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295화 (295/538)

295. 챕터41. 확인하다 (5)

“도성 밖으로 옮겼다라... 다른 부서도 그렇지?”

“예. 소음이 크게 나는 공조 휘하의 속아문과 독립부서가 옮겨갔습니다.”

“어디로?”

“수차를 이용해야 하는 곳이 많아서, 송계천으로 이동했습니다.”

“하긴 송계천 근처에는 배봉마을이 있으니까, 서로 연계하기도 편하겠군.”

“예.”

연오랑은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 감을 잡았다.

궁궐은 왕의 집인 동시에 나라의 사무를 처리하는 관청의 역할을 겸했다.

당연히 궁궐 안에는 군기시와 공야사 등의 공업부서는 물론이고, 왕실과 조정에 필요한 온갖 물품을 만드는 수공업부서가 함께 자리했지.

허나 지금 역사에선 이 또한 비틀렸다.

조정부서는 덩치가 워낙 커져서 궁궐 내에 수용할 수가 없고, 해서 육조거리를 밀어버리고 신 육조거리가 탄생할 정도로 거대전각이 줄줄이 자리하게 됐다.

이 판국에 소음을 일으키는 부서를 굳이 궁 안에 배치할 필요는 없는 법. 그러니 궁 밖으로 빼기로 결정했고, 보다 효율적으로 큰마음을 먹고 아예 성 밖으로 빼버린 거지.

‘보고 들은 게 있을 테니, 한성이 낙후 아닌 낙후가 되었다는 것도 알아차렸겠지.’

연오랑은 속으로 조정에서 무슨 논의가 있었는지 짐작했다.

용연포구를 필두로, 양전사업 및 개간사업이 진행된 지역에선 이른바 도시계획이라는 걸 했다.

널찍널찍한 도로를 먼저 깐 후에, 상업지구, 공업지구, 주거지구를 구분해서 도시를 만든 것.

상업의 발달로 물류의 이동이 활발하다는 건, 그만큼 사람도 많이 돌아다닌다는 뜻. 이젠 지방 사람들도 한성을 쉽게 오가게 되지 않았나.

그들이 보기에는 한성은 사람이 많고 도시가 클 뿐이지, 속을 들여다보면 자신들이 사는 지방 고향보다 훨씬 뒤떨어졌다는 걸 느낄 수밖에.

심지어 아예 새로 만들어진 북방신도시보다도 못하다는 걸, 몸으로 체감하지 않았겠나. 조정관원들 입장에선, 이건 불편함을 떠나서 나라의 위신이 걸린 문제였다.

‘그러니 어떻게든 한성을 뜯어고치려고 몸이 달아 있었겠지.’

한성의 도로건설이 급격하게 진행되는 것도 이와 연관이 되어 있을 것이고, 궁궐과 조정의 부서가 이동을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거다.

관원들이나 백성들이나, 매일 같이 뚱땅뚱땅 망치질 하고, 축력을 이용한 원시적인 기계가 내는 굉음을 듣고 싶진 않을 테니까.

‘게다가... 육조 관아에 사람이 가득 찼는데, 불만이 얼마나 쌓였겠어.’

연오랑은 보지 않아도, 눈앞에 그려졌다.

미래로 치면 오피스 빌딩 옆에서 대규모 공사판이 벌어진 거나 다름없는데, 그 스트레스가 오죽 하겠나.

분명 옮기자고 난리도 아니었을 거다.

‘그런데 한강이나 강남으로 옮기지 않고 중랑천 인근으로 옮긴 건... 그럴 수밖에 없겠군.’

연오랑은 금군에게 물어보려다가, 스스로 되묻고선 답을 찾아냈다.

조선이 왜 수차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지 않았고, 배봉마을이 거대수차를 처음 선보였을 때 왜 화제가 되었던가.

그만큼 조선의 강이 지랄맞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얼어붙어서 수차를 굴릴 수가 없고, 하상계수가 커서 계절별로 강 수위가 천차만별이기 때문.

하여 수차를 온전히 굴리기 위해선 치수공사가 먼저 필요했고, 배봉마을에서 수차를 만들자 기겁한 거지.

조정 입장에서 보면, 민간에서 중랑천의 치수공사를 한 거나 마찬가지니까.

한강에 수차를 들이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일 거다.

지금의 한강은 강남,강북할 것 없이 죄다 모래톱이 자리하고 있는데, 여기에 수차를 건설한다?

과장 조금보태면 강 한가운데에 수차를 만들어야 할 거고, 그럼 겨울에 못 써먹는 건 당연하고 수위가 높이지는 여름에는 수차가 물에 잠겨버릴 거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겠지.’

강남에는 그나마 크고 작은 강이 많다지만, 그러면 일을 할 때마다 한강을 건너다녀야 할 테니 그것 또한 사서 고생하는 꼴.

그래서 치수공사를 조금이나마 끝낸 중랑천 인근으로 옮겨간 게 분명했다.

‘청계천은... 무리지.’

그는 오면서 봤던 청계천을 떠올려 봤지만, 절로 고개가 내저어졌다.

한성을 관통하는 청계천은, 조선중기부터 이미 심각하게 오염된 똥물과 비슷한 상황이 된다.

십수만명이 모여 사는 한성주민이 말 그대로 똥오줌을 청계천에 내다버리는데, 그게 강바닥에 퇴적되어 홍수만 나면 범람해 한성을 똥통으로 만들기 십상이었지.

허나 지금은 한성이 지어진지 얼마 안돼서 나름 깨끗했고, 오물수거기업이 등장하면서 더욱 깨끗해졌다.

하여 빨래터로 널리 활용 중이고, 오염요인이라면 목욕탕 물을 버리는 정도인데... 그건 오염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하지.

문제는 청계천 또한 수차를 돌릴 만큼, 큰 강은 아니라는 점.

‘역시 남은 건 중랑천 밖에 없네.’

“송계천 치수공사도 함께 하고 있나보군?”

“예? 예.”

금군은 ‘그걸 어떻게 알았나?’라고 바라봤다가, ‘오면서 본 건가?’라고 생각하고선 냉큼 고개를 숙였다.

‘의도치 않게 공업지대가 만들어지는 건가? 나쁘지 않아.’

금군의 속마음은 모르고서, 연오랑은 혼자 고개를 끄덕거렸다.

강동개발이 어째 원래 역사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는 거 같은데... 나쁠 건 없어 보였다.

적어도 성 밖에 주요시설을 짓는다는 것 자체가 조선인의 인식이 한 단계 상승했다는 뜻. 성에 의존해서 사는 고정관념을 어느 정도 떨쳐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좋아. 좋아. 나쁘지 않아.’

그는 괜히 만족해서 히죽 웃으며 걸음을 옮겨갔다.

헌데... 광화문을 지나 홍례문과 근정문을 지나쳐, 편전이 있는 곳으로 가지 않고 오히려 동쪽으로 빠져나와 계속 나아갔다.

“...?”

연오랑이 ‘어디 가는 거냐?’라고 묻듯 힐끔 보자, 금군은 ‘왜 그렇게 보냐?’는 듯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이다가... 갑자기 화들짝 놀라 헛기침을 내뱉었다.

‘혼자 왜 저러나.’하고 바라보고 있자, 그는 황급히 입을 놀렸다.

“아! 모르고 계셨군요. 죄송합니다. 대감. 지금 궁을 개축하는 중이라서 편전의 위치를 옮겼습니다.”

‘언제? 갑자기 궁은 또 왜 옮겨?’

“...?”

“그게...”

연오랑이 영문을 몰라 바라보자, 금군은 바쁘게 혀를 놀리기 시작했다.

이것도 관원이 늘어나서 발생한 여파라고 볼 수 있을 거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시대엔 조선의 5대궁궐이라 부르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중에서 경복궁과 창덕궁 밖에 없었다.

창덕궁은 태종이 즉위하면서 지었는데, 왕자의 난을 벌인 까닭인지 몰라도 경복궁에 기거하는 걸 싫어해서 창덕궁에서 주로 머물렀지.

창경궁은 본래 수강궁이라 불리던 곳으로, 세종이 즉위하면서 태종을 모시기 위해 새롭게 지은 궁궐이었다.

덕수궁, 경희궁은 한참 후대에 지어지고.

허나 지금 역사에선, 태종이 착호군을 이끌고 전국을 돌아다니는데 창경궁이 필요나 할까.

아예 지어지지도 않았다.

결국 경복궁과 창덕궁 밖에 없었고, 이 두궁은 살짝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지 않나. 지금까지는 그냥 얼레벌레 대충 오가면서 사용했는데... 육조가 분화해서 커지면서 문제가 대두됐다.

경복궁은 법궁으로서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기하학적 공간 분할, 반듯한 축선을 중심으로 한 건물 배치, 정연한 대칭 구조로 설계되지 않았나.

헌데 늘어난 관원을 다 수용할 수 없어서, 궁은 비어 있는 동쪽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여기에 금군이 창설,개편되면서, 이들을 수용할 공간 또한 필요해졌고.

이러면 당연히 대칭구조가 깨질 수밖에 없고, 그렇다고 서쪽에도 건물을 짓자니... 한쪽에서 반대편으로 가려면 한나절이 걸릴 판국이 됐다.

이 상황을 버티다 못해 육조거리에 새로운 관청을 지어 인원을 궁 밖으로 빼냈지만 그래도 역부족.

하여 고심한 끝에 경복궁과 창덕궁을 아예 하나로 합쳐버리고, 사이에 빈 공간으로 남아 있던 곳을 중심으로 축선을 새로 잡은 거지.

하늘 위에서 내려다 봤다면, 육조거리가 오른쪽으로 옮겨갔다고 봐도 무방할 거다.

헌데 이러고도 부족해서, 결국에는 공업부서를 아예 성 밖으로 옮겨버린 거고.

“허...?”

‘궁이 단번에 두배, 아니 한 네배는 커지는 거 아냐? 이거 감당이 되나?’

아무리 조선이 부자가 됐다지만, 이건 꼭 졸부가 뒷생각 안하고 돈을 펑펑 써대는 꼴 아닌가.

연오랑은 걱정이 먼저 밀려왔다.

‘이거... 중국을 하도 두들겨 패놔서 그런가? 자신감이 하늘을 찔러서, 자금성보다 더 크게 지으려고 하는 거 아냐?’

지금 역사에선 영락제가 없어서 자금성도 없는데, 돌아가는 꼴을 보니 꼭 자금성만한 조성왕궁을 지으려는 것 같다.

“안 그래?”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번에 다 하는 건 아니고, 하나하나 천천히 짓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북촌은 어쩌고? 거기에 사람들이 꽤 살고 있을 텐데?”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만...”

“...?”

‘뭔 소리냐?’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금군을 보며,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북촌에 백성들이 살아봐야 몇이나 살겠습니까. 보상을 해주니 쉽게 떠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왕궁을 짓는 일인데 어찌 거부하겠습니까.”

“아아...”

그는 이어지는 설명을 듣고서,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북촌은 조선의 양반가, 권세가들이 모여 살던 곳이 되지만... 지금은 한성으로 천도한지 30년 밖에 안 지났다. 당연히 북촌이라는 게 제대로 형성조차 되지 않았지.

미래의 북촌한옥마을을 사실상 일제 강점기 시절에 지어진 곳이니, 지금 시대에는 당연히 없는 거였고.

“허...”

그는 자기도 모르게 혀를 내두르며 계속 걸음을 옮겼고, 과연... 궁 안에서 볼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정말로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를 다 밀어버렸는지, 한쪽에는 해체한 건물 자재가 차곡차곡 쌓여 있고, 허허벌판의 공터에서 금군이 말을 몰며 훈련을 하고 있다.

아니다. 자세히 보니 훈련이 아니라 격구를 하면서 놀고 있다.

“...”

눈길을 돌려 저 먼 곳을 바라보니, 지평선이 반으로 쪼개져 있는 것으로 보아... 경복궁과 창덕궁을 잇는 궁궐 담벼락은 미리 만들어 놓은 모습이었다.

“말이 뛰노는 군?”

“빈 터를 그냥 놔두기 뭐해서, 전하께서 쓰라고 하셨습니다.”

“땅도 다지고?”

“예...”

연오랑이 피식 웃으며 묻자, 금군은 멋쩍은 미소를 짓고 말았다.

‘공업부서가 시끄럽다고 옮겨놓고서 기마훈련을 해?’

안 봐도 척이다.

금군은 모두가 착호군 훈련을 받았으니, 삽질에도 일가견이 있을 터. 훈련을 한다는 명목으로 삽질을 시켜서, 궁궐 터 다지기 작업을 하는 모양이다.

“...?”

헌데 연오랑을 알아본 걸까? 수십의 금군이 일제히 움직여 다가오더니, 가장 앞장 선 이가 홀로 말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대감!”

‘오...!?’

“세자 저하.”

연오랑은 마상건을 쓰고도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문종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눈이 커졌다.

‘몰라보게 컸는데?’

꽤 오래 동안 못 봤는데, 이제 슬슬 어른 티가 나기 시작했다.

태조의 피가 남아 있는 건지, 아니면 이것저것 잘 먹고 꾸준히 운동을 해서 그런지 모르겠다만... 나이도 아직 어린데, 벌써 금군과 비슷한 덩치를 하고 있지 않나.

역시 애들을 빨리 크는 모양이다.

“여기까지 하지. 자네들은 가보게.”

“예. 세자저하.”

세자는 금군을 돌려보내고선, 격구체를 휙휙 휘저으며 냉큼 연오랑 옆에 섰다.

세자는 지금까지도 계속 지방을 순시하고 다녔지 않나.

당연히 공주가 있는 용연에도 이따금씩 찾아와 친분을 다져서 그런지, 오랜만에 봤어도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아픈 곳도 없이 튼튼해 보이고... 피부병도 없는 거 같네.’

연오랑은 슬쩍슬쩍 세자를 살펴봤다.

종기로 고생하는 건 먼 훗날의 일이지만, 혹시 또 모르는 일 아닌가. 종두접종도 오래전에 끝마친 터라, 얼굴도 말끔하고 딱히 피부병으로 문제되는 건 없어보였다.

‘다행이군.’

세자를 제대로 키우려고 물밑에서 얼마나 고생했던가. 그 결실이 보이는 것 같아서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리고 그가 우려하던 또 하나의 문제도 해결 직전이었다.

‘왕세자비를 알아서 찾아냈단 말이지.’

그는 소문으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속으로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세자를 밖으로 빼돌린 건, 세자의 여자 보는 눈을 키워주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몇 년간 조선 방방곡곡을 돌아다닌 보람이 있는지, 정말로 세자는 스스로 신붓감을 찾아냈다.

그것도 정치권력과는 전혀 무관하게, 전라도에 갔을 때 만났던 어느 현감의 여식을 신붓감으로 점찍어 버렸지.

이 문제에 대해서 태종, 세종, 왕비와도 이런저런 말이 돌긴 했는데... 결국은 문종의 뜻대로 하는 쪽으로 굽혀졌다.

세자비를 받는 건 보통 큰 문제가 아니지만, 한편으론 모두가 부담스러워 하는 문제였으니까.

예전이야 외척이 되면 낙하산으로라도 관직에 꼽아준다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없지 않나. 오히려 견제만 더 많이 받는다.

게다가 지금 역사의 태종은 원래 역사보다 더 많은 피를 봤고, 세종의 외가가 풍비박산된 걸 봤는데... 누가 외척이 되고 싶겠어.

이미 먹고 살만하고, 기업을 키운 집안에선 크게 관심이 없었지.

반대로 태종, 세종도 같은 마음이었다.

두 왕은 양반관료제를 무너뜨리고 있는데, 세자비 자리에 권세가가 들어오는 걸 반길 리가 있나.

지금의 왕실은 그 어느 때보다도 권위가 높고 추앙을 받고 있으니, 외가의 힘을 빌릴 필요가 전혀 없다.

오히려 까불면 건수를 잡아 밟아줄 생각이었고, 이건 모든 신료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

해서 세자가 별 볼 일없는 양반집안의 여식과 혼인하는 것에 대해,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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