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 챕터38. 돌아보다 (9)
“음... 그럼 장사가 너무 잘 되서 건방져진 건가?”
“...”
둘은 사돈 남 말 하는 소대장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눈을 흘기고 말았다.
가세가 기울어 먹고살기가 힘들어서, 남들은 손도 안 내미는 사냥을 배우겠다며 찾아와 사냥기술을 배운 양반 아닌가.
그랬던 양반이 지금은 헛소리를 맘껏 하고 있다.
“소대장님은 정말 팔자 피셨나봅니다? 흰소리를 다하시고.”
“흐흐. 농담일세.”
“...”
계속해서 눈을 흘기자, 소대장 사내는 얼른 말을 이어 붙였다.
“양가 저놈이 우리와 쌓은 인연이 얼만데! 그래서 날 따라서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안 그런가? 여기 정착하게 내가 얼마나 도와줬는데.”
“예예.”
“그건 그렇죠.”
이건 맞는 말 인터라, 둘 모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착호군이 활동할 때. 맹수보다도 먼저 정리된 건, 조선의 유목민 화척이었다.
원래 역사에서 화척은 백정으로 변모했다.
고려는 불교를 섬겼기에 육식문화가 크게 번지지 않았다.
원나라의 영향을 받으면서 조금 바뀌어 먹을 사람은 다 먹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자주 먹을 만큼 가축이 많이 없어서 도축기술과 도축업자도 많지 않았지.
허나 화척은 유사유목민처럼 살았기에 도축에 능숙했고, 조선이 화척을 정착시키자 이들은 도축업자로 변신했다.
이러면서 화척이 백정이 됐고, 동시에 백정이 도축업자를 뜻하는 말이 된 거지.
이런 백정은 천민 중에서도 하위천민으로 멸시 당했는데, 이건 도축업자라서 멸시당한 게 아니라, 화척 습관을 못 버려서 였다.
허나 지금 역사에선 이런 일이 시작되기도 전에 화척이 쓸려나갔고, 이들은 원래 하던 일. 사냥과 목축을 하면서 조선에 정착했다.
이러니 도축업자에 대한 인식이 나빠질 이유가 없지.
오히려 온갖 가축을 키우면서 거꾸로 도축업자의 필요성과 수요도 늘어나서, 화척 출신 도축업자가 환영받게 됐다.
사내 또한 그런 식으로 착호군에 흡수되어, 이들 세 사람과 연을 맺게 된 거고.
이런저런 쓰잘데기 없는 소리를 하다 보니, 어느덧 김을 풀풀 풍기는 마골탕이 등장.
본래는 소뼈를 고아 만들어야 했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도 써야하는 법. 소뼈 대신 돼지뼈, 말뼈, 양뼈를 고아서 대체했는데, 이건 또 이것만의 맛이 있었다.
“들지.”
“예. 소대장님.”
“크허...”
희끄무레한 국물을 숟가락으로 퍼먹자, 기름과 함께 열기가 입안에 맴돌았다. 살짝 시원하던 공기가 뜨거워질 정도로 얼굴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말뼈도 나쁘지 않네?”
“핏물을 여러 번 빼고, 푹 고아내는데 얼마나 오래 걸린 줄 아십니까.”
“크흐. 제대로 배웠어. 괜히 장사가 잘되는 게 아니라니까.”
“...”
소대장은 연거푸 감탄을 늘어놨고, 둘은 소대장을 보며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몰라서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네. 진짜 잘 배웠는데?’
우골탕은 미래에 설렁탕이라 불린 음식이니, 당연히 연오랑이 범인이다.
그는 착호군을 끌고 다니면서 음식에도 별 짓을 다했고, 그걸 따라 배운 이들이 전국으로 퍼져 새로운 식문화를 만들어냈다.
“...”
다들 말없이 열심히 탕을 퍼먹고, 어느 정도 배가 차자... 소대장 사내는 의자에 늘어지며 입을 열었다.
“요새 너무 심심하다.”
“...?”
“옛날에는 지겨워서 다신 안보고 싶었는데, 요샌 너무 심심해.”
소대장의 정신이 오락가락 하던 게, 이런 이유가 있었나 보다.
“함흥이 난리법석이었던 게 고작 반년도 안됐는데,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건 내가 바쁜 게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바쁜 거 잖냐.”
“...”
툴툴거리는 소대장을 보며, 둘은 뭐라 할 말이 없어졌다.
소대장을 비롯해 이들은 착호군 1기로 무려 중국원정까지 갔다 오지 않았나.
그때 폭풍처럼 치열하게 살던 시절에 비하면, 목욕탕 주인의 삶은 재미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착호군에 들어가기 전엔, 평생을 그렇게 심심하게 살았으면서 갑자기 왜 이럴까. 확실히 사람이 안계가 트이면, 생각과 마음도 달라지기 마련인가 보다.
“그래서 말인데. 너희 사냥 갈 때 나도 같이 가자. 이번에 사냥꾼들이 꽤 모인다면서?”
“예.”
“나도 어디 가서 꿀릴 실력은 아니니까 문제될 건 없고, 사냥꾼이 하나라도 더 있으면 좋잖아?”
“음...”
둘은 가볍게 눈을 마주쳤고,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소대장이 괜히 소대장이겠나. 깜냥이 있으니까 그 자리를 차지한 거다.
“목욕탕은 어쩌시고요?”
“일을 내가 하나, 사원들이 하지. 부인에게 맡기면 돼.”
“...”
소대장의 부인은 소대장이 착호군에 있는 동안에 집안을 건사했고, 소대장이 보낸 돈을 알음알음 불려서 목욕탕을 만들 자본금을 모은 여장부 아닌가.
그녀라면 소대장보다 목욕탕 운영을 더 잘할지도 모른다.
“그러시죠.”
“좋아!”
소대장은 박수를 치고선 눈을 반짝거렸다.
“너희 이야기나 들어보자. 요새 어떠냐? 듣기로는 영 자리 잡기 힘들다던데?”
“예. 일이 요상하게 됐죠.”
“좋은 건 분명 좋은 건데, 저희에게는 애매하죠.”
둘은 기다렸다는 듯이 넋두리를 풀어놨다.
과거 조선의 모든 백성이 그렇듯, 사냥꾼도 농사가 패시브였고 농사로는 먹고 살기 힘들어서 사냥을 병행했다.
하지만 사냥만으로 먹고 사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루 한번 사냥하면 천운을 잡은 거고, 언제 어디서 맹수를 만날지 모르니 목숨을 걸어야 했지.
아무리 몰락했다고 해도, 양반이 사냥꾼이 되겠다고 찾아온 소대장이 별종인 거다.
이렇듯 하려는 사람이 없던 관계로, 자연스럽게 도제식이 되어 사냥은 집안의 가업이 되어 내려왔다.
이후 착호군이 등장해 이들을 싹 긁어모아서 사냥술 통합 매뉴얼을 만들어, 셀 수 없이 많은 군인 겸 사냥꾼을 양산하자 처지가 또 뒤바뀌었다.
“양전사업이 끝난 지방에서 사냥꾼이 필요나 하겠습니까.”
“게다가 사냥꾼을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다들 활 대신 괭이를 들었죠.”
둘은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묘한 표정을 지었다.
양전사업으로 땅이 생겨났는데, 뭐 하러 고생해서 사냥을 할까.
온갖 새로운 농업기술과 질 좋은 농기구가 생겨난 이상, 그냥 땅을 붙여먹는 게 훨씬 이득이다.
“농장이 많이 생긴 것도 타격이 컸고요.”
“농장? 농장이 왜?”
소대장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사내가 가볍게 입을 풀었다.
사냥감으로선 물론 맹수가 값이 나가는 건 맞지만, 미쳤다고 목숨 걸고 맹수만 찾아다니겠나.
주사냥감은 보통 덫에 걸린 토끼나 사슴, 여우같은 만만한 사냥감. 조금 무리하면 멧돼지를 잡는 거고, 맹수는 오히려 만나길 피해야할 존재였지.
“그런데 요새 토끼와 사슴, 돼지농장이 엄청나게 늘어나지 않았습니까.”
“그건 맞아. 호가하고 유가 녀석 집안도 토끼농장을 하니까. 토끼들이 하도 땅을 파먹는다고, 땅속까지 돌을 파묻어 돌벽을 세우니 뭐니 하면서 앓는 소리를 하더라고.”
“예.”
사냥과 목축의 효율성을 비교조차 할 수 없으니, 사냥꾼이 깨작깨작 잡아봐야 농장에서 키우는 가축과 비교할 수 있나.
당연히 경쟁에서 밀려났다.
“게다가 양전사업이 끝난 곳에선, 이제 육군이 주둔하지 않습니까?”
“어. 아마 그럴걸?”
“그치들은 착호군하고 똑같이 훈련한답니다. 문제는 착호군은 움직였지만, 육군은 주둔지에 박혀서 일대를 다 쓸어버릴 거라는 거죠.”
“오호...”
이제야 감이 잡히는지, 소대장 사내는 흥미로운 눈빛을 뿌렸다.
착호군은 조선을 잘게 나눠서, 구역별로 토벌작업을 진행했다.
말 그대로 산짐승을 보이는 족족 쓸어버렸지만... 조선의 산맥이 어디 보통 험하고 보통 넓던가.
사람이 사는 마을 인근과 주요 통행로 근처는 말끔해졌지만, 이리저리 도망친 맹수와 산짐승은 여전히 산속에 남아 있었다.
계속해서 움직여야하는 착호군은 그걸 마무리 짓지 못했는데, 이젠 육군이 착호군처럼 움직이며 남은 잔당 산짐승을 치우겠다는 거지.
“맹수를 잡는 게 주목적이겠지만, 연대병들이 눈앞에 보이는 사냥감을 그냥 놔주겠습니까. 신나서 다 잡겠죠.”
“또 경쟁에서 밀렸다는 거군?”
“예.”
“뭐. 그렇죠.”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사냥꾼과 최소 연대단위로 움직이는 육군의 효율을 비교할 수 있나.
육군이 한번 훑고 지나가면, 한동안은 산에서 산짐승 그림자도 보기 힘들어질 거다.
“그래서 요샌 삼남지방의 사냥꾼들이 북방으로 이주하고 있답니다. 이번에 저희와 함께 움직일 사냥꾼 중에서도 저 아래 김천과 상주에서 올라온 이도 있고요.”
“음... 그럼 이곳에 터 잡으려는 이들도 꽤 되겠네?”
“말을 들어봐야 알겠지만 그렇지 않겠습니까? 굳이 두만강 건너 북방까지 가는 것보단 여기가 그나마 낫겠죠? 이렇게 번듯한 도시까지 생겼으니, 사냥감을 팔기도 쉽고요.”
이곳 함길도는 수지타산이 안 맞아서, 착호군조차 개마고원으로 진출하지 못했다.
그만큼 아직은 사냥감이 많이 남아 있다는 뜻.
함길도에 주둔하는 육군은 대부분 두만강 유역에 몰려 있으니, 한동안은 꽤 소득을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음...? 이거 잘만하면...?’
소대장 사내는 뭔가 또 돈벌이가 생길 것 같아, 눈빛을 번뜩였다.
“오...?”
두툼한 털가죽을 입은 사내는 혼자 휘파람을 불며 몸을 날렸다.
“호오?”
계속해서 혼잣말을 하며, 손에 들린 연필로 누런 혼합지에 열심히 글을 적어나갔다.
훈민정음은 이미 퍼진지 한참 됐고, 백성들뿐만 아니라 귀화인 모두가 원하지 않았나.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조선문자 임에도, 반포된 지 고작 한해도 지나지 않아 백성들에게 뿌리박혔다.
기존에 사용되던 이두와 향찰은 아예 사라져버렸고, 한어만이 훈민정음의 약진에 대항해 힘겹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
관리가 엄청나게 많아졌고, 그 관리와 함께 엮여 있는 사람도 어마어마하지 않나.
예전처럼 공문서를 한어로만 작성하는 건 사실상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됐고, 이젠 관에서도 훈민정음으로 공문서를 작성하는 게 낯선 일이 아니었지.
관에서만 그럴까. 민간도 마찬가지다.
기업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해선 망하기 딱 좋고, 예전처럼 몇 안 되는 인맥으로 꾸려가는 사업체가 아니다.
생전 모르던 온갖 상인과 장인을 만나서 계약을 맺어야 했으니, 자연스레 민간에서도 훈민정음으로 작성한 계약서가 보편화됐지.
그 뿐일까. 온갖 것이 학문화되면서, 그 중에서 쓸모가 있다 판단되면 조정에서 큰돈을 주고 사들이지 않나.
이렇게 혼자서 뭔가를 연구관찰하고, 연필과 가장 값싼 혼합지에 연구결과를 적는 건, 이젠 그리 낯선 광경이 아니게 됐다.
다만 이런 산중에서 연구를 하는 모습이 이상할 따름.
녀석도 같은 생각을 한 걸까? 삐이익! 우리에 갇혀 있던 새끼 매 한 마리가 입을 벌리며 울어댔다.
“오냐.”
그는 매의 울음소리를 알아듣기라도 한 것 마냥, 어깨에 건 망태기에서 쥐 한 마리를 꺼내 툭툭 때려 기절시키곤 우리 안으로 던져줬다.
닭보다도 작은 덩치건만, 매의 본능은 숨길 수 없나보다.
작은 부리로 콕콕 쥐의 몸을 찌르더니, 이내 이제 막 솟아난 발톱으로 몸통을 붙잡고 퍽퍽 뜯어먹기 시작했다.
피냄새를 풍겨서일까? 삐이익! 삐악! 다른 우리에 있던 새끼 매들이 하나같이 “나도 줘라!”라며 우렁차게 울기 시작했다.
툭툭툭. 사내는 계속해서 쥐를 패대기쳐서 기절시켜 우리 안에 던져줬고, 이내 다들 식사가 시작되자 다시금 연필을 쥐고 손을 놀렸다.
“끄응... 오늘 일지는 다 됐고.”
뻐근해진 어깨를 두들기며 중얼거리고 있자,
“나리!”
밖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방에 기둥을 세워 천장에 그물을 엮어 놓은 사육장을 나서기 무섭게, 누군가 후다닥 달려온다.
“나리가 아니라 사장님이다. 언제까지 그럴래?”
“헤헤. 손님이 오셨습니다.”
똑같이 털옷을 뒤집어 쓴 노인이 실실 웃자, 사내는 가볍게 고개를 내젓고는 연필과 서책을 정돈하고선 걸음을 옮겼다.
“손님? 올 사람이 있나? 연 상단주가 오려면 멀었을 텐데?”
“상단이 아니라 사냥꾼들이 왔습니다. 이것저것 많이 잡았던데요? 잠깐 머물면서 쉬려고 왔답니다.”
“음...”
이런 게 한두번이 아닌 터라, 사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과거 응방鷹坊이 있던 시절에 사용하던 곳으로, 어찌 보면 나름 관아 아닌 관아였다.
당연히 많은 사람이 머물 만큼 큰 규모를 자랑했고, 사냥꾼뿐만 아니라 산을 넘어가는 이들이 이따금씩 머물곤 했었지.
“이게 돈이 될 줄 누가 알았습니까.”
“나는 알았지.”
“암요. 그러믄요.”
사내가 단호하게 답을 하자, 노인은 그저 좋아서 헤실헤실 웃고 말았다.
죄다 백수가 될 판국에 단호히 결정을 내려, 모두에게 살 구멍을 만들어준 건 분명한 사실. 이곳 응방의 처소를 사들여 숙박시설로 바꿔버리는 결정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유목민족의 영향을 받은 곳에선 매사냥이 행해졌고, 동아시아에서부터 저 먼 중앙아시아 너머 중동에서도 맥이 이어질 정도다.
고려는 원의 영향력 하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됐고, 원의 공물을 맞추기 위해 아예 응방을 만들어서 매를 나포하고 사육했지.
이런 몽골왕족이자 왕족 문화가 고려귀족에게 퍼진 건 당연한거고, 하나둘씩 매사냥을 즐기기 시작.
그렇게 응방은 면역과 면세특권을 받으면서 덩치를 불렸다. 뭐 당연히 폐해가 발생해서 폐지했다가 설치했다를 반복했지.
조선이 들어서자 문제 많던 응방을 날려버리려 했으나, 명이 또 매를 공물로 바치라고 하지 않나. 해서 그냥 응방의 규모를 축소해 남겨뒀는데... 명이 망해버렸다.
그때부터 응방은 힘을 계속 잃어버렸고, 세종이 등극하면서부터 굳이 필요도 없는 응방을 아예 해체 해버린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