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292화 (292/538)

292. 챕터41. 확인하다 (2)

‘오호. 꽤 많이 들어왔네?’

연오랑은 자기도 모르게 휘파람이 흘러나왔다.

생김새로 구별하기는 건 쉽지 않았지만, 말투를 들으니 구분이 됐다. 이제 보니 여진, 몽골, 심지어 몇 안 되지만 왜인도 있는 게 아닌가.

“...”

‘잘 되고 있네.’

가벼운 마음으로 절을 찾는 신자는 넘쳐나지만, 자신의 인생을 걸고 승려가 되는 건 전혀 다른 문제. 특히나 지금처럼 승려에 대한 특혜가 전혀 없는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귀화인들이 승려가 되겠다고 교육을 받고 있다는 건, 그만큼 북방에 조선불교가 완전히 뿌리 내렸다는 뜻.

‘여진이 믿던 잡스런 토속신앙과 주술은 싹 밀어버렸나 보군.’

이렇게 될 거라 예상은 했는데, 생각보다 잘 진행된 모양이다.

계속 나아가 도착한 곳은 학장실처럼 운영되는 전각이었는데, 그래도 나름 불교학교라고 대웅전 비슷하게 지어 놨다.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자, 저쪽에서 꾸물거리던 청년승녀가 화들짝 놀라 기함을 토했다.

“... 헉?”

‘뭘 저렇게 놀라?’라고 말하듯 바라보자, 녀석은 승복을 휘날리며 후다닥 달려와 합장을 했다.

“학장 있냐?”

“예? 예! 잠시만... 여기 앉아 계시지요. 대감 나리.”

연오랑의 얼굴은 이제 다들 아는 터라, 녀석은 재깍 발을 날렸고 그는 대웅전 대청마루에 앉아 느긋하게 기다렸다.

얼마 되지도 않아, 학장 대행을 맡고 있는 승려가 찻상을 가지고 다가왔다.

“대감 나리.”

“왔냐? 편히 앉아라.”

“예.”

그는 연오랑을 대해는 게 결코 쉽지 않은지, 자기도 모르게 민머리에서 땀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노친네들 대신하느라 네가 고생이 많군.”

“어찌...”

연오랑의 농담에 학장대행은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을 지어댔다.

그도 그럴 것이. 불교의 본산인 중국으로의 길이 열렸는데, 조선의 고승들이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

해서 효령대군이 소림사로 갈 때. 조선에서 어지간히 이름난 고승은 다 따라나섰다.

그리곤? 신나서 중국을 유람하는 중이지.

무려 왕의 형이 직접 조선의 고승과 함께 중국을 찾아왔으니, 그 여파가 오죽할까.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밀려들었고, 일반 백성들뿐만 아니라 조선과 연을 맺고 싶은 지방호족들, 무너질듯 말듯 한 교세를 확장하고 싶은 중국불교계까지 하나로 어우러졌다.

그렇게 하남 소림사에 들린 유람단은 불교사대성지 중 하나인 남직례의 구화산에 들렸다가, 상해조차지가 완성되자 지금은 절강의 보타산에 머물고 있었다.

상황이 이러니, 아직 경력이 부족한 이가 학장대행을 맡을 수밖에.

그는 연오랑이 지금 농담을 하는 건지, 개판이 됐다고 꼬집는 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오면서 귀화인이 교육을 받는 걸 봤다. 꽤 되던데? 북방에서 일을 잘하는 모양이야.”

“송구스럽습니다.”

“잘하고 있는 데 뭘.”

“...”

“북방에선 이제 잡스런 사당은 없어졌고, 대신 사찰이 자리 잡았나 보지?”

“그렇습니다.”

학장대행이니만큼 알건 다 아는 터라, 막힘없이 답을 던졌다.

원래 역사에서 세종대에 선교양종禪敎兩宗으로 통합되고, 교종의 본사는 흥천사興天寺, 선종의 본사는 흥덕사興德寺로 정해졌다.

허나 지금 역사에선 조선불교가 탄생했으니, 당연히 본사는 공의회가 벌어진 청석사가 되지 않겠나. 그냥 본사도 아니고, 조선불교청 본사다.

당연히 이곳에 모든 정보가 모이는 터라, 학장대행이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요동이나 몽골인들도 자주 찾고? 창주의 보련사는 어때?”

“다른 곳에 비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보련사입니다. 북원 출신 말고도 서 먼 서역의 몽골인들도 찾는다고 들었습니다. 요동과 올량합은 물론이고요.”

“좋군.”

연오랑은 학장대행이 늘어놓는 이야기를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북방무역의 거점인 창주(송원)는 우랑카이 3위, 북원잔당, 제왕부(카사르 왕가) 모두가 자유롭게 이용하는 무역도시다.

해가 지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커져서, 이제 창주에 조선물산이 들어가지 않으면 몽골초원 동북방이 흔들릴 지경이 됐지.

“제왕부에도 영향을 끼친다라... 제왕가의 인물이 직접 보련사에 찾아온 적도 있나?”

“제왕의 아들 중 한명이 거래를 하면서 들린 걸로 알고 있습니다.”

“분란이 있거나 그러진 않고? 몽골불교와는 교리가 조금 다를 텐데?”

“저희가 앞장서서 포교를 하진 않고, 다들 알아서 찾아오는 편이라서 문제가 생기진 않았습니다. 교리 문제도 사실 크게 보면 다를 게 없어서...”

“좋아.”

연오랑은 다시금 마음에 들어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작년말. 드디어 공의회가 끝나고, 정식으로 조선불교가 출범하지 않았나.

사람이 많고 각기 다른 주장을 하는 이들을 하나로 묶으려면, 결국 가장 기본이 되는 원칙이 강조되는 수밖에 없다.

갈기갈기 찢어진 조선사상계가 어째서 자본유학을 받아들였던가.

성리학에서 말하는 하늘의 도와 인간의 도를 하나로 엮는 종교적인 색채를 빼버리고, 원시 유학과 유사하게 회귀하여 인간의 도를 밝히고 그 도를 일깨우는 방법론이자 통치론으로 변형됐다.

이 통치에 있어서 자본을 휘두르는 게, 사람의 심성을 믿고 교화를 통해 막연한 이상향을 꿈꾸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한 거지.

불교계도 마찬가지다.

태종이 찢고 합쳐놓은 7개의 종파 또한 하나로 합쳐지면서, 가장 기본으로 수렴할 수밖에 없는 바.

이렇게 기본으로 회귀했다는 건 독창성이나 특수성이 적으니, 문화적 특징이 다른 나라를 불문하고 모든 이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거지.

“설주의 야인여진과 알음알음 넘어오는 요동인도 마찬가지고?”

“예. 설주는 오히려 더 쉽게 되고 있고, 요동인도 비슷합니다. 요동인들 중에서 불법을 깊게 파고드는 이들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음...”

‘하긴 당연한 건가.’

연오랑은 속으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블라디보스토크가 있는 연해주지방에 사는 야인여진은 정말로 1,2세기 정도 문명수준이 떨어지는 이들. 그들이 믿는 원시 샤머니즘 따위는 불교가 그냥 밀어버렸을 거다.

요동인들은 사정이 조금 다르지만, 이들 또한 승려가 아닌데 불경을 달달 외우고 사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끽해야 유명하게 퍼진 반야심경이나 조금 중얼거리는 정도겠지.

그러니 이들을 조선불교로 끌어들이는 것도 문제가 없는 모양이다.

북쪽을 살펴봤으면, 이제 남쪽을 살필 차례.

“북방은 알아서 잘 돌아가니 더 볼 건 없고... 시험은 잘 끝난 걸로 아는데, 몇이나 떨어져 나갔냐?”

“그게...”

딱히 자신의 잘못은 아니지만 괜히 부끄러워서, 학장대행은 말을 흐리며 조심스럽게 혀를 놀렸다.

과거. 태종은 사찰의 수를 200여개로 제한했다. 다만 이는 조정이 인정하는 사찰이라는 거지, 그 외의 사찰을 다 날려버렸다는 건 아니었다. 면세와 특혜를 받지 못하는 무허가 사찰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

허나 공의회가 시작되면서 모든 게 뒤집어졌다.

면세지? 가지고 있던 땅도 다 토해내고, 데리고 있던 사원노비도 전부 해방됐다.

군역회피? 승려가 되면 군종승으로 무조건 복무해야하는데, 군역회피 명목으로 승려가 되려는 땡중도 사라졌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철퇴가 된 건, 승과를 대신할 내부자격시험이었다.

과거 도첩제도는 나라에서 승려를 인정해주는 건데, 주목적은 특혜를 받는 승려의 수를 제한하기 위함이었다.

허나 지금은 특혜가 없으니 의미가 없지 않나.

이제 남은 건. 이런저런 조건 없이 불교계 스스로 자격시험을 치러서, 진짜 승려가 될 자격이 있는지 확인하는 거지.

이래서 학장대행은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무허가 사찰의 무수한 땡중들 뿐만 아니라, 인정받은 사찰에서 수행하던 이들조차 떨어져 나갔으니까.

“자업자득이지. 안 그러냐?”

“예에...”

공의회가 시작된 지 벌써 십년 가까이 됐는데, 아직까지도 합격을 못했으면 승려 팔자가 아닌 거다.

“어차피 승려가 못 된다고 해서 죽는 건 아니잖나? 알아서 먹고살 길을 찾으면 되는 거고, 그렇게도 승려가 되고 싶으면 일하면서 경전을 읽고 스스로 돈오하고 점수하면 되는 거지.”

“...”

학장대행은 속으로 ‘돈오점수는 그게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도, 결국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연오랑의 말이 냉정하지만 정답이다.

불교계가 쇄신하려면 썩은 부분은 과감히 도려내야 하고, 능력도 없는 이들을 승려로 인정하면 결국엔 멀쩡한 승려들도 싸잡아서 욕을 먹게 되니까.

“지방에 세워지고 있는 사찰은?”

“원래 있던 사찰은 그대로 유지하고, 사찰이 없던 현에는 무허가 사찰을 사들여서 재건립하고 있습니다.”

학장대행은 조심스럽게 말을 하면서도, 연오랑에게 공경의 예를 표하는 걸 잊지 않았다.

원래 역사와 다르게, 무허가 사찰은 조정이 나서서 다 박살냈다.

불교계 내부에서도 인정을 못 받는 땡중이 머무는 사찰을 남겨둘 필요가 없고, 착호군이 사방팔방 돌아다니니 크게 어려울 것도 없다.

그렇게 부순 자재는 그대로 가져가서, 현을 대표하는 새로운 사찰을 지었지.

이걸 나랏돈으로 해주고 있으니, 예전에 비하면 처지가 천양지차로 바뀌지 않았나. 연오랑에게 고맙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현청과 떨어진 산중턱에다가 짓고 있고?”

“그렇습니다.”

“설마 현성이나 마을 안에 짓지 못한다고, 불만을 품은 땡중은 없겠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입니다.”

학장대행은 소스라치게 놀라서 열심히 손을 내저었다.

조선불교가 일어섰어도 도성출입금지는 해제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다른 문제에 치어서 이건 신경을 안 쓰는 편이랄까.

다만 특이하게도 조정이 지어주는 사찰은 전부 현성 외각에 위치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산에 하나씩 틀어박히게 됐다.

원래 역사의 산중불교가 승유억불정책에 의해 유학자들을 피해 도피하다보니 생겨났다면, 지금 역사에선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그렇게 진행되고 있던 것.

“민가의 백성들과 함께 지내는 것도 좋지만, 그래서야 속세에 너무 가까워지지 않겠냐. 수양하는 사람이라면 고즈넉한 산중에 있어야 마음이 편한 법이지.”

“...”

앞으로는 노비도 없어서, 승려들이 직접 밭을 갈고 먹을 걸 구해야 하는데, 과연 고즈넉할까.

허나 선종불교가 추구하는 방향이 이쪽이니 거부할 수도 없다. 고려 때의 만행에 회의감이 깊은 노승들 중에선, 이러는 게 맞다고 믿는 이들도 부지기수였고.

“봉헌당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사람들 피해서 짓는 게 맞고.”

“예...”

연오랑이 다시금 되짚자, 학장대행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사찰이 모든 권한을 버리고 본래의 수행에 몰두한다지만, 그래도 사찰을 유지관리하려면 돈이 들기 마련이다.

그걸 위한 수익을 내주는 건 다름 아닌 봉헌당.

한 뼘의 땅이라도 아껴 쓰려고 매장이 아닌 화장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데, 이걸 조정이 나서서 할 순 없는 것 아닌가.

이 부분을 조선불교에 맡겼고, 지금까지는 꽤 훌륭히 해내고 있었다.

다만 화장터를 마을이나 도시 안에 세우면, 별의별 소리를 다 들을 거다. 태우는 냄새는 어쩔 거며, 탄 연기는 또 어쩔 건가.

그러니 인적 드믄 산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지.

‘덕분에 도로 까는 것도 쉽게 되고 있고.’

조정에서 불교를 탄압하지 않으니, 백성들은 물론 양반도 맘껏 사찰에 드나들 수 있다.

그런데 그 사찰이 도시나 마을에서 동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면, 자기들 편하기 위해서라도 도로를 깔지 않을까.

실제로도 그런 움직임을 보이는 현이 몇몇 있었다.

이렇듯 승려들은 화장 및 제사를 대신 해주는 걸로 수익을 얻었고, 심지어 조정은 그 부분에 대해서 세금을 뜯어갔다.

“세금을 내는 것에 반발은 없겠지?”

“예...”

있어도 없다고 말해야 하는 법.

학장대행은 그저 말을 흐릴 뿐이었다.

“너무 야박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가 공격받을 빌미가 줄어드니까. 요샌 꼰대 같은 유학자도 없는 편이지만, 반대로 너흴 일반 양민으로 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그리고 양민이라면 누구나 세금을 내야하는데, 너희가 세금을 안내면 그것도 문제가 되겠지.”

“...”

맞는 말인 것 같으면서도, 또 한편으론 전례가 없는 일이기도 해서... 학장대행은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공의회 때에도 말이 많았는데, 결국은 내기로 결정을 한 내용이기도 하고.

요새 신량역천인은 다 없어졌고, 승려 또한 천민 취급을 받진 않고 있지만... 앞으로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

세금을 내는 건, 그에 대한 대비책이 될 수 있었다.

“물론 너흰 군종승으로 복무하니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존경받을 수 있다. 누구도 하라고 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고행을 자처하며 수행을 하는데, 그걸 보고 손가락질을 하는 작자들이 나오면 누가 그들의 편이 되어줄까.”

“예...”

“게다가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쓸데없는 노역에 시달리지도 않을 테니... 대신 돈으로 해결한다고 생각하는 게, 속 편할 거고.”

“...”

노역도 요샌 대부분 기업을 통해서 하도급으로 해결하는 터라, 승려를 데려와 부려먹는 것도 없어지는 추세였다.

애초에 자격시험을 치르면서 어중간한 승려들이 다 날아가서, 전체 승려의 수는 공의회 전보다 반수 가까이 줄어들었으니까.

“또 문제 될 게 있나... 아. 외국어 교육은 잘 되고 있나?”

“예. 교육부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좋아. 이렇게 서로 도와주면 얼마나 좋아.”

“...”

매번 두들겨 맞기만 한 게 불교계인터라, 이걸 좋아해야할지 나빠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찌됐건 불교계도 군종승이 고달프긴 하지만, 엄청난 효과를 내고 있는 건 알고 있었다.

지나가는 곳곳마다 포교를 할 수 있는 건 당연한 거고, 계급을 가리지 않고 연대병들의 마음속을 파고들 수 있으니까.

그러니 외국어 교육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고, 아예 대대적으로 교육부의 역관과 연계해서 따로 또 같이 배우고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한어를 익힌 승려는 많이 남아 있나?”

“예. 안 그래도 연락을 받았습니다.”

학장대행은 연오랑이 묻는 의도를 알아차리고, 미리 선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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