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299화 (299/538)

299. 챕터41. 확인하다 (9)

‘그 옆은...’

옆으로 줄줄이 앉아 있는 이들 또한 죄다 새로 생긴 부서인데, 명칭만 대충 봐도 이해가 된다.

‘흐흐. 꽤 잘 만들어졌잖아?’

그는 자기도 모르게 히죽 입꼬리가 들렸다.

지금 만들어진 부서는, 과거에 그가 연주(연길)에서 머물 때부터 2인자라 할 수 있는 참판들과 머리를 맞대고 만든 부처계획안 아닌가.

그게 현실이 되었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맹사성. 저 영감은 역시나 의약부로 갔군.’

그가 가볍게 눈인사를 건네자, 맹사성은 공손히 고개를 끄덕였다.

진실은 전혀 다르지만, 연오랑은 나름 의원이자 의약계의 천재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무려 종두법을 찾아냈으니까.

거기에 공중위생과 소독이라는 개념도, 의약연구소도, 외과 치료를 위한 요상한 수술기구도 만들었고, 군의관 양성을 통해 의원을 찍어냈다.

당연히 맹사성은 의약부를 조직함에 있어서 연오랑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연오랑은 아는 걸 열심히 토해냈다. 물론 직접 만나진 않고, 서신과 인수부윤을 통해서 지식을 공유했지만.

‘허조... 저 양반은 역시나 조폐부로 갔네.’

조폐부는 미래의 한국은행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곳.

단순히 주화를 찍어내는 게 끝이 아니라, 시장동향을 파악해서 물가와 화폐가치를 유지해야하는데... 그 사전준비 작업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닐 거다.

다만 이 또한 예견된 일이고, 화폐개혁 및 은행설립은 연오랑이 세종, 태종과 직접 짠 계획 아닌가.

의주에서 돈놀이를 했던 허조라면 딱 맞는 자리다.

‘은행장 자리는 나중에 분리해야겠지만, 아직 은행이 생기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나눌 필요는 없겠지.’

허조와도 눈인사를 하고 가볍게 넘어가자, 그 옆에 있던 이들이 뜨끔한 눈치를 하며 연오랑에게 어색한 미소를 흘렸다.

‘그 다음은 조세부와 재정부라...’

어느 부서가 안 그러겠냐만, 호조만큼 잘게 찢어진 부서도 없을 거다.

궁궐에 물자를 공급하던 내자시內資寺, 미곡이나 장등을 공급하던 사도시司䆃寺, 음식이나 술을 공급하던 내섬시內贍寺등. 궁과 조정의 경계선에 있던 속아문은 전부 궁내원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외에 어중간한 속아문은 신설부서로 빨려 들어갔고, 호조에는 순수하게 돈을 관리하는 부서들만 남았다.

허나 그렇다고, 사람과 일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하는 건 큰 착각이다.

세수가 통합되고, 지방예산을 중앙이 직접관리하고, 매년마다 경제성장률이 최고점을 찍으면서 세수가 미친 듯이 늘어나고 있다.

이걸 관리하려면 엄청난 인력과 체계가 필요해서, 미래의 국세청과 같은 조세부가 호조 판적사版籍司에서 따로 떨어져 나와 독립부서로 만들어졌지.

‘저긴 진짜 엄청 고달플 거야. 듣기론 기업들 뒤지고 다니느라 바쁘다고 들었는데... 곡물창고를 관리하는 것도 힘들 거고.’

보지 않았어도 조세부가 얼마나 바쁘고 힘들지 그려진다.

이 시대는 쌀과 면포가 곧 돈이니, 이걸 직접 관리해야 되지 않나.

군자창등의 전국의 공창을 하나로 통합해서 신형곡물창고에 보관 중이고, 이들이 의창의 역할도 겸하면서 환곡을 대신하는 초저이자 대출까지 함께 하고 있다.

‘은행이 만들어지면 공창관리는 은행으로 넘어가겠지만, 그 전까지는 고생 좀 해야겠지.’

“...”

연오랑은 미친놈마냥 혼자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부서장에게 시선을 계속 이어갔다.

나머지 부서도 미리 계획한 대로 쭉쭉 이어졌고, 이윽고 공조에서 분리된 부서들로 넘어갔다.

‘공업부, 건설부, 광업부라... 공야사는 아직 있는 것 같고, 군기시는 조병창으로 확장돼서 군부로 들어간 건가.’

예전 육조체계에선 말석의 위치를 차지하던 공조지만, 지금에 와선 가장 크게 확장되어 분리된 곳일 거다.

기존의 영조사, 공야사, 산택사가 전부 떨어져 나왔고, 각자가 맡은 분야에서도 또 독립부서가 생겨났으니까.

특히나 건설부의 약진이 두드러지는데, 이들은 시공은 민간건설기업 및 노역하는 백성들에게 맡기고 설계와 감리를 담당하고 있었다. 소수지만 난공사의 경우 직접 시공까지 하는 경우도 있었고.

도로, 항구, 다리, 저수지와 보, 운하, 성곽축조, 치수사업 등을 담당했는데,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부분은 역시나 저수지와 보.

개혁이 시작된 지 고작 10년밖에 안됐지만, 지금까지 완공한 저수지와 보가 원래 역사에서 조선중기까지 만든 저수지보다 많을 정도니... 얼마나 지어댔는지 짐작할 수 있을 거다.

‘앞으로 한 오십년은 바쁘게 지내야 할 걸...’

문뜩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조선에 자갈도로를 전부 깔려면 그 정도 시간은 걸리지 않을까.

‘그리고 체신처라... 우체국을 진짜 만들었네.’

연오랑은 승정원 관리가 건네준 회의 자료를 살피며, 자기도 모르게 상업부장에게 눈에 돌아갔다.

역참과 수참이 정비되어 늘어나면서 이걸 통합관리하기 위한 물류교통처가 생겨났고, 새로 신설된 상업부에 흡수됐다.

물류교통처는 역참, 수참을 관리하는 거지, 직접 돌아다니는 업무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조정의 명령서를 전달하는 업무는 이조,병조가 따로 맡고 있었는데, 이걸 떼어내서 체신처를 만들었다.

어차피 관의 명령서를 운반하는 김에, 민간의 서신도 함께 옮기는 거지. 겸사겸사 돈도 벌고.

‘세종과 태종이 이걸 싫어할 리가 있나.’

이런 체신업무를 하기 위해선, 각 현과 그 위의 부. 끝으로 조정이 거미줄처럼 하나로 연결되어야 가능하지 않나.

상하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진다는 건 중앙집권을 강력하게 해주는 수단이 되는 거니, 두 왕이 마다할 리가 없었을 거다.

이윽고 한바탕 쓱 훑고 나자, 내관이 쪽문을 열고 들어와 세종이 온다고 알려왔다.

“...”

다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서 세종을 기다렸고, 기다리기 무섭게 세종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단상위의 옥좌에 올라앉았다.

회의탁자 끝엔 몇단 높인 옥좌가 있었는데, 그 옥좌 앞에도 큼직한 탁자가 놓여 있어서 뭔가 요상한 모양새가 됐지만... 다들 이젠 익숙한지 그러려니 하고 인사를 건넸다.

“앉아라.”

“예. 전하.”

“...”

세종의 손짓에 다들 냉큼 자리에 앉았고, 세종은 대신들을 쓱 훑다가 연오랑과 눈이 마주치자 슬쩍 미소를 지었다.

연오랑 또한 마찬가지.

보일 듯 안보일 듯 히죽 미소를 짓고선, 매의 눈으로 세종을 살폈다.

‘이야. 이젠 수염도 기르는고만? 건강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네.’

몸치인 일반인도 10년간 꾸준히 운동을 하면 몸짱이 되기 마련인데, 기골이 장대한 세종은 어떻겠나.

곤룡포 속에 식스팩이 숨겨져 있진 않았겠지만, 배도 튀어나오지 않을 걸 보면 나름 근육으로 꽉꽉 차 있나 보다.

‘세자에게 듣기로 말도 꾸준히 타고 있다고 했으니까.’

궁궐을 확장하면서 빈 땅이 넘쳐나니... 여기서 아예 금군이 훈련하거나 격구를 한다고 했고, 세종은 격구를 직접 하진 않지만 와서 구경하거나 말을 타곤 했다고 들었다.

그러니 아무리 고기덕후라고 해도, 당뇨나 고혈압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눈도 괜찮은 것 같고... 빨리 등잔용 유리를 만들어야겠어.’

등잔에 볼록한 유리를 끼우면, 빛을 더 산란시킬 수 있지 않나. 유리잔도 만드는 판국에 등잔에 끼우는 유리를 만드는 건 어려운 게 아니다.

‘아닌가? 그러면 오히려 밤에 책을 더 많이 보는 거 아냐?’

연오랑은 자문자답을 하며 생각을 거듭했다.

독서가 취미인 세종에게 유리등잔을 보여주는 건, 밤에 책을 더 많이 읽으라고 독려하는 꼴이 되지 않을까? 그럼 눈이 더 나빠질지도 모르겠다.

‘안경이라도 만들어야 하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삼천포로 빠지고 말았다.

도수를 체계화해서 수치화하는 건 힘들겠지만, 노가다반복작업을 하면 곡률이 다른 볼록수정과 볼록유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망원경에도 수정을 깎아 써먹고 있으니, 안경을 만드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투명도가 문제긴 한데... 그건 수정을 잘 고르면 해결될 문제고.

‘아니면 확실히 유리로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고... 해봐야겠군.’

가능성이 보이는 터라, 연구소에 넌지시 알려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가 직접 할 필요 있나. 밑에 사람들을 부려먹어야지.

이것도 만들기만 하면 돈 주고 팔 수 있는 상품이 되는 건데 말이다.

“시작하지.”

“예.”

그가 상념을 이어가는 와중에, 세종의 명에 승정원 관리가 회의가 시작됨을 알렸다.

간단히 회의식순을 설명하고 뒤로 물러서자, 저쪽에 서기마냥 앉아 있던 사관이 바쁘게 손을 놀렸다.

‘이야. 쟤들도 이제 서서 일 안하네.’

사관은 항상 왕을 졸졸 따라다니기 때문에 앉아 있을 틈이 없는데, 여기서는 떡하니 지정좌석까지 마련해서 앉아 있었다.

‘연필을 쓰나? 하긴 연필이 낫지.’

대신들이 한명씩 보고를 시작하는 와중에도, 연오랑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사관을 살폈다.

옷자락에 먹물이 묻지 않은 걸로 보아 확실히 붓이 아니라 연필을 쓰고 있는 걸로 보였다. 아마 저렇게 적고 나서 다시 옮겨 적지 않을까.

‘오? 훈민정음을 쓰나? 하긴 초서체를 갈기는 것도 쉽지 않지.’

그는 사관의 손놀림을 유심히 살피며, 글자를 어떻게 쓰고 있는지 유추해봤다.

말을 빠르게 받아 적기 위해선 당연히 흘림글씨를 쓸 수밖에 없고, 이러면 한자의 획수를 줄이고 간략한 필기체인 초서체로 쓸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게 하도 개판이라서, 나중에 가면 자기가 쓰고도 뭐라고 썼는지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는 점.

그러니 획수는 늘어나겠지만 한자를 쓰는 것보단, 훈민정음이 더 알아보기 쉽고 빨리 받아쓰기도 편하지.

‘좋아. 좋아.’

그는 괜히 뿌듯해져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서장들의 보고는 꽤 들을만 했고, 연오랑은 승정원 관리가 열심히 손으로 복사한 보고서를 쓱쓱 훑어가며 경청했다.

“그렇게 작년도 세수가 정산되었습니다.”

“오...!”

“과연!”

“감축 드리옵니다. 전하.”

안순은 허조와 함께 의주에서 무역을 담당했는데, 그간 경력을 인정받아 호조 판서에 버금가는 재정부장으로 승진했다.

그런 그의 보고가 끝나자, 대신들은 하나같이 반색하며 세종에게 공치사를 던졌다.

농담이 아니라, 세수가 또 늘어났으니까. 지난 10년간 계속해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으니, 매년 정산을 할때마다 놀랄 수밖에 없다.

아마 속으로 ‘우리가 이렇게 부자가 될 수 있었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아직 한참 모자라지.’

다만 연오랑 혼자 손가락을 튕기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세수는 개혁 전 조선보다 거의 10배쯤 상승했는데, 이건 개혁이 잘 진행된 것도 있지만 조선이 원체 거지라서 가능했던 것.

특히나 무역세수의 비중이 너무 크다. 총수입의 4할이 무역에서 나오니까.

이게 이럴 수밖에 없는 게, 북방무역을 완전히 장악한 이상 중국-조선간의 거래는 무조건 조선이 갑이 될 수밖에 없다.

일본, 몽골-조선간의 거래 또한 갑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

조선물산은 무려 중국물산과 경쟁하고 있으니, 이 시대의 일본이나 몽골은 물산의 수량과 질에서 상대가 안되는 게 당연한 말씀.

‘그래도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 조선내부에서 더 뽑아내야 하는 데 말이지...’

연오랑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걸까? 공녕군 이인의 장인이자 병조참판에서 조세부장으로 승진한 최사강이 안건을 던졌다.

“하오나 세법을 개정하면 이보다 더 많은 세수를 거둘 수 있을 거라 사료되옵니다. 지금 보면...”

최사강은 보고서를 읽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고... 연오랑 또한 조세부 관원이 제출한 보고서를 읽으며, 그의 주장을 귀담아 들었다.

간단히 말해서, 지금의 조세제도가 현실을 못 따라가고 있다는 말이었다.

이는 당연한 걸로, 기업에 물리는 세금이 없기 때문.

그나마 국방세를 통해 간접적으로 뽑아내고 있지만, 문제는 기업 사원에게서 세금을 걷는 방법이 요원하다는 거다.

지금 조선의 세법은 여전히 조용조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땅이 없는 사원에게 전세는 매길 수가 없다.

인두세에 해당하는 호등제戶等制가 있긴 하지만... 이건 가호 구성원의 많고 적음에 따라 대,중,소로 나눠서 신역을 부여하는 역할을 했지, 돈을 걷는 데는 사용되지 않았다.

기타 산세山稅, 선세船稅, 어량세魚梁稅, 공장세工匠稅, 상세商稅, 등의 잡세를 준용할 수 있지만 이 또한 애매하다.

잡세는 소득세가 아니라 선박에 대한 세금, 그물의 크기와 유무에 따른 세금, 공장 가마에 대한 세금 등의 재산세와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헌데 위와 같은 기자재와 인프라장비는 기업이 개입 및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기업이 이미 내고 있는 상황 아닌가.

봉급을 받는 사원에게서 세수를 걷으려면, 소득세 개념이 등장해야 하는 거지.

이 외의 공물과 신역은 그대로 하고 있으니 문제될 것이 없고.

“음...”

“흐음...”

최사강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머리를 굴려 흐름을 따라잡았다.

소득세라는 개념이 퍽 낯선 건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익숙하기도 하는 거니까.

“...”

연오랑은 묘하게 자신을 보는 대신들의 눈빛이 느껴져서, “뭘 봐? 왜 또 나야?”라는 눈빛을 숨기지 않고 뿌려댔다.

“용연군 대감께서 기업에 회계장부의 작성을 명시한 후로, 조세부는 그걸 파악해 국방세의 납부여부와 공물의 양을 산출해 왔습니다.”

최사강의 말이 끝나자, 이번에는 보란 듯이 모두의 시선이 연오랑에게 쏠렸다.

“...”

뭐라 딱히 할 말이 있나.

그는 그냥 “맞아.”라고 말하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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