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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소드 마스터-312화 (312/538)

312. 챕터43. 진출하다 (4)

대치상태는 아침 안개처럼 사라지고, 일은 순식간에 진행됐다.

용케 알아차렸는지 권제는 의아하게도 개중에서 가장 세가 어정쩡한 가문을 선택했고, 무역선과 전함에 싣고 온 물건은 조심스레 운반됐다.

조선의 물산이야 이들도 모르는 게 없건만,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딱 봐도 수상한 나무상자를 수레도 사용하지 않고 사람 손으로 옮겼으니까.

“강남의 정원은 뭔가 다르군요.”

“그렇습니까?”

“예.”

권제는 평도전과 함께 장원을 구경하며, 슬쩍 놀라움을 토해냈다.

회회인이라서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그것보다는 그냥 강남의 건축양식이 조선이나 강북과도 차이가 있어보였다.

뭐든지 크게 만드는 거야 중국의 전통이니 그렇다 쳐도, 위로 솟구친 처마 끝이나 주춧돌을 높게 세운 기둥과 같은 세부적인 부분에 있어서 특색이 돋보인다.

‘날씨가 달라서 그런 거 같은데... 남주도에서도 저럴지 모르겠군.’

저런 식으로 짓는 건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걸 텐데, 여기보다 더 남쪽에 있는 남주도는 더욱 그렇지 않을까.

‘알아서 잘 하겠지.’

권제는 속으로 피식 웃고서 흘려 넘겼다.

집을 어떻게 짓든 무슨 상관일까. 조선에서도 요샌 전에 없던 요상한 집이 많이 들어서고 있는데, 강남의 양식이 섞여 들어간다고 해서 문제가 있을까.

‘이 또한 개화자강이라면 개화자강 아니겠나.’

자기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문뜩 떠오르고 말았다.

“헌데 확실히 회회인들은 티가 나는 군요.”

“...?”

“저기.”

평도전은 상념에 빠져 있는 권제를 일깨우며, 장원에서 일하는 이들을 가리켰다.

모자 대신 천을 머리에 둘둘 싸매고 있는 이들이 있었는데, 또 웃기게도 장원의 모든 사람이 두건을 쓰고 다니는 건 아니었다.

“회회인들의 관습일까요?”

“그렇지 않겠습니까. 아국에서도 예전에는 저랬다고 들었습니다. 다만 전부다 그런 건 아니니, 교세가 그리 크진 못하나 봅니다. 아니면 다른 사정이 있던 지요.”

“음... 알아보라고 해야겠습니다.”

“예.”

권제와 평도전은 오기 전에 조정에서 들은 명령이 있기에, 조용히 말을 되삼켰다.

조선의 회회인들도 한 때는 저런 터번과 전통복장을 고수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 사라지지 않았나.

권제나 평도전은 직접 본 게 이번이 처음이지만, 보고나니 들었던 내용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참의 어른. 가주들이 모였습니다.”

“얼마나 왔지?”

“부두에 나온 이들 말고, 다른 중소가문의 가주들도 모인 것 같습니다.”

“음... 회회인은 몇이나 되나?”

“15개 가문 중에서 10개 가문입니다.”

“호...”

“오...”

권제와 평도전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마주치며 탄성을 애써 삼켰다.

“다 망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보구려.”

“예. 확실히 시간이 흐르긴 흐른 모양입니다.”

듣기론 과거. 자동에서 사흘밤낮동안 학살이 벌어져서 도시가 피로 가득 찼다고 들었다. 다만 그게 벌써 오십년, 육십년쯤은 지난 옛날이야기 아닌가.

도망쳤던 회회인들도 다시 되돌아 왔을 것이고, 명이 망하면서 해금령도 덩달아 풀리고 무역이 활성화 되었을 터.

‘남방과 거래하기 위해선 오히려 회회인들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을 테니, 그 틈을 비집고 기존의 회회인들이 되돌아 왔겠지.’

권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가시지요.”

“음... 저는 연맹을 구성하는 일에 아는 게 없소만...”

“하하. 그저 옆에 계시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저들이 알아서 오해하지 않겠습니까.”

평도전은 자신을 대놓고 이용하겠다는 말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 무시무시한 조선군 장군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꽤나 압박이 되지 않겠나.

자동 호족들의 얼굴이 어떻게 변할지 꽤나 궁금해졌다.

‘일이 꽤 잘 풀리겠군. 한족 호족이나, 객가인이나, 회회인 호족이나... 모두가 지금의 자동이 사상누각이라는 건 알고 있을 터, 위험을 억제할 방법을 제시하면 다들 따라오지 않겠는가.’

권제는 그런 생각을 하며 휘적휘적 나아갔다.

높으신 분들이 높으신 분들과 모여, 미래를 논하고 있을 때.

밑에 사람들은 밑에 사람들끼리 모여서 진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자자. 다들 모였소?”

“...”

장원의 정원은 온간 상인들이 모여들어 시장바닥이 되어 있었지만, 조선관원들이 등장하자 순식간에 침묵에 잠겼다.

복건상인들은 상해, 청도 조차지에서 조선과 거래를 직접 할 순 없었지만, 조차지에서 조선이 어떤 식으로 장사를 하는지는 주워듣지 않았나.

경매 방식은 중국 상인들에게도 그리 낯선 게 아니라서, 상인들의 시선은 줄줄이 들어오는 나무상자에 쏠려 떨어질 기미를 안 보였다.

“먼저 보여줄 건, 유리요.”

“유리?”

“파리나 초자를 말하는 것 아니겠소?”

“조선이 유리도 만들 줄 알았소?”

“난들 아나.”

뜬금없는 말에 잠시 웅성거렸고, 조선관원들은 “니들이 그럴 줄 알았다.”라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의기양양하게 나무상자를 열었다.

지푸라기에 꽁꽁 싸매져 있던 물건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자.

“오...!”

“허헉!?”

상인들은 하나같이 기겁해서 눈이 번쩍 뜨였다.

서역과 거래하는 무역상인들인데 유리를 처음 봤을까. 오히려 이들은 유럽의 유리를 중국에 내다 팔던 이들이다.

다만 저런 모양의 유리는 처음 봤다.

‘흐흐. 나도 볼 때마다 놀라는데, 너흰 오죽하겠나.’

아랍인의 피가 섞인 관원은 미소를 참지 못하고, 상인들을 불러 모았다.

“가까이 와서 보시오.”

“거. 밀지 마쇼!”

“여기에도 있소. 만지지 말고 눈으로만 보시오.”

판유리의 등장에, 사탕을 찾은 개미처럼 다들 우르르 달려와 달라붙었다.

“오... 마감이 꽤나 잘 됐구려.”

“흐음. 이 정도면 서역의 유리 못지 않은데?”

“그러게 말입니다. 이거 값이 꽤 나가지 않겠소?”

상인들은 온갖 말로 자기들끼리 속닥거렸지만, 관원들의 귀에 안 들어갈 리가 없다.

다들 제대로 웃돈 주고 팔 수 있을 것 같아서, 입이 귀에 걸쳤다.

이윽고 소란이 조금 가시자 상인들은 제자리로 돌아갔고, 다들 각오를 다지며 조선관원의 입을 바라봤다. 이제부터 전쟁의 시작이니, 다들 돈을 향한 활활 타오르는 눈빛을 숨기지 않았다.

“시작하겠소. 한 장씩 팔아봐야 써먹기도 힘들 터, 6장씩 한꺼번에 팔겠소. 품위가 가장 높은 마제은 10개부터 시작이오.”

이미 탁자 위엔 조선관원이 가져온 마제은이 놓여 있었고, 다들 저 마제은의 품위와 무게를 확인하지 않았나.

“10개라...”

“끄응...”

생각보다 꽤나 값이 나가는 터라 눈치싸움이 벌어졌다.

게다가 저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지 않나. 판유리는 이들이 생각하고 있던 상품이 아닌 터라 고민이 깊어진다.

허나 그것도 잠시. 누군가 먼저 손을 들기 무섭게, 순식간에 판유리 300장은 전부 팔려나갔다.

“그 다음은...”

조선관원은 말을 하다말고 옆으로 시선을 돌렸고, 관복도 아니고 평상복도 아니지만... 뭔가 관복과 비슷하게 생긴 옷을 입은 인물이 등장했다.

“음!”

“흐음...”

상인들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고.

“생인삼과 홍삼이오.”

낯선 인물의 입에서 미성과 교성이 반쯤 섞인 묘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하나같이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지금 중국에선 오히려 보기 힘들어진 환관이 뜬금없이 등장했으니까.

“허...?”

“으음?”

다들 눈이 가늘어진다.

복건상인이 조선내부 사정을 알진 못하지만, 환관이 왕실사람인 걸 모를 리가 없지 않나. 그렇다는 건, 저 인삼을 왕실이 보증한다는 뜻. 어중이떠중이가 파는 것보다 확실히 믿을 만하다.

“...”

묘한 침묵이 감돌자, 조선관원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주먹을 꽉 쥐었다.

연오랑이 인삼재배방법을 알려주고 연구하고 있지만, 아직 제대로 된 결과물은 나오지 않았다.

사실 그게 그렇게 쉽게 되는 게 더 이상한 일이지.

허나 인삼의 판매방식에 대해서는, 이미 제도적으로 완비가 끝난 상태였다.

이 시기엔 인삼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조선밖에 없고, 중국삼이 있다지만 조선삼에 비해 한수 쳐지는 걸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

프리미엄이 붙는 건 당연하니, 이걸 더욱더 잘 포장해서 뽑아먹어야 하지 않겠나.

해서 조정은 아예 인삼만 연구, 담당하는 부서를 따로 만들었고, 전국의 삼마니들이 캔 인삼을 전부 사들였다.

그리곤 상품과 하품을 구분해서 하품은 조선 내지에 내다팔고, 상품만 따로 챙겨서 여기에 왕실의 이름값을 얹혀 놓았다.

관계도 없는 환관이 괜히 이 자리까지 왔을까. 고급화 마케팅을 위해서 이 자리에 선 거지.

‘역시 잘 먹히는군.’

‘과연 용연군 대감이시다.’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할 사람은 역시나 연오랑 밖에 없지 않나.

호조관원들은 그간 연오랑과 엮인 일이 많았기에 결과를 낙관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한 건 해낸 것 같다.

“보시오. 왕실이 보증하는 물건이오.”

환관은 이번에 새롭게 만든 인삼인증 인장이 찍힌 포장띠를 가리켰고, 상인들은 다들 감탄을 내지르며 고개를 끄덕여댔다.

다른 건 몰라도, 저 생경한 문양 자체가 뭔가 있어 보인다. 뭣 모르는 이들에게는 저것만 내다 팔아도 될 것 같다.

인삼의 효용이야 중국 말고도 동남아시아, 심지어 이들 무슬림 네트워크에도 퍼진지 오래 아닌가.

경매가 시작되기 무섭게 순식간에 팔려나갔다.

“다음은 녹용이오.”

녹용 또한 마찬가지.

복건상인이 녹용을 모를 리가 없고, 이게 강남과 남방에서 구하기 힘든 물건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허... 저렇게 큰 뿔이라.”

“과연. 과연.”

어린아이 몸통만한 거대한 사슴뿔이 등장하자, 다들 감탄을 내질렀다.

미래에도 연해주와 시베리아산 녹용이 세계최고였는데, 이 시대라고 뭐 다를까. 오히려 접근이 제한된 이 시기에는 더욱 접하기 힘든 물건이다.

남방에선 눈뜨고 찾아보기 힘든 물건에, 다들 눈이 뒤집혀 앞 다투어 손을 들었다.

그 뒤로 이어진 경매도 호황이었다.

가죽제품이나, 눈처럼 하얀 종이, 은은한 향기가 나는 송연묵, 기타 기존에 고려 때부터 팔던 온갖 특산물들.

헌데 의외로 엄청난 열기를 불러일으킨 건, 평범하지만 특별한 물건이었다.

“설마 이거 바늘이오?”

“그렇소.”

“오옷...!”

“이렇게 작을 수가.”

“이것 보시오. 바늘귀가 제대로 뚫려 있지 않소.”

복건상인들은 강철바늘을 보며, 호들갑을 떨며 목청을 높여댔다.

이게 정말 별것 아닌 것 같아보여도, 중국의 제련 기술로는 이런 질 좋은 바늘을 못 만들지 않나.

열기를 이어받아 장내를 계속 후끈하게 만든 물건은, 작은 날이 살짝 휘어진 손톱가위와 줄칼이었다.

사실 연오랑은 손톱깎기를 만들고 싶었지만, 이게 이 시대에 만들 수 있는 물건이던가. 해서 원래 쓰던 손톱가위를 보다 작고 깔끔하게 만들었지.

지금의 투박한 가위로는 손톱을 자르는 게 아니라, 뜯어내는 것 같았으니까.

중국이라고 뭐 다를 게 없으니, 놀라움을 표하는 건 당연하다.

“이렇게 자르면 되오. 어려울 것 없지 않소?”

“오...”

시범을 보이듯 관원이 누군가의 손톱을 잘라주자, 다들 흥미진진한 눈빛을 숨기질 못했다.

별것 없어 보이는 물건이지만, 중국뿐만 아니라 남방에 내다 팔아도 충분히 먹힐 것 같다.

“쪽가위와 가위도 있소.”

손톱가위를 만들 정도면 가위를 만드는 것도 당연한 말. 이 시대에도 가위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검처럼 가위날이 번들거리는 물건은 또 처음 본다.

“오...!”

“이게 가위라고?”

“흐음. 너무 비쌀 거 같은데... 아닌가?”

조선가위는 중국에서 만든 흔한 가위와 비교하면, 미안할 정도로 뛰어난 물건 아닌가. 딱 봐도 비싸 보이기는 허나... 돈 많은 이들이 어디 한둘이겠나. 부잣집에는 충분히 팔아먹고도 남을 물건이다.

‘이걸 팔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말이 많았지만, 가위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도 없는데 무슨 상관일까. 이건 따라하고 싶어도 따라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니지 않나.’

관원은 자기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은 여기서 상인에게 물건을 팔아먹고 있지만, 엄연히 호조소속 관원이다.

조정 및 호조, 재정부에서 도는 이야기를 모를 리가 있나. 허나 직접 와서 보니, 우려는 말 그대로 우려에 가까웠다.

조선이 가져온 공산품은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재료의 품질에서 차이가 나니까. 강철을 물처럼 뽑아내지 못하는 한, 죽었다 깨나도 이런 물건은 못 만든다.

한쪽에서 한창 경매가 이어지고 있을 때.

반대쪽에선 경매를 마치고 온 이들이 다른 관원에게 붙어서 지불 방식을 논의하고 있었다. 단순히 마제은을 싹 쓸어간들, 그게 지금 조선에게 필요한 게 아니지 않나.

조선 또한 이곳에서 사야 될 물건이 있는 터라, 마제은 대신 현물을 받기 위해 교섭을 하는 중이었지.

“그래서... 물소를 구입하신다는 말씀이시지요?”

“맞네. 판유리 대금으로 전부 물소를 구해오게. 암수를 따질 것 없으나, 늙은 소는 거를 걸세.”

“으음...”

상인은 괜히 엄살을 부리려는 듯 말을 흐렸지만, 아쉽게도 통할 리가 없다.

이곳엔 자동의 상인이란 상인은 다 몰려왔고, 장원 밖에는 호족가문이 아닌 자잘한 상인들까지 모여서 조선 물건을 사들이고 있지 않나.

이득을 조금 더 보겠다고 어깃장을 놓으면, 다음 거래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물소는 조선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고, 이 물소뿔이 각궁의 재료가 되지 않던가.

해서 원래 역사에선 태종대부터 이 물소를 조선에서 키우려고 했는데, 여러 이유로 인해 실패하게 됐다. 다만 지금 역사에선 물소뿔을 자유롭게 구할 수 있으니, 조선내지에서 물소를 키울 필요가 없었지.

하지만 이젠 대만섬을 차지하지 않았나.

조선에서도 아직 소가 부족하니, 물소로 대체할 수밖에 없는 노릇. 더불어 농사용으로 쓰는 것 말고도 물소를 자체적으로 키우면, 더 이상 물소뿔을 수입하지 않아도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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