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259화 (259/538)

259. 챕터37. 공성하다 (5)

“분명 문제가 생길 걸세.”

“맞는 말이네.”

“옳소!”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기세를 탔는지, 그는 계속해서 문제를 지적했다.

“뭍에서 싸워야 하는 바람에 안 그래도 불만인 수병들이, 누군지도 모를 보군步軍 정천호들의 말을 제대로 따를까? 그것도 자신들이 보군보다 잘났다고 으스대는 놈들이?”

“음...”

“그것도 충분히 일리가 있군.”

수군은 군역기간이 훨씬 긴 숙련병이고, 소규모접전과 호족가병과의 신경전을 하며 꾸준히 칼밥을 먹은 이들이다.

그런 만큼 자기 딴에는 콧대가 높아져서, 보병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재깍재깍 움직이긴커녕 “아니 이게 맞는데?” “왜 거기로 가냐?” “적이 앞에 있는데 그냥 싸우면 되지 않냐?” 등등.

쓸데없는 불협화음만 일으키기 십상인 거지.

“그래서 회전을 나올 일은 절대 없을 걸세.”

“그럼 진주광은 저렇게 계속 얻어맞다가 끝날 수밖에 없다는 건가? 물론 그것도 나쁠 건 없지만, 공성전이 몇 달 동안 지속되면 조선군이나 우리나 돈을 얼마나 쏟아 부어야 될지 모르는데...”

“그야 뭐... 조선군 사령관. 백호장군의 의중에 따라 달라지지 않겠나?”

그는 그것까진 자기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며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겼다.

*****

중국 최대, 최고의 무역항 영파는 오늘도 어김없이 바쁘게 돌아갔다.

조선군이 남통을 공격하면서 장강이 열렸고, 조선군은 “우린 장강에 관심 없다. 마음껏 돌아다녀라.”라는 걸 몸으로 보여줬다.

남직례 뿐만 아니라 강서, 호광, 하남등. 내륙지방의 상인, 호족들이 가장 먼저 몸을 날렸다.

앞으로 상황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아무도 모르니, 일단 지금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한 것.

이번에 수확한 수많은 곡물들이 미곡상의 상선을 타고 영파로 흘러들었고, 개중에선 영파를 거쳐 조선으로 가는 배도 적지 않았지.

영파 자체의 부유함과 번화함 또한 만만치 않다.

일개 무역항 주제에 크기는 한성에 버금가고, 도시민 또한 한성의 인구와 맞먹을 정도니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이곳을 지배하는 상인, 호족가문만 30여개를 넘어가고, 그 밑에 있는 중소상인,호족들. 그런 그들 밑에서 날품 팔아서 먹고 사는 노동자들이 수만명.

남경이 없어지고 그 반사이익을 절강의 해안도시가 모조리 빨아먹으면서, 안 그래도 컸던 해안 도시들은 지금 최절정기를 누리고 있었던 것.

햇살이 내리쬐는 영파의 해안부두부터 높은 전각들로 인해 그림자가 짙게 깔린 어두운 뒷골목까지,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상인들이 바글바글 깔려 거대한 흐름을 만들고 있었다.

나막신과 허름한 마의를 입고 머리를 풀어헤친 이들. 한 때는 칼을 들고 방문했으나 지금은 돈을 들고 방문하는 일본인들.

확연히 눈에 띄는 거무튀튀한 피부에, 머리 위에 천으로 똬리를 튼 것 마냥 특이한 형상의 모자. 터번을 쓰고서 돌아다니는 회회인들과 그보다 더 멀리서 온 하얀 피부를 가진 아랍상인들.

좀도둑은 걱정되지도 않는지, 화려한 장신구로 치장한 대월 및 동남아시아 소국의 상인들.

심지어 저 먼 수천개의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의 도시왕국에서 온 상인들까지.

인종의 용광로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생김새도 외향도 옷차림도 다른 온갖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우글거리며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건, 의외로 일본 상인들이었다.

운석핵꿀밤으로 명이 망하고 해금령이 해제된 후로, 수많은 왜구들이 상인으로 탈바꿈하지 않았나.

왜구들이 지난날 해온 짓이 있기 때문에 강남에 진출하는 게 순탄하진 않았지만, 이십여년이 지난 지금은 모두 옛일이 됐다.

“오늘도 여전하네.”

“전쟁이 났다고 하던데... 영향이 없나보군?”

“그러게 말일세. 조선군이 왔는데...”

걸을 때마다 딱딱 소리가 나는 나막신을 신은 일본 상인 둘은 조심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강 건너편에선 공성전이 벌어지는 걸로 아는데, 분위기가 경색되긴커녕 오히려 전보다 더욱 활발하다.

이게 뭘 의미하겠는가. 영파와 조선이 뭔가 밀약을 맺은 게 분명할 거다.

“어떤 맹약을 맺었을까.”

“난들 아나. 하지만 보통 일은 아니겠지.”

“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군. 조선 아닌가.”

“글쎄...”

둘은 자기도 모르게 가볍게 얼굴이 굳어졌다.

조선이 제주에 왜관을 열어주면서 화해의 분위기가 펼쳐지긴 했지만, 또 모르는 일 아닌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모르니, 그저 촉각을 곤두세우고 주시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으니, 그저 잘 되기를 바라면서 지켜보는 수밖에.’

일본 상인은 그리 생각하고선,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자네는 어떤가? 이번에 용가와 선이 닿았나?”

“그 엉덩이 무거운 작자들이 우릴 만나주기나 하겠나? 소가와 거래를 하기로 했네. 자네는?”

“마찬가지네. 우린 청가와 해야겠지. 영주의 직인이 있으면 어찌 비벼볼 수 있었겠지만...”

“그러면 일은 잘 풀려도, 손에 남는 게 없을 걸세.”

“쯧쯧.”

둘은 서로를 마주보며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영파를 나눠먹은 거대상인, 호족과 만나는 게 쉬울 리가 있나. 그 밑에 자리 잡은 중소호족과 거래를 하는 것만으로 감지덕지다.

일본 상인들은 영주의 명과 지원을 받아 움직이는 이들이 많지만, 의외로 영주와 관계없는 상인들이 적지 않았다.

아직 전국시대가 도래하지 않았으니 이 시대엔 슈고 다이묘가 일본을 지배하고 있었고, 이들은 호족을 넘어선 진짜 봉건귀족과 다름없었다.

사농공상 따위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한 신분제를 유지했고, 영주와 그 밑의 무사집단, 그 밑에 상인과 농부들이 존재했지.

조선과 다른 점이라면 상인을 천시하지 않아서, 그들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부리면서 호화롭고 화려한 귀족생활을 영위했다고나 할까.

저 높은 곳에 위치해 모든 걸 손끝으로 부렸고. 자신에게 돈만 꼬박꼬박 바치면 상인들을 뭘 하든 신경도 안 썼기에, 이렇듯 평민 상인들도 꽤나 중국에 진출한 상태였다.

이들이 알까 모르겠다만, 상인집단의 대두가 어떤 사회적 반향을 일으킬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둘은 그렇게 앞으로의 거래를 논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찰나.

부두에서 빠져나오기 무섭게, 저쪽 한편에서 유독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걸 발견했다.

영파는 움푹 파인 만을 끼고 만들어진 전형적인 항구고, 그 안에는 바다를 향해 손가락마냥 뻗어 나온 수십개의 부두가 존재했다.

당장 이들도 그런 부두 중 하나에 배를 대고 도시에 들어섰는데, 저쪽 부두만 유독 번잡하지 않나.

저긴 큰 배만 드나들 수 있는 가장 크고 깊은 부두가 위치해 있었고, 둘은 한 번도 이용해 본적이 없는 곳이었다.

“무슨 일 있나... 자네. 뭐 따로 들은 소문 있나?”

“방금 배에서 내렸는데 뭘 알겠나. 가보지.”

“그럽세.”

자고로 상인이라면 사소한 소문이라도 놓치면 안 되는 법. 둘은 재빨리 발을 놀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빨리 치워라!”

“여기 쓸고, 저기 털고!”

“이것도 빨리 옮겨!”

근처에 가기 무섭게 온갖 고함소리가 귀를 찔러왔다.

난데없이 대청소라도 하는 모양이다.

부두 노동자들은 청소부로 변신해서 흙먼지만 날리는 부두초입을 깨끗이 쓸고 있었고, 언제부터 쌓였을지도 모를 온갖 쓰레기들과 쓰고 버린 판자대기 등을 치우고 있었다.

“제대로 박아!”

“여기! 못하고 판자를 더 가져와!”

부두도 마찬가지. 삐걱거리던 부두 바닥에 이제 막 잘라온 것 마냥 번들거리는 생나무판을 깔고, 열심히 못을 두드리는 인부들이 한둘이 아니다.

“음...”

“흐음?”

이런 모습은 일본에서도 많이 보지 않았나.

높은 사람이 오면 흠 잡힐 일이 없게 일단 쓸고 닦는 게 기본인데, 그걸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누가 오나?”

“글쎄... 사신이라도 오는 건가. 모르겠군.”

정황은 모르지만 차라리 잘됐다. 가만히 지켜보면 뭔가 확실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둘은 부두 안쪽에 운집되어 있는 노점상에 들려 간단히 주전부리를 주워 먹으며 정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한 이들이 한둘이 아닌 모양이다.

선원들은 이미 술과 여자를 찾아 영파의 골목골목으로 사라졌건만, 나름 차려입은 상단주와 선장들이 죄다 노점상에 앉아 한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평상시라면 이런 먼지 풍기는 노점 따위는 이용하지도 않을 작자들이니, 뭔 일이 벌어지는지 상황을 지켜보려는 게 분명.

한참을 지나 정리가 모두 끝나자, 부두는 거대한 공터로 변해 말끔해졌다.

쿵쿵쿵. 뒤이어 햇볕을 받아 번들거리는 박도를 앞세운 칼잡이들 수백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곱게도 갈았는지 칼날은 보석처럼 반짝였고, 차려 입은 옷도 평범하지 않다.

하나같이 번들거리는 비단옷을 입고 있고, 허리춤에 매달린 옥패는 서로 부딪치며 딱딱! 불규칙한 소음을 만들어냈다.

딱 봐도 그냥 칼잡이가 아니라, 지체 높은 가문의 가병. 그것도 구중심처에만 머무는 최고위 가병이자 최정예로 보였다.

“저기! 저거 용가 아닌가?”

“허... 저건 형가인데?”

아니나 다를까. 둘 뿐만 아니라 다른 상인들도 옷차림과 옥패를 보고 알아차렸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온갖 언어로 도떼기시장마냥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평상시에는 보기도 힘든 거대상인,호족들의 가병들이 우르르 몰려온 것도 놀라운데, 그게 한둘이 아니라 전부다 몰려온 것 같다.

“맞지?”

“맞네. 옷차림을 보게.”

그냥 가병도 아니고 가주의 장원을 지키는 가병들의 옷차림이 저렇게 중구난방일 리가 있나.

게다가 칼잡이들이 서로 신경전을 벌이고 눈빛을 번뜩이며 자리 잡는 걸로 보아, 의심은 확신으로 변해갔다.

칼잡이들은 부두 초입에 거대한 반원의 띠를 이루며 퍼져서 공터를 만들었고, “가까이 오면 죽는다.”라는 기세를 온 몸으로 뿌려댔다.

“진짜다.”

“진짜 오는군!”

그렇게 호위들이 경계를 사주하자, 크고 넓은 차양을 든 이들이 우르르 몰려 공터에 긴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차양과 깃발마다 가문을 상징하는 문양과 글자를 박아 넣었는데, 평상시엔 한자리에 모이기도 힘든 영파의 대호족들이 모조리 모인 것 같았다.

“이게 무슨...!”

“조선! 조선에서 사람이 오는 게 분명하네.”

다들 어이가 없어서 허우적거리던 중에, 누군가 정답을 찾아내어 목청을 높였다.

“조선?”

“하긴... 조선이 아니고서야, 저들이 공손하게 나올 일이 없지 않나.”

“조선이 남직례를 넘어서, 이곳 영파까지 온다고?”

“으음...”

일본 상인 둘 또한 놀라서 눈을 크게 떴지만, 그것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어보였다.

개판이 된 동아시아에서, 영파 호족들이 저렇게 공손하게 맞이할 세력이 조선 말고 또 있겠나.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자 웅성거림은 멈추지 않았고... 그 소리에 이끌리기라도 한 듯, 바다 저편에서 아른거리던 그림자가 점점 다가왔다.

“진짜 조선군이야.”

“저게 그 조선의 배인가?”

“정말 크군!”

조선함선은 빨려들 듯 순식간에 부두로 향했고, 예인선의 인도를 받아 부두에 쿵쿵 옆구리를 비비며 몸을 멈췄다.

총 3척의 함선이 몸을 멈춰 서자, 차양 아래에 쉬고 있던 호족가주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대기를 시작.

“엄청 높은 사람이 오는 모양인데?”

“그렇겠지?”

“그럼 누가...”

“설마? 백호장군이 직접 오나?”

“허헉!”

호위들 뒤에서 구경하던 모든 이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누군가의 말에 하나같이 화들짝 놀라 입을 벌렸다.

‘백호장군...!? 그자는 남통성에 있을 텐데?’

‘맞아! 영파 호족가주들의 예를 받을 이가, 그 말고 또 누가 있을까!’

일본 상인 둘은 자기도 모르게 식은땀이 흐르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순식간에 밀려온 두려움에 눈앞이 캄캄해진다.

백호장군 연오랑. 그 자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지만 일본인인 두 사람에겐 그런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지금 역사에선, 원래 역사보다 왜구의 침탈이 현격히 줄어들었다. 굳이 조선까지 가서 목숨 걸고 칼부림을 부릴 바에는, 중국으로 가서 거래하는 게 더 이득이니까.

그럼에도 왜구는 없진 않았고, 태종은 지난날의 혈채를 거하게 갚아주기 위해 대마도 정벌을 감행했지.

하지만 연오랑이 끼어들어 대마도 정벌이 아니라 대마도 파괴가 벌어졌다.

2만이 넘던 대마도민 전부가 죽거나 포로로 끌려갔고, 대마도는 산불이 한 달 가까이 지속되면서 쥐새끼 한 마리 살아남기 힘들 정도로 황무지가 되어버렸다.

대마도는 척박한거지 결코 작은 섬이 아니고, 무려 영주가 있던 영지였다. 조선은 그런 영지 하나를, 재기 불가능한 잿더미로 만들어버린 거지.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한 짓은 깡그리 잊어버리고 오히려 억울함이 밀려왔고, 이 무지막지한 파괴 행각에 완전히 겁을 집어먹었다.

만약 조선군이 일본본토에 상륙해서 똑같은 짓을 감행한다면? 그냥 싸우고 지는 걸 떠나서, 또 다시 영지 하나가 완전히 지워져 버릴 테니까.

그 일을 벌인 장본인이 바로 백호장군 연오랑이고, 그는 끊임없이 자신과 조선의 존재감을 일본에 각인시켰다.

대마도, 여진, 몽골, 그리고 지금은 무려 중국본토까지 쳐들어가서 공성전을 벌이고 있지 않나.

관계없는 다른 나라 상인들과 이미 악연을 제대로 맺은 일본인들이 체감하는 연오랑의 무게감은 다를 수밖에.

둘 뿐만 아니라, 다른 일본 상인들 모두가 두려움에 잠식되어 있을 때.

두두두. 부두에선 들을 수 없는 괴상한 굉음이 조금씩 밀려오기 시작했다.

“저... 저게 무슨.”

“허헉!”

모두는 하나같이 기겁해 소리를 질러댔다.

성벽처럼 높이 솟은 조선함선에 배다리가 놓이기 무섭게, 우람한 전마를 탄 조선기병이 배에서 내려와 부두를 내달리기 시작했으니까.

두두두! 말발굽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오고, 3척의 배에서 한꺼번에 내린 기병들이 질서정연하게 공터로 밀려와 가병들을 감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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