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302화 (302/538)

302. 챕터41. 확인하다 (12)

한해마다 한세대가 지나는 거니, 지금은 품종개량을 한지 대략 14세대쯤 내려오지 않았나. 지금도 유의미한 결과가 조금씩 나오고 있으니, 30세대쯤 지나면 뭔가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사람으로 치면 얼마야? 20년을 한 세대로 치면, 600년이 지난 거나 마찬가지잖아? 그 정도쯤 되면 억울해서라도 뭔가 바꿔야지.’

그는 괜히 그런 생각이 들어, 속으로 툴툴거렸다.

“그와 관련한 문제를 해결할 방안은 사실 준비되어 있소.”

“...?”

“용연군 대감이 이끌 남주도 원정이 있지 않소?”

아직 남아 있는 이조의 수장. 이조판서 이맹균의 말에, 모두의 눈이 연오랑에게 쏠렸다.

세금문제에서 녹봉으로, 그리고 곡물생산량으로 이어진 논의가 어째 뜬금없이 대만원정으로 이어진다.

이게 뭔 관계가 있나 싶은데...

‘허... 이놈들 봐라? 진짜 많이 컸네?’

연오랑은 그 행간을 읽고 자기도 모르게 눈을 번쩍 떴고, 모두와 눈을 마주치며 놀람을 숨기지 못했다.

눈빛을 보아하니... 무슨 뜻인지 아는 이들도, 모르는 이들도 섞여 있는 것 같다.

‘이야... 이런 꿍꿍이가 있었던 말이지? 변해도 너무 변했는데?’

연오랑은 입술이 씰룩거리는 걸 참지 못했다.

전에도 한번 느꼈지만, 조선의 변화에 못 따라는 게 그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맹균이 하는 말은, 대만의 원주민들을 조선으로 끌고 와서 부려먹겠다는 뜻 아닌가.

고작해야 1만명 조금 넘는 왜인포로도 건사하기 힘들어서 우는 소리를 내던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십수만명의 포로를 데려오자고 말하고 있다.

“크흠.”

“흠...”

“음...”

모두는 신음과 탄성을 흘리면서, 서로 귓속말을 속닥거리며 이맹균이 하는 속뜻을 공유했다.

‘허...’

연오랑은 세종과 슬쩍 눈을 마주쳤고, 그는 ‘이건 몰랐지?’라고 말하듯 눈빛으로 웃고 있었다.

“다들 기업이 설립되고 난 후. 삼남을 필두로 전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실 거외다.”

이맹균은 세종과 눈을 맞춰 허락을 받고선, 그렇게 포문을 열고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조선의 덩치에 비해 농업생산량이 떨어진다는 건, 반쯤 맞고 반쯤은 틀린 말이었다.

농기구 및 농업기술의 발달, 양전사업으로 잘 정리된 전답, 사방에 지어진 저수지와 보, 농사에 쓰일 우마의 증가.

이 모든 건, 단위면적당 농업생산력을 몇 배로 끌어올렸다.

문제는 농사를 지을 인력자체가 줄어들었다는 거다.

기존 조선 백성의 패시브 직업이 농부라고 하지 않았나. 직업이라는 게 따로 없고, 무조건 농부 플러스알파였다.

허나 기업이 등장하면서 이제 전문 직업이 생겼다.

가마장인은 농사를 짓다가 때때로 자기를 굽는 게 아니라 일 년 내내 자기만 굽고, 어부는 농사짓다가 물질하러 가는 게 아니라 일 년 내내 물질만 한다.

이와 같은 기업이 한두개가 아니니, 기존에 땅을 경작하던 농부들이 갑자기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인 거지.

이로 인해서 남은 땅을 쉽게 뒤집어 양전사업을 할 수 있었고, 지주집안의 소작농과 사노비를 뜯어내 빈 땅을 불하해줄 수 있었다.

“귀화인들은... 아니군.”

연오랑은 혼잣말을 하다가 얼른 되삼켰다.

방금 말하지 않았나. 귀화인들을 전부 3개의 평야에 쑤셔 넣었다고.

이제 북방에서 끌어올 인력은 야인여진과 그물망에 걸리는 북방유목부족인데, 이들은 일 년에 몇천명을 넘기도 힘들다.

“...”

‘흐음... 이거 계획과 다른데... 나쁠 건 없나?’

그는 자기도 모르게 손가락을 두들기며 생각에 잠겼다.

농업인구 부족은 그도 당연히 예상했던 상황이다. 그리고 그는 이걸 그냥 버티고 넘어가려고 했지.

“그 정도로 급한 건 아니지 않나? 몇 년만 지나면 가호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거다. 다들 요즘 위생 상태에 대해서 잘 알잖아? 내가 알기론 요 몇 년간은 큰 전염병도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맞습니다.”

“그렇지요.”

그의 물음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던져댔다.

특히나 조용히 듣고 있던 맹사성이 목청을 높였는데, 그는 더욱더 공중위생에 대해서 설파하고 싶은 모양이다.

개혁이 시작된 지 벌써 10년차다.

종두법, 오물수거기업, 목욕탕 문화, 의약부의 설립과 의원의 증가, 약재기업의 허가로 늘어난 싸고 많은 약재들, 무역활성화로 인한 당재의 수입증가. 공중위생과 소독의 개념 전파.

심지어 양생법으로 알려진 맨손체조와 부인운동법으로 알려진 요가로 인한 기초체력 증진까지.

식량 다각화로 굶어죽는 백성이 없어진 와중에, 이 모든 게 결합되어 영유야 사망률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졌다.

결국 이대로 몇년만 지나면, 베이비붐 세대마냥 이른바 개혁세대가 사회 전면에 등장할 텐데... 이걸 못 기다려서, 지금의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서 외국인 노동자를 끌고 오겠다고?

연오랑은 조선이 이렇게 간덩이가 부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뭐. 사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건데...’

조선의 경쟁상대는 무려 중국이다.

지금 조선은 땅덩이만 더럽게 크고, 사람은 턱없이 부족하지 않나.

당연히 인구증가는 필연적이고, 인구증가를 위한 제1의 전제조건인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어업과 축산을 장려하는 것도, 기를 쓰고 이앙법을 전파하려는 것도, 식량생산량을 늘려서 인구를 증가시키려는 의도였으니까.

‘허... 잠깐만. 이 자식들 진짜 많이 바뀌었네?’

그는 불쑥 든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눈을 번뜩이며 대신들을 살폈다.

하나같이 나이를 적잖게 먹은 노인네들인데, 꼰대처럼 구는 인간이 한명도 없다고?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하게 중화사상을 떨쳐내고 자주화가 이뤄진 것 같았다.

‘아무리 관학파가 현실과 밀접하다고 해도 그렇지. 그래도 유학자들인데... 정말 이렇게 근본유학자들의 씨가 말라버렸다고? 허...’

그는 자기가 바라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음에도, 왠지 모르게 놀람이 가시질 않았다.

차마 믿지 못해서 입을 열고 말았다.

“남주도의 원주민을 데려오는 것에, 거슬리는 게 없단 말이군.”

“그러합니다.”

연오랑의 물음에 이명균이 대표로 답을 했고, 그는 대신들을 한명씩 쭉 훑어 내려갔다.

하나같이 별말 없이, 눈을 피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걔들은 남방오랑캐들 아냐? 데려와도 진짜 상관없다고?”

“...”

“...”

그가 비웃듯이 질문을 던져보건만... 어째 반응이 신통치 않다.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이들은 극소수.

몇몇은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는 시큰둥한 표정을, 또 몇몇은 “이제 와서 그걸 따져? 네가 시작한 일이잖아?”라며 도리어 되묻는 표정을 짓고 있다.

후자가 사실 대다수였지.

“허...”

연오랑은 끝내 참지 못하고 허탈한 신음을 내뱉고 말았다.

‘와... 운석핵꿀밤의 스노우볼이 이렇게 크게 구른다고? 아닌가? 개혁의 스노우볼인가?’

그는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대감께서 무슨 뜻으로 말씀하는지 알겠으나...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그의 의문을 풀어주려는 걸까? 이맹균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시대가 시대니 만큼, 타민족, 타국가를 배격, 배척하는 건 전 세계적으로 당연한 거다.

다만 동양 특히 중국과 조선에는 선민사상이라 할 수 있는 중화사상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나는 위대한 문명인, 너는 무식한 야만인. 그러니까 너흰 오랑캐다.”라며 사람 취급을 안했던 거지.

헌데 운석핵꿀밤을 맞고 중화사상이 흔들리며, 문명인과 오랑캐의 구분이 흐릿해졌다.

여기에 개혁 이후 오랑캐 취급하던 몽골, 여진, 일본인이 무수히 귀화하면서, 조선인들의 생각. 특히나 오히려 배울 만큼 배운 관리들의 고정관념이 바뀌기 시작했다.

중국과 조선의 문명은 위대해서, 오랑캐 놈들은 감히 범접하지 못할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다.

헌데 이건 뭔가.

귀화교육당과 직업교육당에서 교육을 받고 난 오랑캐들은, 고작 몇 년 만에 조선인보다 더 조선인과 같은 모습을 보였다.

이건 지금껏 조선이 쌓아왔던 문명이 그만큼 보잘 것 없다는 걸까? 아니면 귀화교육당이 그만큼 잘 가르쳤다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실은 오랑캐가 조선인과 별반 차이가 없는 똑같은 사람이었던 걸까?

거꾸로 조선군이 중국을 박살내며 쑤시고 다니자, “뭐야? 대국, 상국하더니 이거 밖에 안 돼? 우리보고 동이東夷라더니, 지들도 별거 없잖아?”라는 생각도 함께 퍼져나갔지.

이 답을 알 수 없는 무서운 의문은 관리들의 고정관념을 박살냈다.

그리고 운석핵꿀밤 세대가 전면에 등장한 지금조정에선 “오랑캐? 그거 운석핵꿀밤 맞고 한물 간 소리 아니냐?”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는 거지.

“음... 그래서 남주도 원주민을 데려오는 건 문제 없단 말이군? 준비도 하고 있고?”

“그렇습니다.”

이맹균 뿐만 아니라 다른 부서장도 합세했는데, 말하는 꼴을 보니 연오랑 몰래 다 계획을 짜놨던 모양이다.

대략적인 개요는 평안도에 머무는 착호군에게 남주도 원주민 교육을 떠넘기고, 평안도와 황해도의 백성을 삼남으로 이주시켜서 비어 있는 농지를 경작하겠다는 것 같았다.

“흐음...”

연오랑은 설명을 들으며 세종의 눈치를 슬쩍 살폈고, 세종은 “내가 동의했다.”라고 말하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설명이 마무리 되자, 가마니처럼 가만히 구석에 박혀 있던 이인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녀석이 대체 여기 왜 껴있나 했는데, 어째 인구문제에 관련이 있나 보다.

“외국인 귀화에 대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보고를 받으신 분들도 계시겠지요.”

이인은 그렇게 말을 하고선, 세종의 눈빛 허락을 받고 입을 열었다.

“지난달. 아다이(아자이)가 제왕부와 함께, 색목인 노비를 팔기 위해 창주에 들렀습니다.”

“허헙!”

“음...!”

“허!?”

모두는 생각지도 못한 폭탄을 맞고, 하나같이 체면도 잊고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뭐? 색목인 노비?’

연오랑 또한 마찬가지.

날벼락도 유분수지, 이건 또 뭔 사건인지 모르겠다. 놀랄 거라고 했는데, 진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색목인 노비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머리칼은 붉거나 노랗고, 눈은 파랗고, 덩치는 조선인보다 조금 커 보였습니다. 생김새는 회회인과 비슷하나 피부는 더 밝았습니다.”

“몇이나...?”

“오십칠명입니다. 대부분 건장한 사내와 여인입니다.”

“음... 한성으로 데려온 겁니까?”

“예. 창주에서 호주까진 육로로, 한성까지는 해로를 이용했습니다.”

이인은 머뭇거림 없이 대답을 이어나갔고, 대신들은 이인과 연오랑, 세종을 번갈아가며 눈을 돌려댔다.

‘나를 왜 쳐다봐. 나도 몰랐다고.’

연오랑은 눈빛으로 외치면서 세종을 살폈고, 세종은 그런 모습이 재밌기라도 한들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미리 보고도 받고, 서역인들도 만나본 게 분명했다.

‘외모를 보면 완전 백인인데... 이란계열이야? 아니면 슬라브족? 설마 게르만족은 아니겠지?’

연오랑은 바쁘게 머리를 굴려댔다.

아이러니하겠지만, 옛날인 지금 시대가 조선중후기보다 더 개방적이고 서역인에 대한 거부감이 덜했다. 지금 역사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고.

까닭은 고려가 원나라와 하나로 엮여 있었기 때문.

원나라에서 몽골족 다음의 신분계급을 차지한 건 색목인이었다.

이 색목인은 그냥 서양인을 통칭해서 부르는 말이었데, 과거 몽골제국이 점령한 지역에서 데려온 무슬림 상인, 기술자, 관리들이었다.

인종으로 보자면 이란계 페르시아인들, 슬라브족, 아랍인들, 인도 북부의 아리아인 계통이 다 섞여 있었지.

이들은 고려 때에도 개성으로 심심치 않게 넘어와서 살았고, 원말명초가 되자 대이주가 시작됐다.

한족왕조인 명나라는 원나라의 앞잡이 역할을 하던 색목인을 그리 좋게 보지 않았기 때문.

이들의 선택지는 다 내놓고 명나라에 납작 엎드리는 것,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것, 그리고 옆 나라인 고려로 튀는 것이었다.

주원장은 진우량과 명옥진의 후손도 고려로 보내줬는데, 색목인이 고려로 가는 걸 신경이나 썼을까.

그리하여 꽤 많은 색목인, 이슬람교인 회회교를 믿는다고 해서 회회인이라 부르는 이들이 개성과 서해안 인근에 거주하게 된다.

이래서 일까? 지금 조정관리들은 색목인에 대한 거부감이나 놀라움이 크게 없었다.

원래 역사나 지금 역사나, 세종 즉위식 때. 회회回回송축이라고 해서, 회회인들이 궁궐에 들어와 코란 낭송이나 이슬람식 기도를 통해 국가의 안녕이나 임금의 만수무강을 축원을 했었고.

당장 집현전에도 회회인들이 섞여서 이슬람 역법과 과학을 기존역법에 결합해, 원래 역사보다 십여년 빠르게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을 완성했으니까.

이런 회회인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살며 집단생활과 이슬람교를 지켜나갔지만, 세종 말기 쯤 되면 무슬림 복장과 종교의식을 금지하면서 역사에 파묻히게 되지.

지금 역사에선 몰락의 시간이 더 빨랐다.

개혁 초창기부터 여진번호도, 지방호족도, 귀화인도 인정을 안 해줬는데, 조선 내지에 살고 있는 무슬림 공동체를 남겨뒀을 리가 있나.

조선불교 공의회를 시작하면서 이슬람교를 밀어버렸고, 이들 문화도 조선식으로 덧입히고, 조선인과의 혼인도 자유롭게 풀어버렸다.

십년이 지난 지금은 회회인 마을은 있지도 않고, 그냥 조선인이 되어 다른 귀화인들처럼 살고 있었지.

‘이러니 서양 도깨비라고 놀라지 않는 거겠지.’

아리아인 계열은 유럽인종과 거의 흡사하니, 회회인이라고 한들 인도남부나 아라비아남부 인종과는 거리가 조금 있으니까.

“대체 어디서, 어떻게 온 겁니까?”

“노비라면... 포로를 말하는 겁니까?”

“그게... 이야기가 조금 길어집니다.”

이인은 모두의 질문을 한 몸에 받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 몽골의 사정이 꽤 복잡해졌습니다. 크게는 3부류, 작게는 5부류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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