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260화 (260/538)

260. 챕터37. 공성하다 (6)

“헉...”

“기... 기병이 어떻게?”

이들이라고 기병이 배에서 튀어나와 곧장 전개하는 걸 본적이 있을까.

하나같이 기겁해서 눈이 휘둥그레졌고, 칼잡이인 가병들마저도 눈동자가 어지럽게 돌아갔다.

자신들 바로 뒤에서 정렬하는 조선기병들.

강남에선 보기도 힘든 맹수갑옷을 입고, 온갖 무기를 마구에 매달고, 손에는 당장이라도 피를 뿌릴 것 같은 월도와 기창을 꺼내든 이들이 쫙 깔리기 시작.

가병들은 뒤통수가 간지러워서 참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오...”

“정말이군!”

“진짜 백호장군이야!”

이윽고 거창한 행차의 백미가 등장했다.

강남에선 보기 힘든 우람한 한혈마 혈통의 흑마와 그 위에 올라탄 백호가 기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등장.

백호장군이라는 말이 마냥 헛소문이 아닌지, 진짜로 백호피로 만든 갑옷을 입은 거한이 등장하자 모두의 시선에 한곳에 쏠렸다.

애써 격동을 참으며 짓누르던 호족가주들마저도, 연오랑의 등장에 눈빛이 흔들렸다.

“...!”

연오랑이 일부러 무력시위를 한 걸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다. 세상천지에 저렇게 큰 백호피는 처음 봤고, 그걸 껴입은 거한 또한 처음 봤으니까.

가주들은 하나같이 종종걸음을 하고서 그의 앞으로 다가갔고... 말 위에 올라타 오만하게 내려다보는 그를 향해, 허리가 땅에 닿을 듯 머리를 깊게 숙여 예를 표했다.

거창하게 무력시위를 감행한 연오랑은 기병을 이끌고 상해로 향했다.

이럴 거면 그냥 상해로 곧장 내려도 되지만, 미적거리는 절강호족들의 엉덩이를 확실히 걷어차 줘야 하지 않나.

영파를 지나 항주를 거쳐 상해로 오는 동안, 상인,호족들 또한 점점 불어났다.

그렇게 몰이꾼마냥 사람들을 이끌고 다다른 상해.

미래에는 중국 최대의 도시 중 하나가 되지만, 지금은 예전 청도와 마찬가지로 허허벌판 위에 작은 어촌마을과 갈대밭만 무수히 깔려 있는 곳이었다.

“어때?”

“확실히 지세는 좋군요. 왜 지금껏 여길 개발하지 않았을까요?”

“누구 좋으라고 여길 개발하겠어? 항구가 늘어나면 자기 몫만 빼앗기는 꼴인데.”

“음...”

연오랑과 함께 온 황보인은, 이해가 된다는 듯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가을이 슬슬 지나가고 있지만 강남은 여전히 따스한 바닷바람이 밀려왔고, 황보인은 습도 높은 바람을 한껏 들이키며 생각을 날려 보냈으나... 이내 꼬리를 물고 온 의문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연오랑의 말이 정답이고, 달리 말하면 이곳을 조선이 차지하면 절강상인들이 손해를 본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별 수 없지 않나.’

“...”

“그나저나 생각보다 순탄한데?”

“예? 예. 포로들이 말을 잘 듣고 있습니다. 그들도 자신들 처지를 알고 있으니까요.”

“하긴. 당장 전에는 한솥밥 먹던 이들이 남통에서 쫄쫄 굶고 있는데, 자신들은 여기서 몸 성히 살아 있잖아? 정신을 못 차리면 그게 더 문제겠지.”

“그렇습니다.”

황보인은 저 멀리서 갈대를 베고, 어촌마을을 아예 부셔서 그 자재로 부두를 만들고 있는 이들을 가리켰다.

나포하고 포로로 잡은 남통 수군은 대략 4천명 정도 됐는데, 이들을 모두 끌고 와서 인부로 써먹고 있었다.

도망치는 것도 쉽지 않은 게, 상해는 남직례 끝자락 송강부에 위치한 곳으로 바다를 향해 불쑥 튀어나온 작은 반도 같은 곳이다.

배도 없는데 여기서 어떻게 도망칠까.

육로로 도망치자니 소주호족의 가병들이 지키고 있어서 쉽지 않고, 부두가 완성되면 조선기병이 지키게 될 거다.

“빈민들을 모집하는 건?”

“역시나 잘 풀리고 있습니다. 소주와 항주, 영파에 바글거리던 빈민이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산동보다 사람이 휠씬 많은 절강이니, 인부를 구하는 건 문제가 없습니다.”

“좋아. 청도에서 데려온 인부와 장인들도 문제없고?”

“옙. 걱정 마시죠.”

연오랑은 황보인에게 히죽 미소를 보여줬다.

황보인은 지금껏 청도에서 계속 머물며 청도를 관리해 오지 않았나. 상해는 제2의 청도나 마찬가지니, 이미 경험을 한 이상 상해를 건설하는 건 청도보다 더 빨리 진행될 거다.

“그런데... 아직 진주광을 끝내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렇게 움직여도 괜찮겠습니까?”

“오히려 대놓고 움직여야 더 빨리 끝날 거다. 포로들이 이렇게 자유롭게 생활하고 있고, 상해 건설이 끝나면 전부 풀어주기로 하지 않았냐. 그럼 남통에 있을 병사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어.”

“음...”

시도 때도 없이 잠도 못 자게 포격을 날려대고 있으니, 차라리 포로 신세가 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여기선 밥을 꼬박꼬박 먹고, 죽을 걱정은 안 해도 되니까.

‘이곳 소문을 퍼트리고 있으니, 더욱 심란해지겠지.’

황보인은 남통성에 있을 진주광 병사들의 속내를 짐작해 봤다.

“그리고 진주광은 이미 끝났다. 굳이 창칼로 싸우지 않아도 네 생각보다 훨씬 빨리 무너질 거야.”

“...?”

의아함을 품은 눈으로 바라보자, 연오랑은 가볍게 설명을 늘어놨다.

“진주광을 지탱하던 재원을 봐라. 기타 이런저런 특산물이 있지만 무시할 수준이고, 장강과 운하의 통행료, 해안가의 염전과 목화. 양주부의 전답이 전부다. 하지만 지금은 하나도 남은 게 없지.”

“...”

“물론 진주광이 남통에 쌓아놓은 재산은 분명 엄청날 거다. 하지만 은,금붙이를 뜯어먹고 살 순 없잖아? 추수하지 못했으니, 남통의 식량사정은 결코 넉넉지 않을 걸?”

“음...”

황보인은 연오랑이 무슨 말을 하는지 곧잘 알아챘다.

조선이야 곡식과 면포가 곧 돈이니, 누구든 곡식과 면포를 쟁여놓고 산다.

하지만 중국은 홍무통보와 마제은, 규격화 되어 있지 않은 금붙이와 귀금속을 돈으로 사용한다.

진주광이 바보가 아닌 이상, 썩고 삭아버릴 곡식과 면포 대신 사라지지 않는 귀금속을 쟁여놓는 건 당연한 말 아닌가.

특히나 스스로를 한왕이라고 자처하던 놈이니, 일반 백성들이나 부하들이 보기에 눈을 찌푸릴 정도로 사치와 향락을 즐겨댔을 거다.

“그 놈은 남통이 포위당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거고, 설령 포위를 당하더라도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했을 거야. 우리가 움직이지 않았으면 장강과 운하가 동시에 막혀버릴 일은 없었을 거니까.”

“예...”

그야 당연한 말.

애초에 이게 쉽게 될 거였으면, 다른 세력이 조선의 손을 빌리지도 않았을 거다.

“그러니 돈만 있으면 어디서든 식량을 구할 수 있지 않았겠냐. 아무리 진주광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가 웃돈을 던져주며 식량을 사겠다는데, 그 제안을 거부할 사람은 없었겠지. 특히나 호광과 같은 내륙지방이라면 말이야.”

“그럴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 빨리 움직였어. 식량을 구할 길이 막혀버렸으니... 추수를 못한 건 진주광 입장에서도 뼈아프겠지만, 남통성 백성들 입장에선 더욱 치명적이지.”

“음...”

황보인은 연오랑이 무얼 말하는지 제대로 깨달았다.

조선이나 중국이나, 농부의 생활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해 동안 열심히 전답에 나가서 곡식을 키우고, 그 수확한 곡식으로 다음 한해를 버텨내는 거다.

하지만 지금은 작년에 수확한 곡식이 다 떨어졌는데, 올해 수확을 못했다. 결국 백성들 중 태반이 굶어죽게 생긴 거지.

진주광도 군량미를 쌓아두긴 했겠지만... 돈으로 언제든지 살 수 있는데, 관리하기만 귀찮은 군량을 과연 얼마나 쌓아놨을까.

그렇다고 얼마 없는 군량을 풀자니, 남통성 백성은 진주광의 병사들보다 몇 배는 많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분명 백성들이 폭동을 일으켜 부잣집을 털든, 아니면 병사들과 싸우다가 다 남통성 밖으로 도망치든 난리가 날 거다.

“그 판국에 남통성에서 도망친 병사와 백성들을 우리가 책하지 않고 모두 받아주고 있지 않냐. 남통성의 사기는 말이 아닐 거다. 당장이라도 틈만 보이면 탈주할 걸?”

“분명 그럴 겁니다.”

‘그걸 막으려고 하면, 병사들과 백성들 사이에서 피가 튀겠지.’

연오랑은 그리 말을 하고선, 쓴웃음을 머금었다.

“더 중요한 건, 과연 진주광 밑에 있는 녀석들 중에서 진짜로 버티려고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

황보인은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연오랑을 보면서, “과연 그렇게 쉽게 허물어질까?”라는 생각이 문뜩 떠올랐다.

“왜 아닐 거 같아?”

“조금...”

“쯧쯧. 수성에서 제일 중요한 건, 병력이나 보급, 수성무기 등이 아니라, 언젠가 이 수성전이 끝난다는 확신이다.”

“그렇겠죠..?”

황보인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성은 더럽게 어렵고, 반대로 수성은 그만큼 쉽다.

압도적인 군세로 성을 포위하고 공성하지 않는 이상, 준비만 되어 있다면 공성군이 지쳐나가 떨어질 때까지 버틸 수 있는 게 수성전이다.

문제는 성이나 기물, 보급이 아니라 수성군의 마음가짐.

이 지겹고 끈질기고 위태로운 수성전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면, 대체 무얼 위해서 이 산지옥에서 계속 버텨야 할까?

아군이 언젠가 자신들을 구원해줄 거라는 믿음으로 버티는 건데, 지금은 남통성을 구원해 줄 아군이 없다.

언젠가 공성군이 지쳐나가 떨어질 거라고 믿고 버티는 건데, 천하의 물산이 남통 앞으로 몰려와 남통이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조선군이 몽골군처럼 다 죽인다고 협박하는 것도 아니고, 항복하면 그대로 일상을 영위할 수 있다.

과연 남통성을 지키는 병사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진주광이 무슨 사교 교주나 진짜 절대충성을 받는 왕도 아닌데, 그를 따라 옥쇄를 할 마음이 있는 자들이 몇이나 될까.

“거기에 우리가 얕지만 지독한 독을 뿌렸지.”

“...”

조선군은 회유와 협박을 담은 서신을 화살에 묶어 매일같이 날려 보냈고, 이젠 진주광의 목에 현상금이 걸린 걸 말단 병사들도 다 알게 됐을 거다.

항복하면 목숨을 보전하는 건 물론이고, 진주광의 재산을 일정부분 준다고 소문이 퍼지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드는 포탄, 언제 들고 일어설지 모르는 굶은 백성들, 호시탐탐 자신의 목을 노리는 부하들.

아마 진주광은 두려움과 의심병에 정신이 좀먹어 들어갈 거고, 어쩌면 이들이 모르는 사이에 벌써 숙청이 벌어졌을지도 모르지.

“언젠가 이런 상황을 겪어본 것 같지 않아?”

“...?”

“이만주.”

“아...!”

연오랑의 한마디에 황보인은 감탄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해진 오래전. 원정군이 중국원정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조선에 위협이 될 건주위 여진과 이만주 일파를 쓸어버렸다.

그 때도 공성하기 더럽게 힘든 우라산성에 이만주 일파를 몰아넣었고, 채 보름도 지나기 전에 이만주는 목만 남아 조선군 앞으로 떨어졌지.

“진주광이 아무리 재산이 많고 병력이 많아도, 어차피 끈 떨어진 신세. 오히려 가진 게 많으니, 그걸 노리는 이들이 더욱 많을 거다. 이대로 가만히 버티고만 있으면, 결국 이만주 꼴이 되고 말 거다.”

“예.”

“게다가 공성이 길어진다고 해서 우리가 손해 볼 건 없잖나? 우리야 이번 기회에 남직례를 더 뜯어낼 수 있지. 특히나 산동에서 공성을 핑계로 염초를 마음껏 뜯어낼 수 있고.”

“흐흐. 그야 그렇죠.”

남직례는 조선군의 모든 보급을 책임지고 있고, 황보인의 수하인 보급병들에 의해 추려지고 요청되고 있다.

그리고 황보인은 당연히 풍족함을 넘어 넘쳐날 정도로 보급을 뜯어내어 쌓아두고 있으니... 공성이 빨리 끝나기를 누구보다 바라는 건 남직례 호족들이다.

이들 또한 가만히 있지 않고, 남통성 내부의 세력에게 이런저런 손을 뻗치고 있을 게 분명. 남통성이 아무리 진주광의 근거지라고 해도 모든 상인, 호족이 그와 운명공동체가 되고 싶진 않을 테니까.

운하를 돌아다니던 휘주상인들 또한 남통의 장군 및 군관들과 적잖게 인연이 있을 터, 분명 물밑에서 내부 전복을 노리는 수작을 펼치고 있을 거다.

“헌데... 그럼 남통성은 어찌하실 겁니까? 진주광은 처단됐다고 쳐도, 그 휘하의 장군들을 살려두실 생각이십니까?”

“그래야겠지. 아마 그들 내부에서 가지치기가 벌어지겠지만, 남직례 호족들도 무턱대고 다 죽이자고 나서진 못할 거다.”

“흐음...”

깔끔한 건 역시나 진주광의 세력을 싹 정리하는 건데... 그랬다간 지금 하고 있는 회유 및 내부 쿠데타 작업이 망가지지 않나.

‘호족들이 가만히 있을까? 그걸 바라진 않을 것 같은데...’

황보인은 그런 생각을 했으나, 연오랑은 그의 생각을 읽은 듯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물론 남직례 호족들의 마음에 들진 않겠지만, 장군들 중 일부는 호족으로 변모해 자리 잡게 될 거다. 무탈하게 항복하게 되면 칼잡이들이 너무 많이 남게 돼. 군역으로 끌려온 백성들이야 본래 자리로 돌아간다고 해도, 남통의 수군은 그냥 날려버리기엔 아깝지 않냐.”

“예. 뭐 그럴 겁니다.”

“게다가 남통이 남직례의 수중으로 들어갈지 절강이 차지할 지도 모르는 판국에, 나름 쓸만한 수군전력을 무턱대고 해산하는 건 아깝겠지.”

“음...”

조선해군에게 속절없이 두들겨 맞아서 그렇지, 남통수군도 평균을 웃도는 실력을 가진 이들이다.

애초에 그러니까 장강과 운하의 통제권을 가졌던 거고.

진주광이 없어지면 장강은 다시 주인이 없어질 거고, 장강과 붙어 있는 온갖 세력끼리 각축전이 벌어질 게 분명.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칼잡이들을 남직례에 붙들어 놓으려고 하지 않을까.

“그렇겠지요?”

“그럴 가능성이 크지. 게다가 우리 입장에선 뭐가 됐든 상관없는 일 아니냐. 중요한 건 연판장 조약을 통해 조선이 개입할 여지를 남겨두는 것과 각 세력을 성을 중심으로 쪼개서 개별적으로 뭉치게 만드는 거다.”

“예.”

황보인은 심유한 눈빛을 숨기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을 이렇게 귀찮고 번거롭게 진행하는 건 조선이 티끌만큼의 손해를 보기 싫은 것도 있지만, 앞으로 중국에서 칭왕자가 쉽게 나오지 못하게 막기 위함이다.

백년대계를 넘어서 어쩌면 천년대계가 될지도 모르는 일을, 귀찮고 번거롭다고 대충 처리할 수는 없는 일이지.

“그 틈바구니에 진주광의 떨거지들이 끼어드는 건, 오히려 좋을 수도 있다. 적어도 남통이 다른 세력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걸 막아낼 수 있는 명분이 될 테니까.”

“예.”

“그러니... 남통을 신경 쓸 필요 없이, 일단은 상해포구를 완공하는 데 집중해라. 청도에 머물고 있는 관리들도 바로 데려오고.”

“옙.”

황보인은 우려를 확실히 날려버리곤, 어린아이처럼 큰 목소리로 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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