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311화 (311/538)

311. 챕터43. 진출하다 (3)

“후아...”

“끄응.”

선실에서 나온 이들은 하나같이 기지개를 켜며, 비릿한 바닷바람을 들이켰다.

배에서 지내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아무리 신형무역선이 기존의 함선보다 크다고 해도 배는 배다.

처음 용연에서 출발 할 때는 배멀미를 못 참고 헛구역질을 하기 일상이었지만, 그것도 금방 가시는 걸까?

오히려 서해를 건너 망망대해인 남중국해로 들어서자 배멀미가 가라앉았고, 드디어 맨 정신으로 경치구경을 할 수 있게 됐다.

“형님.”

“오냐.”

“드디어 왔군요.”

“그러게 말이다.”

개량관복을 입은 두 사람은 선원들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선수로 향해 저 멀리 보이는 항구를 바라봤다.

특이하게도 둘은 상투를 틀고 관모를 쓰고 있어도 묘하게 조선인과 구별됐다. 짙은 눈썹과 큰 코, 덥수룩한 수염은 숨길 수가 없는 모양이다.

‘과연 할아버지가 말한 혈족들을 찾을 수 있을까?’

목적지가 다가오자 불연 듯 이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아무리 고심 해봐도 확신할 수가 없다.

‘찾으면 좋은 거고, 못 찾으면 어쩔 수 없는 거겠지.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가문의 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관인으로서 해야 할 일 아닌가.

조정의 관심이 전부 남주도에 쏠려 있고, 또 소문이 무성한 용연군 대감이 다시 활동을 시작했는데... 성과가 안 나오면 자리 보존을 못하는 걸 넘어서, 집안이 풍비박산 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건들은 잘 있나?”

“걱정 마시죠. 형님. 꽁꽁 싸매서 잘 보관해 놨습니다.”

“그래야지. 안 그래도 쉽게 깨지는 물건인데, 하나라도 깨지면 집안 뿌리가 뽑힐 거다.”

“예.”

그는 동생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만 각오를 다지고 있을까. 동생도 마찬가지일 거다.

이윽고 무역선이 쇠락한 항구로 진입하자, 포구 근처가 난리가 나는 게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여기 올 줄 몰랐던 모양이군.”

“아...! 함장님.”

둘은 안팎으로 부산스러워지는 함선과 포구를 구경하다가, 뒤에서 소리 없이 다가온 함장을 보며 냉큼 고개를 숙였다.

“자네들에게 기대가 크네. 회회어를 할 줄 안다고?”

“그렇습니다.”

“흐음.”

함장 평도전은 둘을 다시금 힐끔 보고선, 말없이 망원경을 건네줬다.

말하지 않아도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는지, 둘은 희희낙락거리며 “오!” “정말 가깝게 보이네?”라고 감탄하며 망원경을 이리저리 흔들어댔다.

‘회회인이라... 저기에 가면 회회인 말고도 다른 색목인을 만날 수도 있단 말이지?’

평도전은 출항하기 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속으로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는 오래전에 조선으로 넘어온 항왜출신인 아닌가. 초창기에는 고초를 많이 겪었다지만, 지금와선 추억으로 치부될 정도 아닌가.

조선에 귀화한 일본출신이 너무 많아서 차별을 하면 오히려 문제가 생길 지경이고, 일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도 무수히 많이 들어왔다.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는 말처럼, 이젠 오래전부터 고려에 터 잡고 살던 저 회회인들이 오히려 소수가 될 정도가 됐다.

‘세상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야.’

평도전은 다시금 그리 생각하며,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조선전함이 이따금씩 이곳 해안가를 돌아다니긴 했지만, 직접 포구 안쪽으로 들어온 건 이번이 처음.

이 난데없는 움직임에 포구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포구 근처에서 고기를 잡던 나룻배들은 황급히 노를 저어 도망치기 시작했고, 파리만 날리던 포구 근처는 개미떼처럼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온 사방으로 달려가는 게 눈에 들어온다.

‘과연... 부두까지 다 파괴된 건 아닌가보군. 하긴... 워낙 오래전 일 아닌가.’

평도전은 오기 전에 들었던 정보를 떠올리며, 다시금 스스로 되묻고 스스로 납득했다.

“하선준비를 해라!”

“무장 챙겨!”

“갑옷 똑바로 챙겨 입어라!”

부두에 배가 닿으려 하자, 신형전함과 신형무역함 2척 모두 갑판이 부산스러워졌다.

개미굴에서 쏟아져 나오는 병정개미처럼, 선실에서 쉬고 있던 해군들 모두 완전무장을 하고서 우르르 튀어나왔다.

그 넓던 갑판이 어느덧 병사들로 꽉 찰 정도.

회회인 두 형제는 언제 그랬냐는양 망원경을 넘기고 뒤로 빠져 있었고, 해군들은 배가 부두에 닿기 무섭게 그물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전함을 접안 시켰다.

“사다리!”

“옙!”

배 사다리가 만들어지기 무섭게, 우르르 먼지가 날 정도로 병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악!”

“오... 온다!”

“진짜 조선군이다!”

이렇게 뜬금없이, 그리고 이렇게 수월하게 상륙할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걸까? 구경을 하는 건지, 경계를 하는 건지 애매한 태도를 취하던 포구 사람들.

그들은 햇빛을 받아 번뜩이는 창칼을 보고선, 사방팔방 도망치기 바빴다.

그러거나 말거나, 해군은 재깍 손을 놀리며 바쁘게 움직였다.

무역선에서 튀어나온 10명의 기병은 먼지구름을 피우며 달려가 부두공터를 장악.

뒤이어 한손전투도끼를 허리춤에 낀 해군병들은 널브러져 있는 탁자나 좌판들을 가져와 깔고, 그 위에 눈처럼 하얀 면포를 덮었다.

“짐을 내리게.”

“예. 함장님.”

일단의 정리가 끝나기 무섭게 공책과 연필, 문방사우를 챙겨든 관원들이 우르르 밀려 내려왔다.

“함장.”

“권 참의.”

평도전은 권제를 보며 가볍게 인사했고, 권제 또한 가볍게 받아넘기고서 옆에 달라붙었다.

권근의 아들이자 권준의 형인 권제 또한 오래전부터 관원으로 활동하지 않았나. 운석핵꿀밤의 여파에 그도 골수유학자에서 벗어난 지 오래.

충격이 꽤 컸던 모양인지, 그도 확 엇나가서 원래 역사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원래 역사보다 빠르게 만들어진 집현전에 소속되어 있다가 호조관리가 되었고, 개혁이 시작된 후론 계속 돈놀이만 하고 있었지.

“여기가 한 때는 영파를 뛰어넘는 무역항이었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 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둘은 뭔가 거대하면서도, 뭔가 속이 빈 강정 같은 이곳 항구. 자동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흘려댔다.

이곳은 자동. 미래에는 천주라 부리는 곳으로, 원나라 시절에는 세계 최대 항구라 자부하던 거대무역도시였다.

헌데 원나라 말기. 이스파 반란이라는 거대한 폭풍에 휩쓸려, 옛 영광은 핏물에 익사해 허물어졌다.

원나라는 색목인을 우대했고, 그 결과 원나라에 체류하던 색목인의 수가 무려 400만명에 이를 정도였다. 대도인 북평에 꽤 많이 살았지만, 옛 시절부터 무역 거점이었던 복건, 광서, 광동에도 엄청나게 많이 살았지.

그리고 색목인이라 퉁치긴 하지만, 대다수는 무슬림이었고.

헌데 원 말기가 되자 사회가 혼란스러워지고 한족이 들고 일어서자, 원나라는 색목인의 특권을 강제하고 무슬림의 풍속, 문화, 전통을 금지하고 유학식으로 바꿔나갔다.

그 결과 무슬림의 중심거점이었던 이곳 자동을 중심으로 반란이 터져 복건성을 휩쓸었지만... 결국 원나라에 의해 박살이 나지.

허나 그렇게 박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이번엔 명나라가 밀고 들어와서 또 전운에 휩싸인다.

인도, 아랍, 동남아시아로 이어지는 네트워크를 가진 무슬림들은 해상무역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눌려 살던 한족은 그간의 울분을 토해내고 그들의 이권을 차지하길 원했기 때문.

그리하여 자동을 비롯한 무역도시에서 대학살극이 벌어졌고, 무슬림뿐만 아니라 외모가 비슷한 서양인들도 떼죽음을 당했다.

다만 명이 원을 완전히 몰아낸 다음에는 무슬림에 대한 차별을 조금 완화했지만, 민간에서는 여전히 무슬림에 대한 폭행 및 핍박이 이어졌지.

문제는 해금령이 시행되자 자동의 명성은 복주가 가져가게 됐고... 안 그래도 수많은 무슬림들이 대학살극을 피해 필리핀, 브루나이, 수마트라, 자바, 참파, 대만등으로 이주했는데, 먹고살 길이 막막해지자 또 다시 탈주가 시작됐다.

소수이긴 하지만, 이 학살극을 피해 고려로 도망친 이들도 있었고 말이다.

“과연 회회인들이 얼마나 남아 있겠습니까.”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그래도 나름 남아 있지 않겠습니까? 듣기론 자동을 떠나 내륙으로 피한 이들도 있다고 하고, 명이 망한 후에 다시 돌아온 이들도 있다고 하니...”

“흐음.”

평도전이나 권제나 여기저기서 소식을 주워들은 거지, 직접 눈으로 본 건 아니지 않나.

조선만 보고 살던 둘에게, 이 낯선 땅의 역사는 생경하기 그지없었다. 그저 오기 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계속 곱씹을 따름이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들을 밀어주는 게 괜찮을 것 같습니까?”

“나쁠 건 없지 않습니까. 문화와 풍속이 다른 이들이니, 한족에게 쉽게 동화되지 않겠지요. 특히나 서로 피를 본 사이라면야...”

권제와 평도전은 무서운 이야기이자, 예전 조선인이라면 감히 상상도 못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결국 복건도 연맹을 만들어내겠군요.”

“그렇게 될 겁니다.”

둘은 안개 속에 빠진 미래를 그려봤다.

산동, 하남, 절강연맹이 완성되자, 중국에선 금세 연맹의 흐름과 유행이 퍼지기 시작했다.

몽골과 맞대고 있는 호광, 사천은 이미 연맹이 만들어졌고, 예전부터 여러 민족과 세력이 뒤섞인 광서, 광동은 활발하게 논의가 이어지고 있었다.

소수민족이 꽤 많이 살고 있는 그 지역에선, 연맹이라는 게 꽤 그럴듯하게 보였으니까.

문제는 이곳 복건.

이곳은 한족이 다수지만 소수민족 및 무슬림, 극소수의 기독교도들도 여전히 살고 있었다. 그리곤 끈질기게 살아남았던 이들이 명이 망하고 나서 다시 은근슬쩍 들어와 자리를 잡은 것.

‘이들을 하나로 묶을 방법은 연맹밖에 없고... 복건이 연맹을 이루지 않고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어디로든 흡수될 수밖에 없겠지.’

분명 복주, 건녕을 비롯한 대도시에는 이미 호족연합체가 존재할 터.

무슬림 공동체를 키워 자동을 장악하게 하고, 자동을 복건연맹에 끼워 넣으면... 기존 연맹과는 또 다른 형태의 연맹이 만들어질 거다.

그리고 복건에서 이런 움직임이 벌어지면, 분명 광서와 광동 또한 마찬가지일터... 거긴 원래도 순수 한족과 조금 이질적이었으니, 더욱 불협화음을 만들어 내지 않을까.

‘뭐가 됐든 이런 상황이 굳혀지면 통합은 힘들어지고, 통일왕조가 들어서도 문제가 생길 테니... 아국에게 나쁠 건 없겠지.’

“허허.”

권제는 그리 생각을 하고선, 자기도 모르게 감탄과 탄식을 동시에 내뱉었다.

조선이 중국을 경락하고 있는 꼴 아닌가. 놀랍기 그지없다.

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병사들은 바삐 움직였다.

공터에 아예 차향까지 쳐놓고 기다리고 있자, 사방에서 박도를 들고 모여들던 자동 주민들은 혼란에 빠졌다.

이들도 소문은 익히 들었지 않나.

만약 조선군이 여길 차지하려고 했으면, 아무리 조선함선이 크다 한들 배 3척만 가져올 리가 없다.

게다가 화포를 아무렇지 않게 뻥뻥 쏴대는 조선군이라면, 포구에 정박하기도 전에 일단 갈기고 봤을 것 아닌가.

“싸우러 온 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모두의 머릿속에 떠올랐고, “그럼 왜 왔지?”라는 물음에는 답이 하나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슬슬 우리가 왜 왔는지 알아차렸나 봅니다.”

“당연한 말씀이지요. 상인들이라면 돈 냄새를 놓칠 리가 없지요.”

아예 태사의에 앉아, 차를 마시며 느긋하게 기다리던 권제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렇게 대치 아닌 대치를 하고 있자. 도시에 영향력을 끼치는 호족들이 슬금슬금 몰려왔다.

아무리 자동이 쇠락했어도, 이렇게 거대한 도시가 유령도시가 될 리가 있나. 게다가 명이 망한지 삼십년에 가까워졌으니, 자동이 옛 명성을 회복할만한 시간이 있지 않았나.

“오... 과연 회회인이 있구려.”

“아국이 회회인 관원을 데려온 게 효과가 있는 모양입니다.”

“그럴 테지요. 저들로서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생각일 테니까 말입니다.”

갓과 관모를 쓰고 있어도, 가까이에서 보면 회회인은 티가 나지 않나.

그런 이들이 관복을 입고 돌아다니고 있으니... 자동에서 알게 모르게 세력다툼을 하던 회회인들 입장에선,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온 심정일 거다.

“대인!”

“대인!”

조선군이 그저 가만히 죽치고 서서, “니들 뭐하냐. 안 올 거냐?”라는 눈빛을 숨기지 않고 있자, 자기들끼리 모여서 속닥거리던 호족대표들이 결국 다가와 둘 앞에 허리를 굽혔다.

딱 봐도 상석에 앉아 있는 평도전과 권제를 알아보고, 책임자라고 확신한 모양이다.

“흐음.”

“음.”

앞선 호족가주는 총 9명. 그 중에서 무려 6명이 회회인으로 보인다.

‘과연... 이주했던 이들이 다시 되돌아 온 건 맞는 모양이구나.’

권제는 알게 모르게 표정이 활짝 핀 회회인과, 반대로 굳어 있는 한족 가주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많은 회회인들이 동남아시아로 이주했다가 다시 되돌아 왔고, 명이 없어졌으니 어떤 면에선 무슬림 네트워크가 더 강력해진 꼴 아닌가.

보나마나 자동을 되찾기 위해서 무슬림끼리 서로 밀어줬을 터, 그래서 저런 분포가 나타났을 거다.

“고개를 들어라.”

“...”

“아국은 거래를 하러 왔다.”

“아!”

“역시!”

기대했던 대답이 흘러나오자, 회회인들 뿐만 아니라 한족 가주 또한 눈을 번쩍이며 다가왔다.

무려 조선의 물건이다. 조선이 북방무역을 장악한 후로, 복건상인들이 북방물산을 구입하는 게 꽤 힘들어지지 않았나.

절강과 산동상인에게 치여 살던 이들이니, 쌍수를 들고 환영할 수밖에.

“거래를 할 만한 장소가 있나? 이곳에서 이러고 있는 것도...”

권제가 말을 흐리자, 호족가주들은 재깍 눈을 마주쳤다.

조선군을 들이는 거니 부담이 없을 리가 없지만, 일단 첫인상을 좋게 가져가야 뭐라도 하나 더 챙겨줄 것 아닌가.

“송구하오나 저희 장원으로...”

“아닙니다. 저희 쪽으로 오시는 게...”

아니나 다를까 가주들 사이에서 경쟁이 붙었고, 귄제는 히죽 웃으며 만족스런 미소를 내비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