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301화 (301/538)

301. 챕터41. 확인하다 (11)

“신역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신역으로 부리고 있다지만, 기업과 함께 연계하면서 식량과 함께 적은 양이지만 일당을 챙겨주고 있지 않나.”

“그렇사옵니다.”

“예.”

신역을 통해 모집한 백성을 일꾼으로 가장 잘 써먹었던 건설부장이 냉큼 말을 받았다.

본래 신역은 몸으로 때우는 거고, 조정에선 아무것도 안 줬다.

허나 지금은 쌀과 공물. 특히나 썩기 십상인 식재료가 공창마다 넘쳐나는데, 굳이 일당을 안 줄 필요도 없지 않나.

돈이면 곰도 춤추게 만드는데, 백성들이 자기 일처럼 열성적으로 노역하게 만들 수 있지.

게다가 신역기간 뿐만 아니라 틈 만나면 “일당 줄 테니 일할 사람?”이러면서, 농한기 때 백성들을 긁어모아, 공사를 진행한 게 벌써 10년째다.

쌀이 부족하다고? 중국에서 사오면 그만이고, 그것도 힘들면 생선과 고기를 주면 됐다.

농담이 아니라 절인생선은 엄청나게 풀리고 있어서, 몇몇 상인들은 이걸 몽골인에게도 팔려고 가져갔을 정도니까.

이런 요상한 시절이 지나자... 이제와선 백성들 스스로가 이게 신역인지 일당 받는 일인지 헷갈릴 정도가 됐고, 조정 또한 신역과 일당인부를 굳이 구별하지 않는 수준까지 이른 거지.

“이러니 더 이상 신역을 부릴 필요가 있을까. 차라리 깔끔하게 세금을 올리고 신역을 없애는 게, 모두가 바라는 것일 테다.”

세종은 그리 단언했고, 다들 수긍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아무래도 원할 때 가서 일을 하는 것과 억지로 끌려가서 일을 하는 건 분명이 다르니까.

조정 입장에서도 추가로 걷은 세금을 뿌려서 인부를 모집하는 게 더 효과적이고, 백성들 입장에서도 괜히 바쁠 때 신역에 끌려가는 것보다 돈 조금 내고 빠지는 게 나았다.

정말 급하면 일당인부로 뛰면 되는 거고.

뭔가 조삼모사와 같은 상황이지만, 모두가 납득할만한 방편이니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하오면... 지주도 포함되는 것이옵니까?”

누군가 묻자, 장내에는 서늘한 침묵이 흘렀다.

“...”

“...”

‘오...? 그걸 끄집어낸단 말이지?’

연오랑은 세종이 무슨 대답을 할지, 그리고 대신들이 무슨 반응을 보일지 흥미진진한 눈으로 바라봤다.

팝콘이 있었다면 팝콘을 뜯었을 거다.

허나 연오랑의 기대와 다르게 세종의 입은 쉽게 열렸다.

“당연하다. 그들은 아국의 신민이 아니고 백성이 아니던가?”

“...”

“오히려 이번 세제개편으로 역차별이 해소될 것이다.”

“...!”

눈을 크게 뜨고 놀라는 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이, 조용히 눈을 감고 가슴을 다독이는 이. 등등.

반응은 꽤 다채로웠다.

‘생각보다 반응이 싱겁네. 쉽게 되겠는데?’

연오랑은 장내를 훑어보며, 속으로 히죽 미소를 지었다.

개혁이 시작된 후. 양반의 특권은 계속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첫 시작은 개혁초창기에 과전법이 폐지되고 녹봉제로 바뀌면서 부터고, 관리가 불어나자 녹봉조차도 직전법 마냥 현직관리에게만 줬다.

이는 곧 집안 대대로 3대는 이어내려 갈 양반이라는 특권을, 당대에만 한하게끔 축소시킨 꼴. 진사니 생원이니 하는 건 덩달아 사라졌고 말이다.

‘중요한 건 양반의 기반이 바뀌었다는 거지.’

연오랑은 지금껏 조선이 흔들렸던 상황을 떠올려봤다.

양전사업으로 땅이 개간되고 사원으로 넘어간 이들이 많아지자, 기존 지주집안에서 일하던 소작농들 또한 조정의 초저이자 대출을 받아 자영농으로 넘어갔다.

이러면 당연히 지주집안은 소작을 주기 힘들어지고, 조정은 “이제 지주는 포기하고 기업이나 키우시지? 하다못해 농산기업이라도 하든가.”라고 압박을 가했다.

과거 하동에서 연오랑이 지주양반을 밀어냈던 방법을, 조정이 조선 전체를 대상으로 써먹고 있던 거지.

이러면 기존 지주집안은 어찌되겠는가.

기업가로 넘어가거나, 반대로 자존심을 굽히지 않고 땅을 놀리면서 까지도 소작농 없이 사노비로만 농사를 지으며 버텼다.

아이러니하게도 역차별은 여기서 발생했다.

기업가들은 국방세라는 명목 하에, 양반이면서도 곱절의 세금을 내고 있었다. 헌데 지주양반들은 대충 뭉개고 앉아서 세금을 안내고 있었던 것.

헌데 세종은 이제부터 양반들에게도 세금을 걷겠다고 말하는 거지.

‘내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긴 한데... 문제가 터질 가능성은 없겠어. 전환이 너무 빠르니까.’

연오랑은 그런 생각을 하며, 조용히 의견을 나누고 있는 대신들을 굽어봤다.

어쩌면 그가 조선인들을 너무 만만하게 봤던 걸지도, 아니면 막연히 미래의 조선을 이 시대에 투영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이 시대의 조선인은 그의 생각보다 빠르게 자본유학에 적응했고, 빠르게 기업을 설립해 주류에 합세했다. 해외무역을 해왔던 고려의 기억과 유산이 남아 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는 개혁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양반을 없애기 위해 계획을 짰다. 오래전 그는 양반기업가와 양반지주가 대립해서, 양반 스스로가 반으로 쪼개지는 사태를 꿈꾸지 않았나.

세종은 지금. 세금을 빌미로 이 분열작업을 하려는 거지.

‘문제는 알고서도 당할 수밖에 없고, 생각보다 쉽게 될 것 같단 말이지.’

양반기업가와 양반지주가 백중세로 대립할 거로 예상했는데, 기업이 너무 빠르게 크는 바람에 쉬운 싸움이 될 것 같다.

안 그래도 양반자체가 너무 약해졌으니까.

‘게다가... 조정이 바뀌면서 연줄도 다 끊어졌잖아?’

일이 쉽게 풀릴 이유는 또 있다.

안 그래도 약했던 사림의 거미줄은 다 찢어져 말라버렸는데, 이제 와서 지방과 조정의 연결고리가 얼마나 튼튼하겠나.

궁내원 창설, 육조의 분화와 독립성 강화는 청탁과 압박을 쉽게 할 수 없게 만들었고, 행정적 쟁점이 정치적 쟁점으로 번지는 걸 구조적으로 막았다.

또 지방향리가 중앙조직에 흡수되고, 그 향리조차 고향을 떠나 다른 지역에 부임했으니... 서로 붙어먹고 꿍꿍이를 부릴 수도 없다.

여론몰이는 꿈도 못 꾸고, 지방지주들이 한목소리를 내며 궐기할 수 있는 상황도 못 되는 거지.

몇몇이 개별적으로 “양반에게 세금을 내라고?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못내. 배 째!”라고 드러누우면, 세종과 태종은 연대병을 동원해서 진짜로 배를 째버리지 않을까?

‘그리고... 이 통합 세금을 걷으면, 양반의 권위는 한번 더 떨어지겠지.’

연오랑은 세종의 속내를 읽으며, 흐뭇한 미소를 삼켰다.

통합세는 전세, 군역, 신역, 공물을 전부 대체하는 세금 아닌가.

이 말은 양반도 양민과 동등한 신분이라는 걸 반증하는 거니, “둘 다 똑같은 세금을 내는데, 양반과 양민이 다를 게 뭔데?”라는 말이 더욱더 강하게 나오게 될 거다.

연오랑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대신들도 의견을 나누고선 결국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사실 올 게 온 거지, 전혀 예상 못하던 건 아니었으니까.

“허면... 잡세는 어찌되는 거요?”

“조용조의 전부를 하나의 세금으로 통합한다면, 잡세도 폐지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최사강의 말에 다들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뭔가 계산을 하는지 손은 바쁘게 움직였다.

“특별세는 남겨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음...”

“그건 그렇긴 한데...”

누군가의 말에 대신들은 세종을 힐끔거렸다.

개혁 후에 시행된 특별세는 관세, 염세, 금,은과 같은 광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10%를 더 붙여서 걷고 있는데, 통합세에 이걸 포함시켜야 할까.

“특별세는 유지해야겠지.”

“...”

세종의 말에 예전 호조관리들은 얼굴이 폈고, 몇몇 대신들은 얼굴이 굳어졌다.

아마도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게 분명하다. 이건 공신과 힘 좀 있는 집안에게서 더 뜯어가겠다는 뜻이니까.

‘40%라... 많으면 많은 건데, 워낙 많이 벌잖아? 더 내야지.’

연오랑은 안색이 변하는 대신들을 고소하다는 듯 보면서, 속으로 웃어댔다.

세종은 왕실과 조정이 제일의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잊어먹지 않았나 보다.

“세제개편에 대해선, 다음에 보다 자세히 다루도록 하지.”

“예.”

“알겠사옵니다.”

이렇게 중요한 문제가 뚝딱하고 해결될 일이 있나.

큰 틀은 국무회의에서 정하고, 세세한 부분은 각 부서별로 머리를 맞대고 완성해야 할 거다.

다들 이쯤에서 만족하고,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하오나... 세율을 그리 올리게 되면 우려되는 문제가 있사옵니다. 지금 아국 내의 소출은 통용되는 곡물의 6할밖에 미치지 못합니다. 이 문제를 해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음...”

“흠.”

농업부장인 황희가 입을 열자, 다들 행간을 읽고 미간을 찌푸렸다.

‘흐음... 문제가 될까? 애매 하네.’

연오랑 또한 고개를 갸웃거리며 머리를 굴려댔다.

지금 조선의 곡물생산량으로는 조선 전체를 지탱할 수 없다. 그래서 중국에서 미친 듯이 곡물을 수입하는 거고.

‘내가 수산기업을 가장 먼저 만든 게, 진짜 신의 한수였어.’

그는 스스로 다시금 자화자찬을 했다. 식량난 해소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게 바로 절인생선이니까.

원래 역사에서도, 경신대기근 당시에 조선을 먹여 살렸던 게 바로 명태다.

동해에서 잡은 명태를 삼남에 마구 팔아 기근을 넘길 수 있었고, 그 때부터 조선은 명태를 온갖 방식으로 만들어 먹기 시작했던 거지.

지금도 마찬가지.

수산기업에서 잡아 올린 생선이 아니었다면, 곡물에만 의존하던 조선이 지금처럼 급격하게 성장할 수 없었을 거다.

‘하지만... 황희가 지금 말하는 건 식량으로서의 쌀이 아니라, 화폐로서의 쌀을 말하는 거겠지.’

연오랑은 계속해서 머리를 굴려댔다.

주화는 사람 손에서 다른 사람 손으로 넘어가는 거니, 전체적으로 보면 그 수량의 변동폭이 그리 크지 않다.

헌데 쌀은 식량인 동시에 돈이지 않나.

식량을 먹어치우면 곧 돈이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인 터라, 화폐로서의 곡물량을 산출하고 유지시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괜히 곡물창고를 통합 관리하는 게 아니고, 괜히 은행이 이 일에 개입하는 게 아니지.

‘황희가 걱정하는 건 역시 녹봉이겠지?’

이 때문에 황희가 뭘 말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금 조정세수의 40%가 관리의 녹봉으로 지출된다.

현대국가의 공무원 인건비가 예산의 10~15%정도 되는 것에 비하면 어마어마하게 많은 거지.

허나 인력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이 시대엔 당연한 거고, 상비군을 유지하는 이상 어쩔 수 없지 않나.

‘게다가 녹봉도 꽤 올려줬잖아?’

작은 정부를 추구하던 예전 조선은 녹봉이 너무 짰고, 당연히 관리는 비리, 부패와 엮일 수밖에 없었다.

먹고 살아야 하는데 어떡하나. 사명감으로 모든 걸 할 순 없는 거지.

하여 하급관원이라 할지라도 일가족이 먹고살기에 충분할 만큼 녹봉을 올려줬고,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어사부를 동원해 철퇴를 때릴 수 있는 명분을 얻었지.

‘결국 웃기게도 조선 관리의 녹봉을 중국이 주는 꼴이 되었단 말이지.’

황희가 우려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었다.

혹여나 중국에서 뭔 일이 터져서 곡물수입이 힘들어지면, 식량난이 아니라 녹봉미지급 사태가 터지게 되는 거니까.

“새로운 개간평야를 만들었으니, 상황이 나아지지 않겠나?”

“그야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7할을 넘기지 못할 것이옵니다.”

농업에 대해선 황희가 누구보다 더 잘 아는 터라,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개간평야는 작년에 시험 수확을 마치고,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하는 김포, 철원, 함흥평야다.

이곳은 원래 역사에선 조선중후기에 개발되는 곳인데, 지금 역사에선 귀화인 10만명을 쑤셔 넣어 강제로 개간하지 않았나.

근 3년간에 걸친 대공사 끝에, 진짜 전답이 완성됐고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씨를 뿌릴 예정이었다.

“착호군이 평안도에서 양전사업을 진행하면, 평양평야도 개간할 수 있을 텐데?”

“가능은 합니다만... 이앙법을 할 수 있을지, 하게 된다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추산하기 힘듭니다.”

“끄응...”

“음...”

황희의 말에 다시금 대신들 모두가 침음을 흘려댔다.

조선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 모두가 쌀에 목숨을 거는 건, 곡물 중에서 쌀이 제일 수확량이 많기 때문.

볍씨 한 알을 심으면 거기서 쌀이 10알정도 나온다면, 다른 곡물은 5,6알 정도 나오는 거지.

문제는 조선의 기후와 이 시대의 미흡한 벼 품종이다.

지금 조선에는 벼 품종이 다양해서, 다 같은 단립종이라고 해도 과장 조금보태면 각 도마다 키우는 벼 품종이 다를 정도다.

이 부분에 대해선 연오랑이 하동에서부터 품종개량을 해왔기에 누구보다 잘 알았지.

그리고 십여년 넘게 품종개량을 해왔지만, 지금의 기술력으로는 함흥과 평양의 기후한계선을 넘어갈 수가 없다.

조선후기, 말기쯤엔 쌀농사에 진심인 조선인들이 연해주나 만주에까지 가서 논농사를 짓지만, 지금은 꿈도 못 꾸는 거지.

‘아무리 개량을 했어도 시간이 부족하단 말이야.’

연오랑은 아쉬움에 속으로 혀를 찼다.

지금 삼남지방에 뿌려지는 벼 품종은 일본에서 가져온 벼품종과 전라도의 벼품종을 결합해 만든 물건이다.

조선벼보다 일본벼가 이앙법에 더 알맞아서 그랬는데, 예상대로 꽤나 잘 먹혔지. 반대로 추운 북쪽으로 갈수록 적응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생겼다.

‘유전자 변이를 일으킬 수도 없는데, 뭐 어쩌겠어.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이걸 해결하려면 물을 좋아하면서도 추운 기후에 잘 견디는 품종으로 개량해야하는데, 이러면 북방품종과 남방품종을 결합해야 한다.

허나 이 품종개량이라는 건 사실 노가다 반복작업이라는 점.

한해마다 가장 알곡이 많고 큰 볍씨들만 긁어모아다가, 다음해에 다른 품종의 볍씨와 함께 키워서 둘을 수정시키는 거지.

이러니 시간이 걸릴 수밖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