조선군은 미리 조치를 취해놓지 않았나. 타고 갈 배가 없어서 어물거리고 있자, 새벽녘에 조선기병이 움직여 고기 잡듯 낚아 올리더군.”
“그냥 항복하려는 마음을 먹고, 얌전히 있던 이들도 있었을 걸세.”
“맞아. 그럴 가능성이 크지.”
조용히 이야기 하고 있었는데 어째 들렸던 모양이다. 후계자들 중 한명이 대신 말을 받아 대꾸했다.
윤표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선 말을 이어갔다.
“불을 피운 게 그런 효과도 있었고, 다른 효과도 있었지.”
“...?”
“밤에 몰래 성을 빠져나온 백성들도 어디로 도망쳐야 할지 모르지 않나. 헌데 안내를 하듯 사방에 불이 피워져 있었으니, 그 불길을 얌전히 따라가서 제 발로 조선군의 아가리로 들어간 거지.”
“아...!”
“오!”
둘은 자기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말았다.
불하나 피운 것만으로. 적의 병력을 줄이고, 사기를 떨어뜨리고, 남통성 내부의 정보를 얻는 절묘한 수다.
“그래도 마냥 포격만 할 순 없지 않나? 남통성에서 반격이 날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포탄만으로 저 크고 넓은 성벽을 전부 무너뜨릴 순 없을 텐데...”
“그야 그렇지.”
“자고로 공성전이라 함은 운제나 충차를 이용해서 적극적으로 성을 공략하는 건데 말이야. 언제까지 포격만 할지 모르겠단 말이지.”
병법을 책으로 배운 건지, 아니면 자기 일 아니라고 막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만... 누군가 좋은 구경을 못해서 아깝다는 듯이 말을 하자, 여기저기서 반론이 터져 나왔다.
“그게 말처럼 쉽게 될 리가 있나.”
“맞네. 전원 기병으로 구성된 조선군이 미쳤다고 그 이점을 포기하고 성벽을 오르겠나?”
“게다가 그런식으로 공격하기에는 조선군의 수가 그리 많지 않을 걸. 자고로 공성을 할 때는 수성병력의 3배는 되어야 한다고 하지 않나. 지금도 병력은 남통성이 더 많지.”
후계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놨고, 가볍게 토의가 이어졌다.
모두가 한마디씩 하고 잠깐 침묵이 감돌 때.
“그리고 차라리 지금 상태가 더 좋은 걸세.”
“...?”
누군가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그건 무슨 뜻인가?”
“만약 조선군이 자네 말대로 공성을 하겠다고 병력을 징집하면 어떻게 되겠나? 남직례 백성들을 동원할 게 뻔하고, 여차하면 가병들을 내놓으라고 할 텐데... 그거 감당할 수 있나?”
“... 그건.”
“으음...”
따끔한 일침에 모두가 입을 다물고 말았다.
자기가 손해 보기 싫어서 조선군의 손을 빌린 건데, 그런 식으로 공성할거면 조선군을 부른 이유가 없다.
백성들을 동원하는 것도 마찬가지. 미친 듯이 숫하게 죽어나갈 텐데, 그 뒷감당을 하고 싶은 가문은 아무도 없다.
아무리 중국에 사람이 넘쳐난다고 해도, 그건 다 누군가의 재산이며 일꾼이다.
옛 명나라처럼 다른 지방에서 백성들을 강제 이주시킬 수도 없으니, 남직례 백성들이 죽으면 죽을수록 회복하는 건 그만큼 힘들어진다.
“차라리 지금처럼 느긋하게 돈이나 대주는 게 나아.”
“그래도 전비가 꽤 많이 들지 않나. 절강놈들은 가만히 있고, 우리만 조선군의 보급을 책임지고 있는데, 조선군이 얼마나 남겨먹는지 모르잖나. 게다가 조선군을 불러오려고 이미 엄청난 돈을 썼고.”
“그건 감수해야지.”
“맞네. 절강놈들의 도움을 받으면 더 골치가 아파질 걸세.”
모두는 한마음이 되어 그리 외쳤다.
모두의 동의를 얻어 힘이 붙었는지, 앞서서 반대했던 이가 계속 입을 열었다.
“이미 지불한 대금은 둘째 치고, 솔직히 따지고 보면 전비가 그리 많이 드는 것도 아니지. 군량과 말먹이는 이번에 수확한 양주부의 쌀로 해결될 일이고, 그 외의 보급품은 남직례 전체의 가문이 조금씩 각출하면 그만 아닌가?”
“흐음..”
“조선군은 분명 대군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2만도 안 되는 병력이네. 게다가 어지간한 건 자신들이 다 가지고 와서, 소모품 정도만 우리가 채워주면 되는 건데... 그것도 손해 보기 싫다고 우는 소리를 하면 곤란하지.”
“크흠.”
“흠흠.”
그가 “남직례 연맹을 조직하니 마니하고 있는데, 그렇게 자기 잇속만 챙길 거냐?”라고 빈정거리듯 말하자, 몇몇은 괜히 찔려서 헛기침을 하며 딴청을 피웠다.
“그럼... 이 상태로 계속 간다는 건데, 진주광이 어떻게 할까?”
“답이 있겠나? 보게.”
누군가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집으며 입을 놀렸다.
“수군은 전멸했고, 기병대도 전멸했고, 포대도 전부 무용지물이 됐고, 거꾸로 포격을 계속 얻어맞아서 성벽 위를 지키는 것도 힘들고, 야습을 하면 탈주병만 늘어나니 포기했지.”
“...”
하나씩 놓고 보니, 절망 그 자체다.
진주광 입장에선 답답해서 미치고 환장할 심정일 거다.
“진주광이 선택할 수 있는 수는 계속 버티면서 조선군이 성내로 진입할 때 난전을 벌이는 것 말고는 없지 않을까?”
“아예 성 밖으로 나와 회전을 벌이는 건 어떤가? 어찌됐건 남통성의 병력이 더 많잖아?”
“턱도 없는 소리.”
누군가 반문하자, 그는 단칼에 잘라내며 고개를 내저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남통성에는 대략 이만오천정도의 병사가 있는 걸로 들리던데... 그중 절반 이상이 수군일세.”
“아마 맞을 걸세.”
“그럴 거야.”
조선군이 급속행군을 하면서, 양주부 전역에서 징집해 오던 병력을 다 갈아버리지 않았나.
박살난 천호소만 5부대에, 싸우지도 않고 항복한 천호소가 3부대. 운하의 입구인 태주와 태령에 있던 3개 천호소가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항복했고, 해안 염전마을에 퍼져 있던 6개 천호소도 전부 정리됐다.
남통성에는 평범한 징집병 보다 수군이 훨씬 많은 상황이지.
“진법훈련도 안 해본 수군을 데리고 기병과 회전을 벌인다고? 아무리 진주광이 궁지에 몰렸어도, 그런 멍청한 짓을 하진 않을 걸세.”
“그렇겠지?”
“그게 그렇게 차이가 날까? 징집병보단 수군이 더 정예하지 않나?”
“절대 아닐걸. 물에서 싸우는 것과 뭍에서 싸우는 건 아예 다른 거니까.”
그는 자신의 병법지식을 뽐내기라도 하듯, 열심히 혀를 놀렸다.
조선이든, 중국이든, 백성을 징병해 군대로 삼는 나라는 개인무용의 향상보단 진법훈련에 힘을 기울였다.
농부나 마찬가지인 이들을 데리고 군역 기간에만 훈련을 하니, 최선의 선택은 전열을 만들고 제대를 유지할 수 있는 진법훈련 밖에 없다.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이는 이게 굉장히 중요한데, 진법훈련이 안되면 명령을 재깍재깍 수행하는 병사가 아니라 군중무리와 별반 다를 게 없기 때문.
자기가 어디로 가야되는지, 자리를 지켜야 하는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이런 무리를 이끌고 어떻게 싸우겠나.
어차피 맞부딪혀 창칼을 휘두르는 건, 살기 위해서라도 본능적으로 하기 마련. 덩어리를 유지해서 진퇴를 할 줄 알게 만드는 게 최선인 거지.
“하지만 진주광의 수군은 오히려 반대지.”
수군은 배를 타고 싸우니 당연히 진법훈련을 안 한다.
안 그래도 중국의 장군과 병사들은 기병을 상대하는 법을 책으로만 배웠는데, 진법훈련도 안한 이들을 데리고 조선기병을 상대하라고? 이게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