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 챕터42. 개입하다 (5)
“...”
“아국의 출항지는 아무래도 동래가 좋지 않겠습니까? 대마도는 여전히 회복하는 중이고, 굳이 대마도를 거칠 필요는 없으니까요.”
이예가 대마도 이야기를 꺼내자, 대신들의 시선이 슬쩍 연오랑에게 닿았다가 스쳐지나갔다.
연오랑이 대마도를 불태운지 십년이 지났고, 이제 슬슬 태고적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나무들도 새로 자라고, 꽤 많은 수의 동식물이 죽었지만 어찌됐건 복원이 어느 정도 된 상태.
일본이 대마도를 완전히 포기한 후부터는 조선이 본격적으로 진출했는데, 그렇다고 이곳에 관아가 들어선 건 아니었다.
남해에서 출항한 어선들이 물고기를 잡으면서 잠시 머무는 곳에 불과하달까. 그럼에도 그 수가 적지 않아서, 옛 훈내곶 지역에 임시 거처, 숙소쯤이 만들어져 있는 상태였다.
문제라면 혼슈 동북부로 가려면 굳이 대마도를 거쳐서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 게다가 신형전함이면 반나절이면 오갈 수 있는 대마도를 굳이 들릴 까닭이 없었지.
“하여 대마도 개발은 이번 일과는 별개로 취급할 사안입니다. 그곳에 관아를 짓고 육군과 해군을 주둔시키려면 준비할 게 많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당장 할 순 없는 노릇이지요.”
“일 리가 있소이다.”
“음. 하기야 허허벌판이 되어버렸으니...”
“설령 대마도를 개발한다고 해도, 전처럼 많은 사람을 살게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과거 왜구가 날뛴 것도 대마도의 농지에 비해 주민이 너무 많아서 그랬던 이유도 있으니 말입니다.”
대마도 이야기가 나오자, 다들 하나둘씩 의견을 보탰다.
착호군 소속 지리감은 그 효용성을 인정받고, 예조 관상감觀象監등의 천문지리를 담당하는 속아문과 합쳐져 택리부로 독립했다.
이치들이 대마도를 실증적으로 조사한지 오래라서, 다들 아는 게 많은 모양이다.
“그래도 대마도에는 은광이 있지 않습니까. 채굴한 지 오래 되서 채산성이 떨어지긴 했어도... 전前 대마도주가 있던 시절에도 운영됐던 광산이니, 그건 챙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소만 은광을 위해서 대마도를 개발하는 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일 아니겠소. 민간 광산기업에게 맡기면 될 일이외다.”
“그들을 어찌 믿겠습니까. 관리하지 않으면 뒤로 어떤 수작을 부릴지 모르니, 거창하진 않더라도 작게나마 관리를 파견하는 게 옳습니다. 또한 아무리 직항로를 따라 움직인다고 해도, 적간관과 그 일대의 항구로 가기 위해선 대마도를 거쳐 가야 하지 않습니까.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대마도를 재건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이야. 진짜 많이 바뀌었네, 이젠 대마도가 나름 쓸만해 보인단 말이지?’
연오랑은 삼천포로 빠져서 열변을 토하고 있는 대신들을, 흐뭇한 눈으로 지켜봤다.
“그 쓸모도 없는 섬을 왜 가지냐.”라고 난리를 피웠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적극적으로 차지하고 싶어졌나 보다.
‘다만 확실히 대마도는 예전에 비해 중요도가 떨어졌어. 그렇다고 일본과 조선 중앙에 낀 요충지를 그냥 놔두기도 뭐하단 말이지. 은광이야 뭐 있으면 좋긴 한데, 수지타산을 따져보고 들어가야겠지. 지금 당장 급한 것도 아니고.’
연오랑이 생각해도 계륵이니, 대신들이 저렇게 열변을 토하는 것도 이해가 됐다.
“대마도 처우에 대해선 따로 논하시지요. 지금 대마도에 관한 논의를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
누군가 그리 말을 하며 찬물을 끼얹었고.
“허면 무역관을 연다고 치면, 그곳에서 귀화인을 받아들일 계획인 겁니까? 은행은 어쩌실 겁니까. 아직 금고 보유금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삼천포로 빠진 물길을 되돌려주자, 이예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고선 다시 입을 열었다.
“무역관 문제부터 말씀드리자면, 무역관은 대명과 막부를 동시에 공략할 계획입니다. 더불어 제주의 무역 또한 막부가 한발 걸치게 만들 생각입니다.”
“...?”
이예의 뜻 모를 말에 다들 눈에 물음표가 떠올랐고, 그는 어울리지 않게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막부에게 아국과 거래할 자격이라고 할 수 있는 무역허가권을 넘겨줄 생각입니다.”
“무역허가권이라...”
“제주항에 통제를 건다라...”
이예의 말에 대신들의 머릿속이 팽팽 돌아갔다.
예전 명나라가 있을 때도 감합권이 있었으니, “무역허가권이 뭐 별거냐?” 하겠지만... 깊이 들어가면 일본 내부에서 태풍을 일으킬 수 있는 사안이다.
‘오... 이건 세종 형의 뜻 같은데?’
연오랑은 자기도 모르게 슬쩍 세종을 바라봤고, 아니나 다를까 세종은 연오랑과 눈을 마주치고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가 시킨 게 맞다고 말하고 있다.
‘내가 말한 걸 잊지 않았나보네.’
그는 무엄하게도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어, 냉큼 세종에게 맞장구를 쳤다.
‘개판이 된 일본을 어떻게든 정상국가로 돌려놔야 하지 않겠어.’
연오랑은 절로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과거. 여몽연합군이 일본을 공격하자, 가마쿠라 막부는 하급무사들에게 동원령을 내려 일본 전역에서 무사를 모아 맞서 싸웠다.
다행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만, 운 좋게 태풍 덕에 2번에 걸친 여몽연합군은 자멸하고 말았지.
문제는 동원한 무사들에게 보상을 해줘야하는데... 일본을 지키기 위한 수비전에,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여몽연합군이 자멸하지 않았나.
중세유럽의 기사와 마찬가지로, 일본무사들도 싸웠으면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아야 했는데... 권익을 내주고 싶어도, 가마쿠라 막부는 내줄 게 없었다.
뭐 얻은 게 있어야 나눠주지.
결국 가마쿠라 막부와 불만에 찬 무사들을 결집시킨 무로마치 막부간의 싸움이 벌어져, 무로마치 막부가 승리하게 된다.
그렇게 잘 풀리나 했는데... 이번엔 천왕이 둘로 쪼개져 남조와 북조로 나눠져 싸움을 시작.
무로마치 막부는 북조를 이끌며 남조를 무너뜨려야 했지.
이런 상황에서. 각 지방에는 대호족이라 할 수 있는 다이묘가 존재했고, 이들은 중앙조정인 막부에게 행정권을 위임받아 지방을 통치하고 하급무사를 관리하고 있었다.
허나 내전이 깊어지니 어쩌겠나.
무로마치 막부는 조금이라도 많은 다이묘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행정권에 사법권, 군사권, 조세권등을 덕지덕지 붙여서 던져주니... 지방호족이었던 다이묘가 진짜 실권을 가진 영주로 변모하게 되지.
그리하여 봉건제와 중앙집권제가 혼합된, 괴상한 일본 정치체계가 만들어지게 됐다.
그리고 수십년이 지난 지금. 막부는 자기가 키운 호랑이를 다시 때려잡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세종이나 대신들도 이제 얼추 아는 사실인데... 미래가 어지럽단 말이지.’
그는 임진왜란이 일어날 걸 알고 있지만, “수백년 후에 일본군 수십만명이 쳐들어온다!”라고 말해봐야 미친놈 소리 밖에 더 듣겠는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전국시대의 원인을 찾아 제거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고, 그 원인은 수십년 후에 벌어질 오닌의 난.
문제는 오닌의 난은 일본 체제의 한계와 모순점이 부딪쳐 일어난 사건이고, 일본 3대 악녀라 불리는 히노 도미코의 영향이 컸다는 점.
연오랑은 히노 도미코가 누군지도 모르고, 어느 가문인지도 모르는데 개입을 할 수가 있나. 게다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인물 아닌가.
‘이러니 내가 어째야겠어. 아예 판을 뒤집어 엎어버리는 거지.’
연오랑은 이런 속내를 품고 일본에 목줄을 채울 방법을 제안했고, 세종 또한 동의하고 계획을 짰는데... 그게 바로 저 무역허가권이었다.
“지금까진 제주에서 대명들이 자유롭게 무역을 했는데, 이젠 막부가 통제를 한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막부에서 아국과 무역할 수 있는 대명을 선발하는 겁니다.”
“음... 분명 문제가 터질 텐데.”
자기 걸 빼앗으려고 들면, 당연히 가만있을 수 없는 법.
“허나 그들이 어쩌겠습니까. 아국이 거부하면 그만이지 않습니까. 또한 구주의 대명들이 폭리를 취하고 있는 걸 아국조차 알 정도인데, 일본의 다른 대명들이 그들에게 동조하겠습니까.”
이예는 걱정할 것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반론을 떨쳐냈다.
“그렇겠구려. 막부 또한 자신의 손을 벗어나려는 구주의 대명들이 마음에 들지 않을 테고 말입니다.”
“예.”
“하긴... 구주의 대내전이나 소이전이 아국에 입조를 청하고 조공을 바치려고 하는 게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지요.”
아직도 예조 판서를 역임하고 있는 권홍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조선으로 치면 평안도 김씨 가문이 중앙조정을 무시하고, 명나라에 조공을 바치는 꼴 아닌가.
조선관리의 눈으로 봤을 때에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고, 그만큼 일본이 개판이라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예전이야 일본에 관심이 없었으니 “알았으니까 까불지 말고 이거 먹고 떨어져라.”라고 대충 넘겼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전혀 달라졌으니까.
“막부의 권한을 강화하려는 것이군요.”
“맞습니다. 정이대장군인 족리 씨가 대명들을 관리하기 위해 노력해 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를 도와주는 게 아국에게도 이득이 될 겁니다.”
“무역항 건설이나, 조차지, 일본 귀화인 문제까지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음...”
“흐음.”
‘좋아. 제대로 가고 있고만.’
연오랑은 머리에 김을 뿜어내는 대신들을 보며, 속으로 실실 웃고 말았다.
전국시대의 개막식이 된 오닌의 난. 이건 조선으로 치면 대충 세조와 단종이 싸운 것과 비슷했다.
문제는 후다닥 싸워서 끝나면 그만인데... 다이묘들의 힘이 너무 강력하다보니까 쇼군의 말을 안 듣고, 싸웠다가 말았다가를 반복하며 장장 십년 넘게 교토에 눌러 앉아 교토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것.
게다가 교토로 다이묘들이 다 몰려갔으니, 권한을 위임받아 지방에 머물고 있던 2인자들이 가만있었겠는가. 하극상이 사방에서 일어나게 된다.
여기에 상인세력을 비롯한 신세력과 일본판 진골귀족이자 문신가문인 공가公家, 토지에 기반을 둔 지주가문인 다이묘등의 구세력이 충돌.
이로 인해서 슈고 다이묘들이 몰락하고, 온갖 출신이 뒤섞인 센고쿠 다이묘가 등장하면서 전국시대가 펼쳐진다.
‘사실 이게 일본에서만 일어난 사건이 아니지. 전 세계가 죄다 상공인으로 대표되는 신세력과 토지귀족으로 대표되는 구세력의 충돌로 몸살을 앓게 되잖아?’
유럽 부르주아의 대두나, 명청시대의 상인 성장이나, 조선중후기의 상인 성장이나.
전부다 같은 맥락으로 벌어진 변화고, 이 혼란을 극복하며 근세국가로 나아가게 된다.
이 흐름에 벗어난 국가가 있다면, 아마 조선이 유일하지 않을까?
‘내가 괜히 기업을 키워서, 양반을 찍어 누른 게 아니란 말이지.’
개판이 될 일본의 사정을 비춰보니, 그는 스스로 생각해도 뿌듯했다.
조선은 신세력과 구세력의 싸움이 벌어지기도 전에, 기업을 키워서 구세력을 전부 신세력으로 바꿔버린 거니까.
서로 격렬하게 싸우지도 못하게, 한계단 위에 올라선 왕실과 조정의 힘으로 구세력을 사정없이 찍어 누른 거지.
‘그리고 이걸 막부에게 그대로 적용시키는 거다.’
막부의 힘이 점점 강화되어 통제력을 갖춰간다면, 적어도 원래역사처럼 오닌의 난이 내전으로 번질 가능성이 줄어들 테니까.
설령 싸움이 벌어지더라도 다이묘들이 죄다 몰려와서 거창하게 내전을 펼치는 게 아니라, 조선처럼 후다닥 싸우고 끝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오래 싸우면 싸울수록 손해가 깊어지면, 누가 싸우려 하겠어.
‘막부가 내어줄 게 많으면 많을수록 다이묘들이 말을 잘 들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막부가 힘을 키운다면 다이묘들도 자신의 권력을 조금 내어주고 이권을 찾으려 하겠지.’
“그렇게 무역권을 잘 활용한다면, 막부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대명을 밀어줄 수 있을 겁니다.”
“가능성이 있소이다.”
이예의 말에 대신들은 다시금 고개를 끄덕여댔다.
“야. 군사권 가지고 있는 거 넘겨. 내가 직접 보호해준다. 대신 이제부터 네가 제주에 가서 무역하는 걸 허락한다. 어때? 할래?”라고 막부가 제안한다면, 다이묘들 입장에선 고민되지 않을까?
분명 누군가 하나를 잃고 하나를 얻는 선택을 하게 된다면, 그 다음부턴 일이 쉽게 풀려갈 거다.
그리고 군사권을 넘기면, 도미노마냥 다음으로 사법권 등이 넘어갈 수도 있는 거고.
돈맛을 보기 시작하면 정신 못 차리는 건,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니까.
“그리고... 어쩌면 생각보다 분란이 커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국과 거래하는 건 통제할 수 있지만, 중국과 거래하는 걸 막부가 막을 수 없지 않습니까.”
“음...”
“... 아! 그럼 구주의 대명들은 기존처럼 중국과 거래를 이어갈 테니 어쨌든 수익을 보존할 수 있고, 대신 다른 대명들은 아국과 관계가 깊어지겠군요.”
친조선파가 절로 생기는 일 아닌가.
다이묘들이 막부의 통제를 받더라도, 그게 다 조선의 힘으로 이뤄진 걸 모를 리가 없다. 막부가 허락해도 조선이 허락을 안 하면 제주에 들어오지도 못할 테니까.
“하지만 따지고 보면 절강연맹도 아국의 제안을 마냥 무시할 수 없을 테니...”
“그렇습니다. 결국 아국의 손에 일본 대명들의 무역이 달려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누군가 음흉한 미소를 숨기지 못하고, 실실 웃으며 말을 토해냈다.
일본의 돈줄을 쥐고 흔들 수 있다는 생각에, 아직 벌어지지도 않았건만 벌써부터 신난 모양이다.
“막부와의 협상이 끝나면, 큰 문제없이 무역항 문제도 해결 될 겁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소.”
“당연한 말. 그 어떤 대명이 아국과 직거래를 하는 걸 거부하겠소이까.”
다음 계획을 꺼내자, 대신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외쳐댔다.
‘맞는 말이야.’
막부가 무역권을 쥐고 흔드는 건 규슈에 국한될 거지만, 조선이 혼슈에 진출하는 건 막을 수가 없다.
조선이 “무역허가권을 넘겨줄 테니, 우리가 진출하는 거 막지마라.”라고 말하면 막부가 거부할까? 절대 그럴 리가 없다.
또한 막부가 “야. 너희가 안 쓰는 어촌을 떼어내서 조선에게 주면 무역권을 허가 한다. 어때? 할래? 안하면 다른 영주한테 간다?”라고 말하면 어떤 다이묘가 거부할까.
혼슈 북동부에 무역항이 생기는 건, 모두가 바랄 테니 순식간에 진행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