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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소드 마스터-293화 (293/538)

293. 챕터41. 확인하다 (3)

한어를 익힌 승려가 필요하다는 건, 당연히 한어를 쓰는 지역을 조선이 공략하겠다는 뜻.

남주도 원정에 대해 자세히는 몰라도, 뭔가 오고 있다는 건 학장대행도 느끼고 있었다.

“알고 있다면 다행이군. 조정에서 몇이나 준비하라고 했지?”

“오십입니다.”

“오십이라...”

연오랑이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짓자, 얼른 말을 덧붙였다.

“군종승이 함께 갈 테니, 수가 부족하진 않을 겁니다.”

“흐음.”

가볍게 계산을 해보자, 문제가 되진 않을 것 같다. 못해도 군종승이 백 명 넘게 따라갈 테니까.

“알아서 잘하도록. 굳이 조정만 좋으라고 하는 게 아니라, 너희에게도 좋은 일이니까. 안 그래?”

“명심하겠습니다.”

교세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라는 뜻으로 알아듣고서, 학장대행은 넙죽 고개를 숙였다.

한바탕 청석사를 휘젓고 난 뒤엔, 냉큼 집으로 향했다.

연오랑은 본래 체계와 조직을 짜는 게 주업무고, 실무는 밑에서 알아서 구르면서 해오지 않았나. 지금처럼만 하면 되니, 굳이 서로 피곤하게 지켜볼 필요는 없지.

그렇게 스스로 납득하며 집으로 돌아오자, 정문을 넘기 무섭게 부산스러움이 느껴진다.

“뭐냐?”

“대감 어른. 땔감을 옮기고 있습니다.”

“음.”

매번 있던 일 인터라, 그는 가볍게 손을 내젓고선 마중 나온 하인에게 말을 맡겼다.

“어디서 온 거지?”

“대감 어른의 목장에서 왔습니다.”

“아... 석탄이 아니라 말똥을 가져왔냐?”

“예.”

어쩐지 석탄가루가 안 날린다 했더니, 다른 걸 가져온 모양이다.

몽골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에서 말똥을 땔감으로 쓰는 건 유명했고, 조선에 몽골 귀화인이 늘어나면서 당연히 전파가 됐다.

잘 말린 말똥은 냄새도 안 나고, 연기도 적게 나면서 은근히 화력이 좋으니까.

물론 조선이 습기가 많고 기후가 다른 터라 실패하는 경우가 있지만, 상관없지 않나.

잘 마르면 땔감으로 쓰면 되는 거고, 안 마르면 비료로 쓰면 되는 거지.

‘어쩌면 내가 이들을 무시했던 걸지도.’

그는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빠르고, 걸림돌 없이 전파되는 걸 보며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없이 사는 세월이 너무 오래되고, 몸에 인이 박혀서 일까? 조선인들은 그의 생각보다 악착같았다. 어쩌면 조선인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시대가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일례로, 목장에서 키우는 말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 하나도 남기지 않고 어떻게든 써먹었다.

가죽은 가죽제품으로. 고기는 식용. 지방은 식용,연료,윤활류로. 뼈는 약재,비료로. 내장은 약재,식용,사료로. 꼬리털은 갓이나 밧줄로, 갈기털은 빗자루로 만들 정도였지.

이러니 말똥을 쓰는 것에 거부감이나 망설임이 있을 리가 없지.

게다가 조선에 깔린 목장이 몇 개던가.

작금에 이르러선 말똥 땔감이 목장의 부수입이 될 정도로 시장이 형성됐고, 조선의 땔감 시장을 석탄, 장작, 소수의 말똥이 나눠가질 정도로 커졌다.

말똥 땔감을 옮기는 걸 슬쩍 살핀 후엔, 휘적휘적 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정원처럼 꾸며놓은 마당을 지나가자, 저 앞에 그를 기다리던 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언제나처럼 공주는 대청마루에 앉아 뭔가를 하고 있었는데, 어째 그 밑에 낯선 이들이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뭔가 깊은 이야기를 하는 걸까? 그들은 소리 없이 연오랑이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다.

‘씁... 볼 때마다 적응이 안 되네.’

그는 공주와 낯선 둘이 앉아 있는 대청마루를 보며, 자기도 모르게 혀를 차고 말았다.

자기 집이지만, 생긴 것이 참 요상하게도 생겼다.

대청마루는 앞으로 쭉 뻗어 나와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2단 구조로 되어 있었기 때문.

그러다보니 평범한 한옥과 다르게, 한쪽처마가 손을 뻗은 것 마냥 길게 뻗어 나와 있었다. 그걸 지탱하기 위해서, 마루 군데군데에 기둥이 박혀 있었고.

‘내 탓이니,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별 것도 아닌 일이 저택의 구조를 바꿔버릴 정도로 커진 건, 다 연오랑 때문 아닌가.

그는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인간이니, 양반이든 천민이든 가리지 않고 편하게 대했다. 예법을 무시하는 건 당연한 거고.

하지만 공주가 아무리 개방적이어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연오랑의 집을 찾아오는 많은 이들 또한 감히 공주 및 연오랑과 눈을 마주보며 무릎을 맞대고 자리하는 건 무척 부담스러웠다.

양반과 천민의 구분이 흐릿해졌다지만, 공주와 부마를 대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니까.

그렇다보니 마루에 구분을 둬서 윗단에는 연오랑 일가가 앉고, 아랫단에는 손님이 앉는 식으로 차별을 두게 됐다.

웃긴 건. 연오랑이 워낙 화제의 인물이다보니, 괴상한 그의 집을 따라하는 게 유행이 됐다는 것.

어떻게든 체면을 차리고 위세를 챙기고 싶은 집안에선, 이런 식으로 2단 대청마루를 짓는 곳이 늘어났다고 했다.

‘그래도 앉을 수 있게 해주는 게 어디냐.’

예전 같았으면 “상놈이 감히 어딜 상전 앞에서 앉아?”이러면서 맨땅에 꿇어앉았어야 했는데, 지금은 그래도 마루에 앉게 되지 않았나.

‘나중에는 큰 의미가 없어지겠지.’

신분제의 변화가 가옥의 구조까지 바꿔버리는 현상을 보면 기가 막히지만... 이 또한 지나갈 일.

나중에는 그냥 한 때의 유행으로 남게 되지 않을까.

그는 슬쩍 담벼락을 끼고 돌아, 안채로 들어가서 깔끔히 씻고 옷까지 갈아입고 다시 마루로 향했다.

“오셨어요?”

“어.”

“대감!”

“어르신!”

모두의 격한 인사를 받으며, 연오랑은 냉큼 공주 옆으로 엉덩이를 붙였다.

공주 옆에는 흔들 요람에 누워, 그가 오는 줄도 모르고 자고 있는 쌍둥이가 있었기 때문.

그는 작게 숨소리를 내며 새근새근 자고 있는 쌍둥이를 건드려 볼까 하다가... 혹여나 잠에서 깰까봐 손은 애꿎은 허공을 휘저어댔다.

그의 그런 엉뚱한 모습을 보며, 다들 속으로 웃음을 삼켜댔다.

“...” “...”

뜬금없는 쌍둥이를 얻은 탓에,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다 헛짓거리였다.

원체 튼튼했던 공주는 산후조리를 마치기 무섭게 쌩쌩 돌아다녔고, 아기들도 마찬가지.

쌍둥이는 조숙아로 태어날 가능성이 높아서 걱정했는데, 그의 유전적 특질이 발현된 걸가? 벌써부터 또래보다 덩치가 조금 더 크고, 목청도 우렁차고, 건강상태도 양호했다.

멋모르는 유모들은 하나같이 “씨가 어디가지 않는다.”며 장군감이라고 속닥거리느라 바빴지.

연오랑은 속으로 ‘설마 얘들도 회귀나, 전생, 뭐 그런 건 아니겠지? 설마?’라며 유심히 살펴봤지만... 말도 못하는 아기들인데 알 수가 있나.

그저 몸 튼튼히 자라는 것만으로도, 안도하고 있는 중이었지.

“...”

슬슬 따가운 눈빛이 느껴지기 시작하자, 연오랑은 애써 공주의 시선을 피하면서 아랫단에 앉아 있는 둘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놈들은 뭔데 공주와 이야기를 나누나 했더니, 몇 번 본적이 있는 유리 연구원들이다.

“크흠. 어쩐 일이냐?”

“드디어 만들었습니다.”

“오...!”

그가 눈을 번쩍 뜨며 감탄하자, 연구원은 헤실헤실 웃어대며 얼른 결과물을 내밀었다.

“과연...!”

연오랑은 냉큼 받아들어 앞에 세우자... 낯설면서도 익숙한 형상이 반짝이는 표면에 아른 거린다.

지난 2년간의 연구 결과물. 바로 유리거울이다.

그는 히죽 웃으며 공주에게 비췄고, 햇빛이 눈을 찌르자 공주는 슬쩍 눈을 흘기며 그의 옆구리를 찔러댔다.

“흐흐. 유리거울을 만들었단 말이지?”

“예? 예.”

“이건 유리인데 동경이라고 부를 수도 없잖아? 중국처럼 뭐 파리경이라고 부를까? 유리거울이라고 해.”

“예...”

유리라는 단어는 근본도 없지만, 연오랑이 이렇게 우겨대는 게 어디 한 두번인가. 다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유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거울을 만들었다는 게 중요하니까.

중국의 유리 장인이 조선으로 흡수된 후. 연구소에선 당연히 유리 제작을 시작하며 동시에 기술을 배울 사람을 모집했다.

무려 유리다.

조정이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한 거고, 돈맛을 알기 시작한 기업집안과, 아직 뭘 해야 좋을지 고민하고 있던 지주집안들 또한 관심을 보였다.

그들은 수많은 예비 장인을 연구소로 보내 유리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고, 이내 곧 아예 유리연구소가 따로 분리될 정도로 커졌지.

유리 광풍이 불고 있는 와중에, 연오랑은 다른 쪽으로 연구를 이끌었다.

기존에 만들고 있는 유리잔, 유리사발, 유리장신구. 뭐 이런 건 그가 신경을 안 써도 알아서 잘 만들 물건 아닌가.

다른 나라, 특히 중국에 팔아먹을만한 물건은 차별성이 있어야 했고, 이에 낙점된 건 역시나 판유리지.

“유리거울을 만들었으면 판유리도 만들었겠네?”

“여기 있습니다.”

연구원은 이미 나무틀까지 만들어 놓은 판유리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음... 이정도면 뭐.’

판유리의 크기는 가로세로 30센티정도 됐는데, 두께가 의외로 상당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미래의 판유리와는 아예 비교조차하면 안 된다.

투명도도 그렇고, 군데군데 기포도 보이고, 옆으로 눕혀서 보면 얕게 올록볼록 솟아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시대엔 없는 물건이다.

“조금만 더 개량하면, 분명 더 크게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어어...”

연오랑은 주먹을 불끈 쥐고 눈에 불을 켜는 공주를 보며, 뭐라 할 말이 없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사실 연오랑이 판유리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뭘 알겠나.

다만 가마에서 나온 녹은 유리물은 상온에서 급격하게 식기 시작하니, 이걸 평평하게 흘린 후에 깨지지 않게 굳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수밖에.

그래서 생각해낸 건 뜨겁게 달군 금속판에 일정양의 유리물을 쏟아 붓고, 마찬가지로 달군 금속롤러를 일정한 힘으로 밀어서 평평하게 만드는 거지.

기존 유리공예품을 만드는 과정은 입으로 불어서 형태를 잡거나, 아니면 틀에 부어 찍어내는 형태였으니... 연오랑의 방법은 굉장히 낯설 수밖에.

해서 아이디어는 그가 제공했지만, 금속틀과 금속롤러, 이 금속틀을 달구는 화로 등은 유리 연구원과 공주가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설계해냈다.

이 과정 중에서 무수한 유리가 박살났지만, 전혀 문제가 될 건 없다. 박살난 유리는 다시 가마에 넣어서 재활용하면 되니까.

‘판유리 장치에 쓸데없는 톱니바퀴가 붙긴 했지만...’

공주가 톱니바퀴를 가지고 논 세월이 벌써 십년이 넘어가니, 공주도 손꼽힐만한 전문가가 되지 않았나.

연오랑이 보기엔 그냥 인력으로 해도 될 것 같은 장치도, 굳이 톱니바퀴를 달아서 한 번 더 손을 쓰게 만들었는데...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저렇게 이것저것 하다보면, 뭐라도 하나쯤은 대박이 터지지 않겠나.

원래 발명품은 저러다가 탄생하는 법이다.

이렇게 맨땅에 헤딩하듯 하나씩 만들어가고 있는 중인 터라, 30센티를 넘어가면 식히는 중에 깨지는 경우가 빈번해서 크기를 늘리는 게 쉽지는 않았지.

‘뭐...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쓸 만하잖아? 굳이 큰 유리를 끼울 필요 있나. 작은 유리를 여러 개 끼우면 되는 거지.’

유리창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대단한 일.

이게 아무리 엉망진창인 유리라도, 지금 쓰이는 창호지와는 아예 비교조차가 불가능한 물건이다.

‘유리거울도 바꾸면 좋겠는데...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네.’

그는 다시금 판유리와 유리거울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유리거울도 사실은 미래의 유리거울과는 한참 거리가 있었다.

판유리 뒤편에 은도금을 해야 되는데, 이게 가능할 리가 있나.

그냥 유리판과 얇게 편 은판을 물리적으로 겹쳐 놓은 것에 불과했다. 그래서 유리거울만 달랑 있는 게 아니라 유리판과 은판이 떨어지지 않게 나무틀이 세트로 고정되어 있었지.

‘이것도 상관없잖아? 잘 반사되기만 하면 그만이니, 이 정도면 충분히 나쁘지 않아.’

유리거울의 경쟁상대는 동경인데, 유리판에 아무리 잔 흔적이 많이 남아 있어도 동경쯤은 씹어 먹고도 남는다.

중국에 팔아넘겨도 충분히 비싼 값에 팔 수 있는 물건이다.

“그리고...”

“응?”

이것만으로도 충분한데, 뭐가 또 있나 보다.

“그게 말입니다. 대감.”

궁금증을 해결해 줄 장본인이 등장해서 인지, 둘은 공주와 시선을 가볍게 맞추더니 요상한 물건을 내밀었다.

꼭 작은 돌멩이처럼 생긴 물건이다.

“뭔데 그건?”

“그게... 저희도 몰라서 가져왔습니다.”

“...?”

연오랑이 눈을 찡그리며 노려보자, 둘은 얼른 입을 열었다.

그가 별종인 건 이제 모두가 아는 터라, 이따금씩 이렇게 답도 없이 뭔가를 들이미는 이들이 종종 있었다.

특히나 그의 아이디어로 뭔가 새로운 걸 만든 경험이 있는 연구원들은 더욱 그랬고.

“뭔 진 모르겠는데, 이걸 사용하면 때가 잘 지워지지 않습니까? 해서 대감께서 혹시나 아는지 싶어서 가져와 봤습니다.”

‘때라고...?’

뜬금없는 소리에, 연오랑은 혹시나 싶어 돌멩이를 냉큼 쥐어들었다.

냄새는 뭐라 특정할 수 없었는데,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손으로 살짝 짓누르니 부스러기가 떨어져 나올 정도로 무르다.

“이걸 보시겠습니까?”

연구원은 공주에게도 시범을 보인 듯, 옆에 있던 걸레를 가져와 돌멩이와 함께 사발에 담긴 물에 담가서 주물럭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묘하게 작은 거품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헉!”

‘설마...?’

셋은 ‘나도 신기했다.’라는 듯 연오랑을 보며 히죽 웃었지만, 그의 속내를 짐작이나 할까.

연오랑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계속 살폈고, 이내 연구원은 빨래를 끝마친 걸레를 펼쳐 보였다. 그의 말대로 검은 때가 확연히 빠져서, 걸레 본연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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