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287화 (287/538)

287. 챕터40. 대비하다 (6)

널리 소문을 내라고 했으니 숨길게 있을까. 넷은 조폐성에서 봤던 걸 부하직원들에게 털어놨고, 다들 박수를 치며 놀라워했다.

워낙 놀라운 소식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옆 평상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행상들도 몰래몰래 귀를 쫑긋거리며 훔쳐듣는 게 보일 정도였지.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저편에서 구수한 냄새와 함께, 누군가 작은 바퀴가 달린 수레를 끌고 객주 담벼락을 따라 밖으로 향하는 게 보였다.

“똥장수군?”

“그런가 보네.”

오물수거기업이 생긴 후로, 똥장수를 보는 건 흔한 일이 되지 않았나.

잠깐 입맛이 떨어지긴 했지만, 뭐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저기... 밖에 있는 이들은 취토군 아닙니까?”

고개를 돌려보자 낮은 담벼락 너머로 수레마차에 올라탄 이들이 보였는데, 관복 위에 가죽조끼처럼 생긴 옷을 입고 있었다.

똥장수와 함께 다니는 관리라면 당연히 취토군이라서, 알아보는 게 어렵지도 않았다.

“다들 바쁘게 사는군.”

“그러게 말입니다.”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했을 광경이지만, 개혁이 진행된 지 벌써 10년차. 이젠 이것도 일상이 되지 않았나.

일행은 화끈한 안동소주를 들이키며 웃음꽃을 피워냈다.

누군가는 웃고 떠들고 있을 때, 누군가는 물끄러미 과거를 회상하고 있었다.

이효손 일행이 담장 너머로 얼핏 봤던 취토군. 그는 객주를 바라보며 상념에 빠져들었다.

‘이젠 처마 밑을 뒤지고 다니는 게, 완전히 옛일이 되어버렸군.’

문뜩 그런 생각이 떠올라서,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헷갈렸다.

오래전. 양반집에 쳐들어가서 시원하게 땅을 뒤집고 “엣헴.엣헴. 취토군의 행사를 방해할 테냐!?”라며 뒷짐 지고 약 올리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건 다 옛일이 되지 않았나.

오물수거기업이 생겨나고, 기와나 석재, 벽돌의 값이 싸지고, 건설기업이 늘어나고, 목재와 흙으로 짓는 한옥을 넘어서 벽돌과 석재를 결합하는 신건축기술이 등장했다.

이 모든 게 하나로 결합해 시너지효과를 발휘했고, 조선의 모든 건물이 대격변을 겪고 있는 중이었지.

초가집만큼이나 기와집이 많아졌고, 사람이 자주 오가는 도시나 큰고읍은 기와집으로 바꾸는 게 일상적이었다.

이러니 취토군이 뒤지고 다닐 곳이 점점 줄어들 수밖에.

‘특히 저 삼물회 때문에도 그렇지.’

그는 단청을 칠한 처마와 묘하게 어울리는 하얀 빛깔을 살폈다.

예전에는 비싸서 쓰지도 못하던 석회와 석고는 석회석 광산기업이 생기면서 값이 부쩍 싸졌다.

여기에 삼물회라는 물건이 등장하고부턴, 집의 안팎을 삼물회로 마감하는 건 유행을 넘어 표준이 되어가고 있었지.

그러니 예전이라면 처마 밑에 흙을 채워 고정시켜야할 것도, 훨씬 오래가는 삼물회를 발라 꽁꽁 싸매놨지 않았나.

취토군이 할 일이 하나 없어진 꼴이다.

“...”

‘저것도 그렇지.’

사내는 고개를 돌려, 객주 구석에 홀로 서 있는 얄팍하게 생긴 건물을 바라봤다.

오물수거기업과 착호군이 조선건축계에 던진 폭탄은, 다름 아닌 외부화장실이었다.

예전에는 그냥 요강에 싸서 아무데나 버렸지만, 지금은 그게 안 되지 않나.

다만 미래의 재래식 화장실마냥 땅을 파고 똥통을 만든 게 아니라, 미래의 간이화장실처럼 만들어졌다.

변소에 계단을 만들어 지대를 높이고 바닥에 구멍을 뚫고, 그 밑에 똥항아리를 놓는 식이었지.

그래야 지금 취토군 사내가 보는 것처럼, 오물수거꾼이 똥항아리를 쉽게 꺼내서 옮길 수 있을 테니까.

이내 곧 구수한 냄새가 밀려오자, 상념이 깨지고 멍한 시야가 제자리를 찾는다.

“다 실었나?”

“예.”

“가지.”

사내의 말에, 똥항아리를 챙겨 수레에 옮긴 오물수거꾼은 자신의 똥마차에 얼른 올라탔다.

사내가 끄는 수레마차는 똥마차를 인도하며, 인파를 헤치고 포구 밖으로 향했다.

“음... 이게 아닌가. 다르게 해야 되나.”

“...”

사내는 마부석 옆에 앉아, 흔들리는 와중에도 연신 미간을 찌푸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소년을 바라봤다.

휴대하기 편하게 공책을 반으로 자른 물건을 손에 들고, 다른 한손에는 연필을 쥐고 뭔가를 열심히 끄적거리고 있었다.

‘녀석...’

고사리같이 작은 조막손을 꼼지락거리며, 자신이 하는 일을 따라하던 꼬마 아들.

그 녀석이 어느새 장성해서 옆을 지켜주고 있다.

‘좋은 시절이지 않나.’

그 모습을 보고 있자, 옛 기억은 눈 녹듯 사라지고 기쁨이 차오른다.

취토군의 대다수는 공노비로서 잡직관원이었고, 조선의 직업이 그렇듯 아버지를 따라 아들도 취토군, 화약장이 되기 마련이었다.

바라든 바라지 않든 그럴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선망하는 직업이 됐지 않나.

잡직관원이 속량되어 조정관리가 되었으니, 천민에서 양반으로 껑충 뛰었다.

인생 역전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게다가 개혁 이후 화약제조청은 계속해서 몸집을 불려나가서, 육조 휘하의 흔한 속아문이 아니라 상위부서로 올라서지 않았나. 자연스럽게 취토군의 위치 또한 격상될 수밖에.

그러니... 자신을 따라 취토군이자 화약장이 된 아들을 보면, 안쓰러움 보다는 기특함이 먼저 밀려들었다.

한참을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나아가자, 드디어 더욱 지독한 냄새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누구는 이 냄새에 손사래를 치며 곤욕스러워 했지만, 대다수는 코를 막으면서도 부러워했다.

저 똥이 다 돈으로 변하니까.

“왔는가?”

“예. 형님.”

“숙부님.”

여기저기 큼지막한 창고가 가득한 오물수거기업에 도착하자, 취토군 부자를 반기는 사내가 마중 나왔다.

그는 실력 좋은 화약장인이었지만 사고로 손가락을 잃었고, 그때 방향을 틀어 신사업인 오물수거기업을 설립.

처음에는 창고 하나로 시작했지만, 송파나루가 커지면서 덩달아 커져서 인근에서 제일 큰 오물수거기업이 됐다.

“6번 창고에 가져다 놓게.”

“예.”

사내는 오물수거꾼에게 지시하고선, 취토군 부자를 이끌고 나아갔다.

“아버지. 정말 혼자 하셔도 괜찮겠습니까?”

“아비는 아직 안 죽었다. 걱정마라.”

“맞다. 신경 쓰지 말고 가서 열심히 해봐라.”

“헤헤. 옙!”

둘의 격려에 소년은 히죽 웃으며 냉큼 발을 놀렸다.

“함토로 쓸만한 흙은 많이 나왔습니까?”

“충분하네. 꽤 잘 나왔어.”

사장은 취토군 사내를 이끌어, 창고 중 하나로 이끌었다.

창고에는 푹 삭혀서 이제 고약한 냄새도 나지 않는 비료가 쌓여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거름더미 밑에 깔려 있던 흙을 긁어모은 흙산이 있었다.

“예전에는 이런 방법을 상상도 못했는데 말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아직도 화약장 시절의 기억이 남아 있는 걸까? 사장은 봐도봐도 신기한 흙산을 보며 뿌듯함을 숨기질 못했다.

“용연군 대감은 하여간 여러모로 대단하긴 대단해.”

“그야 이를 말입니까.”

둘은 흙산을 보며, 계속해서 히죽히죽 웃어댔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할 수 있는지, 연오랑의 머리통을 까보고 싶어진다.

사실 연오랑이 오물수거기업을 만든 건, 염초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분비료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화약생산보다 더 중요한 게, 조선의 농업생산력을 높이는 거니까.

문제는 연오랑이 화약 만드는 방법은 모르지만, 토막지식으로 화장실 바닥에서 긁은 흙. 이른바 똥흙이 염초의 재료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이 시대 사람들도 알고 있는 줄 알았지.

허나 이 방법은 이백년쯤 후에 중국에서 전래되어, 신전자초방이 만들어지면서 시작된 염초제조방식 아닌가.

연오랑이 “비료 만들 때 쓴 흙을 긁어모으면 염초로 쓸 수 있는데?”라고 가볍게 흘린 한마디에, 한바탕 난리가 날 수밖에.

오물수거기업은 조정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아 단박에 화약제조청의 감독을 받기 시작했고, 전국의 크고 작은 도시에는 경쟁적으로 오물수거기업이 들어서게 됐다.

이로서 지난날 부뚜막이나 처마 밑에서 캐낸 함토로 생산한 염초보다, 무려 수십배에 이르는 염초를 오물수거기업에서 뽑아낼 수 있었던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부에서 화약이 없다고 난리를 치는 건, 그만큼 군부가 화약을 많이 써서 그렇다.

한 달에 한 번씩 실사격을 한다쳐도, 화기대가 몇 명이요 화포가 몇 문인가.

한번 쏠 때마다 우수수 날아가는 거지.

“옮기지.”

“예.”

취토군 사내는 끌고 온 수레마차를 가져와, 함토를 부지런히 실어 날랐다.

이내 함토를 수북이 산처럼 쌓아 가죽천으로 고정 해놓고, 둘은 느긋하게 걸음을 옮겨 창고 옆 정자로 향해 흔들의자에 몸을 얹혔다.

편하게 앉아 노을을 벗 삼아 차를 마시며 쉬고 있자, 자연스레 옆 창고에서 연신 오물을 뒤적거리고 있는 소년이 눈에 들어왔다.

“연구는 잘 되고 있나?”

“글쎄요... 열심히 하는 건 같은데,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자네 아들은 똘똘하니까, 분명 새로운 제법을 찾아낼 걸세.”

“뭐... 실패하더라도 이것저것 하다보면 화약제조술이 능숙해지지 않겠습니까? 큰 기대는 안하고 있습니다.”

취토군 사내는 말은 그렇게 했어도, 싱글벙글 입꼬리는 올라가서 내려올 생각을 안했다.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면, 내 아들이 용연군 대감만큼 칭송을 받게 될 거란 말이지.’

그는 마음을 두둥실 떠오르게 하는 행복한 상상에,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그려졌다.

조선의 화약은 요몇년 사이에 경이로울 정도로 개량되었다.

인분비료를 만들고 남은 함토를 이용해 생산량이 증가됐고, 북평부의 화약장인을 데려오면서 한번 더 발전했다.

북평부는 과거 연왕부 시절부터 화포와 화약을 개량했고, 명이 망해서 산동에서 초석을 구하지 못하게 되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 시대엔 중국도 똥흙에서 염초를 뽑아내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기존의 방법을 고수할 수밖에 없었고, 이건 아무리 중국에 사람이 많아도 한계가 있었지.

고로 북평부가 집중한 건. 이미 있는 화약의 화력을 강하게 만들고, 보관기간을 늘리는 것.

그래서 오래되어 떡처럼 굳은 화약을 부수고 체로 거르면서 어떻게든 재활용하려고 했고, 이리저리 굴리다보니까... 이게 분말형태가 아니라 작은 알갱이로 된 화약이 더 화력이 좋고 오래가는 게 아닌가.

우연치 않게 발견한 기술은, 북평부 포로를 통해 고스란히 조선으로 들어오게 됐지.

여기에 연오랑이 흑연코팅 방법을 알려주자 한번 더 뛰어올랐고, 북평부, 산동 화약장인의 기술을 통해 염초제조공정 중에서 몇 단계가 간소화되기도 했다.

그 외에도 화약제조청을 재정비해서, 전국의 화약장의 비전기술을 습득하고 또 교육시켰으니... 당연히 전국에서 화약을 생산해도 균등한 품질을 뽑아낼 수 있었지.

아마 전 세계를 통틀어도, 조선의 화약성능이 제일 좋을 거다.

“나중에 성공해서 포상금을 받으면, 크게 한턱내는 걸세.”

“그야 당연한 말이죠. 이렇게 장소도 빌려줬는데, 제가 모른 척 하겠습니까.”

“그럼. 그럼.”

사장은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포상금 제도는 이제 모든 백성들이 알 정도로 널리 퍼지지 않았나.

남해의 어느 어부는 새로운 그물을 만들어서 포상을 받았고, 북방의 어느 여진인은 간편한 사냥도구를 만들어 쌀과 면포를, 전라도의 어느 약초꾼은 중국의 약초를 재배하는데 성공해서 포상을, 경상도의 어느 왜인은 돛줄을 개량하는 데 성공해서 인생이 폈다는 소문이 심심치 않게 떠돌았다.

그런 사소한 발명품도 포상을 받는데, 만약 화약제조법을 개량한다면? 이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두 사람이 알게 모르게 기대를 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소년은 코에 천을 쑤셔 넣고 오물통을 헤집고 다니느라 바빴다.

화약제조청에서 일하면서 노가다반복작업을 나름 배운 걸까?

작은 오물통은 한두개가 아니라 십수개가 넘었는데, 각각 들어가는 재료와 양을 달리해서 비교대조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비료를 만드는 작업장과도 조금 다르게 생겼다.

살짝 움푹 판 구덩이에 판기와를 깔고 삼물회로 마감해서 물이 땅으로 스며들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 위에 흙을 깐 후에 똥,오줌,동물사체,나무,잿가루,짚 등을 구분해서 넣었다.

비료를 만드는 과정하고 흡사했는데, 다른 점은 들어가는 재료와 흙의 양을 제한했다는 것.

아직 뇌가 말랑말랑해서, 엉뚱한 상상을 시도 때도 없이 하는 소년이라서 그럴까?

소년은 매일같이 함토를 채취하면서,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했다.

“염초는 똥오줌에서 흙으로 흘러나오고, 이 흙을 채취해서 물에 섞어 정제해서 염초를 뽑아낸다. 그럼 비료로 만들고 남은 흙이 아니라, 아예 염초만을 뽑아낸 함토를 만들면 어떨까?”라고, 엉뚱하지만 당연한 생각을 하게 된 것.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닌 게, 어차피 비료도 땅에 뿌려서 곡식생육을 돕고 염초도 비료처럼 써먹을 수 있다.

비싸서 못하는 거지.

“뭔 진 모르겠지만 둘 다 비슷한 효과를 내는 염초가 들어있을 거고, 만약 비료에 들어 있는 염초를 완전히 뽑아내면 함토에는 염초가 더 많이 들어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거지.

그래서 물이 땅으로 스며들지 못하게 꽉 막고서, 비료를 만들 듯 뒤집어가며 계속 섞어 염초가 잘 빠져나오게 실험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고 있지만, 소년은 정답을 찾아가고 있었다.

비료와 염초는 한끝 차이.

질산칼륨이 원재료에 많이 들어 있으면 비료가 되는 거고, 함토에 많이 들어 있으면 염초가 되는 거다.

지금 조선은 질산칼륨이 풍부한 함토 대신 질산칼륨을 덜 뽑아내서 비료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생긴 함토를 쓰고 있는 거지.

소년은 이 방법이 무려 근대까지, 유럽에서 활용하는 염초밭 만드는 작업이라는 걸 짐작이나 하고 있을까?

아마 스스로도 자기가 뭘 만들고 있는지, 감히 상상도 못하고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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