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 챕터43. 진출하다 (6)
“또한 물소 300두를 가져왔습니다. 그 정도면 사탕나무 농사를 지으면서, 전답도 정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번이 끝이 아니고, 매 달 한번씩 물소를 데려올 예정입니다.”
“음...”
물소는 이미 이곳에서도 농우로 키우고 있는 가축.
조선황소와 조금 다르긴 하지만, 택리부와 교육부 관원들이 원주민에게 달라붙어 사육법을 배우고 있으니 크게 문제 될 건 없으리라.
사실 원래 역사에서 조선이 물소사육을 실패한 건, 기후도 기후지만 야생성이 강한 이 녀석들을 조선황소처럼 풀어놓고 키우려고 했기 때문.
일단 코뚜레를 뚫고 축사에 가둬서 키우면, 물소도 조선황소처럼 온순해지는 걸 이미 확인했다.
“헌데 물소를 그렇게 계속 데려올 수 있나?”
“자동상인들이 알아서 처리하지 않겠습니까. 광서와 광동에는 이미 물소로 농사를 짓는 곳이 흔하고, 습지와 늪지에는 야생물소들이 즐비하답니다. 그치들이 알아서 잡아와 길들이겠지요.”
“음...”
이정호도 이곳에 머물면서 계속 복건사정을 살폈기에, 무슨 말을 하는지 충분히 알아들었다.
상인이라면 돈을 거부할 수 없을 테니, 어떻게든 해결하겠지. 특히나 옛 영광을 찾으려고 하는 자동상인이라면 더욱 그럴 거다.
“게다가 무역선 한척에 소금을 잔뜩 채워서 왔습니다.”
“그건 좋군.”
이심전심인 듯 권제와 이정호 모두 히죽 미소를 짓고 말았다.
대만 원주민들도 소금에 목을 매는 건 마찬가지니, 비싼 중국소금보다 조선소금을 환영할 거다.
이 귀한 소금을 싸게 퍼주면, 자발적인 귀화를 유도하는 강력한 미끼가 되겠지.
“헌데 이 자금을 어디서 빼왔나? 호조에서도 원정군에 마구 퍼주긴 힘들 텐데? 다른 무역품은 상해와 걸려 있는 게 많아서 복건에 풀기 힘들었을 테고...”
“흐흐. 새로운 무역품을 찾아냈지요.”
권제는 자랑하듯, 자동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풀어댔다.
유리거울. 그 이름조차도 고귀하지 않나. 고작 30개 밖에 가져오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 물소 값을 다 충당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외에...”
권제는 남주에 풀어댈 이런저런 작물과 물건을 늘어놨다.
이윽고 시선은 승정원 관리에게 쏠렸다. 남주 개발은 권제가 준비를 해왔으니 이제 시작하면 끝.
하지만 원정 준비는 또 다르지 않나.
“시간을 당기기 위해서 절강상인의 배를 빌리기로 했습니다.”
“...?”
“상해의 군량을 절강상인이 대신 옮겨줄 예정입니다. 물론 항로를 모를 테니, 해군이 인도하겠지만요.”
“허... 그치들이 그런 손해를 감수한다고? 돈이 많이 들 텐데..?”
“유리거울을 비롯한 공예품, 생필품이 있지 않습니까.”
“아...”
더 말할 필요가 있나. 자동상인이 눈이 뒤집혀졌으면, 절강상인들도 똑같이 눈이 뒤집혀 졌을 거다.
게다가 상해 조차지에선 절강상인과만 거래하니, 일단 사서 내륙에 팔기만하면 수십배의 이윤을 뽑아낼 수 있지 않을까.
“전마의 경우에는 제주에서 실어올 예정입니다.”
“제주라...”
“제주가 이곳 남주도와 그나마 풍토와 기후가 비슷하지 않습니까. 전마가 빨리 적응할 수 있을 겁니다.”
“음...”
승정원 관리의 말에 이정호의 머릿속은 바쁘게 돌아갔다.
사람도 물갈이를 하는 판국에 짐승은 오죽할까. 조선본토는 지금 겨울이지만 이곳은 봄기운이 만연하니, 적응을 안 하고 바로 움직이면 픽픽 쓰러질 거다.
그래서 상해로 야금야금 전마를 옮겨 적응시킨 후에 데려오려 했는데, 아예 제주에서 왕창 데려오는 걸로 바꾼 모양이다.
“지금쯤 출발했겠군?”
“예. 그럴 겁니다. 군병보다 전마가 먼저 적응을 해야 하니, 아마 전함과 무역선이 전부 동원됐을 겁니다.”
“대략 사십척정도 움직일 수 있겠지?”
“계획으론 44척을 동원하기로 했는데,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르니 대충 그 정도 될 겁니다.”
“음...”
다들 한 번에 몇 마리나 데려올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열심히 주판을 굴렸다.
아무리 조선이 쑥쑥 컸다지만, 배라는 게 그렇게 쉽게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니잖나.
3년이 지났지만 신형전함은 10척 밖에 건조하지 못했고, 대신 신형무역선이 15척으로 늘어났다. 그 외에 쾌선도 찍어냈고.
대충 한 달에 한척씩 뽑아낸 꼴이니, 이 정도면 엄청나게 준수한 수준이지.
게다가 신형전함이 등장한지도 벌써 5년을 훌쩍 넘기지 않았나. 당연히 개량이 이뤄져서 대충 2미터 정도 전장이 길어진 신형전함 2호기를 뽑아냈다.
고작 2미터 길어진 게 뭐냐 하겠지만, 부피로 따지면 엄청나게 늘어났지.
그것보다 중요한 건, 어찌됐건 조선의 함선 건조능력이 지금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는 거다.
“허면 지금 상해에 머물고 있는 전마는...?”
“절강상인이 옮겨주겠지요.”
“그렇게 전마를 다 옮긴 후엔, 연대병이 오는 건가?”
“예. 이 또한 산동, 절강상인의 도움을 받을 예정입니다.”
“아...!”
이정호는 가볍게 박수를 치며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온갖 군수물자를 중국상인의 손에 옮기는 판에, 군병이라고 못할 게 뭔가.
안전하고, 빠르고, 운임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조선-청도-상해-대만으로 거쳐서 오게 될 거다. 물론 조선-대만으로 바로 오는 이들도 있을 테고.
“흐음... 중국상인들이라.”
이정호는 군부출신이라서 조정에서의 일을 다 아는 건 아니지만, 중국에 연맹을 만드는 작업에 대해서는 얼추 알지 않나.
자동을 밀어준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를 리가 없다.
“복주나 건녕에서 문제 삼지는 않겠지?”
“뭐... 아니꼽긴 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다고 아국과 싸울 수도 없고. 손을 내칠 수도 없으니까요.”
“그렇겠지...”
조선은 상해를 통해 무역하니, 복건상인은 절강상인에게서 조선물건을 구입할 수밖에 없다. 그게 싫으면 의주로 가야하는데, 그건 너무 멀고.
하지만 지금은 조선이 직접 복건으로 오지 않았나.
자동으로 간 게 마음에 안 든다고 토라지면, 복주로는 영영 오지 않을 거다. 그럼 손해는 복주상인만 보게 되겠지.
“자동에서도 연맹이 만들어질 것 같은가?”
“저희와 계속 거래를 하면 곧 그렇게 될 겁니다. 특히나 남주를 개발하기 위해선 결국 강남의 물산이 들어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희를 놓치기 싫어서라도 저들은 하나로 뭉치겠지요.”
“회회인들과 한족은 사이가 좋지 않은데...”
“흐흐. 그야 저들 사정이지요. 저희야 입맛에 맞는 대로 자동, 복주는 물론 광동성에도 사람을 보낼 수 있으니, 자동은 최대한 빨리 연합해서 세력을 키우려 할 겁니다.”
“음.”
“헌데 절강상인들이 쉽게 승낙했나?”
“뭐 어쩌겠습니까. 그간 꿀을 빨았으니, 그 대가를 치를 때가 온 거죠. 그리고 마냥 싫어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간 주인 없던 빈 땅을 조선이 가지겠다는데, 여기에 대고 무슨 항의를 할까. 아쉬우면 먼저 먹었어야지.
게다가 조선이 대만으로 진출한다는 건, 동남아시아의 물산을 직수입할 수 있다는 뜻.
이권을 침해 받았지만, 반대로 대만 개발을 하면서 뽑아먹을 이권이 또 있기 때문에 설왕설래 말이 많았다.
하지만 조선이 상해로 진출하면서 남중국해의 해적이 지리멸절해지지 않았나. 이제 대만섬이 조선의 땅이 되면 자연스럽게 조선해군의 영역이 넓어질 터... 더욱더 바닷길이 안전해지는 거지.
걸린 게 많은 호족집안은 고민이 많지만, 배 한척 가지고 돌아다니는 중소상인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그리고 이들의 민심을 호족이 모를 리도 없었고.
“중국상인은 그렇다 치고, 자동이라... 노림수가 있군?”
“예. 이제 열심히 배를 타고 가서 입을 놀리지 않겠습니까. 다들 마음의 준비를 해 놔야지요.”
권제는 모사꾼마냥 음침한 미소를 흘려댔고, 뒤에 있던 호조관원들 모두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치들은 매일 돈만 만지더니, 다들 성격이 이상해진 모양이다.
대만이 제대로 발전을 하지 못한 건, 거래를 할 만한 게 없기 때문.
강남 바로 코앞에 있지만 물건을 살 돈도 없는 깡촌이나 마찬가지니, 강남상인이 적극적으로 진출하지 않은 거지.
허나 그럼에도 복건, 광동상인 중에는 대만 원주민 마을과 거래를 하는 이들이 있었고, 그 대표적인 곳이 바로 자동이었다.
이들은 복주와 다른 해안도시에게 주도권을 빼앗겼으니, 다른 빈틈을 노려 힘을 키워야 했으니까. 뭐... 덩치 큰 상인이야 동남아시아의 연줄을 이용했겠지만, 그런 게 없는 중소상인은 열심히 발품을 팔아야 하는 법이지.
“그러니 자동에 소문을 잔뜩 내고 왔다는 거군?”
“예. 지금쯤이면 이제 남주도 남쪽의 부족과 마을에도 소문이 쫙 퍼지지 않았습니까. 지금까지는 무장상인이 들락거리는 수준이었지만, 이젠 그게 아닌 거죠.”
“음... 역효과는?”
“역효과라고 해봐야, 저들이 황급히 하나로 뭉치는 건데... 그건 아국 입장에서 나쁠 게 없지 않습니까.”
“흐흐. 그렇지.”
이정호 또한 나쁜물이 들었는지, 음침한 미소를 함께 했다.
제대로 된 기병도, 화포도 없는 이들이 하나로 뭉쳤다. 그것도 명령체계조차 확립되지 않은 오합지졸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건 한번의 전투로 싹 쓸어버릴 수 있다는 뜻 아닌가.
원정을 빨리 끝내고 싶은 조선으로서는, 오히려 좋아해야할 상황이다.
“설마 아국이 지진 않겠지요?”
“저들과? 지고 싶어도 못 질 걸세. 저들은 화포를 소문으로만 들었지 제대로 본적도 없는데, 질 수가 있나.”
이정호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경험했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다만... 교서를 보셔서 알겠지만, 계획보다 원정군이 더 늘어났습니다. 그 부분을 주의하셔야 할 겁니다.”
승정원 관리는 찬물을 끼얹히며, 벌써부터 승리한 이들을 끌어내렸다.
“본래는 2만으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병사 일만오천에, 보조군과 일반 백성을 합쳐 일만오천이 오게 될 겁니다. 연대병이야 삽질에 이골이 낫지만 백성들은 그게 아니지요.”
“음... 삼남의 백성들이 오는 것 아닌가?”
“삼남 출신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다 옵니다. 안 그래도 사람이 없는데 한곳에서만 뽑을 순 없으니까요. 대신 온갖 직종의 장인들이 한번에 오게 될 겁니다.”
“음.”
“으...”
어째 좋아하는 이들보다, 울상을 짓는 이들이 더 많다.
연대병이야 게르에서 사는 게 일상이니 대충 평평한 땅만 있으면 그만이지만, 일반 백성들은 그게 아니지 않나. 그치들 살 집부터 만들어야 할 거다.
“원정도 원정인데, 이곳을 보다 빠르게 안정시키려는 모양이군.”
“예. 전하께서는 남주도가 완전히 본토와 같게 되길 바라시니까요.”
“...”
세종이 그렇게 바라고 있다는 데,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다들 먼 산만 바라봤다.
세종과 연오랑은 애초부터 식민지와 같은 형태로 영토 확장을 하는 것엔 관심이 없었다.
세종은 지방호족 세력을 남겨 두는 것이 꺼림칙하니, 간접지배는커녕 어떻게든 지방권세가와 유력가를 작살냈다. 여진과 몽골이 지리멸절해서 조선에 흡수된 걸 보면 알 수 있지.
연오랑은 신분제를 박살내길 바라지 않나. 그러니 본토인과 귀화인 혹은 식민지인 간의 차별을 둬서, 새로운 형태의 신분제가 생기는 걸 원치 않았다.
그러니 대만원주민을 뽑아서 조선본토에 심는 게 당연한 거고, 반대로 조선본토인을 뽑아서 대만에 심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지.
다만 이들 입장에선 원정이 끝나기도 전에, 정착작업을 함께 진행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운 거다.
“헌데 이곳에 올 사람이 그렇게 많나? 본토에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텐데?”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 사탕나무를 비롯해서, 지금까지 조선이 수입했던 온갖 물산을 직접 재배할 수 있게 되지 않았습니까.”
충분히 이해가 되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지금의 조선 백성들에게는 이사를 다니는 게, 그리 이상하거나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지 않나. 한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3분의 1은 될 정도로 뒤섞인 지 오래다.
골수유학자들이 꿈꾸던 고즈넉하고 아늑한 향촌사회는 깨진지 오래고, 지방유력가 대신 관아를 찾는 게 일상이 된 시대가 됐지.
그러니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이 낯선 땅으로 오는 건 분명 두렵겠지만, 한편으론 자신의 대에 집안을 키울 수 있는 기회 아닌가.
관리가 되어 양반이 되어 본들, 예전처럼 떵떵거리면서 사는 것도 아니고 집안의 위세를 이어주는 엄청난 특권이 되지도 않는다.
반대로 이곳에서 제대로 기업을 키워 돈을 벌면, 후대가 평안하게 살 수 있다.
양반이나 향리집안 뿐만 아니라, 일반 양민들마저도 욕심낼만한 기회가 열린 거지.
“세금감면도 있겠고?”
“예. 3년입니다. 새롭게 기업을 만들려는 집안이라면, 이곳으로 이주하는 게 결코 나쁜 선택이 아니지요.”
“음...”
“하긴.”
승정원 관리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이라면 세금이 뭐 얼마나 되겠나 하겠지만, 기업은 무려 30%를 국방세로 내고 있지 않나.
이곳에서 조정의 도움을 받아 기업을 키우면서 세금도 내지 않고, 인부로 써먹을 원주민마저 넘쳐 난다면... 3년이라는 시간은 충분히 자리를 잡고도 남는다.
“그래서 그렇게 이주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군?”
“예. 전국에서 올 테니, 출신도 꽤 다양해서 원주민과 섞이는 것도 크게 문제없을 겁니다. 대신 교육부에서 열심히 일을 해야겠지만요.”
“좋아. 전파하지.”
이정호는 그리 결론을 내렸고, 이내 관리들을 불러와 지금까지 나눈 이야기를 시시콜콜한 것까지 털어놨다.
“으억.”
“아...”
당연히 사방에서 앓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안 그래도 일거리가 많아 죽겠는데, 이젠 더 잠을 못 자게 생겼다.
그렇게 시끌벅적한 소란이 있은 후.
한 달이 훌쩍 지나자, 드디어 원정군 사령관이 된 연오랑이 탄 배가 남주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