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262화 (262/538)

262. 챕터37. 공성하다 (8)

남직례라고 좋아서 저런 결정을 했을까. 당연히 조선이 압박을 넣었을 거다. 반대로 말하면 설령 절강이 저길 차지한다고 해도, 똑같은 짓을 할 거라는 뜻.

‘그리되면 그나마 괜찮다.’

‘남직례가 진주광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게 아니라, 아예 진주광이 없는 게 되는 거니...’

“소금은...”

“음!”

‘우리의 수입원 중 하나가 소금인 걸 모를 리가 없을 터, 조선은 염상이 하나로 합쳐지길 원치 않는 구나.’

‘변변한 항구가 없는 남직례는 죽었다 깨나도 장강과 닿아 있는 남통을 포기할 리가 없겠지.’

모두는 각기 다른 생각을 하면서도, 결론은 하나로 뭉쳐졌다.

특히나 소금을 떠올리자 더욱더 굳혀진다.

절강과 양주부 밀염상은 원, 명나라 시절부터 판로를 놓고 물 밑에서 싸우던 이들.

남직례가 양주부를 빼앗기게 되면 소금을 절강이 독점하게 되니, 절대 그 꿀단지를 놓치지 않을 거다. 또한 소금을 집산하고 옮겨야할 유일한 항구인 남통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거고.

“그래. 소금. 말 잘했다. 싸우기 보단 사이좋게 나눠 갖는 게 낫지 않나? 밀염이 없어진 후. 진주광이 구축한 판로와 절강이 구축한 판로는 나눠졌는데, 이걸 한명이 차지하겠다고 싸우면 너희들 싸움으로 그치지 않을 거다.”

“음...”

“크흠.”

모두는 다시금 헛기침을 하며 눈빛을 교환했고, 연오랑이 말한 속내를 알아차렸다.

소금을 파는 사람만 문제일까 소금을 사는 사람도 문제다.

명나라 시절에야 밀염 말고도 관염이 있으니 그나마 괜찮았지만, 지금은 밀염도 관염도 없고 그저 민간소금만 남았다.

염상끼리 싸워서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장강 상류의 내륙지방에선 원활한 공급을 위해 전방위적으로 절강과 남직례를 압박할 거다.

안 그래도 연맹을 만든다고 이합집산을 벌이고 있는 판국에, 이 문제가 두드려져서 걸림돌이 되면 지지부진할게 불을 보듯 뻔한 일.

특히나 이들이 포섭하려하는 절강내륙 호족들은, 자신과 관계도 없는 소금 때문에 손해를 보게 되면... 분명 어깃장을 놓으며 연맹결성에 불만을 토해낼 거다.

‘골치 아픈 수를 던졌어.’

‘그가 말 한대로라면 소금을 차지한다고 해도 문제가 터지겠군.’

‘오히려 남직례는 이걸 빌미로 조선을 끌어들일 거고... 조선 또한 이 때다 싶어서 우리를 압박하려 하겠지.’

꼬이고 꼬여서 단칼에 풀어낼 수 없고, 까닥 잘못하면 진주광보다 더한 골칫거리를 떠안게 생겼다.

연오랑은 이들의 생각이 훤히 읽히는 듯, 히죽 웃으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한 대 때려줬으니, 이번에도 다시 약을 발라줄 차례.

“그리고... 상해에 관해서도 고민이 많은 걸로 안다.”

“...!”

“설마 건설대금을 미루거나, 건설에 차질이 생기는 걸 바라는 건 아니겠지?”

“아니옵니다.”

“절대 그럴 리가...”

연오랑이 무서운 말을 내뱉자, 속마음을 숨기고 손사래를 치며 반대를 표했다.

“아국은 신의를 중시하고 상대를 호의로 대한다.”

‘그런 작자들이 지금껏 전쟁을 일으켜 대마도, 여진, 북평부를 두들겨 팼냐!’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입을 꾹 다물고 경청을 이어갔다.

“그러니 상해를 두고 그대들이 우려하는 걸 인지하고 있는 바. 하여 앞으로 상해에서의 거래는 오로지 절강연맹에만 허락할 것이다.”

“그건...”

“음...!”

‘어째서?’

‘제대로 꼬집는군.’

‘이러면... 발을 뺄 틈조차 없애는구나!’

가주들은 감탄과 신음을 흘리면서도, 머릿속은 김이 날 정도로 팽팽 돌아갔다.

대체 조선이 왜 이렇게 호의적으로 나오는지, 의심이 먼저 들어서 그 이유를 파고들었다.

조선에게 상해를 조차한다는 건, 강남시장에 조선이 직접 진출한다는 뜻이다. 앞으로는 저 먼 의주까지 갈 필요 없이, 절강에서 조선물산을 구입할 수 있다는 뜻.

지금껏 강남지방에 조선물산을 푸는 걸 절강이 도맡아할 수 있었던 건, 내륙 및 광서나 광동의 상인들이 의주까지 가기에는 너무 멀었기 때문.

긴 운송기간, 배를 띄우는 비용, 그 자원을 다른 곳에 투자할 때 얻을 수 있는 수익 등을 생각하면, 차라리 중간상인인 절강을 통해 구입하는 게 더 싸게 먹혔던 거지.

헌데 상해가 건설되면, 굳이 절강상인을 거치지 않아도 손쉽고 싸게 조선물산을 구할 수 있다.

이건 단순히 돈 문제를 떠나서, 절강이 쥐고 있는 남방무역의 주도권을 조선에게 빼앗기는 꼴이다.

‘헌데 이걸 그냥 넘겨서, 지금처럼 유지하겠다고?’

‘대체 어떤 의도지?’

‘분명 뭔가 꿍꿍이가 있을 텐데...’

가주들은 의심을 쉽게 접을 수가 없었다.

지금껏 조선이 한 짓을 보면 예측을 깨버리는 행동을 많이 하지 않았나. 분명 이 또한 함정이 숨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열심히 파헤쳐봤다.

“...”

“...”

하지만... 연오랑은 침묵을 지키는 가주들의 속내가 훤히 읽혀서, 속으로 쓴웃음을 머금고 말았다.

‘머리를 굴린다고 알 수나 있겠냐. 이건 너희가 아니라 우리 때문에 그러는 건데.’

이렇게 후하게 대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조선이 아직 무제한적인 대외무역을 할 만큼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

상인기업 및 유통기업을 허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지금은 국외로 진출할 때가 아니라 국내기반부터 다져야할 때다.

대외무역은 분명 막대한 수입을 얻을 수 있으니, 모든 상인기업이 한탕을 노리고 대외무역을 하려할 터... 여기에 뛰어들게 허락할 순 없다.

더불어 청도와 상해가 만들어져도, 계속해서 의주로 중국상인이 직접 오게끔 해야 하기 때문에 적절한 제한이 필요했다.

‘그리고 우리 입장에선 절강에 팔든, 다른 세력에게 팔든 큰 차이가 없거든.’

분명 절강은 웃돈을 붙여 팔아넘기겠지만 그야 그들 사정이고, 조선이 직접 판다고 해서 절강에 파는 것보다 훨씬 비싸게 팔 수 없다.

게다가 청도가 있는 한, 절강상인 또한 미친 듯이 웃돈을 붙여서 팔수도 없다.

너무 비싸게 팔면 차라리 청도에 가서 사든지, 그것도 아니면 더 큰 수익을 노리고 의주에서 직접 사오는 방법도 있으니까.

“이만하면 충분히 그대들 사정을 봐준 것 같은데? 우리 뜻대로 하면 절강연맹을 만드는 일 또한 더욱 쉬워질 거다.”

“분명 그렇겠지요.”

“음. 그건 그러한데...”

모두는 좋으면서도 쉽게 납득하지 못해, 어정쩡한 표정을 숨기기 힘들었다.

“또 뭐 바라는 게 있나?”

“...”

모두는 빠르게 눈빛을 교환하고선, 미리 준비해 왔던 패를 꺼냈다.

조선이 먼저 후하게 대해주는 바람에 제대로 써먹긴 힘들게 됐지만, 그래도 말은 꺼내봐야지.

“혹시 조선의 남부지방에 무역항을 개항하실 계획이 있으십니까?”

“...?”

“그게 힘들다면 제주에 저희도 입항하게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음...”

육적과 손달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고.

‘너희 꼼수야 훤히 보이지만... 때가 이르지.’

연오랑은 망설임도 없이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조정에서도 이 문제를 논의했고 시기상조라고 판단했으니까.

이들이 새로운 무역항을 원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

제주에 무역항이 열렸다지만, 그곳은 일본, 유구, 동남아시아의 상인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 실제로 그곳을 찾는 이들 대부분은 일본상인이다.

중국에게 열린 무역항은 의주밖에 없는데, 의주는 강남에서 너무 멀다.

그만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산동이 북방무역을 주도할 수밖에 없으니, 강남과 가까운 조선남부에 무역항이 생기길 바랄 수밖에.

‘하지만... 아직 아니지.’

조선도 이걸 뻔히 알고 있으나 받아줄 수 없다.

운석핵꿀밤 이후. 의주 한 곳만 열어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곳은 원래부터 대외무역을 하던 곳이고, 초창기에는 강남의 혼란이 정리되지 않아 산동, 요동, 우량카이3위가 더 중요했으니까.

세종등극 후 개혁이 시작되자, 다른 의미로 의주에 집중했다.

저 먼 경상도 남부의 물산을 조선반도 끝자락 의주까지 끌고 오고, 새롭게 개척한 만주신도시의 물산을 의주로 끌고 오면서, 조선내지와 만주의 유통망 및 수로와 도로를 정비하는 발판으로 삼았기 때문.

민관이 모두 힘을 합쳐서, 억지로 혈관을 튼튼하게 만든 거지.

‘그러니 제주가 완전히 정비되기 전엔 무리다.’

제주에 왜관 및 무역항을 연 것도 같은 이치였다.

의주를 중심으로 북방무역 혈관을 만들었다면, 남쪽 끝자락 제주를 중심으로 남부지방의 혈관을 만들어 이어붙이고 있는 상황.

이 작업이 끝나지 않았는데 전라도에 무역항을 개방하면, 제주의 입지와 발전이 저해될 거다.

“지금 당장은 힘들다. 몇 년 후에는 사정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그건 가봐야 알겠지.”

“음...”

“재고의 여지는 없는 것입니까?”

“그렇다.”

저렇게 딱 잘라서 말을 하는 데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이만하면 우리도 충분히 너희 사정을 봐준 것 같은데?”

연오랑이 한마디 덧붙이자, 더욱더 입에 풀을 바르듯 떨어지지 않는다.

그들이 생각해도 나름 후한 조건을 내걸었는데, 여기서 강짜를 놓으면 앞선 제안이 다 날아갈지도 모르는 일.

“...”

“...”

침묵에 잠겨 생각을 거듭하고 있다가, 육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직도 문제는 많이 남아 있으니까.

“허면... 청도와 마찬가지로 상해에도 조선군이 주둔할 계획이십니까?”

“당연하다. 물론 너희 입장에선 불편한 게 사실이지만... 그 껄끄러운 마음만 다스릴 수 있다면, 너희의 이득이 훨씬 많다는 걸 익히 알고 있지 않나?”

“음...”

“조선군이...”

이 또한 이미 예상했던 대답이지만, 직접 육성으로 들으니 가주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천하가 좁다하고 적대 세력을 사정없이 두들겨 패버린 조선군이다. 그런 조선군이 코앞에 주둔하고 있는데, 가슴을 졸이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

‘하지만... 그래서 한편으론 안심이 되는 것도 사실이지.’

‘연판장 조약을 맺게 되면 조선이 절강의 아군이 되는 거니까.’

모두는 정신 사납게 눈빛을 뿌려가며, 무언의 대화를 이어갔다. 연오랑은 여기에 쐐기를 박아 넣듯 말을 이었다.

“아국 해군의 활동으로 서해 북부가 안정화되면서, 산동상인이 비용을 절감하는 건 익히 알고 있을 거다.”

“... 예.”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모두는 꺼내보고 싶지 않은 진실에, 입술을 떨며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망망대해 바다에는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

만나서 수틀리면 칼부림을 부려서 빼앗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그게 서로 모르는 사이고 후환이 걱정되지 않는다면 더욱 그렇지.

그랬기에 상인들은 선원이자 가병을 키워 배에 태우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바다에서 언제 누굴 만나게 될지 아무도 모르니까.

허나 조선이 천진수군을 쓸어버리고, 몇 되지도 않던 해적조차 몰아내자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그 어떤 배보다 빠른 신형전함이 의주,용연,평택-산동,요동을 오가며 서해를 순찰하고 있는데 자체 무장을 과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

산동상인들은 칼잡이들을 뺀 빈자리에, 물건을 하나라도 더 실을 수 있게 된 거지.

“상해가 완성되면 서해 북부뿐만 아니라 남부도 아국 전함이 순찰을 돌게 될 거다. 감히 제주 인근에 해적들이 나타나진 못했지만, 서해남부에 해적이 없다곤 할 수 없지. 너희들이 더 잘 알지 않나?”

“끄응...”

“음...”

딱 집어서 말하자, 다들 말문이 막혔다. 그의 말이 정답이니까.

명이 망하고 해금령이 사라지자, 한탕을 노린 왜구와 해적이 꽤나 생겨났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왜구도 아니다.

예전에도 왜구는 온갖 출신이 다 섞여있었고, 왜구의 악랄한 명성을 이용하거나 왜국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해서 왜구 행세를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지.

허나 해안도시의 상회와 호족이 직접 가병과 수군을 키워 자체방어를 시작하자, 오히려 명나라 시절보다 방비가 더 철저히 이뤄지면서 내륙을 약탈하는 건 힘들어졌다.

결국 진짜 왜구의 대부분은 상인으로 변모했고, 남은 칼잡이 왜인들은 뭐라 콕 집어서 말하기 힘든 다국적 해적으로 변모한 상태.

“그런 해적들과 너희가 알게 모르게 접촉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

“허헉!”

“어찌 그런 말씀을...”

“절대 그렇지 않사옵니다.”

모두는 화들짝 놀라 목청을 높였으나, 연오랑은 손짓으로 침묵시키며 말을 이어갔다.

“따지고자 하는 게 아니다. 앞으로 손을 털면 그만이다.”

“...”

“...”

‘다 알고 있으니 발뺌하지 마라.’라고 무심히 바라보며 말을 하니, 다들 쥐구멍으로 숨고 싶은 마음이 치밀어 올랐다.

이것도 꼬투리 잡아 흔들기 시작하면, 절강연맹에 목줄을 채울 수 있는 명분이 될 테니까.

지금의 해적들은 내륙 침공 약탈이 아닌 상선 약탈에 매진하고 있는데, 문제는 약탈한 물건을 누군가에게 팔아야만 돈을 챙길 수 있다는 점.

예전에야 왜국영지로 가서 팔면 그만이었지만, 왜국영주들도 해적질을 때려 치고 상단을 꾸리는 쪽으로 선회한지 오래.

장물이나 마찬가지인 물건은, 해적과 손잡은 중간상인을 통해 세탁되어 헐값에 온갖 해안도시로 흘러들어가게 됐지.

이들은 그게 장물인 걸 알면서도 남몰래 조용히 받아들였다.

자기 도시의 상단만 약탈 안 당하면 그만이지, 다른 도시의 사정을 봐줄 필요가 있을까. 경쟁자가 약해지면 자신이 이득을 보는데?

이런 관계를 통해 알게 모르게 해적과도 줄이 생겼고, 몇몇 상단은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해적들에게 의뢰해서 경쟁상단의 상선을 약탈하게끔 유도했던 것.

물론 이건 선을 넘어도 한참 넘는 일이라서 대놓고 진행할 순 없지만, 거대도시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이들은 분명 하나 쯤은 해적과의 끈이 연결되어 있을 거다.

‘누가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 줄은 몰라도, 연결되어 있다는 건 확신하고 있겠지.’

‘이자의 성격상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서 해적들을 때려잡아, 관련된 가문과 상단을 압박할 게 분명.’

‘확실히 손을 터는 게 이득이긴 한데...’

“...”

가주들은 맹렬히 머리를 굴리며 생각을 거듭했고, 연오랑은 침묵을 깨고 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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