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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소드 마스터-288화 (288/538)

288. 챕터40. 대비하다 (7)

이효손 일행이 열심히 술을 퍼먹으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을 때. 송파포구 반대편 두모포구로 향하는 배에 올라탄 인물 또한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두모포구는 살곶이벌. 미래에 뚝섬이라 불리는 곳 옆에 위치해 있었는데, 원래도 컸던 포구가 지금은 완전히 도시가 되어 있었다.

“드디어 왔구나!”

괴상하게 생긴 배 위에 올라탄 사내는, 저 멀리 보이는 초지와 모래밭을 보며 드디어 고향에 왔다는 게 실감났다.

이 시대의 뚝섬은 섬이 아니라 육지와 붙어 있는 범람원이었고, 홍수 때마다 강물이 차올라 섬처럼 변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이곳을 왕의 사냥터이자 군사훈련지로 사용해 왔고, 지금은 미래의 장한평 지역과 연계해서 아예 목장으로 써먹고 있었지.

옛날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 살곶이벌을 보고 있자니, 확실히 조선에 온 게 실감이 난다.

“그렇게 좋나?”

“함장님은 안 그렇습니까?”

“나야 뭐. 자주 오가지 않나.”

시큰둥한 함장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청년은 헤실헤실 웃어댔다.

“흐흐. 이렇게 빨리 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내가 뭐라고 했나. 금방 도착한다고 했지?”

“예. 쾌선이라 했죠? 진짜 끝내주는 배입니다. 전에 탔던 신형전함보다 훨씬 빠른데요?”

“그야 당연하지. 이게 어떤 배인데.”

말은 저렇게 시큰둥하게 했지만, 함장은 칭찬을 듣고 입꼬리가 씰룩거리더니... 이내 곧 듣고 또 들었던 자랑을 늘어놨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이 타고 있는 배는 신형전함과 똑같이 생겼는데, 크기는 두 배쯤 작은 대맹선 정도였다.

그런데 신형전함에 쓰는 거대한 돛대를 두 개나 박고 선수에 삼각돛까지 박아 넣었으니... 덩치 큰 신형전함보다 훨씬 빠를 수밖에.

실제로도 상해에서 한성까지 오는데 고작 4일 밖에 안 걸렸지 않나.

비록 바람을 잘 받긴 했는데, 이 정도면 기록 갱신수준이지.

이래서 원래 있던 특수선박인 쾌선은 이름을 넘겨주게 됐고, 소맹선 크기가 밖에 안 되던 원래 쾌선은 어선으로나 쓰고 있었다.

“이게 본래는 안 만들려고 했던 배란 말이지. 하지만 일단 만들고 보니 이게 웬 걸? 요리조리 쓸모가 많은 복덩이가 됐단 말이지.”

“예.”

청년은 맞장구를 치며, 열심히 귀담아 들었다.

나중에 어디 가서 쾌선 타봤다고 자랑하려면, 조금이라도 더 많이 알아야 하지 않겠나.

함장 말대로 쾌선은 신형전함을 만들던 초창기에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처음부터 신형전함을 만들 순 없으니, 소맹선 크기에서 시작해서 덩치를 점점 불려갔다.

그렇게 신형전함을 완성하고 나서, 실험작들을 그냥 버려두기가 뭐해서 이리저리 써먹었고... 그 중에서 이 쾌선만 살아남은 거지.

속도가 워낙 빠르면서 안정성도 있는 터라, 비록 돛을 다루는 선원이 많이 필요하긴 하지만 상해와 청도를 빠르게 오가는 연락선 역할에는 재격이었지.

지금 와서는 이게 진짜 복덩이가 됐다.

해군은 물론이고 조정에서도 육로로 파발을 보내는 대신 이걸 써먹기 시작하자... 거꾸로 신형전함의 건조계획이 뒤로 밀리고, 쾌선을 먼저 찍어낼 정도였지.

“그래서 아예 쾌선 전용 선소를 만든다고 하더라고. 자재를 구하기 쉬운 경흥의 나진포구에 짓는다고 하던데? 그쪽은 설주로 귀화하는 여진인들이 많으니까, 사람이 부족하지도 않을 거고.”

“예.”

청년은 어디서 듣기 힘든 귀한 정보를 귀담아 들었고, 청년의 행동이 마음에 들었는지 함장도 열심히 아는 걸 풀어놨다.

이내 두모포구가 점점 가까워지자 돛을 접어 속도를 줄였고, 쾌선은 느긋하게 포구 안쪽을 향해 나아갔다.

비록 첨저선이지만 덩치가 작은 만큼 흘수선도 얕지 않나.

강변에 가까이가면 밑바닥이 걸리겠지만, 강으로 수십미터는 삐죽 튀어나온 석재부두까지 가는 건 문제 없었다.

“저기가 두모포구네.”

“예. 감사했습니다.”

“어차피 매번 오는 건데. 뭘.”

함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선창에서 쉬고 있던 이들이 하나둘씩 기어 나왔다.

“으갸갸. 다 왔나?”

“어윽... 뻐근하네.”

익숙지 않은 그물침대에서 잠을 자서 그런 걸까? 하나같이 도수체조를 하며 몸을 풀면서, 부두에 닿기를 기다렸다.

갑옷을 입은 이도, 관복이나 평복을 입은 이들도 있었는데, 전부다 상해조차지에서 근무하다가 조선으로 돌아온 이들.

“어우. 여긴 아직 춥네.”

“그러게.”

상해와 한성의 날씨가 확연히 차이가 나는 터라, 다들 옷깃을 싸매며 몸을 떨어댔다.

쿠쿵... 이내 곧 배가 부두에 조심스럽게 옆구리를 밀어 넣자. 부두에 있던 이들은 밧줄을 넘겨받아 계선주에 묶고, 다른 이들은 거꾸로 밧줄을 집어던졌다.

“으차.”

“거기 비키시오.”

선원들은 부두에서 날아온 밧줄을 잡고, 배의 돛대에 달려 있는 도르래에 끼워 열심히 끌어당겼다.

부두에 놓여 있던 배다리가 밧줄을 따라 끌려올라왔고, 선원들은 능숙하게 배다리를 고정시켰다.

“하선해도 되오. 오느라 고생했소.”

“고생했습니다. 함장님.”

배를 얻어 타고 온 모든 이들은 함장과 선원들에게 인사를 하고선, 각자 자기 짐을 챙겨 부두를 건너갔다.

사내도 마찬가지. 묵직하고 꽉 차게 짐을 채운, 착호군 시절부터 사용하던 군용배낭을 메고 걸음을 옮겼다.

송파포구도 거창하게 변했는데, 한성과 바로 이어지는 두모포구는 더 말할 필요가 있나. 이곳은 진짜 항구로 변해서, 노을을 뒤로하고 사방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몇 번 와본 곳이라서 길을 잃을 일은 없지만, 작년에 못 봤던 건물이 대로 옆에 또 올라간 걸로 보아... 포구는 여전히 확장중인 모양이다.

포구 밖으로 완전히 나아가자, 북쪽을 향해 쭉 이어진 자갈도로가 한눈에 들어왔다.

한성과 이어지는 포구는 워낙 유동인구가 많아서, 여긴 흙길로는 감당을 못하고 일찌감치 자갈도로를 깔아 놨다. 안 깔아 놨으면 아마 전답을 만든다고 도로를 다 파먹지 않았을까.

‘저긴 그대로군.’

혹시나 저것도 옮겨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역마차를 운영하는 기업은 자리를 옮기지 않았던 모양이다.

휘적휘적 걸음을 옮겨 역마차를 세워둔 공터로 향했고, 훈민정음으로 “흥인지문”이라고 적혀진 깃발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역마차가 활성화 된 후부터는 관원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손쉽게 이용했고, 당연히 역마차의 운행지점 또한 늘어났다.

처음에는 당연히 동대문으로 향하는 마차만 있었는데, 이젠 남대문이나 다른 포구로 가는 역마차도 생겨났지.

‘누구 생각인지 모르지만, 어지간히 귀찮았나 보군.’

아마 물어보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을 테니, 저렇게 깃발을 만들어 놓은 모양이다.

사내는 면포를 잘라 삯을 치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이 다 타자 역마차가 움직였다.

날도 추운데 아랑곳하지 않고 천막의 양 끝단을 둘둘 말아 올려놨는데... 덕분에 구경은 실컷 할 수 있었다. 아마 한성에 처음 온 사람들이 많으니, 구경하라고 이렇게 말아놓은 게 아닐까 싶다.

“음...? 저긴 못 보던 마을인데?”

사박사박 자갈도로를 밟으며 나아가는 중에 혼잣말을 하고 있자, 옆에 앉아 있던 누군가가 말을 받았다.

“새로 만든 마을입죠.”

“...?”

힐끔 살피자, 행상으로 보이는 이가 히죽 웃으며 입을 놀렸다. 아마도 처음 상경한 촌놈에게 한수 가르쳐 주려는 심보인가 보다.

‘일 년 만에 왔으니 촌놈이 맞긴 맞는 건가?’

사내는 속으로 히죽 웃고선, 궁금하다는 듯이 냉큼 말을 받았다.

“새로 지은 마을이라...?”

“관원이 아니라 도성에 살던 사람들을 위해 만든 마을입죠. 요새 도성에 도로를 깐다고 난리도 아니라서.”

“아아.”

사내는 대충 알아듣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도성이 점점 넓어지는 건가...? 아니군. 성저십리가 넓어지겠군.’

촐싹거리며 입을 놀리는 사내의 설명을 들으며, 그는 낯선 마을을 구경했다.

개혁이 시작되면서, 한성의 인구는 줄어드는 동시에 늘어나고 있었다.

줄어들었다는 건. 본래 도성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빈민이나, 굶어죽을 것 같아서 일단 모여든 유민이, 기업이 생겨나면서 빠져나간 걸 의미했다.

도성이 비록 사람이 많고 일거리도 많겠지만, 그렇다고 기업을 키우기에 적합한 곳은 아니지 않나.

지금 조선에 만들어지고 있는 기업은 서비스업이 아니라 제조업이나 농업에 치중되어 있으니, 도시인 한성 내부에 굳이 기업을 만들 필요가 없지.

하여 성저십리와 경기도 일대에 기업이 만들어졌고, 이들 기업은 한성의 빈민과 유민을 데려가 사원으로 삼았다.

그리고 출퇴근을 할 때마다 이 먼 거리를 오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궁극적으로는 아예 이주를 시킨 셈이 된 거지.

“오 그럼... 도성민이 빠져나갔으니 도성 밖에 마을을 지을 필요가 없지 않나?”

“흐흐. 그걸로 끝이 아닙죠.”

“...?”

“그게 말이죠...”

사내의 어리둥절한 눈빛을 읽고, 촉새사내는 계속 입을 놀렸다. 어차피 가는 길이 할 일도 없는데, 입이나 실컷 놀리려는 모양이다.

이른바 민간 물류유통이 시작됐으니 유동인구가 느는 건 당연하고, 한성에 새로 정착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도 당연.

헌데 그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건, 의외로 군병과 관원이었다.

군제개혁 후 육군은 10위. 12사. 12위를 거쳐 사단, 연대로 변모하지 않았나.

한성을 지키던 기존 중앙군 갑사의 경우에는 체아직으로 근무를 해서, 굳이 자신의 집을 크게 가질 필요가 없었다. 농한기에 군역을 치르는 병사는 더 말할 필요도 없고.

허나 순환근무를 하는 상비군이 된 이상. 몇 년은 한성에 머무르게 되니, 얹혀사는 집이나 관사 말고 진짜 자기 집이 필요해진 거지.

이 시대는 처자식과 함께 사는 건 물론이고, 고향에 기반이 없다면 부모형제까지 함께 사는 게 일반적이니까.

결국 군병 한명이 근무지를 옮기면, 대가족이 다 함께 이사를 가야하는 상황이 펼쳐진 거다.

관리의 경우에는 사정이 더 심각했다.

신입관리야 결혼을 하지 않은 이들도, 했어도 처자식 없이 신혼생활을 즐기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부지기수다.

특히 하급관원으로 엄청나게 흡수된 향리출신이 그러했다.

향리는 본래 지방호족이자 지주로서, 평생 자기 고향에서 떠날 일이 없던 터줏대감들 아닌가.

헌데 이치들이 중앙으로 편입되고 순환근무가 시작되자, 고향의 집을 남겨두고 새롭게 집을 마련해야 될 상황에 처한 거지.

사실 이 문제는 한성보다 지방에서 더 심각했는데, 지방관아로 파견된 중앙관리 및 하급관리인 향리가 한둘이 아니잖나.

이들이 머물 관사를 하도 많이 지어대서, 현청이 있는 현성에는 관사로만 이뤄진 구역이 생겨날 정도였다.

이 문제에 대해 조정에서 심하게 논의가 일었지만, 세종과 태종이 눈 하나 깜짝이나 했을까.

절대 그럴 리가 없지.

이렇게 순환근무를 시키는 것만으로. 지방지주와 백성들 간의 사적인 결속력과 지배관계를 깨버릴 수 있는데, 이걸 포기할 리가 있나.

없는 재원을 어떻게든 쥐어짜서, 아예 나라에서 돈을 들여 임대용 관사를 마구 지어줄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오.. 그게 또 그렇게 되는군? 그래도 도성 내부에 지을 수 있지 않나?”

“에이. 그럴 땅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리 빈민촌을 옮겨댔어도, 여전히 땅은 부족합죠. 게다가 요샌 관청건물을 이것저것 하도 많이 지어대서 말입니다.”

“음...”

설명하는 사내의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럼 다른 마을도 많이 생겼나 보네?”

“물론입죠. 저기 말고도, 온 사방에 마을이 우후죽순 생기고 있죠.”

“음...”

이 결과. 성저십리에는 위성도시까진 아니지만 위성마을이 수도없이 생겼고, 당연히 한성부가 관할하는 성저십리는 성저십일리 혹은 성저십이리가 될 정도로 계속 확장.

반대로 한성부와 붙어 있는 양주부와 광주부의 권역은 줄어들어서, 예전에는 양쪽의 경계에 위치해 있던 배봉마을이 지금은 한성부 관할구역에 들어갈 정도로 확장된 상태였다.

‘한성이 아예 성저십리를 포함한 하나의 생활권으로 변하는 중인데...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군.’

사내는 문뜩 그런 생각을 하고 말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덧 동대문에 도착했고, 같이 타고 왔던 사람들 모두 훌쩍훌쩍 역마차에서 내려 발길을 옮겼다.

사내도 노을을 뒤로 하고, 성큼성큼 동대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해도 지는데 사람 참 많고만...”

자기도 모르게 감탄과 한숨이 절로 나온다.

자갈대로는 대로라 불릴 정도로 넓은데, 동대문은 예전 그대로니... 병목현상이 발생해서 혼잡하기 그지없었다. 왜 역마차가 도성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지, 바로 이해가 된다.

콩나물시루처럼 꽉 끼어서 사람의 파도에 휩쓸려 안으로 들어가자, “오...!” 언제 그랬냐는 양 답답함이 싹 사라진다.

아니다. 답답함은 사라졌는데, 몇배나 되는 혼잡함이 밀려온다.

“거기로 가지 마쇼!”

“비켜! 옆으로 가라니까?”

“자재 건들이지 마쇼!”

동대문을 넘어오기 무섭게, 시끌벅적한 공사판이 펼쳐진다.

관복을 입은 이들은 해가 지기 전에 끝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도로공사를 하는 인부들은 동대문을 빠져나오고, 들어오려는 사람들을 몰이꾼마냥 이리저리 몰아가고 있었다.

말을 탄 몇몇 금군도, 느긋하게 돌아다니면서 통제를 거들고 있었다.

금군의 무서움을 아는 건지 아니면 대놓고 빼어들고 있는 기병장도에 겁먹어서 그런지 몰라도, 백성들은 그들을 피해 바삐 걸음을 놀리고 있었지.

‘진짜 만들었네?’

사내는 동대문을 빠져나오기 무섭게, 저 멀리 끝도 보이지 않게 일직선으로 쭉 뻗은 도로 공사터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작년에 짓기 시작했는데, 벌써 여기까지 왔네?’

“정말 빠르고만...”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온다.

석회도로가 용연포구에 처음 깔린 후에, 조정에서는 “그 좋은 걸 어찌 한성에 가장 먼저 안 깔고, 촌구석이나 다름없는 용연에 깔 수 있냐!”라는 말이 튀어나왔지만, 현실의 어려움에 묻혀 쓰러졌다.

지금이나 미래나 부동산은 여전히 골칫거리 아닌가.

아무리 전제왕권시대라고 해도, 백성들이 사는 집을 그냥 싹 밀어버리고 도로건설을 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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