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 챕터41. 확인하다 (1)
연오랑이 만든 판군사대는 경제육전과 다른 군형법. 신군율을 적용했다. 그리고 이 신군율이 거꾸로 조정으로 흘러들어가서, 조선법 개정에 영향을 줬고.
결국 이것도 연오랑이 뿌린 씨앗이 다른 땅에 흘러들어가, 또 다른 쪽으로 성장한 꼴. 이건 좋은 현상이지, 결코 나쁜 현상이 아니다.
‘그래도 칼잡이들은 많아서 좋네.’
포도청을 담당한 건 귀찮지만, 계획대로 잘 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밀려온다.
착호군 전역자가 나온 지 벌써 5년차.
이젠 양반사대부들 중에서 책이 아니라, 돈과 칼을 함께 쥐는 법을 배운 이들이 넘쳐난다.
이들이 전국방방곡곡으로 퍼져 각자 자기 집안을 일구든, 자신만의 일가를 이루든 하고 있으니... 연오랑이 꿈꾸던 대로, 민간에서부터 무예를 업신여기는 풍조는 슬슬 사라지지 않을까.
‘그래서 포도군사를 모집하는 게 어렵지도 않았고.’
계속 긍정적인 생각을 이어나갔다.
수만명의 칼잡이들이 사방으로 뿌려졌으니, 군부에선 나왔지만 아직 칼을 놓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기 마련.
게다가 포도청은 새롭게 창설된 부서고, 지금의 추세를 읽어보면 포도청도 다른 부서 사람들이 낙하산으로 끼어들어올 일이 없어 보였다.
그러니 관직에 미련이 남은 칼잡이들이, 미래의 포도청장을 꿈꾸며 냉큼 달려온 거지.
“인원은 이제 다 채웠지?”
“그렇습니다. 올해 안으로 포도청이 전국에 뿌리 내릴 겁니다. 사실 저희보다 각 현에 포도청사를 짓는 게 더 오래 걸리지 않겠습니까?”
“에이. 지금껏 지어놓은 관아가 몇 갠데, 포도청사 짓는 게 문제가 될까.”
“그것도 그런데... 포도청에는 옥사도 함께 만들어야 하니, 그래도 시간이 걸릴 겁니다.”
연오랑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머릿속으로 연신 계산을 해봤다.
포도청은 원래 역사와 다르게 한성에만 있는 게 아니라, 전국의 각 현에 배치될 예정이다.
이 숫자를 생각하면 아무리 못해도 3천이 넘어갈 게 분명.
해서 지금 모인 천여명을 일단은 한성부에 먼저 배치해서, 시범적용 및 실전경험을 한 후에 이들을 각 지방으로 보낼 예정이었다.
이래서 이곳 청석사의 불교학교를 빌릴 수밖에 없었다.
이 많은 인원을 훈련소나 군주둔지로 데려가서 교육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현감이 꽤나 불편해 할 거 같은데, 이제 와서 뭐... 문제가 생길 거면 진작 생겼겠지.’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가볍게 흘려 넘겼다.
과거. 태종대에 지방관의 권한을 대폭 강화해서 파견한 건, 지방의 양반, 지방호족의 세가 워낙 강력해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다 정리가 됐고, 거꾸로 이젠 지방관의 권한이 너무 큰 걸 걱정해야 할 판국.
그래서 옛 명나라마냥 지방관의 권한을 쪼개기 시작했다. 군권은 군부에게 넘어갔고, 사법권은 율법부로 넘어갔으니... 이제 경찰권을 포도청에게 넘길 때가 됐지.
이렇게 되면 “지방관의 할 일이 너무 없어지는 것 아닌가?”하는 우려도 있지만, 전혀 아니다.
육조가 있다면 육방이 있는 것처럼, 지방조직은 중앙조정을 따라가기 마련.
이는 새로 신설된 부서가 지방에도 똑같이 생겼다는 뜻이니, 지방관은 중앙에서 시도 때도 없이 파견되는 관원을 끼워 넣어 행정조직을 꾸리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을 거다.
‘차라리 아예 자기 손을 떠나서, 중앙에서 직접 관리하는 걸 좋아할 지도 모르겠군.’
안 그래도 바빠 죽겠으니, 자기 할 일이 하나 더 줄어드는 걸 오히려 좋아하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자, 어느새 전각 근처에 다다랐다.
“자. 여기 발자국을 보시죠.”
“음...”
“흠.”
“어디로 갔겠습니까?”
포도군사들은 애들 마냥 땅바닥을 보며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둘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구경했다.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까?”
“예. 뭐... 모르는 것보단 낫지 않겠습니까? 착호군 출신이 많아서 사냥법을 알고는 있지만, 잊어버린 사람도 있을 테니 다시 되새기는 것도 나쁘지 않지요.”
“음.”
연오랑은 이흥발의 대답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만 연오랑은 수사기법에 대해 아는 게 없지 않나.
그래도 이 시대 조선인보단 아는 게 많으니, 토막지식을 끌어와 이것저것 붙여봤다.
지금 교육하고 있는 건 발자국이나 흔적을 유추하는 추적법인데, 이건 착호군 시절에 사냥꾼을 통해 이미 사냥교범까지 만든 내용. 거기에 특전대를 위시로 정찰기술을 배운 이들은, 대규모 무리의 이동 흔적을 알아낼 수 있지 않나.
그걸 준용해서 도둑놈 잡는 추적기술을 익히는 중이지.
“그래도 짐승과 사람은 다른 법이니, 하다보면 뭐든 나오겠군?”
“그렇지 않겠습니까. 실제로도 꽤 쓸모 있는 교범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유능한 사냥꾼은 발자국의 눌린 정도와 보폭을 보고, 사냥감의 크기를 얼추 짐작할 수 있지 않나.
이걸 사람에게 적용해서, 범인의 성별여부와 덩치가 어느 정도인지, 신발은 뭘 신었는지 등을 알아내는 거지.
“그래야지. 여기서 먹고 싸는 비용이 얼만데.”
“크흠.”
돈 이야기가 나오자, 이흥발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헛기침을 내뱉었다.
걸음을 옮겨 다음 전각으로 나아가자.
“으아악!”
“그만!”
“크헉. 쿨럭쿨럭.”
벽 너머로 신음소리와 격한 몸부림소리가 들려왔다.
“저긴...”
“예. 생각하시는 게 맞습니다.”
알쏭달쏭한 미소를 짓는 이흥발을 보며, 연오랑은 악당마냥 음침한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
“어때? 효과 좋지?”
“예. 뭐...”
틀린 말은 아닌지라 고개는 끄덕여지는데, 이흥발은 가슴 속에 돌이 박힌 것 마냥 뭔가 답답해보였다.
“왜? 예전처럼 꼭 피를 보고, 몸을 망가뜨리는 것보단 낫잖아? 만약 범인이 아니면 어쩌려고?”
“그야 그렇습니다만...”
이흥발은 연오랑의 볼멘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했을까? 사람 괴롭히는 것에 정말 일가견이 있는 건가?’라는 생각에 머릿속을 지배했다.
옆 건물에서 이뤄지는 교육은 취조교육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취조가 아니라 고문이었지.
연오랑은 여기에도 개입해, 미래의 선진기술을 알려줬다.
코로 물 먹이기. 입을 천으로 막고 물 먹이기. 잠 안 재우기. 새워둔 작은 관에 집어넣어서 서있게 하기, 거꾸로 묶어놓기 등등.
상해를 입히지 않는 편에서,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방법을 알려줬다.
전 세계를 막론하고, 이 시대의 고문은 어찌됐건 신체를 망가뜨리는 게 기본이다.
법에 규정된 건 형문, 압슬. 허벅지나 엉덩이를 때리거나, 기와조각을 깔아놓고 그 위에 올려서 짓누르는 식이다. 사극에서 익숙하게 나오는 주리틀기와 인두로 지지는 낙형은 아직 전래되지 않았고.
다만 암암리에 손발톱을 뽑는 등의 온갖 불법고문이 자행됐지.
이렇게 고문을 하는 이유는 자백을 받아야하기 때문.
이게 선진적인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지만, 조선은 범인이 자백을 해야 범인으로 인정받았다. 이거라도 안 하면, 지방관이 아무 사람이나 잡아다가 “네가 죄인이다.”라고 처벌을 내릴 수 있으니까.
“죄인이면 나라에 봉사해서 죄 값을 치러야지, 병신 만들어 놓으면 그게 다 손해야 손해. 안 그래?”
“예...”
기존의 상식을 깡그리 깨부수는 말에, 이흥발은 힘없이 답하고 말았다.
취조라 쓰고 고문이라 읽는 교육장을 지나가자, 다음은 범행도구 및 흔적을 찾는 실습장이 나왔다.
피 냄새가 진동을 했는데, 돼지 한 마리를 잡아다가 열심히 난도질하며 상처를 살피고 있었다.
“무원록無寃錄 개정은 잘되고 있나보군?”
“예. 저긴 오히려 쉽게 되고 있습니다. 시신을 통해 직접 확인하는 건 조금 버겁긴 하지만, 그래도 확실히 효과는 있습니다.”
“그래야지. 생돈 들여서 들여왔는데, 안 써먹으면 곤란하지.”
“...”
자기 자랑 아닌 자랑에, 이흥발은 다시금 입을 다물었다.
원래 역사에서 세종은 원대의 법의학서이자 검시방법서인 무원록을 바탕으로 신주무원록을 만들어 전파했다.
지금 역사에서는 10년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데... 무원록은 오래전에 조선으로 들어왔고, 배봉마을의 장서각을 통해 율법을 연구하는 이들 중에서 이걸 본 사람이 꽤 있었기 때문.
다만 이걸 율법관 뿐만 아니라 포도군사들도 익혀야 하는 과목으로 바뀌었고, 저렇게 실습까지 하면서 교육을 받는 중이었지.
‘쓸데없는 소리도 많지만, 생각보다 꽤 잘나왔단 말이지.’
무원록에는 사망방법에 따른 별의별 검시방법이 적혀 있었는데, 연오랑이 봐도 꽤 그럴듯한 내용이 상당했다.
그만큼 양도 엄청나서, 저걸 다 외우는 데 곡소리가 나는 건 당연했고.
“언해본 필사는 잘 되고 있지?”
“물론입니다.”
“하루치 필사를 못 끝내는 놈들은 취조실습장에 집어넣을 테니까. 꼬박꼬박 쓰라고 해.”
“걱정 마시죠. 대감.”
이흥발은 걱정 말라는 듯, 목청을 높였다.
한문으로 된 무원록을 몇이나 보겠나. 당연히 훈민정음으로 옮긴 필사본이 필요했고, 어차피 저걸 다 외워야 하는 포도군사에게 필사하게 시켰다.
나중에도 자기가 필사한 책을 자나 깨나 품고 다녀야 하니, 실수를 했다가는 그 뒷감당이 힘들어질 테니... 어련히 잘 하지 않을까.
다음 전각을 지나치자, 이번엔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도끼질과 망치질을 하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가운데는 불장난을 하듯 장작더미를 쌓아 크게 불을 피워놨는데, 저걸 제압하기 위해 방화선을 구축하고, 불길을 끊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저긴 어때?”
“순조롭게 되고 있습니다. 착호군 시절에 화전을 한두번 만들어본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다만... 도성에서 불길을 잡는 게, 화전을 만드는 것과는 또 다른지라 연구를 꽤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효과가 없는 건 아니라고 보는 거군?”
“예. 없는 것보다 낫고, 안 배워본 것보단 낫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
연오랑은 미래의 경찰관 겸 소방관들을 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역사에선 한성대화재 이후. 금화도감禁火都監이라는 미래의 소방서 비슷한 조직을 창설했다.
이후 성문도감城門都監과 합해서 수성금화도감이 되었다가, 세조 때에 실효성이 없어져서 수성업무는 공조로, 금화업무는 한성부로 이관되지.
지금 역사에선 한성대화재가 일어나지 않은 터라 금화도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고, 대신 연오랑이 포도청에 소방업무를 포함시키기로 했다.
까닭인 즉. 이 시대에 화재를 잡는 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
현대적인 소화기계가 없는 한 불길을 어떻게 끄나. 모래나 물을 조금 뿌리는 걸로는 답도 없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불타는 집은 그냥 타게 내버려두고, 다른 집으로 불길이 옮기지 못하게 막는 게 고작이다. 그래서 저렇게 방화선 구축하는 방법을 열심히 익히는 중이지.
결국 예방업무를 주로 해야 하니, 어차피 순찰 도는 포도군사에게 맡기는 게 효과적이지 않겠나.
‘화재를 인력으로 막는 건 답도 없고... 도시계획을 더 잘하는 게 중요하겠지. 새로 지은 지방 현성은 오히려 사정이 나을 텐데, 한성은 어찌될지 모르겠네.’
연오랑은 자기가 만들었으면서도, 솔직히 저게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 몰라서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어차피 땅이 남아도는 지방현성은 양전사업을 진행하면서 널찍널찍하고 네모반듯하게 집터를 잡고, 집마다 담장을 둘러 서로 달라붙지 않게 짓지 않았나.
여긴 다른 집으로 불길이 옮겨가는 게 더 힘들다.
다만 한성은 아직도 초가집이 많고, 지방처럼 집터가 정리되지 않아 지붕이 다닥다닥 붙어 있을 정도로 중구난방인데... 이걸 해결하려면, 결국 지금 하고 있는 도시재개발사업이 해답이다.
‘이미 보고 들은 게 얼만데...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지.’
새로 만들어진 항구도시는 당연하고, 심지어 북방신도시보다 복잡하고 지저분하고 어지럽다는 말이 나오는 곳이 한성 아닌가.
수도인 한성이 지방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참을 순 없을 테니, 어떻게든 해결할 거다.
이윽고 모든 전각을 지나치자, 다음 전각에선 신음소리에 어울리지 않게 나지막하게 불경을 읊는 소리가 들려왔다.
임시로 빌린 전각을 다 지나쳤나 보다.
“청장이 더 잘 알겠지만, 지금이야 처음 창설하는 거니 어쩔 수 없이 많이 뽑았지만, 앞으로는 아닐 거야.”
“예.”
이흥발은 연오랑의 뜻을 헤아리고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포도청을 무한히 늘릴 순 없으니, 포도군사에서 해임돼야 신입을 뽑을 것 아닌가. 그때는 한 해에 백 명도, 채 뽑지 않을 거다.
“앞으로 포도군사를 뽑는 것도 결국 시험을 봐야할 텐데... 체력적인 부분은 문제없겠지.”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연수원에 입학한 후에, 교육과정에 따라 과락을 결정하게 될 터,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을 확실히 체계화, 문언화 시켜서 미래를 대비해야겠지.”
“명심하겠습니다.”
“알아서 잘 하라고. 네 자리가 달려 있는 문제니까.”
“옙!”
연오랑의 격려 겸 충고에, 이흥발은 목청 높여 답을 했다.
“가봐. 난 향 냄새나 조금 맡고 가지.”
“...”
이흥발은 히죽 웃고선 되돌아갔고, 연오랑은 가던 방향으로 발길을 계속 옮겼다.
불교학교부지는 벗어나서 이제 청석사부지에 들어섰는데, 바로 옆에 붙어 있건만 분위기가 확실히 다른 게 느껴졌다.
왁자지껄하게 떠들면서 돌아다는 사람도 없고, 승복을 입은 빡빡머리들만 자객마냥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춥지도 않은지 문을 열어놓은 전각을 지나치는데, 요상한 말투가 귀를 찔렀다.
‘음...?’
조선말을 배우는 건지, 불경을 읊는 건지 모르겠다. 걸음을 멈춰 서서 힐끔 안을 살피자, 빡빡머리들이 방석을 깔고 앉아 연신 중얼거리는 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