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318화 (318/538)

318. 챕터44. 상륙하다 (4)

“음...”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야.’

미래에는 아이허, 애하라 불리지만, 지금은 딱히 부르는 이름도 없어서 그냥 남하주 강이라 명칭을 붙였다.

이곳은 미래에도 화물선을 띄울 수 있는 곳이니, 그보다 훨씬 작은 신형전함과 무역선이 강을 거슬러 오르는 건 어렵지 않았을 거다.

“그렇게 중심거점을 장악한 후에는...”

이정호는 말을 하다가 말고, 지휘봉을 눕혀서 동쪽 산맥부터 서쪽 해안까지 쓱 훑었다.

“외각부터 쓸고 간단 말이군?”

“예. 아무래도 소문이 퍼지는 것보다 저희가 빨리 움직일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도 저들이 아군을 피해 산으로 도망치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하긴 배를 타고 도망치는 건 한계가 있지.”

“맞습니다. 그물을 치듯 가둔 후에, 겉에서부터 뜯어 가면 될 것 같습니다.”

“음...”

“이건 안 해봤는데...”

“구멍이 나면 곤란하겠는데?”

연대장들은 이정호의 말에 소곤소곤 귓속말을 나눴다.

연대별로 움직이는 거야 매번하던 거니 문제가 없지만, 저렇게 큰 그물을 만들어 포위망을 형성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

‘신입 연대장들이라서 그런가. 걱정이 많네.’

연오랑은 연대장들이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걸 보며, 속으로 피식 웃고 말았다.

지금까지 있었던 굵직굵직한 싸움에는 세종의 아이돌 그룹 멤버들을 데리고 다니지 않았나.

허나 이번엔 한 명도 데려오지 않은 탓에 다들 공훈을 따낼 절호의 기회인걸 알면서도, 가슴속 한편으론 “이걸 우리끼리 될까?”라는 우려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니 자기도 모르게 연오랑을 힐끔힐끔 보는 거겠지.

‘여차하면 나한테 맡기려는 거고, 또 교통정리가 필요하겠지.’

“작전기간을 충분히 줄 테니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 애초에 톱니바퀴마냥 딱딱 맞을 거라고는 생각도 안하고 있으니까. 기간 내에만 하나씩 정리하고 가면 된다.”

“...”

연오랑의 다독이는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한 건 괜히 공훈을 세우겠다고 무리해서 적들과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것과, 아군이 다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는 것. 제대로 된 군대가 없다지만, 방심하고 있다가 마을 안에서 기습을 당하면 또 모르는 일이니까. 눈먼 칼도 칼이고, 애들이 든 칼도 칼이라는 걸 잊지 마라.”

“옙!”

“명심하겠습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너무 봐줄 필요는 없고, 말을 안 들으면 매를 들어야지.”

“...”

연오랑이 히죽 웃으며 말을 끝맺자, 다들 이마에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보급은? 함선은 충분한가?”

“이번 작전에 가용할 수 있는 전함은 6척. 무역선은 3척입니다.”

“아쉽구만.”

“그게... 본토와 강남에서 실어올 물량이 많아서.”

“알아. 그냥 해본 말이다.”

그는 괜히 자기가 잘못한 것 같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6함대장 왕인을 다독였다.

“그래서?”

“외부에서 온 보급품과 군량은 남주에 하역하고, 해군이 임시거점으로 옮길 예정입니다. 바닷길로는 하루면 갈 수 있으니, 남상주를 점령하고 나서 곧장 움직일 예정입니다.”

“음...”

‘저치라면 잘 할 수 있겠지.’

연오랑은 연대장들에게 보급계획을 풀어 놓는 왕인을 조용히 지켜봤다.

왕인은 지금까지 계속 해군을 맡고 있었고, 설주-경흥-원산을 오가면서 두만강을 거슬러 올라 만주로 가는 수송함대를 지휘하지 않았나.

전투를 얼마나 잘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수송하는 일에는 나름 노하우가 쌓였을 거다.

“연대병들 군량은?”

“전투식량을 미리 만들어 왔으니, 한동안은 그걸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예비마도 하나씩 챙겨서 기동에는 문제없습니다.”

“음...”

‘남상주를 공략하는 건 길어봐야 일주일. 그 정도는 전투식량으로도 충분히 버티겠지. 이게 뭐 엄청 맛이 없는 건 아니니까.’

연오랑은 속으로 열심히 주판을 굴렸다.

그가 대마도 원정 때 잠깐. 몽골원정 때 대대적으로 전투식량을 만든 후로, 전투식량은 꾸준히 개선되어 오지 않았나.

있는 대로 때려 박고 죽으로 끓여 먹으면, 충분히 한 끼 식사를 대신하고도 남는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누룽지 육,어포 말린 야채해초죽 정도 되지 않을까?

“작전계획은 그렇게 하면 되고... 약재는 어떻게 됐지?”

“개똥쑥은 충분한 양을 모아 놨습니다. 곡식창고 3개 분량 정도이니, 연대병은 물론이고 원주민들에게 써도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어쩌다보니, 또 당연하게도 이 자리에 끼게 된 전순의는 조심조심 말을 이어갔다.

상해조차지 의약부 책임자로서 강남호족과 밥상머리를 같이 했지만 지금은 전혀 다르지 않나. 일개 군의관이었을 때와는 사정이 전혀 달라져서,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러웠다.

사실 강남원정 때는 연오랑에게 감히 말도 못 붙여 봤으니까.

“다들 학질은 알고 있지?”

“옙!”

학질을 모를 리가 있나. 다들 일심동체로 목청을 높였다.

“개똥쑥은 학질의 예방책이자 약이다. 맛은 없더라도 꾸준히 차로 달여서 먹여라. 연대병들에게 단단히 일러두도록.”

“명심하겠습니다.”

‘이거 찾으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려나 모르겠네.’

그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연대장들을 쓱 훑으며 한명씩 눈을 마주쳤다.

이 개똥쑥을 준비하려고 원정이 지금까지 늘어지지 않았나. 다른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이게 제일 컸다.

“준비된 개똥쑥 말고 개똥쑥 밭도 충분히 만들었고?”

“그렇습니다.”

이정호와 전순의가 동시에 답을 했다.

이정호 또한 선발대를 끌고 오기 무섭게 개똥쑥 밭을 일궜다. 그도 학질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익히 아는 터라, 심혈을 기울여 준비해 놨지.

“종두접종은?”

“남주에 있는 원주민은 끝마쳤습니다.”

“반항은 없었고?”

“다들 가볍게 앓긴 했지만 미리 공지해둬서 별 탈은 없었습니다. 아직 그게 우두인 건 모르고 있습니다.”

“다행이군.”

“예.”

연오랑은 일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뻔히 그려졌다.

조선과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우두를 약으로 쓴다는 말에 기겁했겠지만, 모르면 그만이다.

왕실에서만 쓰는 비방이라고 속인 후에 일단 맞고 나서 멀쩡하면, 나중에 진실을 알아도 그냥 놀라고 말았을 거다.

문제라면 강제로 접종을 시켰다는 건데... 지금 보니 별 탈이 없었던 모양이다.

‘하긴 원주민이라도 두창은 무섭겠지. 이들은 아메리카 원주민하고는 사정이 전혀 다르니까.’

대만 원주민은 중국 및 다른 민족상인과 계속 부딪쳤던 이들.

피가 섞이고 섞였으니, 두창과 같은 전염병에 대해선 충분히 알고 두려워하고 있었을 거다.

‘그걸 해결해줬으니, 어쩌면 조선에 더 감복했을지도 모르겠네.’

하늘이 내린 천역을 극복한 거니 이게 보통 사건일까. 아마 경외를 넘어서 두려움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

“거점지대에 원주민을 모으면 우두가 부족할 것 같습니다.”

“지금쯤이면 황보 장군이 우두에 걸린 소를 태워서 오고 있을 거다. 당연히 한 번에 다 접종할 수 없겠지만, 차근차근 접종하면 되겠지.”

“예...”

전순의는 답을 하면서도 미심쩍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알아. 부족한 거.”

“...”

“거점지대로 몰아넣은 원주민들은 곧장 본토로 데려갈 거고, 본토에서 직접 접종을 할 거다. 시간적인 여유는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대신 물소에 우두를 전염시키고, 조선황소와 물소를 교접하는 건 계속해야겠지.”

“예.”

“알겠습니다.”

전순의와 축산부 관원이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축산부는 목장을 관리하던 병조의 사복시, 사신 접대 및 종재宗宰에게 식량공급을 하던 예조의 예빈시禮賓寺, 제사에 쓰일 희생 제물로 사용할 가축을 기르던 전구서典廐署. 우마를 제외한 가축을 키우던 사축소司畜所. 등등.

육조에 흩어져 있던 기관을 하나로 모아 축산부를 만들었고, 나아가 조선에 계속 불어나고 있는 축산기업의 관리감독까지 겸하게 됐다.

당연히 덩치와 위상도 엄청 높아져서, 엄연히 육조에 버금가는 부서로 변모했지.

이곳 대만에서도 마찬가지다.

대만의 토종가축 및 야생동물과 중국에서 넘어오는 가축, 끝으로 본토에서 계속 넘어올 전마를 관리해야 하지 않나.

축산부 관원들은 이제 “나 죽었다.”라고 외치고 밤잠을 설쳐야 할 거다.

“기타 다른 약재들은?”

“중국과 본토에서 가져온 약재들도 수량은 충분하고, 강남 약재의 경우에는 이곳에서 재배할 수 있는지 확인 중에 있습니다.”

“좋아. 과하다 싶을 정도로 약초 재배를 늘려라. 그게 다 돈 아니냐? 여기서 강남약재를 재배할 수 있으면, 앞으로 강남의 약재를 사지 않아도 되니까.”

“옙!”

전순의 또한 같은 생각을 했던 지라,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이걸 노리고 약재기업을 만들려고 대만에 이주한 백성들이 있을 터, 그치들을 이용하면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을 거다.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

“원주민이 한자리에 모이기 시작하면 분명히 역병이 돌 거다. 지금껏 이렇게 많은 원주민이 한자리에 모인 적이 없었을 테니까.”

“...”

연오랑의 단호한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니 각 마을 별로 분리해서 격리하고, 주둔지를 건설하는 예를 따라 임시 거주지를 만들어야 할 거다. 특히 공용화장실과 목욕탕은 반드시 만들도록.”

“옙!”

“알겠습니다!”

모두가 힘차게 답을 했다.

이게 어디 원주민 좋으라고 하는 일인가. 자기 목숨이 달린 문제다. 원주민들 사이에서 자칫 역병이 퍼지면 연대병들도 걸릴 위험이 높으니까.

시선을 돌려 다음 관원에게 향했다.

“파종은 어떻게 하고 있지?”

“일단 모판은 만들어 놨습니다. 볍씨는 전라도에서 쓰는 볍씨와 강남, 일본의 볍씨를 가져와 심었는데 전부 잘 자라고 있습니다.”

“양은?”

“지금까지 개간한 남주의 수전水田에는 쓰고도 남을 양이고, 미 개간지에는 밭벼처럼 심을 예정입니다.”

강남지방은 단립종, 장립종을 혼재해서 키웠고, 그걸 이어받은 대만도 마찬가지였다. 이주한 고향지방에 맞춰서 단립종을 키우는 곳도, 장립종을 키우는 곳이 섞여 있었지.

다만 앞으로는 여길 조선땅으로 만들어야 하니, 죄다 단립종으로 깔아야 하는 건 당연한 말.

볍씨를 이것저것 있는 대로 구해 와서 다 심어보고 있는데, 다행히 싹이 잘 튼 모양이다.

‘밭벼라... 뭐 어쩔 수 없지. 그냥 버릴 수도 없으니까.’

이앙법은 원래 모판에 벼를 키웠다가 논밭에 옮겨 심는 것 아닌가. 수전에 심으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되면 밭에 가지런히 심어도 문제 없다.

물론 잡초를 제거하기 힘들겠지만, 대충 막 흩뿌려 심은 밭벼보다는 편하겠지.

“어차피 올해는 식량을 우리가 대줘야하겠지만, 남주 만큼은 농사를 지을 수 있잖아?”

“그렇습니다.”

안 그래도 이리저리 치이고 있던 농업부 관원이 눈을 반짝였다.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집이다보니, 모든 인력이 전부 집짓는 쪽으로 몰려 있지 않나. 그렇다보니 농업부 관원은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집 짓는 건 보조군이 해줄 테니, 원주민 중에서 건축 일에 관심이 있는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농사로 돌려라. 이제 일년쯤 지났지? 원주민들도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 알아차렸을 터, 각자 하고 싶은 일이 있을 거다.”

“옙!”

“...”

연오랑이 스산한 눈빛을 뿌리자, 이정호를 비롯한 기존 관원들이 바짝 긴장해 몸을 바로 했다.

남주에서 일 년 동안 있었으면, 좋든 싫든 원주민들이 자기 입맛에 맞는 일을 대충 찾지 않았겠나. 이 일이 헝클어진다면, 선발대가 제대로 교육을 안 시킨 거다.

“특히나 앞으로 올 조선이주민들은 장인이 대다수다. 그들은 기업을 일구기 위해서 이곳으로 왔으니, 원주민들 중에서 각자 특성에 맞춰서 사원으로 부려야 할 터... 유심히 지켜봐라.”

“예.”

“지금 있는 원주민 중에서도 본토로 갈 인원이 빠지겠지만, 어찌됐건 이곳에서 미리 교육을 받고 가는 게 나쁠 건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농업부 관원은 물론이고, 교육부 관원도 눈빛을 반짝여댔다.

“다만 농사는 어차피 이주한 농부들이 주축이 돼서 하면 되지만, 이곳의 특산물과 강남의 곡식, 아국과 일본의 곡식을 재배하는 건 원주민들이나 조선백성이 하기 힘들 거다.”

“예...”

“그러니 농업부 관원들은 이곳에 맞는 품종을 키우는 일에 집중해야겠지?”

“...”

농업부 관원은 자기도 모르게 땀방울이 구레나룻을 타고 뚝뚝 흘러내렸다. 다른 관원들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어서 좋았는데, 어찌 일거리 지옥에 빠진 것 같다.

“너무 걱정하지마라. 황보 장군과 함께 전국의 농업연구소 연구원들이 오고 있으니까. 알지? 뭐라도 잘 키우면 다 너희 성과이자 돈이 되는 거?”

채찍과 함께 당근을 내밀자, 농업부 관원뿐만 아니라 다른 관원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슬그머니 번져갔다.

조정 관원이니 만큼 위에서 까라면 까야하는 신세지만, 이곳 남주도 개척과 개간은 승진과 함께 거부가 될 기회의 장이다.

조선과 중국, 일본에 없는 물산, 작물, 약초, 특산물들을 어떻게든 찾고 만들기만 하면, 그게 다 돈으로 결부되기 때문. 이들 관원의 집안들도 어지간하면 작게나마 기업을 일구고 있으니까.

‘사업아이템을 발견해서 슬쩍 집안에 알리고, 이곳으로 이주하면 나름 쏠쏠하게 돈벌이가 되지 않겠어? 이미 기반이 있는 집안이라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마다할 리가 없지.’

연오랑은 이들 하급관원들의 머릿속이 보이는 듯해서, 속으로 웃음을 금치 못했다.

‘그렇게 이주를 자발적으로 많이 하면 할수록, 이곳 토종의 문화색이나 중국색도 팍팍 지워낼 수 있겠지. 어쩌면 설주의 야인여진이나 창주로 올 루스인도 데려와서 정착시키면 더욱 그렇게 될 거고.’

연오랑은 아무도 모를 희망찬 미래를 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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