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316화 (316/538)

316. 챕터44. 상륙하다 (2)

단수이 강은 타이베이를 관통해서 지나가고, 한강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냥 맨몸으로 지나갈 수 없는 나름 큰 강이다.

이 강의 중심에는 거대한 섬이 존재했고, 남북으로 찢어진 강줄기는 동쪽 산맥에서 흘러나오는 여러 갈래의 지류와 연결되어 있었다.

이러니 북쪽과 중간섬이 좋아 보이긴 하지만, 선발대는 남쪽을 중심으로 개발을 진행 중이었다. 어느 세월에 배타고 왔다갔다하면서 공사를 하겠나. 일단 남쪽에 도시를 만드는 게 우선이었다.

그 결과. 주둔지는 타이베이 한참 동쪽 변두리에 자리 잡게 됐지.

“연대병들은 오자마자 전답을 일구고 있습니다. 들으셨죠? 자동에서 물소를 비롯해서 온갖 것을 다 보내주고 있는 거.”

“어. 들었다. 유리거울 그거. 내가 만든 거야.”

“역시. 돈을 많이 버셨겠네요.”

“과연. 어르신입니다.”

둘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조선에 없던 물건은 보통 연오랑이 만들지 않았나. 역시나 이번에도 한건 한 모양이다.

“그래서?”

“아. 그래서 그 물소들을 연대병이 전부 끌고 가서 개간을 하고 있죠. 사탕나무를 심는다고 하니까, 그치들이 먼저 나서더라고요.”

“흐응. 그놈들은 완전히 돈 벌러 왔고만?”

“사탕 아닙니까. 사탕. 연대병이 눈이 뒤집힐 만하죠.”

“그리고 어르신이 시킨 것 아닙니까?”

연오랑이 눈을 씰룩거리자, 둘은 연대병들을 대변하듯 목청을 높였다.

‘하긴 설탕이니까.’

그는 졌다는 듯이 고개를 절래절래 내젓고 말았다.

이 시대엔 설탕을 사탕이라 불렀는데, 조선에선 엄청나게 비싼 물건 아닌가. 당연히 중국강북과 요동, 몽골에게도 비싼 값에 팔아먹을 수 있는 물건이다.

‘내가 백설탕을 만들 줄은 몰라도, 전통설탕은 만들 줄 알잖아? 제대로 대량으로 만들어야지.’

그는 속으로 각오를 다졌다.

이 설탕만 뽑아내면, 원정군이 소모할 군비를 다 충당할 수 있을 거다.

미래의 그는 칼리검술을 배우기 위해서 필리핀에 오래 체류했고, 필리핀 전통설탕이라 할 수 있는 마스코바도를 만드는 걸 여러번 지켜보지 않았나.

이건 말 그대로 생노가다로 만드는 거라서, 이 시대에도 충분히 만들 수 있었다.

아쉬운 건 눈처럼 하얀 백설탕이 까무잡잡한 전통설탕보다 훨씬 비싸게 팔린다는 건데... 이건 중국 설탕기술자를 포섭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싶다.

이윽고 관아 앞에 도착했고, 관원들은 연오랑을 알아보고선 인사를 하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주인공이 왔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할 때가 왔으니까.

“회의준비가 끝나면 불러라.”

“예.”

“아. 일하고 있는 연대병들은 부르지 말고, 중대장급들만 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연오랑은 둘을 돌려보내고서, 성큼성큼 3층 관아의 꼭대기로 올라갔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확실히 잘 먹히는고만.”

그는 오면서 봤던 원주민들을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굳이 지금 당장 필요도 없는 3층관아를 왜 지었겠는가. 거대수차만 봐도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리는 원주민들에겐, 이처럼 거대한 관아는 조선의 권위와 위엄 그 자체다.

이렇게 큰 건물을 뚝딱 완성할 정도면, 조선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대단해 보이겠어.

뭐... 사람 갈아 넣는 중국의 스케일에 비하면 부족한 편이지만, 대신 조선은 빨리 짓는 걸로 능력을 뽐냈다.

그런 의도로 관아부터 완성했는데, 확실히 잘 먹힌 것 같다.

멀리 떨어져서, 3층관아를 침 흘리며 구경하고 있는 원주민 꼬맹이들이 한가득 있었으니까.

“확실히 난방이 필요가 없으니까 건물 짓는 것도 편하고만?”

계속 혼자 중얼거리며, 새로 지은 관아의 계단과 벽면을 살폈다.

나무가 많아서인지 목재가 꽤나 많이 들어갔는데, 그럼에도 벽면 한쪽은 석재와 벽돌로 마감해서 쉽게 무너지진 않을 것 같다.

‘대만에 지진이 자주 오던가?’

문뜩 그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애써 지워냈다.

고작해야 3층 건물인데 뭐 얼마나 차이가 있겠나. 더 튼튼하게 지은 이 건물이 무너질 정도면, 단층건물도 다 작살날 거다.

“흐응.”

워낙 사람이 없으니 시중을 들어줄 사람도 없어서, 연오랑은 난간에 기대어 서서 우두커니 타이베이. 남주를 바라봤다.

온 사방에서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모여 일을 하고 있고, 도시 저쪽 가장자리에는 선발대가 머무는 주둔지와 게르가 눈에 들어왔다.

시선을 완전히 반대쪽으로 돌리자, 저쪽에는 원주민들이 사는 움막과 같은 천막집이 여럿 보였다.

그나마 이곳이 따뜻한 남방이라서 다행이지, 조선본토였다면 저들은 겨울에 다 얼어 죽었을 거다.

그런 천막촌 옆으로는 조선과 마찬가지의 한옥이 하나둘씩 세워져 있는 게 보였다.

‘확실히 잘하는데? 역시 머리가 좋긴 좋아.’

이순지는 역사에 이름이 남을 정도로 똑똑한 인물이니,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미숙한 설계도면과 공학기술과 계산기가 없어도, 산가지를 날려가며 열심히 계산을 해냈을 거다.

어쩌면 녀석은 천문학이 아니라 산학과 공학부분에서 자신만의 이론을 만들어낼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은근슬쩍 이것저것 가르쳐줬잖아? 그걸 써먹고 있는 건가?’

연오랑이 비록 수학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피타고라스 정리와 같은 중등수학 수준은 어렴풋이 알지 않나. 비록 그걸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지만, 현상을 결과로 보여줄 수는 있지.

해서 어릴 적에 이것저것 가르쳐주긴 했는데, 그 씨앗이 어떤 꽃을 피울지는 모르겠다.

‘녀석이 책을 냈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는데... 어련히 잘 하겠지.’

요샌 관원이나 학자들이 자기 생각을 담은 이런저런 저서를 내는 게 특이한 일이 아니지 않나. 조정에서도 자주화 및 전문화를 밀어주는 터라, 딱히 규제하지도 않았다.

시간이 더 흐르면, 이순지는 그간 경험을 농축해서 도시설계나 건축공학에 대한 책을 쓸지도 모르겠다.

‘조선 도시설계의 사조가 되는 건가? 그것도 웃기겠네.’

그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피식피식 흘려댔다.

계속해서 구경을 이어갔다.

머리까지 오는 낮은 담벼락과 본채 및 사랑채, 화장실 등이 하나로 묶여 한집을 구성하고 있었고, 네모반듯한 집들이 딱딱 줄을 맞춰서 이어지고 있다.

조선본토와 만주에서 지어지고 있는 신도시가 다 이런 식이니, 이곳이라고 다를 건 없다.

다만 이건 미래의 그가 봤던 조선의 집성촌이 아니라, 오히려 땅이 넓은 미국의 주택가를 보는 것 같다.

아마 담벼락을 없애고, 앞에 잔디를 깔면 비슷하지 않을까.

‘하지만 조선본토에서 잔디를 깔 순 없잖아? 겨울이면 다 죽어버리는데... 물도 많이 먹고.’

헛된 꿈은 가볍게 지워냈다.

지금의 조선에겐 그냥 담벼락 근처에 돈이 되는 나무나 감, 밤나무와 같이 열매를 맺는 나무를 왕창 심는 게 최고다.

그렇게 조성된 주거구역을 지나자, 상업구역으로 삼은 듯 터를 닦고 있는 구역이 보였다.

도로예정지를 중심으로 쭉 2,3층짜리 건물이 마주보며 쭉 이어지는 걸로 보아, 저건 분명이 상점거리다.

특이한 점은 구역마다의 거리가 조금 넓고, 도로 옆에 구성할 배수로가 생각보다 엄청 촘촘하고 넓다는 점.

‘작년에 고생을 좀 했나 본데?’

연오랑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순지가 나름 도시설계에 일가견이 있다지만, 대만의 날씨를 겪어봤겠나.

아마 본토나 북방을 생각하고 설계했다가,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생각을 고쳐먹었을 거다.

게다가 태풍의 경로에 딱 위치에 있으니, 아무리 동쪽 산맥에 부딪혀 약화됐어도 태풍의 영향을 안 받았을 리가 없다.

‘그래서 저렇게 배수로를 촘촘히 만들었겠지. 집 또한 초가집은 꿈도 못 꾸고 전부 기와집이나 벽돌집으로 만들었을 거고 말이야. 석회광산을 더욱 많이 찾아다녀야겠어.’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니, 또 하나의 숙제가 남겨졌다.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흰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곳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저기는 보나마나 가마터가 분명. 아마 몇 년, 아니 몇십년동안 저 가마터는 불이 꺼질 날이 없을 거다.

‘꽤 큼직큼직하게 부지를 잡은 걸로 봐선, 녀석도 확장할 걸 예상하고 있나보군.’

지금은 조정관원과 장인들이 관리하고 있지만, 이제부터는 자기기업이 저걸 인수해서 원주민을 사원으로 고용해 써먹을 것 아닌가. 미리미리 대비를 해놓은 모양이다.

‘가마라... 여기서도 강철을 뽑아낼 수 있지? 아마?’

그는 이래 십수년전부터 적어놨던 오래된 미래의 기억을 떠올렸다. 게임 속 자료가 틀린 게 아니라면 대만에도 석탄광산이 여럿 있고, 유연탄 광산마저도 있다.

‘그게 기륭이지? 여기서 바로 코앞에 있는 곳이잖아.’

기륭은 타이베이 동북쪽에 위치한 곳으로 항구로 쓰기에는 입지가 좋지만, 사방이 산맥으로 싸여서 평지가 워낙 적은 곳이다.

다만 타이베이와 너무 가까워서, 미래에는 타이베이 외항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곳이 발견되고 발전하는 건 앞으로도 거의 이백년쯤 뒤로, 스페인이 대만에 진출해 기륭에 자리 잡고 요새를 짓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을 테고, 원주민들도 마찬가지겠지.’

저기에 터 잡고 사는 원주민 부족이 뭔지 모르겠다만, 조선군이 바로 코앞에 자리 잡은 건 봤을 것 아닌가.

숙이고 들어오든, 칼을 쥐든 어떤 형태로든 반응할 거고, 결론은 조선이 저길 집어삼킬 수 있다는 거다.

‘그리고 뒤져보면 유연탄 광산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이곳에서도 직접 강철을 뽑아낼 수 있겠지.’

그는 머릿속에 지도를 그려가며, 스스로 납득하고 반문하기를 반복했다.

조선 땅에서 코크스를 만들 수 있는 곳은 용연과 만주 밖에 없지 않나. 거기서 강철을 뽑아내서 여기까지 가져오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다.

‘게다가 북쪽은 복건이나 광서,광동의 영향도 안 받을 거고... 일본은 당연하잖아? 유구는 더 말할 것도 없지.’

지금쯤이면 유구가 통일 됐을 테고, 중개무역을 통해 나름 번창하게 되지만... 지금 역사에선 아니다.

조선,일본 모두 중국과 직거래를 하고 있는데, 굳이 유구를 거쳐 갈 필요가 없다.

‘아닌가. 일본의 배는 아직 미흡하니까 유구를 거쳐 갈지도 모르겠네.’

유구는 그냥 섬 하나 달랑 있는 게 아니라, 규슈에서부터 오키나와까지 작은 섬들이 점점이 박혀 있지 않나.

일본상인들 입장에선 징검다리를 건너듯 섬을 따라서 이동하면, 태평양으로 빠지지 않고 쉽게 항로를 찾을 수 있었다.

“...”

‘흐음...’

문뜩 이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그래도 유구가 원래 역사처럼 발전하긴 힘들 것 같다.

일본 구주상인들도 중국에 갔다가 제주에 들려서, 물건을 교환 및 구입한 후에 일본으로 되돌아가는 게 이득이니까.

‘그렇다고 우리가 먹기에는 쓸모가 없단 말이지.’

일본이야 그렇다 쳐도, 조선의 경우에는 더욱더 유구가 필요 없다.

유구국은 별다른 특산물도 없고,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물건을 가져다가 조선에 팔았으니까.

대만에 진출한 이상, 유구는 더 이상 필요가 없는 존재지.

먼 미래를 생각하면 유구 및 근방의 섬과 해역을 조선의 것으로 만드는 게 좋겠지만, 말 그대로 너무 먼 미래다.

한 사백년 후쯤에는 조선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상상도 안 되는 데, 그때를 대비하자고 대만과 유구 사이에 있는 섬을 먹는 게 뭔 의미가 있겠나.

‘낭비야 낭비. 일단은 찾아보고 비석이나 세워놓으라고 해야지. 뭐. 지도에 표기하고.’

연오랑은 그리 결정내리고서, 잡생각을 날려 보냈다.

이런저런 상념을 하고 있자, 회의 준비가 끝났다고 알려왔다.

냉큼 내려가 회의실로 향하자, 땀 냄새 나는 이들이 우글우글 몰려 있었다.

새로 만들어진 관아에는 흡사 편전처럼 구성된 대회의실이 있었고, 중대장들은 물론 이거나와 각 부서에 속한 관원들이 빼곡하게 자리 잡았다.

다만 중앙탁자에 몰려 앉은 게 아니라, 흡사 강의를 듣는 것 마냥 단상 밑에 놓인 의자에 줄줄이 앉아 있었다.

“이야...”

‘머리들만 뽑아왔는데도 엄청나네.’

이곳 남주도로 파견된 조정관원의 수만 무려 천명을 넘지 않나. 그들 대표만 뽑았어도 대회의실이 꽉 찼다.

착호군 시절보다 더한 분조가 만들어진 것 같다.

“오셨습니까.”

“오랜만이야. 잘 지냈나본데?”

“예.”

연오랑이 온 걸 알면서도 일하느라 바빴던 이정호는 히죽 웃으며 인사했다.

함께 한 세월이 얼만데 서로 예를 차리고 그러겠나. 그저 손 한번 흔들고, 머리 한 번 숙이는 게 끝이다.

“시작하지.”

“예.”

연오랑이 가장 앞자리에 앉기 무섭게 이정호가 입을 열었고, 이내 택리부 관원이 가장 먼저 발표를 시작했다.

이런 발표가 꽤나 낯선 게 분명한지, 초롱초롱 빛나는 수백개의 눈동자에 압도되어 혼자 심호흡을 하며 손을 떨고 있었다.

“아... 음. 먼저 지도를 보시겠습니다.”

관원은 단상 중앙에 위치한 큼지막한 지도를 펼치고서, 떨리는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갔다.

‘오. 진짜 잘 만들었는데?’

연오랑은 지도를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감탄을 흘렸다.

동쪽 산악지역까지는 표시되지 않았지만, 그 외에 해안과 서쪽 평야지대는 꽤나 잘 구현되어 있었다.

‘하긴 해군은 이 섬을 빙빙 돌아다녔을 테니까.’

선발대가 남주 정착지를 짓는 동안, 해군이 놀고 있었겠는가.

그들은 대만섬을 계속 돌면서 측량하며 해도를 만들었고, 이따금씩 화포를 쏴대며 원주민들을 압박했다.

이들을 전부 흡수할 계획이니, 미리미리 겁을 집어 먹게 만들고 산처럼 큰 전함으로 압박을 하는 거지.

이 계획은 꽤 잘 통해서, 알아서 먼저 찾아오는 마을과 부족이 있었다고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