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294화 (294/538)

294. 챕터41. 확인하다 (4)

“비누라고?”

‘이게 왜 갑자기 어떻게 튀어나와?’

연오랑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자기도 모르게 말을 토해냈고.

“예?”

“비...누요?”

셋은 연오랑이 이게 뭔지 아는 것처럼 말하자,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대체 그거 어떻게 만든 거냐?”

연오랑은 흡사 판관마냥 눈을 부라리며 물었고, 연구원은 냉큼 걸레를 내려놓고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실은...”

연구원은 변설을 하는 것 마냥, 흥미진진한 지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유리장인들은 열심히 유리 가마를 만들어 유리를 생산했고, 여느 때처럼 유리 가마에 고기를 구워먹었다.

‘뭔 소리야. 저게.’

“고기?”

옆에 있던 연구원이 연오랑의 눈치를 보며 사족을 덧붙였다.

“그... 가마를 그냥 놀리기엔 아깝지 않습니까.”

“아...”

뜨겁게 달궈져 있는 가마에는 고기를 넣었다가 빼기만 해도 다 구워지지 않나. 이들도 미래의 가마꾼처럼, 삼겹살을 구워먹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고기를 구웠으면 당연히 기름이 남기 마련이고, 나중에 써먹기 위해서 잘 모아뒀단다.

헌데 이 사실을 모르는 다른 장인이, 아직 굳지 않은 기름통에 유리 제조에 쓰고 남은 잿물을 버렸다는 게 아닌가.

그게 몇 번 쌓이자 “이건 뭐야?”라며, 쓱쓱 다들 한 번씩 휘저어 보며 지나갔단다.

시간이 지나 그 기름통은 모두의 관심에서 멀어졌었는데, 어느 날 평범한 옹이인줄 알고 때국물에 찌든 걸레를 그 안에 모아뒀단다.

“오...? 그래서?”

연오랑이 추임새를 넣자, 연구원의 말은 더욱 빨라졌다.

“그래서 걸레를 찾아서 빨았는데, 갑자기 거품이 살짝 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다른 걸레보다 훨씬 깨끗해졌고요.”

“난리가 났겠군?”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빨래를 한 연구원은 “이거 봐라! 뭔가 이상하다!”라며 사람들을 불러 모았고, 다들 눈에 불을 켜고 원인을 찾아다녔다.

이젠 평범한 조선백성들조차도, 뭔가 특이하고 특별한 발견과 발명이 돈이 된다는 걸 깨닫지 않았나.

역추적을 하다 보니, 지금 연오랑의 손에 들린 물건이 튀어나온 거지.

“신기하죠?”

“어...”

‘이게 뭔...’

공주는 눈을 반짝이며 되물었고, 연오랑은 어이가 없어서 속으로 한숨을 쉬고 말았다.

그렇게 만들고 싶던 비누가 이렇게 뜬금없이 튀어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양잿물이 설마 해초 태운 잿물일 줄이야.’

해답을 코앞에 두고서 모르고 있었던 게, 왠지 억울해진다.

그도 비누의 재료가 기름과 양잿물이라는 건 토막지식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양잿물의 양洋이 무슨 뜻이던가. 서양에서 온 잿물이니 당연히 화학물질인 줄 알았지.

하동에 있을 때 다시마를 태워봤으면 알아차렸을 테지만... 미분을 만들기에도 부족한 다시마를 왜 태우겠나. 생각도 안 해봤다.

‘기름도 그랬지.’

사실 더 큰 문제는 기름.

이 시대의 기름은 동,식물에서 얻는데, 먹기도 아까운 기름을 비누 만들 때 쓰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특히나 식물성 기름인 콩,참,들기름의 경우에는 압착해서 짜내는 방식으로, 얼마 나오지도 않아서 엄청 비싼 물건이다.

그나마 톱니바퀴와 나사선을 이용한 원시적인 압착 기계를 통해서 생산량이 조금 늘었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비쌌다.

‘하지만... 동물성 기름은 사정이 훨씬 나아졌잖아? 이거 기업이 만들어질 수 있겠는데?’

반대로 목장과 농장이 어마어마하게 불어난 지금. 동물성 지방을 활용하면 충분히 길이 보인다.

물론 이것도 온갖 방면에서 써먹기 바쁘지만, 조금씩 빼돌리면 비누를 대량생산 할 수 있지 않을까.

‘고래 기름도 나쁘진 않은데... 사실 이건 로또에 가깝고.’

잠깐 이 생각이 들었지만, 가볍게 지워냈다.

수산기업이 생겨난 후로, 자연스럽게 울산, 포항, 원산 등지에선 포경기업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대구,청어,명태 등을 잡는 와중에, 곁다리로 보이는 고래를 잡는 식이고 근대에 활개 치던 포경선과는 한참 거리가 멀지.

고래 기름을 지속적이고 연속적으로 사용하는 건 힘들고, 그냥 별미로 취급해야 맞을 거다.

“기름과 잿물을 섞어서 만들어졌다는 거니... 연구를 해보면 확실히 나오겠네.”

“예!”

“그렇지 않겠습니까?”

두 연구원은 방방 뛰며, 뜨거운 눈빛을 뿌려댔다.

“이거 잘못된 거 아니죠? 분명 꾸준한 돈벌이가 될 수 있는 물건이 맞죠?”라고 격렬하게 외치고 있었다.

“기름을 구하려면 농업연구소에 연락을 해야겠군.”

“예! 안 그래도 저희가 알아봤는데, 기름이 많이 나오는 유채와 땅콩이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음...”

연오랑은 긍정의 표시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선이 온갖 출신의 귀화인을 받아들이자, 동시에 그들의 식문화 또한 조선의 식문화와 결합됐다. 몽골이나 여진식 요리기법이 들어온 건 당연하고, 한족의 요리기법도 들어왔지.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볶는 요리.

중국은 물이 지랄 맞아서 삶거나 끓인 요리는 흙냄새가 너무 많이 나고 맛도 엉망이다. 물이 귀해서 제대로 씻지도 않으니, 먹는 건 오죽하겠나.

그래서 기름에 볶는 요리가 발달했고, 그 기름에 가장 많이 쓰이는 게 바로 유채와 땅콩이었다.

“둘 다 오래전에 들여왔지?”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원래 역사와 다르게, 지금 역사는 외국 품종을 들여오는 것에 적극적이지 않나.

유채꽃은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는 터라, 제주를 비롯한 남부지방에 널리 퍼져 있는 상태.

‘땅콩은 모양이 조금 다르던데... 그래도 비슷하니까 뭐.’

중국땅콩은 미래의 땅콩과는 확실히 다르지만, 그렇다고 조선의 콩하고도 또 다르다. 이것도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는 터라, 이미 들여와서 키우고 있었다.

“생선기름은 어떻습니까?”

“글쎄... 비린내가 날지도 모르겠네? 연구를 해봐야할걸?”

“음...”

“하긴...”

요즘에는 절인생선 말고도, 생물 생선이 내륙까지 올라와서 팔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생각해보면 어려울 것도 없는 게, 큼지막한 옹기에 바닷물과 바다생선을 함께 퍼 담아서 옮기면 되는 일 아닌가. 이것도 나름 사업아이템이 되어서 사방으로 퍼져나갔지.

동시에 절인생선이 아니라 아예 기름만 따로, 찌꺼기는 사료와 비료로 파는 곳도 생겨났다.

“게다가 생기름 뿐만 아니라 폐유도 쓰는 거니까... 이거 일이 커질지도 모르겠어.”

“그렇습니까!”

“역시!”

일이 커진다는 건, 달리 말하면 손이 많이 들고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뜻. 그리고 기업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커진다는 뜻이니, 절로 목청이 높아진다.

‘요새 객주와 주점이 많이 늘었고... 튀김까진 아니어도 볶음 요리도 슬슬 해먹고 있지 않나?’

과연 얼마나 폐유를 수거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그건 앞으로 만들어질 비누기업에서 알아서 해결하지 않을까.

오물수거기업도 있는 판국에, 폐유수거기업이 생기는 건 이상할 것도 없다.

“모양을 내는 건 어렵지 않을 테고...”

연오랑은 미래의 비누를 떠올리며 이런저런 구상을 했고, 다들 냉큼 고개를 끄덕여댔다.

나무틀이면 되는데, 모양 만드는 게 뭐 어려울까.

“향도 중요하니까...”

“향이요?”

“그럼 이걸 빨래하는 데만 쓰려고 했냐. 몸 씻는데도 써야지. 어차피 때를 빼는 건 마찬가지잖아.”

“어엉?”

“어... 그러네?”

셋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화들짝 놀랐다.

빨래를 한 손도 함께 깨끗해 졌는데, 걸레가 깨끗해진 것에 놀라서 그건 잊어버렸나 보다.

“제대로만 만들면 조두나 창포보다 훨씬 나을 걸.”

“그렇겠네요!”

공주는 반색을 하며 박수를 쳐댔다.

향을 넣을 수 있다면, 굳이 향낭을 차고 다닐 수고를 안 해도 되니까.

지금껏 연오랑도 비누가 없어서 콩,팥,녹두가루로 만든 조두를 썼다. 더불어 중국에서 비누대용으로 쓰던 비조肥皂와 향조香皂나무도 들여와서, 조선땅 여기저기에 심어서 키우고 있었고.

이것도 나름 쓸 만 했지만, 날비린내가 남는 게 문제였다.

그나마 매일같이 씻는 편이라서, 냄새 때문에 고생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고.

“이건 유약연구소나 약재연구소에 물어봐야겠군.”

“옙!” “그렇습니다.”

둘은 목청 높여 대답을 하면서도, 뭔가 기대감 섞인 눈으로 연오랑과 공주를 바라봤다.

“내 이름을 빌려 써라.”

“감사합니다!”

속내를 읽고 바라는 답을 해주자, 둘은 넙죽넙죽 고개를 숙여댔다.

“대신 정산은 제대로 해야겠지? 만약 비누를 제대로 만들어 기업을 일굴만한 기술을 완성하면 팔아야 할 거 아냐.”

“물론입죠.”

“아니면 저희가 돈을 모아서 직접 만들어도 볼 생각입니다.”

둘은 당연하다는 듯이,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돈이 걸려서 그런가. 은근히 특허법이 잘 정착됐단 말이지.’

연오랑은 시원시원한 둘의 반응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애써 숨겼다.

이 시대에 지적재산권이나 특허법이 제대로 적용될 리가 만무. 특히나 외국과 연계되면 아예 답도 없어진다.

연오랑은 이걸 방지하기 위해서. 새로운 기술을 조정에 등록하면 왕실의 이름으로 포상금을 내리고, 동시에 기술을 돈 주고 파는 방법을 제시했다.

로열티를 받는 건 이 시대의 회계행정상 불가능에 가까우니, 그냥 기술이전비만 받고 팔아버린 거지.

이렇게 한번 팔고 나자, 그 다음부턴 술술 풀렸다.

“나는 돈 주고 기술을 샀는데, 저놈은 마음대로 무단복제를 해?”라면서 기업들이 눈에 불을 켜고서 서로를 감시했으니까.

이 방법의 또 다른 이점은, 모든 백성들의 도전의식과 발명의식을 자극했던 것. 뭐라도 기업에서 살만한 기술을 만들기만 하면, 돈다발 위에 앉을 수 있지 않겠나.

다른 권력자나 위세가가 끼어들지 못하게 왕실이 주도하게 했더니, 생각보다 빠르고 정직하게 정착된 상태였다.

“그럼 가서 열심히 연구해 봐라. 막히면 찾아오고.”

“옙!”

“아. 한성으로 갈 때 거울하고 판유리도 함께 가져갈 테니까, 준비해 놔라.”

“알겠습니다.”

“넵!”

둘은 당장이라도 연구를 하고 싶은지, 시시덕거리며 얼른 몸을 일으켰다.

‘뭐... 알아서 잘 하겠지.’

연오랑은 재빨리 떠나가는 둘을 뒤로하며, 우려를 되삼켰다.

지금껏 연구원들이 해온 건 무수한 노가다반복작업 아닌가. 분명 비누를 만들기 위해서, 알아서 계량을 반복하며 최적의 비율을 찾아낼 거다.

*****

며칠 후. 연오랑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한성으로 떠났다.

아기들을 두고 가는 게 눈에 밟히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나. 다른 것도 아니고 대만섬을 정복하러 가는 건데, 이 모든 걸 계획한 그가 빠질 수 없는 노릇.

게다가 조선인들 중에서 대만섬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차라리 토막지식으로라도 얼추 아는 그가 가는 게 최선이었다.

조정신료들 사이에서 “또 용연군 대감이야?”라는 말이 흘러나오긴 했지만, 순식간에 묻혀 사라졌다.

까놓고 말해서, 군사적으로나 행정적으로나 연오랑보다 적임자가 또 어디 있나.

그런 인물이 정식관직도 없어서 자기 앞길을 막지도 않으니, 아쉬울 것도 없지.

비록 총사령관이라는 명예를 연오랑에게 빼앗기는 꼴이지만, 반대로 말하면 다른 사람들도 다 같은 선에 위치하지 않나. 이득과 손해를 따져보면 본전이니, 무작정 반대하는 것도 웃기는 꼴이다.

그리하여 유리 장인들과 함께 손살같이 달려온 연오랑은 공사가 한창인 한성에 다다랐다.

과연 그가 오래전에 들렸을 때와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새롭게 지어진 자갈도로와 완공된 석회도로, 아직 만들고 있는 석회도로. 끝으로 도로를 만들면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시장거리와 주거지 분리까지.

한성 전체가 공사판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는데, 이런 공사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드디어 조선이 거지에서 부자가 돼서, 이렇게 돈을 펑펑 써가며 대규모 토목공사를 하게 됐으니까.

여기에 이런 공사를 하면서도 원정까지 진행한다? 진짜로 조선이 많이 컸다.

한달음에 육조거리를 뚫고 광화문에 다다랐고, 유리 장인과 헤어진 연오랑은 금군의 안내를 받으며 궁궐 안으로 발을 디뎠다.

“오...”

“...?”

연오랑이 뜬금없이 감탄을 하자, 금군은 의아하다는 듯 그를 살폈다.

“궁이 조용해졌네?”

“주자소와 조지소를 비롯해서 다른 관청은 전부 궁궐 밖으로 옮겼습니다. 사실 그간 시끄럽던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대감.”

“그건 그래.”

연오랑은 광화문 저편으로 보이는 우뚝 선 석재건물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봉마을 장서각을 본떠서 왕실장서각을 만들었고, 저기 보이는 저 어색한 건물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저기에는 주자소에서 새로 편찬한 중국서적이 가득했는데, 조선이 청도와 상해를 집어삼키고 나서 얼마나 많은 서적이 쏟아졌겠는가.

도무지 감당이 안 돼서, 주자소는 주자처로 승격되고 내관과 외관을 합쳐서 아예 도성 밖으로 옮겨갔다. 거기에 소속된 인원만 이백명이 넘는데, 궁궐에 그냥 두는 것도 무리니까.

주자소와 세트를 이루는 조지소 또한 조지처로 확장되어 함께 묶여 옮겨졌다.

혼합지와 연필이 개발된 후. 엄청난 양의 종이가 생산되고 있지 않나. 민간의 제지기업이 폭풍성장을 하고 있는데, 아무리 비싼 한지를 쓰고 만드는 조지처라고 해서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법.

아예 제지연구소처럼 조지처 또한 종이 개량에 힘쓰는 터라, 온갖 공작기계로 가득 차게 됐고... 결국 궁궐이 공사판이 되어버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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