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304화 (304/538)

304. 챕터42. 개입하다 (2)

설령 사람이 아니라 돈으로 받아도 문제.

지금도 섬서 일파가 우위에 있는데, 그냥 놔두면 균형추가 무너져서 섬서가 몽골초원을 온전히 집어삼킬지도 모르는 일.

이건 조선 입장에선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섬서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섬서와 대립하고 있는 아자이를 키우기 위해서라도 색목인 노비를 아국이 받아들여야 하는 군요.”

“맞는 말일세. 아국이 데려가는 만큼, 섬서로 끌려가는 색목인이 줄어들 것 아닌가.”

“맞소. 어차피 우리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과하게 값을 치른다고 한들, 기껏해야 얼마 되지 않을 겁니다.”

몽골을 견제해야 한다는 것엔 한마음으로 동의하는지, 갑자기 분위기가 일변해서 죄다 색목인을 받아들이는 걸 긍정했다.

“설령 색목인 노비가 아니라고 해도, 어찌됐건 서역 물산을 들여올 수 있지 않습니까. 섬서 몽골일파가 중국과 거래하는 건 쉽지 않을 테니, 아국이 대신해서 서방무역에 대한 주도권을 쥘 수 있을 겁니다.”

한풀 더 떠서 무역과 유통을 장악하자는 의견을 꺼내는 이도 있다.

‘흐음... 이거 간단히 볼 문제가 아닌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연오랑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당장의 이득은 둘째치고, 아무도 모르는 먼 미래를 그려본다.

‘모스크바 공국은 러시아 제국으로 발전하잖아?’

대략 오십년 후. 모스크바 공국은 끝내 킵카크 칸국을 물리치고 속국 신세를 벗어나게 된다. 그리곤 유럽의 체제를 받아들이면서, 러시아 제국으로 가는 길을 닦기 시작하지.

‘아직 힘이 미약한 모스크바 공국을, 만약 지금부터 견제해서 무너뜨리면 어떻게 될까?’

뭐든 처음이 중요한 법이고, 기반만 제대로 다져놓으면 눈덩이는 저절로 구르는 법.

지금부터 고춧가루를 팍팍 쳐서, 러시아 제국으로 발전하는 싹을 밟아버릴 수 있다면 어떨까.

‘유럽의 역사가 뒤바뀌는 건 물론, 동아시아의 역사 또한 바뀌게 되겠지.’

다른 나라들이 바다로 진출할 때, 러시아 제국은 홀로 동쪽 시베리아를 개척해 나갔다. 그리고 수백년이 지난 후에는 동시베리아에 다다르게 되지.

연오랑은 시간이 흐르면 조선이 동시베리아로 진출해 강역으로 만들게 하려했는데, 이에 대한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바로 러시아 제국이었다.

‘너무 먼 미래라서 어쩔 수 없이 진행될 사건이라고 봤는데...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지금부터 어떻게든 조선이 개입해 루스공국을 약화시키고, 러시아인들이 타타르의 멍에라 부르는 몽골의 지배를 백년쯤 더 연장시킨다면... 러시아 제국이 어떻게 될지 감도 못 잡겠다.

‘설령 등장하더라도 힘이 잔뜩 줄어든 상태가 되겠지.’

가능성이 약한 건 사실이지만, 개입한다고 해서 손해 볼 건 전혀 없지 않나.

‘게다가 지금의 유럽은 별 볼일 없고, 특히나 동유럽과 루스 공국은 더욱 그렇잖아? 킵차크 칸국의 지배기간을 늘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지도 모르겠어.’

유럽에서도 대포를 써먹긴 하지만 아직까진 화약무기가 주력으로 쓰이는 시대가 아니고, 상업이나 공업이 아닌 농노를 통한 대농장에 주력하고 있는 동유럽 국가와 루스공국은 더욱 그렇다.

사정이 이러하니, 몽골의 도움을 받는 킵차크 칸국이 군사적 우위를 차지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거고... 만약 초원길 무역이 활성화되어 돈을 벌기 시작하면, 군사적 격차는 더욱 커지겠지.

‘특히나 동방 몽골족이 너무 멀쩡히 살아남았어.’

원래 역사라면 명나라의 이간책으로 오이라트와 북원잔당이 서로 싸우며 힘을 깎아 먹어야 했겠지만, 지금은 역으로 중국의 일부를 집어삼켜 힘이 불어난 상태.

아자이를 비롯한 몽골초원 또한 조선이 뒷배로 나서면서 힘을 비축했다.

조선이 동쪽을 꽉 잡고 안정화 시켰으니, 넘쳐나는 힘을 아낌없이 서방에 쏟아낼 수 있는 거지.

‘결국 우리가 개입하지 않아도 어차피 벌어질 일인데, 만약 우리가 지원하면 더욱 가속화되고, 효과적으로 루스 공국을 약탈하겠지.’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동방의 특산물을 대규모로 공급하는 조선에서 “우리가 다 사 준다. 색목인 포로를 있는 대로 데려와라!”라고 공표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 킵차크 칸국의 칸뿐만 아니라 다른 군벌들도 이 무역에 끼어서 한몫 벌려고, 벌떼처럼 달려들어 루스 공국을 뜯어먹을 거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머니까. 조선에 천명쯤 오려면, 못해도 5천명쯤은 포로로 잡아야겠지? 그만큼 루스 공국의 기반이 약해지는 거라고 봐도 무방할 거 같은데...’

연오랑은 그런 미래를 상상하며 긍정의 뜻을 내비쳤다.

다른 대신들은 여기까지 그릴 순 없지만, 당장 섬서 몽골을 견제하고 서방무역의 주도권을 쥐는 것만으로도 명분과 이득은 충분하지 않나.

색목인 노비를 데려오는 것에 하나로 뜻이 합쳐지고,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 판을 키우자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우려되는 점이라면 아다이의 세력이 너무 강해진다는 건데...”

“초원에 뿌리를 내린 이상 섬서 몽골일파만큼 크겠습니까. 그리고 커진다고 해도 아국보단 다른 몽골부족을 신경 쓸 겁니다.”

“맞습니다.”

누군가가 우려를 내비치자, 사방에서 반론이 쏟아져 나왔다.

인구의 증가는 식량생산량과 직결된다고 하지 않았나.

초원에 근거지를 둔 이상, 포로로 잡아온다고 한들 그걸 다 소화시킬 수가 없다.

기나긴 역사동안, 유목민족이 괜히 초지를 두고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게 아니지.

아자이는 훌룬호수, 부이르호수를 이용한 어업과 농업을 통해 유목민족답지 않게 많은 인구를 보유하고 있지만, 기후와 기술적 한계가 있기 때문에 무한정 성장하는 건 불가능하다.

“게다가 당장 아국의 물산이 없으면 지탱도 못하는 게 아다이 아닙니까. 아국을 적대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할 겁니다.”

“그렇습니다.”

“옳으신 말씀.”

누군가 자랑스럽게 말을 하자, 다들 한마음이 되어 입을 맞췄다.

처음에는 “몽골에게 도움을 왜 주냐. 저놈들은 나중에 뒤통수 칠 놈들이다. 물건은 안파는 게 낫다.”라고 말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돈맛을 보고, 갑의 위치에 오른 걸 느끼기 무섭게 다들 입을 싹 씻었나 보다.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아자이를 비롯한 몽골세력이 조선과 무제한적인 무역을 시작한 이상. 빠져나갈 수 없는 수렁에 빠졌다.

조선이 뿌린 생필품과 돈이라는 독은 너무나 강력해서, 거래가 끊어지면 난리가 나는 건 조선이 아니라 몽골일파다.

차라리 예전 명나라나 요동처럼 제한적인 무역을 했다면, 없이 살든가 아니면 통제라도 될 텐데... 이미 너무도 많은 사람이 꿀맛을 보지 않았나.

“앞으로 조선과 거래를 중지해라.”라고 말을 한들, 봉건적 체제가 남아 있는 한 휘하의 몽골부족이 쉽게 따를 리가 없다.

거꾸로 “아자이가 요새 너무 까부는데? 자꾸 이러면 거래 안한다?”라고 조선이 한마디 만해도, 분명 밑에서 온갖 불만이 치솟아 아자이의 통치를 흔들리게 만들 거다.

“허면 아다이와 제왕부가 하나로 합쳐질 위험은 없소? 지금도 아다이를 비롯한 북원잔당이 창주로 오기 위해선, 제왕부의 영역을 통과해서 함께 오고 있지 않소?”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

누군가의 물음에, 이인은 단호하게 부인했다.

“뭘 믿고 그리 단정하냐?”라고 묻듯 대신들이 눈에 물음표를 그리자.

“우리 입장에서야 다 같은 몽골이지만, 그들은 뿌리부터 다른 이들입니다. 이득을 위해 손을 잡을 순 있어도, 머리를 숙이고 들어갈 사이는 절대 아니지요.”

창주에 머물면서 보고 들은 게 많은 이인은, 그렇게 서두를 떼고서 설명을 이어갔다.

주원장이 북원을 무너뜨릴 때, 황금씨족의 혈통도 함께 끊어졌다. 아자이는 자신도 황금씨족의 피를 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인지 아닌지는 누구도 알 수 없지.

그에 반해 제왕부는 칭기즈칸의 형제로부터 이어지는 동방3왕가의 후신이다. 그리고 동방3왕가는 두들겨 맞긴 했지만, 무려 원나라와 파워게임을 할 정도로 근본 있는 집단 아닌가.

제왕부 입장에선 자신들이 힘이 없어서 함께하는 거지, 아자이가 좋아서 함께 하는 게 아니다.

“올량합 3위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발 달린 솥처럼 서로를 견제하고 있는 상황이니, 하나가 되는 건 결코 쉽지 않을 겁니다.”

우량카이 3위도 동방3왕가의 후신으로, 명나라에게 두들겨 맞고 밑으로 들어가면서 우량카이 3위가 됐다. 그에 반해 제왕부는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서, 명나라의 요동 공략 때에도 살아남았지.

원래 역사에선 영락제의 막북원정 때 쓸려나가지만, 지금은 없던 일이 됐으니까.

그러니 경쟁자이던 제왕부가 우량카이 3위에게 고개를 숙이는 건 쉽지 않고, 아자이와 우량카이 3위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 치고 박고 싸우던 사이.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며, 바로 옆에 있는 무서운 호랑이. 조선의 눈치를 보면서 숨을 고르고 있는 상태 아닌가.

“올량합 3위 또한 아국과 거래하면서 이득을 많이 봤으니, 아국과 적대하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 초원길이 열린다면 오히려 서로 화친하고 자신도 끼어들기를 바라지, 적대해서 초원길을 끊으려 하진 못할 겁니다.”

“우리와 척을 치면 힘들어지는 건 자신들이니, 우리가 초원길에 적극 개입하면 할수록 오히려 북방은 안정되는 거군?”

“예. 그렇습니다.”

“그렇게 평화를 누리며 돈을 벌게 되면, 칼은 무뎌지겠지.”

“그렇지 않겠습니까?”

누군가의 말에 이인은 히죽 웃으며 말을 끝냈고, 다들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잠시 침묵하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좋다. 그럼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쪽으로 계획을 짜보지. 뭐가 됐든 아국에는 이득이 될 테니까.”

“예. 전하.”

“알겠사옵니다.”

모두가 긍정을 표하자 세종이 마무리 지었고, 다들 냉큼 고개를 숙였다.

다음 안건은 뜬금없이 원길이 포문을 열었다.

‘비밀이라더니... 미리 입을 맞췄고만?’

연오랑은 눈을 씰룩거리며 원길을 슬쩍 살폈다.

제주부사가 왜 직접 왔나 했더니, 인구문제에 관해 일본과 관련한 사안이 있는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제주에서 시행되고 있는 무역에 대한 사안을 줄줄이 읊으며, 은근슬쩍 귀화인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게나 많이 귀화인이 왔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대략적으로 일본인이 절반으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한족 및 남방소국의 무역선원들이었습니다.”

“음...”

“일본이라...”

대신들은 말을 흐리며, 다들 바쁘게 머리를 굴려댔다.

일본에 대한 감정이 그리 좋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평화로운 시절이 지속된 지 십년이 넘었다.

대마도를 날려버린 건 일본에게도 충격이었지만, 조선에게도 나름 큰 충격이었으니... 새로운 관계를 모색할 시간은 충분히 있었지.

‘확실히... 예전과 반응이 다른데?’

연오랑은 조용히 속닥거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대신들을 티 안 나게 살펴봤다.

‘왜놈들이라고 깔보는 이들은 없어 보이네.’

남방오랑캐라고 무시하던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허나 몽골마저도 다르게 보는 판국에, 바로 밑에 있는 일본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 건 당연한 말.

‘역시... 거래를 하면서 고정관념이 깨진 게 분명해.’

지금까지 조선이 생각하는 일본은 미개하고 낙후되고, 살기 힘들어 노략질이나 하는 망종집단이라고 봤다.

솔직히 지금까지 해온 짓이 그렇기도 했고.

헌데 제주에서의 무역을 지켜보니, 마냥 무시하고 얕잡아볼 나라가 아닌 게 확실해졌다.

면포와 자기그릇도 못 만들어서 미친 듯이 사가는 중인데, 이걸 모두 유황, 동, 은등의 광물자원. 그것도 원석으로 대금을 지불하고 있지 않나.

다른 건 몰라도... 일본이 조선 못지않게 광업과 상업이 발달했고, 무역적자를 해소할 만큼의 광물자원을 보유하고 채굴할 수 있다는 사실은 확실히 증명됐지.

‘조선이 급속도로 커가면서 그만큼 많은 잉여생산물이 나왔는데도, 그걸 따라잡으면서 다 사들이고 있잖아? 아마 일본도 원래 역사보다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을 거야. 특히나 광업 분야에선 말이야.’

연오랑은 일본의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봤다.

이 시기에는 조선과 일본의 인구와 경제력이 거의 엇비슷했다.

이들도 강남지방에서 이앙법을 들여왔고, 조선보다 기후가 좋아서 훨씬 빠르게 전파됐지. 동시에 상업도 나름 인정한 편이라서, 임진왜란이 벌어질 때쯤 되면 조선과 일본의 체급이 티가 날 정도로 확 벌어지게 된다.

허나 지금 역사에선 개혁이 진행되면서 많이 달라졌고, 지금 당장은 조선이 일본을 훨씬 앞지른 상태.

다만 일본 또한 중국으로부터 손쉽게 자원과 문화, 서적 등을 수입할 수 있으니, 원래 역사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건 분명할 거다.

“하여 이번에 시범적으로 제주와 의주, 조차지에서 은행을 시범적으로 운영할 계획이외다. 그리고 효용이 보인다면, 일본으로 진출을 해야겠지요.”

“음...?”

“흐음. 은행이라.”

조폐부장 허조의 말에, 다들 행간을 읽고 머리를 굴려댔다.

연오랑 또한 마찬가지.

‘흐음... 재밌게 됐는데? 일본에 직접 개입할 생각인 거군? 그것도 은행을 이용해서 말이야.’

연오랑은 자기도 모르게 세종을 바라봤고, 세종 또한 기다렸다는 듯이 그와 눈을 마주치고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식으로 한단 말이지? 나쁘지 않아.’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짓고선, 그 또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시는 분들은 아실 테지만, 제주의 무역항이 열리면서, 일본의 세력구도가 변했소이다.”

외교무역부장이자 일본통이라 할 수 있는 이예가 허조의 말을 받아 입을 열었다.

제주는 일본의 구주와 가깝고, 구주는 안 그래도 중국무역을 독점하고 있는 상태다.

당연히 구주의 영주와 영지만 부유해질 수밖에 없고, 이에 대해서 무로마치 막부나 내륙의 영주들은 심기가 불편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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