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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소드 마스터-308화 (308/538)

308. 챕터42. 개입하다 (6)

“그리고 아국물산을 사기 위해 대명들이 지불해야할 대가는 일본의 모든 물산과 백성이 되겠지요.”

“오...”

“과연!”

음모 아닌 음모를 꾸미고 있는데도, 다들 좋아서 난리다.

‘이것도 분명히 될 거야. 미래에는 일본을 비하하며 중세 잽랜드라고 불렀잖아? 지금 역사에선 진짜 중세귀족으로 만들어주지.’

연오랑은 속으로 피식 웃으며, 열심히 머리를 굴려봤다.

일본과 조선은 체급차이는 그리 안 크지만, 문화,경제,기술적으로는 차이가 많이 났다.

원래 역사에서도 이랬는데, 지금 역사에선 더 말할 필요도 없지.

단적으로 일본은 아직도 면포와 도자기조차 생산을 못하고 있지 않나. 조선의 밥그릇조차 귀물이라고 여기며 사들이는 게 일본이다.

헌데 조선이 중국과 무역을 하면서, 일본의 수출품이 대거 무용지물이 됐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니 어쩌겠나.

일본은 어떻게든 자국물산을 조선에 팔아넘겨야 했고, 이로 인해서 광물자원의 수출이 급증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와선 유황, 동, 은, 주석 등이 주 수출품이었고, 동남아시아산 소목蘇木과 같은 염료나 향료, 물소뿔 같은 물건은 조선이 직접 구입했지.

원래 역사에서 조선중후기때에 벌어졌던 일이, 지금부터 시작된 거다.

‘단순히 무역불균형 뿐이겠어? 이제 사람이 문제가 될 거야.’

연오랑의 생각에 맞춰, 이예가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귀화인 또한 그렇습니다. 막부나 대명 모두 휘하의 장원무사가 껄끄러운 건 마찬가지입니다. 아국과 무역이 활발해지면 질수록 상인세력이 커질 게 분명, 토지에 기반한 장원무사들을 어떻게든 처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음...”

싸움이 없으면 칼잡이는 힘을 잃기 마련이고, 막부는 자기 빼고 다른 다이묘들의 힘. 특히 군사력이 빠지기를 바란다.

다이묘도 마찬가지. 자기가 직접 토지를 경영하는 게 좋으니, 중간에 껴서 돈만 까먹는 장원무사들을 치우길 바란다.

문제가 되는 건, 자신이 군사력을 줄일 때 다른 영주가 공격해 오는 건데... 무역항을 통해 조선의 뒷배를 빌릴 수 있지 않나.

군비를 줄여서 자기 사치하는데 쓰고, 영지 개발하는데 쓰는 거지.

“또한 일본도 이제 이앙법을 시작하고 있고, 이앙법을 시행하면 사람이 남는 걸 다들 알지 않습니까. 안 그래도 빈민들이 구주로 흘러들어가는 걸 대명과 막부 모두 우려하고 있으니, 아국이 그 해결책이 될 겁니다.”

“땅이라...”

“하긴, 전조 때도 그러하지 않았소.”

“단순히 이앙법 때문이겠소. 만약 대명의 힘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일본 자영농은 밀려날 수밖에 없을 거외다.”

‘그렇지. 잘들 하는구나.’

연오랑은 그의 생각을 대변하는 대신들을 속으로 열심히 응원했다.

무역항이 개설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눈에 훤히 보인다.

영주는 선진문물인 조선물품을 구입하기 위해 어떻게든 돈을 짜낼 거다.

가장 쉬운 방법은 세금을 많이 걷는 거고, 이걸 위해선 장원을 해체하고 자신의 직영지로 만들고, 자영농을 몰락시켜 농노화 시키는 거다.

이거 말고 광산을 개발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 또한 인부보다는 농노화시킨 영지민을 부리는 게 더 싸게 먹히는 거겠지.

‘상인도 마찬가지. 우리가 개입하면, 영주를 진짜 귀족으로 만들어줄 수 있어.’

무역항이 열려서 거래가 활발해지면 당연히 상인세력이 크겠지만, 만약 그 상인이 다이묘의 가신이 되도록 만들면 어떨까.

자연스럽게 군사호족인 다이묘가 상인호족으로 변모하게 될 터, 장원무사들의 입지는 더욱더 줄어들게 될 거다.

‘이런 식으로 다이묘가 변화하고, 일본 사회구조가 바뀌게 되면 잉여인력이 넘쳐나게 되겠지.’

땅. 언제나 땅이 문제다.

땅은 한정되어 있는데 사람이 불어나면,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터지지 않겠나. 이건 전 세계를 막론하고 생기는 문제고, 고려와 조선 또한 마찬가지로 겪었던 문제다.

칼잡이들은 백수가 될 거고, 자영농은 농노냐 떠돌이냐를 고민하게 될 거고, 이앙법이 진행되면 자연스럽게 농부들 또한 수가 줄어들게 될 거다.

“골칫거리가 된 이들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코앞에 있지 않습니까.”

“무역항에서 대대적으로 귀화인을 받아들인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일본은 사회를 어지럽힐 빈민을 치우고, 아국은 필요한 인력을 얻게 되지 않겠습니까. 서로가 원하는 거니, 틀어질 일은 없겠지요.”

“그렇게 한번 거래를 하고 나면... 대명들도 사람이 돈이 된다는 걸 알게 될 테고.”

“사치를 원하거나, 돈을 더 벌길 원하는 대명이라면 필요 없는 영지민을 직접 아국에 팔지도 모르겠군요.”

“그렇습니다.”

이예는 그리 말을 끝마쳤고, 다들 요상하게 흐르는 계책임에도 충분히 현실성 있는 계책에 눈을 번쩍 떴다.

‘이러면 어떻게 되겠어. 진짜 중세귀족으로 계속 멈추게 되는 거지.’

연오랑은 속으로 실실 웃어댔다.

사람이 있어야 개발을 하든, 도시를 만들든, 개척을 하든 할 것 아닌가.

무조건 생겨나는 잉여인력을 조선이 계속 뽑아먹으면, 일본은 항상 그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게 과연 영지민 입장에서 나쁜 거냐?”라고 묻는다면, 답하기가 쉽지 않다.

‘원래 역사의 조선이 그랬잖아? 나라는 크게 발전하지 못했지만, 어찌됐건 전쟁 터져서 죽고 죽는 그런 난리는 없었으니까. 먹고 살기 힘든 건 맞긴 하지만, 평화로웠던 게 사실은 사실이지.’

이렇게 일본 전체적인 힘을 줄이고, 막부의 권한은 강화하면서, 다이묘들은 상인 겸 지주로 변모시킨다.

이 시절이 한세대만 지나도, 분명 원래 역사의 일본과는 꽤나 달라진 모습을 보이게 될 거다.

“특히나 무사들을 정리하는 건, 아국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왜구라고 해봐야 이제 뢰호내해(세토내해)에만 남아 있는 수준이지만, 어찌됐건 무사가 장원을 잃으면 부랑자나 도적, 왜구, 해적이 되지 않겠습니까? 아국이 그들을 흡수한다고 하면, 막부와 대명에선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겁니다.”

“헌데 그들이 아국에 잘 적응하겠습니까?”

“적응 못할 것도 없지 않습니까. 아국은 아직 개척과 개간하지 못한 북방 땅이 많고, 다른 직업을 구하기도 쉬워졌습니다. 설령 무사들이 칼을 들길 바란다면 군부로 빨아들이면 되겠지요.”

“음...”

“그래도 적응을 못하면, 전처럼 해결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예는 무서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고,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안 들으면, 여진족을 그러했듯 중국에 노예로 팔아버리겠다는 뜻이니까.

‘좋아. 이건 확실히 효과를 볼 거야. 설령 전국시대가 벌어지더라도, 원래 역사보다 훨씬 약한 형태로 진행되겠지.’

연오랑은 아무도 모르는 미래를 떠올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시기의 일본이 중세유럽과 흡사하다고 하지 않았나. 군사문제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사무라이를 무사로 칭하고 대충 칼잡이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 시대의 진짜 무사는 말 타고 활 쏘며 싸우는 이들이다.

일본갑옷이 조선인의 눈에 괴상하고 화려하게 보이는 건, 이게 가벼워서 말을 타기 쉽고, 화살을 막기에 적합하고, 눈에 확 띄어서 자신의 공훈을 쉽게 알리기 위해서다.

심지어 나노리라고 해서 “나는 어디 가문의 누구다.”라며 자기소개 및 위세를 하고서, 전쟁을 시작하는 게 예법일 정도.

다만 이 시기쯤에는 일본 내에서 말 수급이 힘들어져서, 정예기병이었던 무사도 보병으로 전환이 이뤄지게 되지.

또한 중세기사가 종자를 비롯한 맨앳암즈를 끌고 다녔던 것처럼, 장원무사도 비슷한 정예병을 끌고 영주에게 협력했다.

전국시대에 활약한 보병이자 최하급무사인 이시가루는 이 시기엔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고, 기껏해야 무사층의 수발을 드는 농민군과 크게 다를 게 없지.

즉. 싸우는 사람과 일하는 사람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는 거고, 지금 당장은 병력조차도 크게 많지 않다는 뜻.

훗날 전국시대의 군대를 이룰 허리들이 조선으로 쫙 빨려 들어가면, 일본의 군사력이 저절로 하락하지 않을까.

물론 영지를 지켜야하니 무작정 무사층이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만, 에도시대에 평화기가 찾아올 때처럼 무사층이 줄어드는 건 분명한 사실일 거다.

“여기에 만약 아국이 막부를 밀어주는 걸 넘어, 군사적으로도 협력하면 어찌되겠습니까. 대명들이 감히 아국을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

“그럴 리가 없겠지요.”

“그러합니다.”

이예가 자신만만하게 말을 쏟아내자, 하나같이 목청을 높여댔다.

조선은 10년간 벌써 큰 전쟁을 3번이나 치렀다.

동아시아 최대 수군진인 천진을 박살냈으며, 산동에 상륙해 강남을 휩쓸었다.

이게 뭘 뜻하겠는가.

일본 다이묘의 항구나 수군을 박살내는 건 여반장이라는 뜻이고, 산동보다 훨씬 가까운 일본본토에 상륙하는 게 어렵지 않다는 뜻.

게다가 그저 가까운 규슈만 목표가 되겠는가. 조선전함이 돌아다니는 걸 다 봤으니, 방비가 전혀 되지 않은 혼슈에도 상륙할 수 있다.

대마도를 불살라버린 기억이 생생히 남아 있는 다이묘들에게, 조선군이 상륙한다는 건 자기 영지가 쑥대밭이 되어 풀뿌리조차 남지 않는다는 뜻.

조선이 남중국해로 진출하면서 괜히 왜구와 해적이 숨어들어간 게 아니니, 조선군과 싸우고 싶은 다이묘는 아무도 없을 거다.

“그럼 남은 건 은행뿐이군요.”

누군가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허조에게 쏠렸고,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선 입을 열었다.

“무역항이 열린다고 해서 은행이 당장 문을 여는 건 아니올시다. 일단 무역관과 조차지에서 무역전표의 효용을 확인한 다음에, 외국자본을 흡수하게 되겠지요.”

“음.”

“하기야.”

“게다가 본주의 무역항 또한 지금은 정비되지 않은 작은 항구거나, 어촌에 불과하지 않겠습니까. 일단은 무역항을 만드는 게 우선입니다.”

“청도와 상해의 조차지를 만들었던 것과 같은 이치겠군요.”

“흐음... 하지만 대명들은 중국만큼 인력을 동원하기 힘들지 않겠습니까?”

“아! 그럼 당연히 근방에 위치한 대명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겠군요. 그치들도 빈민을 비롯한 골칫거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아국이 손을 뻗으면 불필요한 인력을 무역항 건설에 쏟아낼 겁니다.”

“맞습니다. 면포와 도자기 몇 점이면 수월하게 진행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아니면 다른 특산물을 팔아도 될 것이고...”

“공사대금이 문제될 일은 없을 겁니다. 돈 주고도 못 사는 물건을 아국이 풀어대면, 알아서 자재와 인력을 제공할 겁니다.”

다들 스스로 해답을 찾아내고서, 이런저런 말을 쏟아냈다.

“맞습니다. 그렇게 무역항 건설에 동원된 인부는 아국으로 데려와야 하니, 공사를 하는 중에도 조선화교육이 진행되겠지요.”

허조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청도와 상해에서도 그렇게 데려온 귀화인이 꽤 된다.

일본에서도 똑같이 진행하는 거니, 그리 어려울 건 없겠지. 거지떼가 사라지는 걸 다이묘가 싫어하지도 않을 거고.

‘그런데 이 은행이 단순히 목줄을 채우는 걸 넘어서, 일본의 전쟁개념을 바꿔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단 말이지.’

연오랑은 열심히 무역항 건설에 대해서 떠들고 있는 대신들을 보며, 홀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일본은 섬이고 각자 다른 영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싸움이 벌어지면 도망가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니 죽기 살기로 싸울 수밖에 없는 거고, 어차피 자기가 차지할 땅이니 농부들을 마구잡이로 죽이지도 않았고 무사와 가신단, 영주들을 죽여 댔다.

헌데 무역항이 생기고 은행에 영주가 자금을 예치하면 어떻게 될까.

설령 전쟁에서 패배하더라도 죄다 할복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길을 택하지 않을까.

‘게다가 조차지는 치외법권지역이잖아?’

조차지라는 개념도 없었으니, 치외법권지역이라는 것도 없기 마련.

연오랑은 상해와 청도에 이 개념을 쑤셔 넣었고, 중국호족들은 뒤늦게야 이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알게 됐다.

이건 합법적으로 조선군이 조차지에 주둔할 수 있는 명분이 되었으니까.

‘일본의 무역항도 마찬가지로 진행할 테니까, 당연히 조선군이 주둔하게 되는 거니...’

무역항은 단순히 무역항이 아니라, 혹시 모를 최후의 보루가 되는 거지.

영지전 패배한 후에 다이묘와 다이묘 일가가 무역항으로 튀어버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조선군과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어떻게든 목숨은 구제할 수 있다. 여기에 은행에 자금을 예치해놨다면, 그 돈으로 새 인생을 꾸릴 수도 있고.

‘뭐. 일본에서 다시 살긴 힘드니 조선이나 다른 곳에서 살겠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어찌됐건 미친 듯이 싸우지 않을 거라는 거잖아?’

이게 단순히 무역항을 품은 다이묘만 그러겠나.

모든 다이묘들이 언제 망할지 모르는 위협을 당하고 있으니, 중국보다도 더욱 왕실은행에 매달릴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돈을 죄다 은행에 예치해 놓으면, 영지를 점령해도 땅과 사람 말곤 전리품이 확 줄어들 것 아닌가.

세력 확장을 통해 수지타산을 맞추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

‘친조선파가 늘어나는 걸 넘어서, 어쩌면 전국시대가 제대로 안 열릴지도 모르겠는데? 혼슈 북동부 지역을 아무도 못 건들게 되는 거 아냐.’

물론 이런 일이 발생하면 조선과 막부, 다이묘간의 신경전이 벌어지겠지만... 지들이 어쩔 건가. 조선이 갑인데.

“다들 동의하는가?”

“그렇습니다. 전하.”

“조금만 다듬으면 더 없이 좋을 계책이옵니다.”

“앞으로는 왜구는 전혀 걱정할 바가 못 될 것입니다.”

모두는 세종을 보며 열심히 침을 튀겨댔지만.

“왜구는 어차피 안 보이지 않았나?”

“...”

세종은 피식 웃으며 찬물을 끼얹었다.

맞는 말이긴 한데, 그걸 꼭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

"그럼 남주도 원정을 논하지."

다음 본론으로 넘어갔고, 모두가 연오랑에게 설명을 하듯 각 부서마다 원하는 바를 열심히 토해냈다.

사실 대만섬 원정은 이미 오래전부터 계획을 세워놨는데, 엄청 특별할 게 있나.

연오랑은 대신들의 이야기를 흘려 들으며, 저 먼 남쪽의 섬을 떠올렸다.

'드디어 간다. 기다려라. 대만. 쪽쪽 빨아먹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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