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315화 (315/538)

315. 챕터44. 상륙하다 (1)

“후하.”

연오랑은 벌써부터 따뜻한 기운을 풍기는 바람을 힘껏 들이마셨다.

‘역시 예상대로네.’

눈앞에 보이는 타이베이. 조선이 붙인 이름은 남주.

예상했던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야생과 문명의 교차점이랄까. 고상하게 말해서 그렇지, 그냥 별 볼일 없는 시골 어촌 수준이다.

‘미래와는 완전히 다르네.’

미래의 그는 대만에 여행을 온 적도 있고, 게임을 통해 아는 지식도 있지만... 대만의 역사 속사정까지 어떻게 알겠나.

어렴풋이 어림짐작할 뿐이지만, 역시나 예상을 빗나가진 않았다.

‘대만색이나 중국색이 있긴 커녕, 완전히 조선땅이 다됐는데?’

그는 갑판 위에 서서,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하는 타이베이를 굽어봤다.

가장 마지막에 출발했으니 연대병은 다 도착해서 짐을 풀었을 거고, 후발대로 민간 백성들이 몰려오게 될 터... 그 준비를 하느라 부두와 항구는 정신없이 난잡했다.

“어르신!”

배에서 내리기 무섭게, 환하게 웃으며 그를 반기는 이들이 다가온다.

“순지, 현이냐?”

“예.”

“넵!”

연오랑은 어느새 훌쩍 커버린 둘을 보며 히죽 미소를 머금었다.

허리춤에 오는 꼬꼬마 시절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데, 어느덧 저렇게 훌쩍 자라 있다.

“네가 여기 설계를 맡았다며?”

“흐흐. 제가 연주에서부터 어르신 따라다니면서 북방신도시를 다 지었지 않습니까. 당연히 제가 맡아야죠.”

“네가 지은 게 아니라 정분을 비롯해서 다른 관원들이 지은 거잖아.”

“에이. 그게 그거 아닙니까. 제가 도와준 게 얼만데.”

“맞습니다. 저희 아니었으면 신형요새를 만들지도 못했을 걸요.”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 걸까. 이순지와 박현은 아양을 떨 듯 연오랑에게 달라붙었다.

“잘 만들었네.”

“예.”

연오랑이 부두와 항구초입을 보며 칭찬하자, 녀석들은 다시금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어떤 면에선 연오랑의 둘의 정신적 스승이라고 봐도 무방하니, 칭찬에 감격할 수밖에.

“몇이나 정박할 수 있냐?”

“전함과 무역선이라면 한 번에 아홉척을 감당할 수 있을 겁니다.”

“음...”

‘나쁘지 않아. 확실히 잘 배운 가락이 있고만.’

연오랑은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고선, 둘을 따라 발을 놀렸다.

깡촌에 어울리지 않게 바위와 삼물회를 굳혀 만든 최신식 부두를 지나자, 허허벌판이 이들을 반겼다.

확실히 계획을 짜서 움직이는지 벌판 이곳저곳에는 새끼줄로 꼬아 구획을 구분해 놓았고, 이곳저곳에선 벌써부터 건물이 올라가고 또 한쪽에선 자재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자재는 문제없지?”

“예. 나무야 원체 많아서 일단 닥치는 대로 벌목해서 옮기고 있습니다. 여기 강줄기가 저기 산맥과 닿아 있어서, 그쪽에 제재소를 만들어서 뗏목으로 실어 보내고 있죠.”

“나무의 질은 어때?”

“좋습니다. 사람 손을 안타서 거목들도 많고요. 거목들은 배를 만들 때 써먹으려고 따로 빼놔서 말리고 있습니다.”

“잘했다.”

연오랑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에서 자라는 티크나무 계열은 어디에 써도 만능일 정도로 쓸모가 많은 나무 아닌가.

철목鐵木이라 불리는 나무 중 하나로, 더럽게 튼튼하고 습기에도 강해서 선박 만들 때 쓰기에 딱 좋은 물건이다.

“그게 끝이 아니라 자단나무와 흑단나무도 엄청 많더라고요. 이건 계획을 짜서 잘 조성해 볼 생각입니다. 산림부 관원들은 벌써 눈이 뒤집혔더라고요.”

“그렇겠지.”

다시금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연오랑도 지금 역사에서나 봤지만, 속이 붉은 자단, 속이 검은 흑단은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엄청나게 비싼 나무다.

미래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

성장하는데 오래 걸려서 그렇지, 계획조림만 잘 해놓는다면 수백년은 뽑아먹을 수 있는 꿀단지가 될 거다.

“그리고 이곳도 본토만큼은 아니지만 바위와 돌이 많더라고요. 땅만 파면 돌이 나오는 터라, 석재도 문제없습니다.”

“음...”

둘은 자신 있게 답을 했고, 걸음을 걷다보니 여기저기에서 쾅쾅! 굉음이 터졌다.

꼭 연오랑이 온 걸 축하하는 것 마냥 축포를 쏘고 있다.

“발파작업을 하는 거냐?”

“예. 화약을 많이 가져와서, 땅에 파묻힌 바위 부수는데 쓰고 있습니다.”

“잘했다.”

“흐흐.” “헤헤.”

‘거참... 화약을 저렇게 아낌없이 쓰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원래 역사의 세종이 봤으면 감격을 했을 거야.’

그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품고, 속으로 헤실헤실 웃어댔다.

청도에선 여전히 산동의 초석을 수입하고 있었고, 본토에서 생산되는 초석도 날이 갈수록 생산량이 늘고 있었다.

사람이 밀집한 도시가 생기면 생길수록, 덩달아 오물수거기업도 커질 수밖에 없으니까.

군부뿐만 아니라 요샌 광업부에서도 화약을 가져다가 맘껏 쓰고 있었지.

조잘거리는 둘의 설명을 들으며 계속 걸음을 옮기자, 대만 원주민으로 보이는 이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온다.

다들 관원과 연대병의 지휘에 따라 고기떼처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데, 큰 반항 없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

‘음... 예상했던 대로네.’

원래 대만 원주민은 오스트로네시아계로, 흔히 동남아시아인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덩치가 조금 작은 민족이다.

따지기도 힘든 저 먼 고대시절. 중국남부에서부터 가깝게는 대만, 동남아시아와 멀게는 파푸아뉴기니가 있는 말라네시아 지역까지 뻗어나간 민족이지.

하지만 지금 연오랑의 눈에 보이는 이들은 조선인과 별반 큰 차이가 없었다.

덩치가 조금 작아 보이는 건 워낙 못 먹어서 그런 거고, 피부색도 나름 밝은 편이다.

‘확실히 혼혈이군.’

송나라 시절 이전부터 한족 및 소수민족의 피가 섞였을 테니, 몇백년이 훌쩍 지났다.

굳이 따지자면 혼혈인 10세, 11세쯤 되지 않을까? 그 쯤 되면 혼혈이 아니라 그냥 민족이라고 봐도 무방할 거다.

어쩌면 저들 중에선 원주민의 피가 아니라, 한족을 비롯한 내륙민족의 피가 더 많이 섞여 있을지도 모르지.

‘나쁘지 않네. 확실히 빨리 섞여 들어가겠어.’

저들이 보는 조선인이나, 조선인이 보는 저들이나... 그래도 같은 아시아인이니 생긴 걸 가지고 거부감을 느끼진 않을 것 같다.

‘생각해보니, 오히려 루스인이 더 걱정이네.’

생각의 곁가지는 남쪽에서부터 북쪽으로 뻗어나갔다.

조정에서 결론이 나기 무섭게 창주로 파발이 향했고, 사신 겸 파발은 곧장 제왕부와 아자이에게 달려갔을 거다.

지금쯤이면 이미 만나서 선금을 두둑하게 던져주고, “닥치는 대로 루스인을 데려와라. 우리가 다 사준다.”라고 약조하지 않았을까?

아마 올해 말부터는, 끊임없이 루스인 포로가 조선으로 밀려들게 될 거다.

‘그놈들은 생김새가 완전히 다르잖아? 조정관원이나 개성사람들이야 색목인에게 익숙하다고 해도, 다른 지역의 백성들이 그런 건 아닐 건데... 잘 섞어야겠지.’

연오랑은 먼 미래의 기억을 떠올리며, 일이 잘 풀리기를 기원했다.

미래의 조선인들은 서양인들을 코쟁이, 양놈, 하얀도깨비라고 부르며 거부감을 표시했는데, 지금 역사에서까지 그렇게 되게 놔둘 순 없으니까.

‘제국이라...’

연오랑은 걸음을 재촉하면서도, 머릿속엔 딴 생각이 머물렀다.

제국적인 마인드라면 제국이라는 큰 틀 안에 다른 문화와 관습, 민족을 포용해 덩치를 불리는데... 이게 조선에 어울리기나 할까.

조선은 제국이 될 생각도 없고,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워낙 땅도 좁고, 사람이 적으니까.

나아가 아직도 내부의 지방유력가와 권세가를 박살내고 있는 조선 입장에서, 그런 식으로 확장하는 건 반발과 반란, 중앙집권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단일민족으로 갈 수도 없는 거지. 당장 덩치를 불리려면 이민족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니까.’

미래에는 한민족이라고 자칭할지도 모르지만, 지금 역사에선 이미 불가능해졌지 않나.

중국과 제한 없이 엮이고 있는 이상, 경제적으로든 군사적으로든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선 무조건 귀화를 장려해 조선의 덩치를 불려야만 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다민족 단일문화로 가야겠지.’

미래에서야 다민족 다문화를 말한다지만, 말했듯이 이 시대의 다문화는 반란과 독립의 기치가 될 뿐.

그러니 피는 서양인, 동양인 할 것 없이 다 섞어버리면서도, 문화는 오롯이 조선 문화만 남겨놔야 했다.

뭐... 지금도 그렇듯이 일본, 몽골, 중국식 음식이나 문화가 조선문화에 흡수되어 결합되고 있지만, 어찌됐건 그것도 조선문화니까.

아마 루스인도 같은 방식으로 섞여 들어가야 할 거다.

‘흐음... 그럼 미래의 조선은 어떤 모습일까.’

연오랑은 그런 의문이 불쑥 치솟아,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대만 원주민들도 혼혈인 10,11세쯤 되니, 혼혈이 아니라 그냥 민족으로 변해버렸는데, 이대로 루스인 이주가 계속되어 2,3백년쯤 지나면 어떤 모습일까.

아마도 한민족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온갖 피가 다 섞인 혼혈민족이 되지 않을까.

그 때쯤 되면 조선의 정체성은 한민족이 아니라 다민족이 되어 있을 테고.

‘못 봐서 아쉽고만.’

“크크.”

연오랑은 자기도 모르게 키득키득 웃고 말았다.

“...?”

“아니다.”

그의 요상한 행동에 둘은 물음표를 그렸으나 대충 흘려 넘겼다. 연오랑이 요상한 짓을 하는 걸 하루이틀 봐 온 게 아니었으니까.

공사판을 가로질러 한참을 나아가자, 드디어 완공된 3층관아가 이들을 반겼다.

“착호보조군이 오니까 확실히 빨리 진행되던데요?”

“그러냐?”

“예. 사실 자재를 준비하는 건 원주민으로 해결할 수 있었는데, 장인이 부족해서 질질 끌리고 있었거든요.”

“음.”

연오랑은 이순지가 뭘 말하는지 곧장 알아차렸다.

착호보조군을 무려 오천명 가까이 데려오지 않았나.

너무 많이 데려와서, 태종의 양전사업이 제대로 진행될지 의문이 들 정도다.

하지만 그거야 태종 사정이고, 연오랑 입장에선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지.

‘그치들이라면 실력은 확실하니까.’

착호보조군은 단순히 군수병참을 맡은 2선부대가 아니다.

그들은 행정업무를 제외한 모든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장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오죽했으면 과거 몽골원정 때, 술까지 만들어서 팔아먹었겠나.

괜히 직업교육당이 이들의 도움을 받아 야인들의 직업교육을 시킨 게 아니고, 괜히 기업이 이들에게 빌붙어 장인을 육성하려 했던 게 아니지.

아마 관아를 짓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을 거다. 태종 뒤를 쫓아다니면서 행궁까지 지어댔으니까.

“보조군을 잘 봐줘라.”

“...?”

“그치들은 이곳에 정착하려고 왔으니까.”

“예?”

둘은 뜬금없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고, 연오랑은 “뭘 그렇게 놀라?”라고 묻듯 바라봤다.

“당연한 거 아냐? 전역을 앞둔 보조군이 여길 왜 왔겠어. 당연히 한몫 단단히 잡으려고 왔지. 그들도 눈과 귀가 있으니 기업이 우후죽순 생기고 있는 걸 봤는데, 경쟁이 느슨한 이곳으로 오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냐?”

“그런가요?”

“그렇지. 착호군이 벌써 10기가 넘었다. 지금 착호보조군으로 온 이들은 양반이나 호족 출신이 아니라, 양민이나 과거 천민이었던 이들이 대다수니까.”

“음...”

“흐응.”

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열심히 머리를 굴려댔다.

초창기 착호군은 양반,호족 자제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보조군은 그들의 수발을 들어 줄 노비 및 관노비장인들, 신량역천인, 천민에서 양민이 되기 위해 보충군으로 입대한 이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가진바 기술을 열심히 갈고 닦아서, 전역 후 속량되어 기업의 기술자로 스카우트 되서 떠났지.

이걸 지켜본 다음 기수들, 눈독들이던 예비 기수들은 어떻겠는가.

보조군에 들어가면 고생을 하겠지만, 제대로 기술을 배우고 한밑천을 챙겨서 나올 수 있다.

인생역전을 노리는 이들, 신분역전을 노리는 이들이 죄다 몰렸고, 이제 이 남녘에서 지난 과거를 잊고 새 출발을 하려는 거지.

“아...”

“알겠냐? 그치들은 착호군 뒷바라지를 하면서 알게 모르게 꿍쳐놓은 돈이 있을 거야. 그러니 싼값에 대토지를 구입하고, 또 기업을 열려고 하는 거지. 여긴 조정에서 지원을 해주니, 기업을 만들 때 큰돈이 안 드니까.”

“대출 받은 건 천천히 갚아나간다는 거죠? 이 땅은 아무것도 없으니 뭐든 만들어내기만 하면 팔릴 테니까 말이죠.”

“어차피 한동안은 이곳에서 세금도 못 걷을 테니, 원주민들이 그대로 조선백성이 되면 그게 다 고객이 되는 거고요?”

“그래.”

“오...”

“호.”

둘은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여댔다.

일반 백성들이 이렇게 진취적으로 움직일 거라고는 생각을 못해봤나 보다.

“보조군을 무시하지마라. 그치들이 어지간한 관원들보다 머리가 더 트여 있을 테니까.”

“예.” “네.”

사방팔방으로 이주한 일반 백성들이야 수동적으로 움직였지만, 보조군은 다르다.

그들은 자신의 손으로 새로운 도시를 만들고 미개척지를 개간했으며, 조선팔도와 만주를 두루두루 돌아다니며 세상 변하는 걸 두 눈으로 지켜본 이들이다.

고향 땅에 평생을 묶여 살았던 기존 조선인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지.

“주둔지는?”

관아 근처에 게르가 있을 줄 알았으나, 보이지 않아 되묻자.

“아예 동쪽으로 뺐습니다. 일단 관아부터 만들고, 여기서부터 공사를 시작할거 라서요. 일단은 부두와 관아를 잇는 도로부터 만들 예정입니다.”

“흐음. 자갈도로?”

“예. 석회도로를 깔 정도로 석회가 많이 나오는 건 아니라서요.”

“그래. 수차를 만들어 놓으면 두루두루 써먹을 수 있으니까.”

“예. 흐흐. 벌써 3대나 만들어 놨습니다. 여기 강은 나름 수량이 일정해서 수차를 돌리기에 좋더라고요.”

“그건 다행이네.”

연오랑은 둘의 설명을 들으며 칭찬을 곁들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