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280화 (280/538)

280. 챕터39. 탄생하다 (9)

“그게 무슨 뜻인지...?”

이제 막 관리가 된 신입인터라, 누구보다 향교의 사정을 더 잘 알지 않나.

그는 연오랑의 말이 이해가 안 되서 말을 더듬거렸다. 향교는 기숙사로 운영되는데, 식사를 준다는 건 무슨 뜻일까?

“...?”

향교는 분명 시대를 앞서가는 공립교육기관이지만, 반대로 시대의 한계도 품고 있었다.

한 현에 배정받은 인원이 고작해야 15명. 나이는 16세 이상부터 40세 이하만 받았다. 16세 미만은 동몽童蒙이라 하여, 정원에 포함시키지도 않았지.

헌데, 현의 인구가 몇 명인데 고작 15명만 뽑아서 뭐하겠는가. 이건 향교를 이용해 민간에 유학을 뿌리내리는 동시에, 양반사대부의 기득권을 보장하는 방편이 됐지.

흔히 생각하는 의무교육, 초등교육하고는 한참 거리가 있고, 굳이 따지자면 관리를 양성하기 위한 문턱 높은 엘리트 교육에 더 가까웠다.

이런 향교에 입학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기초교육을 미리 받아야 했으니... 사실상 아무나 올 수 있다고 해서, 아무나 올 수 있는 게 아니었던 거지.

“그런데 북방에서 근무한 교육당 출신이 파견된 후부터, 기존 기조에서 벗어나 자기들끼리 이것저것 해보면서 애들을 가르치고 있잖아?”

“그건 그렇죠.”

“결국 지금의 향교는 쓸모를 잃어버렸으니까... 아예 입교 연령대를 확 낮춰서 문호를 개방하자는 거지. 지금 뭐. 아무리 큰 고읍이라도 향교의 정원이 30명 쯤 되냐? 그렇게 찔끔찔끔 가르쳐서 뭐 할 거야. 마음을 크고 넓게 가져라.”

더 넓어지다가는 바다도 삼킬 기세다. 저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헉...!”

“기업의 사원이 출퇴근하는 것처럼, 향교의 생도生徒도 그렇게 하자는 건가요?”

“어.”

연오랑은 심드렁하게 답을 했지만, 모두는 경천동지할 말에 할 말을 잃어버리고 입을 쩍 벌렸다.

이건 지금까지의 향교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정책이다.

“그... 재원은 어떻게 합니까?”

“이것도 기부금을 받으면 되지. 나라의 동량이 자라는 향교에 관심을 보이는 건 양반,호족이라면 당연히 신경 써야 되는 거고, 부잣집이 가산을 조금 덜어주는 건 어렵지 않잖아? 아무리 좁은 현이라도, 그 안에 터 잡은 지주집안은 한둘이 아닐 텐데?”

“그야 그렇지만...”

신입관리는 ‘그게 말처럼 그리 쉽게 될까?’라는 의문을 숨기지 못했다.

“체면을 이용하려는 거군요?”

“어. 이것도 나쁘지 않잖아? 향교 앞마당 공적비에 떡하니 집안이름이 적혀 있어봐. 애들이 이거보고 자랄 텐데, 싫어하는 집안이 몇이나 될까.”

“으음...”

“크흠.”

다들 이해가 될듯 안 될듯 해서, 고개가 오뚝이처럼 흔들렸다.

한편으론 “그래. 북방에선 이미 그렇게 운영되고 있잖아?” 라는 마음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모든 백성을 전부 교육시키는 게 실질적으로 가능할까?”라는 마음이 부딪친다.

“물론 쉽진 않을 거야. 하지만 반대로 무조건 못할 것도 없지.”

다만 연오랑조차도 확신을 가지고 답하지 못하고, 어물어물 중얼거렸다.

미래의 초등학교를 생각하며, 향교를 그렇게 크게 만드는 것. 건설 그 자체는 문제가 없을 거다.

향교는 숙식하는 건물이 아니니까... 난방도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어서 건물 짓는 게 힘든 건 아니고, 청소와 같은 유지보수는 애들 시키면 어느 정도 할 수 있다.

문제는 이걸 운영하는 게 쉽지 않다.

“반의무적으로 10살쯤 되는 아이들을 생도로 모집을 하면, 어쩔 수 없이 그 밑의 아이들도 딸려오겠지. 애가 애를 보는 게 당연하니까.”

“...”

“그럼 한 현에 못해도 생도가 천명에서 이천명쯤 될 텐데... 이들을 매일같이 한자리에 모아서 교육하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겠지.”

“...!”

연오랑의 말에 모두가 다시금 눈을 번쩍 떴다.

향교의 인원이 천명이나 된다면, 이게 요새 짓고 있는 군주둔지와 대체 다를 게 뭔가.

그거 짓는 것만으로도 피똥싸고 있는데, 전국의 현에 하나씩 주둔지를 만드는 게 가능이나 할까.

“하지만 또 무작정 그렇게 크게 할 수는 없으니까... 음.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누든가. 아니면 삼일,사일에 한번씩 향교에 와서 교육을 받으면 되겠지.”

“... 허허.”

“으음...”

이젠 다들 할 말을 잃고 헛기침만 날려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연오랑은 계속 낙서와 혼잣말을 이어갔다.

‘이 녀석이 꽤나 재밌는 생각을 했단 말이지.’

예산에서 올라온 서신은 흡사 미래의 셔틀버스를 떠올리게 만드는 방책이 적혀 있었기 때문.

생각해 보건데, 크게 어려울 것도 없고 나쁠 것도 없다.

‘게다가 당장 향교를 짓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반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

굳이 학생이 선생을 찾아올 필요 있나. 선생이 학생을 찾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빈 건물 있는 부잣집에 애들 모아서 교육하고, 선생들은 순회하듯 하루에 한마을씩 돌아가면서 교육하면 되지 않을까. 부족한 부분은 숙제를 왕창 내주는 걸로 대체하면 그만이고.

“어때?”

“예에...”

“그건.”

어디까지 장단을 맞춰줘야 할지 몰라서, 빙긋 웃는 연오랑을 보며 다들 힘없이 미소만 얹혀줬다.

“그건 그렇다 치고, 지금의 향교와 다른 교육을 한다면... 뭘 가르치려고요?”

“별 거 있나? 북방에서 귀화교육당과 직업교육당이 가르치던 걸 가르치면 되겠지. 일단은 십학에 신학문을 넣으면 되겠네.”

“음...”

조선의 국가운영에 필요한 열가지 항목을 십학이라 부르고, 이 중 유학과 무학을 제외한 나머지를 잡학이라 불렀다.

다만 지금은 유학의 힘이 약해지고 무학은 아예 떨어져나갔고, 빈자리를 재정학을 비롯한 온갖 신학문이라 치고 올라온 상태.

요샌 신학문이 너무 많이 생겨서, 십학이나 잡학이라는 말을 잘 안 쓰기도 했다.

“허면... 교생도 적지 않게 뽑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되겠지?”

“...”

연오랑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반대로 다들 고개를 내저었다.

십학을 통해 뽑힌 잡과관원들은, 애초에 관원이 아니었던 이들 뿐만 아니라 기존의 관원 중에서도 뽑는 경우가 흔했다.

만약 전국의 현에 개별 교생을 내려 보내려면, 얼마나 많은 교생이 필요할지 감도 못 잡겠다.

“뭘 그렇게 걱정해. 지금도 잡학생도는 뽑고 있잖아? 그걸 생각하면 크게 이상할 것도 없지.”

“...”

신입관리는 ‘그게 이거하고 같냐?’라고 차마 말을 못하고, 입만 벙긋거렸다.

유학생도와 별개로 잡학생도라고 해서, 잡학을 익히는 이들이 있었다.

다만 이들 또한 전부 관리가 된지 오래고, 이들은 향교가 아니라 중앙의 통제를 받아 지방관아에서 알아서 가르치지 않나.

이 또한 실무관리육성의 방편이었지, 보편교육의 방편으로 보기에는 힘들었다.

연오랑이 천연덕스럽게 말도 안 되는 걸 끼워맞추고 있으니, 할 말이 없어진다.

“게다가 따지고 보면 직업교육당에서 가르치는 농업학, 산림학, 야금학, 목공학 등은 오히려 백성들이 더 반길 수도 있을 걸?”

신학문으로 대두되고 있는 일상학문들.

이건 이미 백성들이 자기 손으로 하고 있던 직업과 행태를 학문으로 체계화 시킨 것 아닌가.

달리 말하면 집안에서 혹은 도제식으로 배우고 가르쳐야할 걸, 조정이 대신해서 직접 교육해준다는 거니... 자기 밥벌이를 찾기 위해서라도 이걸 거부하는 사람은 드물 거다.

“기술을 배워 놓으면 굶어죽지 않는다.”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통용되는 말이니까.

“후... 모르겠습니다.”

“그래. 네가 이해할 거라고 기대도 안 했다.”

“...”

연오랑의 시큰둥한 말에 신입관리의 머리는 땅에 닿을 듯 처박혔고, 공주는 애써 표정관리를 하며 “나는 아니다.”라고 시위하듯 베시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가 잠시 침묵이 감돌고, 공주가 조심스럽게 입을 땠다.

“무슨 말인지 이해는 했는데... 그럼 지금의 향교의 역할을 대신하는 기관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 뭐라고 했죠? 고등교육? 향교가 일반 백성들을 가르치는 곳이 된다면,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가르칠 곳이 필요하지 않아요?”

“그야 그렇지.”

연오랑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선, 이 또한 생각을 해뒀는지 망설임 없이 답을 풀어냈다.

“성균관을 대학이라고 부르긴 뭐하지만...”

“대학이요?”

“뭐... 명칭은 어떻게 붙여도 상관없지만, 아무튼. 고등교육을 가르치는 기관을 대학이라 부른다면, 우린 이미 가지고 있잖아? 연구소라고. 음... 어쩌면 연수원도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겠네.”

“아...!”

모두는 자기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말았다. 생각해보니, 이미 있었다.

성균관이 존재하니, 이들도 고등교육기관에 대한 이미지는 대충 감을 잡을 수 있다.

게다가 성균관원은 전부 관리가 되어 성균관은 빈터만 남았고, 실제로는 집현전과 연구소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학문을 증진시키고 있는 상황.

착호군이 지나간 자리마다, 각 도읍에 이런저런 연구소가 하나씩 만들어졌으니... 이걸 이용하면 교육기관으로 바꾸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다.

“후우...”

“뭐. 조정에서 알아서 하겠지. 나야 이런저런 생각만 전해주는 거고.”

“...”

말이야 저렇게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쉬울 리가 있나.

연오랑의 제안서와 보고서로 인해 나라가 뒤집어진 게 한두번이 아니니, 조정에선 머리를 감싸고 허실을 찾으려고 난리가 벌어질 거다.

‘음... 생각해보니, 교육하고 놀거리하고도 연계가 되겠는데?’

대표적인 유희거리로 스포츠가 있다면, 다른 유명한 걸로는 음악과 공연이 있지 않나.

이걸 교육기관과 연계하면 또 작품이 하나 나올 것 같다.

‘어차피 악학樂學은 가르치고 있으니까...’

연오랑은 공책에 끄적끄적 연필을 놀리며 생각을 이어갔다.

잡학 중엔 악학이라고 해서, 봉상시奉常寺, 아악서雅樂署, 전악서典樂署 등에서 궁중음악을 담당하는 기관이 있었다.

이들 수뇌부는 과거에 합격한 관리였지만, 악사들 대다수는 잡직관원에 속해서 관리가 된 이들이지.

조선의 모든 직업이 그렇듯, 악사 또한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가업과 다를 게 없었다. 유학 말고는 무시하는 조선답게, 이들은 신량역천인 취급을 받으며 천시되고 있었지.

‘요샌 사정이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확 바뀐 건 아니고.’

“...”

‘재능이 없어도 어쩔 수 없이 부모를 따라 악사가 된 이들이 몇 일거며, 음악적 재능이 있는데도 있는 줄도 모르고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 몇 명이야...’

이건 개인에게도 불행이지만, 나라 전체로 봐도 손해다. 만약 이들의 재능을 교육을 통해 깨우칠 수 있다면, 여러모로 득 보는 게 많을 거다.

‘음... 음악만 이러는 게 아니겠지.’

궁중음악과 대비되는 민간음악도 분명히 있고, 이를 대표하는 이들이 바로 떠돌이 놀이패, 사당패, 조선의 서커스단이라 할 수 있는 재인才人.

연오랑은 끄적거리는 걸 멈추고, 공주를 바라봤다.

“당신. 재인이 노는 거 본 적 있어?”

“아뇨.”

공주는 단박에 고개를 내저었다. 하긴 궁에 살았던 공주가 재인을 볼 수나 있을까.

“너는?”

“저는 어릴 적엔 봤지만... 요샌 못 봤습니다.”

“음...”

신입관리도 같은 반응을 보이자, 연오랑은 자기도 모르게 침음을 흘렸다.

양전사업을 통해서 나라를 갈아엎지 않았나.

화척도 죄다 정착했으니, 떠돌이 부랑자나 다름없는 재인도 마찬가지일 거다. 대다수가 자의든 타의든 정착해서 땅을 붙여먹고 살고 있겠지.

‘그래도 어딘가에서 분명 떠돌고 있을 거고.’

역마살이라는 말이 괜히 있겠나. 정착해 살 수 있음에도,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삶을 추구하는 자유로운 영혼도 분명 있을 거다.

“음. 재인 말고 또 뭐가 있으려나...”

‘민간의 음악과 춤을 주도하는 건... 역시 기생이겠지?’

연오랑은 자기가 생각하고도 정답을 찾아낸 것 같아,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이 시대는 아직 민간의 기생문화가 정착되지 않았다.

다른 이유가 있겠나. 조선은 사치를 금하고 고려의 풍조를 거부했으니, 당연히 기생문화 또한 탄압 아닌 탄압을 받았지.

사실 더 큰 문제는 조선이 워낙 거지라서 한성,평양,개성을 제외하곤, 기생이 생겨날 만한 고을도, 기생을 부르고 놀만큼 여유 있는 곳이 없었다.

하여 미래에는 민간기생은 천민 중에서도 하위취급을 당하게 되지만, 지금은 신량역천인을 벗어나 처지가 애매모호했다.

더불어 기생문화가 꽃피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서, 조선중후기마냥 선비와 함께 시와 담론을 나누는 일패기생, 춤과 노래를 하는 이패기생, 몸을 파는 삼패기생 등의 구별도 없다.

그저 관비 중에서 기악樂,노래歌,춤舞을 익힌 관기官妓를 뽑아서, 이런저런 행사에 불러서 써먹은 정도.

요새 무섭게 늘고 있는 민간기생은 제멋대로였고.

“음. 기생이라...”

“...?”

뜬금없는 기생타령에 공주는 슬쩍 눈을 흘겼고, 연오랑은 뜨끔해서 얼른 입을 놀렸다.

“이들도 어떻게 잘 관리를 하면, 민간 음악이나 재인과 같은 공연패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놀거리라면야 춤과 음악이 빠질 수 없잖아?”

“아...!”

“오...”

모두는 이어지는 연오랑의 설명에,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헌데... 이미 관습도감慣習都監에서 여악女樂을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까?”

“그거하고 이거하고 다르지. 그치들이야 궁중에 불려가니까 이것저것 배우는 거고, 지금 만들려는 건 단순한 관비뿐만 아니라 양민 남,녀를 가리지 않는 악사와 노래꾼, 춤꾼을 가르치는 학당이잖아.”

“네에...”

신입관리는 아는 척을 했다가, 한소리 듣고서 입을 다물고 말았다.

관습도감에선 관기를 교육시키는데, 그렇게 키워봐야 몇 명이나 되겠나. 게다가 이쪽은 엄연히 조정부서라서, 궁에서 쓰는 음악만 취급하는 터라 민간과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안 그러냐? 백성들 놀거리 만들어주려고 하는 건데, 궁중에서 쓰는 아악을 하면 참 좋아라 하겠다. 그치? 눈치 보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걸.”

“예...”

“그럴 걸요. 아마.”

공주 또한 이것저것 재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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