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317화 (317/538)

317. 챕터44. 상륙하다 (3)

“해서 지금까지 확인한 바로는 크게 17개 부족, 작게는 114개 마을과 부족이 있는 걸로 확인됐습니다. 정확히 확신할 순 없지만, 총 가호수는 대략 4만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음...”

“허...?”

“정말 옛 여진이랑 비슷하군.”

“그러게 말이야.”

택리부 관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방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거 밖에 안 돼? 어쩐지...’

연오랑 또한 마찬가지로, 의문에 풀린 듯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대만섬은 남한의 3분의 1 혹은 절반 조금 못되는 크기였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다고 볼 수 있는데, 이 땅에 고작 20여만명 정도 밖에 안 산다니... 이러니 대만에 관심을 갖는 세력이 없을 수밖에.

‘이래서 땅이 넘쳐났던 거고, 외부세력이 손을 뻗치지도, 자기들끼리 뭉치지도 않은 거군.’

그는 스스로 묻고 답하기를 반복했다.

시장이 형성되어야 뭘 팔아먹든 할 텐데 그런 시장이 없으니, 이 섬을 시도 때도 없이 지나다니는 상인들조차 진출할 생각을 안 한 게 분명.

반대로 원주민들이 하나로 뭉치지 못한 것 또한 부대끼며 살 정도로 모여 있지 않았기 때문.

여진이야 땅이 척박하니 수렵 및 반농반목을 해서 활동영역이 넓어야했지만, 여긴 농사가 쉬우니 굳이 활동영역을 넓게 가질 필요가 없었던 거지.

“하나씩 설명하면...”

택리부 관원은 줄줄이 부족이름 및 인적사항을 늘어놨고, 몇몇 관원들이 주요 지휘관 및 고위관리들에게 보고서를 슬쩍 밀어 넣었다.

‘이야. 조사 잘했네.’

연오랑은 세필로 빼곡하게 적힌 인명사전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원래 역사에서도 조선은 편집광적일 정도로 여진의 인명 및 혈족관계에 대해서 조사하지 않았나. 당사자인 여진부족보다 조선이 더 잘 알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청나라도 잘 모르는 누르하치의 선대 가계도를 조선이 알고 있었겠나.

그 기질은 지금 역사에도 남아서, 고작 일 년 사이에 꽤나 자세히도 알아냈다.

‘훈민정음을 벌써 이렇게 사용하네? 좋은 현상이야.’

마음에 드는 건 또 있다.

보고서는 한문을 음차해서 적은 게 아니라, 부족명을 소리 나는 대로 훈민정음으로 적어 놨다.

지금까지는 중국의 영향을 워낙 크게 받아서, 몽골을 달단이라고 부르지 않았나.

타타르를 한어 발음과 비슷한 한자로 바꿔 적고, 그걸 다시 조선말로 읽으니... 타타르가 달단으로 바뀌는 웃기는 상황이 발생한 거지.

이러니 조선인과 몽골인이 서로 말이나 통하겠나. 같은 걸 말해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곳 원주민 부족명을 한자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훈민정음으로 적어놓아서, 확실히 서로 의사소통이 편했다.

“다만 저희가 산맥을 다 돌아다닐 수는 없어서, 산악부족의 수와 활동구역에 대해서는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긴...”

“음. 저들이야 돌아다니는 게 일상일 테니까.”

“그럴 겁니다.”

‘맞아. 몇 되지도 않는 이들을 어떻게 다 찾고 다니겠어.’

연오랑은 꾸벅 고개를 숙이며 양해를 구하는 택리부 관원을 보며, 잡념을 털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고산족이라는 명칭은 일본 식민지 시절에 생긴 말 인터라, 이 시기에는 따로 부르는 말도 없었고 그냥 산악부족이라 불렀다.

엄밀히 말하면, 저들을 하나로 퉁쳐서 묶어 부르는 말 자체가 없었지.

교차조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한 결과. 대략 1~2만명 정도가 동쪽 산맥지대에 살고 있는 걸로 확인됐는데, 이들의 기질과 성향 또한 전부 제각각이었다.

‘역시 이들도 수가 엄청 적네.’

연오랑은 다시금 대만이 텅텅 비었다는 걸 느꼈다.

원래 역사에선 명,청 시절에 강남에서 밀려드는 한족과 스페인, 네덜란드가 데려온 동남아시아인들에게 밀려서 평야 지대에 살던 원주민들이 산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원래 산악민족이었던 이들과 합쳐져서,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고산족이라 부를만한 덩치를 만들게 된다.

허나 지금은 조선이 백오십년쯤 빠르게 진출하지 않았나.

당연히 산악부족이라 불리는 이들 또한 적을 수밖에 없었다.

“산맥 깊은 곳에 사는 건 아니겠지요?”

“예. 그럴 가능성은 아무래도 적고, 보통은 산과 평야지대가 접하는 지역에 살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화전을 일구기도 하고, 수렵도 같이 하는 터라 이동이 잦은 것도 특징이고요.”

택리부 관원이 답하기 무섭게, 다시금 웅성거린다.

“음...”

“저들은 확실히 문제가 되겠군.”

“그렇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반대로 저들이 더 빨리 흡수될 수 있습니다. 야인여진의 예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저들이 호전적이라고 하니 방심해선 안 될 겁니다.”

“그래봐야 설주의 야인여진보다 더 거칠겠습니까.”

“그야 그렇지만...”

모두가 일리 있는 말을 늘어놨다.

산악부족이 아무리 호전성이 높고 거칠다고 해도, 척박한 연해주에 사는 야인여진보다 더 할까. 원래 살기가 빡빡하면 더 거칠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야인여진조차 조선군에게 속절없이 두들겨 맞아 흡수되고 있다.

굳이 비유하면 길거리 싸움꾼과 프로 파이터 선수가 싸우는 꼴이랄까? 연대병들은 수년간 사람을 효율적으로 죽이는 방법만 연마한 프로 도살자 집단이니까.

군중과 군대가 싸우면 당연히 군대가 이기는 법이다.

‘문제는 싸워서 이기는 게 아니라, 싸울 장소를 만드는 거겠지.’

연오랑은 이런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안 그래도 몇 있지도 않은 놈들이, 저 넓은 산맥으로 숨어들어 도망 다니기 시작하면... 답도 안 나온다.

“듣기로 평야에 사는 부족과 산맥에 사는 부족들 사이가 좋지 않다고 들었다만, 확실한 겁니까?”

“그건 맞습니다만 하나로 뭉뚱그려서 말할 순 없습니다. 공통의 적이 있기도 하고, 어느 부족과 어느 부족은 사이가 좋은 반면에 한편으론 다른 부족과 원수지간인 사이도 있으니까요. 딱 잘라서 말하기는 힘들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대립하는 사이가 맞습니다.”

“동시에 산악부족들도 자기들끼리 마냥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고?”

“그렇습니다. 산악부족 사이에선 평야에 사는 부족보다 더 사이가 안 좋은 부족도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긴 당연한 말일 수도 있겠네.’

연오랑은 속닥거리는 이들을 뒤로하고, 열심히 머리를 굴려봤다.

따로 살고 있으니 농사기술이나 키우는 작물이 모두 같은 건 아니고, 사람이 많이 필요한 치수공사가 제대로 되어 있지도 않을 거다.

그러니 비옥한 토지를 두고 투닥거리거나, 수렵생활을 함께 하는 산악부족이 산을 내려와 약탈을 하곤 했겠지.

‘산악부족도 마찬가지. 걔들이라고 진짜로 수렵만 하고 먹고 살 순 없을 것 아냐?’

아무리 산악부족이라도 해도 첩첩산중에서 어떻게 살겠나.

그러려면 부족원의 수가 진짜 마을단위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적어야 하고, 그 이상 되는 대규모 인원이 한곳에 모여 살려면 결국 산맥 어귀로 나올 수밖에 없다.

분명 화전을 일궈서 살았을 거고, 지력이 떨어지면 다른 곳으로 옮기기를 반복했을 거다.

동시에 사냥터 또한 계속 바뀌었을 게 분명.

그러면서 영역의 충돌이 일어나 부족 간에 싸움이 벌어졌겠지. 이 세월이 누적되고 누적되면, 근본원인을 잊어먹을 정도로 원수지간이 되는 거고.

“무장 상태는 어떻습니까?”

“강철을 생산하는 곳은 당연히 없고, 잡철을 만드는 부족이 있긴 한데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다수는 강남상인을 통해 농기구와 무기를 수입하는 식이라서 제대로 된 무기는 보기 힘들 겁니다.”

“기병은 당연히 없겠군?”

“예. 몽골계, 고려계 후손의 부족이 말을 키우긴 하는데 그 수가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들 대다수는 오히려 저희를 반기고 있어서 크게 문제 될 건 없어 보입니다.”

“음.”

“하기야... 농기구와 농사기술이 떨어져서 생산량이 많지 않으니, 농사짓기도 바쁜 판국에 말을 키우는 건 쉽지 않겠지.”

“게다가 강남에도 말 공급이 떨어진지 오래인데, 바다 건너인 이 섬에서 말을 키워봐야 얼마나 키우겠습니까.”

“맞습니다.”

‘맞는 말이야. 기병은 없다고 보면 되겠네.’

기병은 원체 돈이 많은 병종인데 과연 이들이 그걸 키울 수나 있을까.

무력으로 확장할 생각이 그다지 없는 부족들에게 기병은 쓸데없는 물건일 거다. 말을 키울 바엔, 농사에 도움 되는 물소를 한 마리 더 키우는 게 이득이지.

“성은...?”

“당연히 없습니다. 기껏해야 목책 정도가 있을 뿐이지요. 여긴 맹수가 그리 많지 않고 있어봐야 작은 표범과 흑곰 정도인데, 그것도 평야에는 없는 편입니다. 그러니 목책조차도 없는 곳이 부지기수입니다. 해안으로 갈수록 더욱 그런 경향을 보이고요.”

“허...”

“흐음.”

해안으로 갈수록 산악부족과 마주칠 일이 줄어드니, 자연스럽게 방비도 허술해지는 모양이다.

“그럼 다음으로...”

뒤이어 다른 택리부 관원이 줄줄이 나와서, 지금껏 조사한 내용을 아낌없이 풀어댔다.

조정의 택리부 관원 절반을 이곳에 쏟아 부은 보람이 있다.

지리, 기후, 풍토, 관습, 돈이 될법한 특산물등을 낱낱이 까발려서, 모두에게 일러줬다.

“이상입니다.”

무려 아홉 명의 관원이 돌아가면서 발표를 마치고서야 회의가 끝났고, 연오랑은 연대장들과 고위관원만 남기고 해산시켰다.

자리에 그대로 앉기 무섭게, 한쪽에 치워뒀던 탁자가 중앙에 자리 잡았고 모두는 긴장감이 어린 표정으로 연오랑을 주시했다.

“들어서 알다시피, 사실 싸움은 크게 없을 거다. 그 뒷수습이 오히려 더 오래 걸리고 힘들겠지. 정호. 작전계획을 설명해라.”

“옙!”

이곳에 머물면서 진공계획을 짰던 이정호는, 냉큼 발언권을 넘겨받아 입을 놀렸다.

조선군이 여러번 해왔던 작전과 크게 다를 게 없다.

분열합벽이라고 말하면 너무 거창하고, 그냥 몸이 가벼운 연대별로 흩어져서 빠르게 마을을 함락시키고 다음 목표로 이동하는 것.

“33,34,35연대가 후속 작업을 맡는다.”

“옙!”

“알겠습니다.”

육군은 계속해서 덩치를 불려서, 벌써 삼십번대가 넘는 연대가 만들어진 상황.

당연하지만 연오랑은 이들 연대장의 반수가 모르는 얼굴이었다.

대부분은 기존 연대의 대대장들이 승차해서 연대장이 되었지만, 두각을 드러내서 연대장으로 오른 이들도 있었으니까.

‘흐음. 확실히 이제 육군체제에 익숙해 졌나본데?’

연오랑은 낯선 연대장 셋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며 중얼거렸다.

공을 세우기도 힘든 이런 뒤처리 작업을 하는 걸 누가 좋아하겠어. 당연히 선봉장이 되는 걸 원하겠지만... 연오랑이 만든 조선육군은 나름 현대적으로 바뀌고 있지 않나.

부족을 함락시키는 거나, 포로로 잡은 부족민을 데려오는 거나, 공훈에 있어서는 같은 무게로 취급하니... 딱히 불만은 없어보였다.

“산악부족을 상대하는 건 지루하고 지난한 일이 될 거다. 우리 병력으로 산을 다 뒤지고 다니는 건 무리고, 그게 급한 게 아니니까.”

“...”

“예.”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서로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평야에 사는 원주민 마을을 정복해 이곳으로 데려오는 거다. 후속작업이 쉬울 것 같아 보여도, 절대 그렇지 않을 거다.”

“옙!”

연오랑이 스산한 눈빛을 숨기지 않고 말하자, 세 연대장은 침을 꼴깍 삼키며 목청을 높였다.

저들이 말 그대로 그냥 전쟁포로라면, 죽든 말든 우악스럽게 끌고 오면 그만이지만... 그게 아니지 않나.

최대한 다독이면서 데려와 부려먹어야 하니, 의식주를 모두 책임지며 끌고 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거다.

“보급기지 및 임시 집결지로 정해 놓은 곳이 있나?”

“예. 이곳 해안가들입니다.”

이정호는 연오랑이 말하기 무섭게, 지휘봉으로 족자에서 탁자 위로 자리를 옮긴 지도 이곳저곳을 집어댔다.

‘역시... 예상대로군.’

연오랑은 이정호의 설명을 들으며, 자기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요충지와 지형은 고작 수백년의 세월로는 바꿀 수가 없는 법.

이정호가 콕 집은 장소들은 네덜란드, 스페인, 다두왕국 시절부터, 청나라를 거쳐, 미래의 대만이 될 때까지도 도시로 유지됐던 곳들이었다.

“이곳. 임시로 남상주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정호는 미래에 타이중이라 불릴 지역을 가장 먼저 짚었다.

이곳은 미래에 다두왕국의 수도가 될 지역으로, 지금도 몇몇 부족이 뭉쳐서 초기 연합체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었다.

“근방에서 가장 세력이 큰 곳을 먼저 친다는 거군.”

“예. 저희 기병의 기동력이라면 5일 안에 이곳을 공략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무너뜨려서 소문을 퍼트리고?”

“예.”

이정호는 연오랑의 말에 히죽 웃고선 말을 이어갔다.

“그리곤 원정군을 셋으로 나눠서, 남쪽과 북쪽으로 나아갈 생각입니다. 특히나 남쪽으로 향하는 두 부대는... 이곳. 남중주를 먼저 장악합니다.”

그는 미래의 타이난시를 콕콕 집었다.

‘나쁘지 않아.’

이곳은 지금도 원주민이 꽤 살고 있고, 네덜란드가 진출하면서 질란디아 요새를 건설해 도시가 생겨난다. 그 후로는 정성공의 정씨 왕국, 청, 일본 식민지 시절까지도 번성을 이어가지.

“나머지 일군은 이곳. 남하주로 향합니다.”

그 다음으로 집은 곳은 미래의 가오슝지역. 미래 한국의 부산, 울산과 같은 도시로 번상하는 곳이다.

다만 지금은 깡촌과 도시의 경계 사이에 있었는데, 이곳 또한 명 말기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강남인의 이주가 시작되어 번성하기 때문.

‘사람은 없어도 입지는 좋지. 원래부터 대항구가 만들어질 조건을 갖추고 있으니까.’

연오랑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택리부와 무장상단이 남하주까지 갔다 왔나?”

“남하주는 해군이 상륙해서 조사했습니다. 강이 생각보다 커서 깊숙이는 아니지만 하류까지는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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