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321화 (321/538)

321. 챕터45. 정복하다 (2)

“말은 탈줄 아냐?”

“못 탄다고 합니다.”

“그럼 마차에 태워라. 다음 마을로 가지. 촌장 일가는 모아뒀다가, 다른 부족 촌장과 함께 옮기도록.”

“예.”

연오랑이 말 머리를 돌리기 무섭게, 촌장 일가는 대충 짐을 싸고서 곧장 한자리에 모였다.

가볍게 말을 몰아 나아가자, 이내 곧 다음 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은 그래도 나름 살기가 풍족한 곳이라서 그럴까? 마을마다 구역을 나눠놓고 살고 있었고 서로 싸우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똑같은 상황이 펼쳐졌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촌장 일가는 오체투지하고서 항복을 선언했고, 촌장 일가가 어디론가 끌려가자 마을 사람들 모두가 두려운 눈빛으로 그들을 마중했다.

대신 혹시나 싶어서 역관을 맡은 이들은 열심히 목청 높여 “죽이는 거 아니다! 저 강 위에 북쪽 남주로 데려간다! 너희도 가게 될 거다! 짐을 챙겨라!”라고 외치고 다녔다.

“생각보다 말을 잘 듣는 군?”

“이곳은 가까우니 남주에 대한 소문이 얼추 퍼지지 않았습니까. 이 장군이 무장상단을 운용했다면 열심히 꿀을 발라놨을 겁니다.”

“하긴, 자네가 예전에 했던 일이니 더 잘 알겠군?”

“예.”

윤평은 오래전 특전대에 있을 때, 건주,해서 여진의 정착지를 돌아다니면서 무장상단을 운용하지 않았나.

일이 어떻게 흘러갔을지 훤히 보였다.

그렇게 4개의 마을을 모두 점령하고, 촌장의 아들을 인질 겸 통역으로 뽑아내고, 오늘 묶을 임시주둔지를 준비하고 있을 때.

“충성!”

“무슨 일이냐?”

“이 근방에서 다른 마을을 발견했습니다.”

“...”

어차피 이 근방의 마을을 싹 정리하러 떠났지 않나. 그게 뭐 대수라고 저렇게 상기된 표정을 짓나 싶어서 바라보자, 특전대원은 황급히 입을 놀렸다.

“그게... 객가인 마을이라고 합니다.”

“객가인?”

“...!?”

연오랑은 물론이고, 나름 이것저것 주워들은 게 있는 연대장과 지휘관들의 시선이 한곳에 쏠렸다.

‘객가인이 여기까지 왔어? 걔들이 이 시기에 대만에 원래 있었나?’

연오랑은 눈썹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고, 연대장들은 소곤소곤 귓속말을 나누며 객가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 연대냐?”

“37연대입니다.”

“홍사석이 이끄는 저격연대입니다.”

“음.”

조비형이 만든 저격중대는 강남원정을 끝마치고, 그 효용성을 인정받아 연대로 탈바꿈했다.

다만 조비형은 연대장을 하기엔 급이 너무 높아서, 조비형의 손발이 되어준 홍사석이 진급해 연대장으로 올라갔지.

그리고 다른 연대장들에 비해 연차가 부족한 걸 아는 홍사석은, 손이 부르트도록 훈련에 목숨을 걸어서 저격연대는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금세 정예 연대로 탈바꿈했다.

사실 홍사석이 잘한 것도 있지만, 애초에 저격연대에 들어온 연대병들은 각 연대에서 명사수로 이미 이름을 날리던 이들 아닌가.

그런 이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궁술을 연마, 연구하게 했으니,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게 당연하지.

“예비연대는?”

“숙영지를 짓고 있는 40번대 연대가 남아 있습니다.”

“41연대와 함께 가지.”

“옙!”

연오랑은 다른 연대장들에게 숙영지를 만들라 이르고선, 41연대와 함께 곧장 말을 몰아 나아갔다.

천여명이 넘는 기병이 움직이건만 새처럼 빠르게 질주. 다들 해가 지기 전에 일을 끝마치고 싶은 심정은 마찬가지인가 보다.

“여긴 정말 본토와 다르면서도 비슷하군.”

“그렇습니다.”

연오랑은 병풍처럼 가리고 있는 동쪽 산맥을 보며 중얼거렸다.

저 멀리 보이는 산맥과 산은 멀리서 보면 조선의 산과 똑같아 보였지만, 가까이서 보면 조금씩 다른 점이 느껴졌다.

이따금씩 조선에서 볼 수 없는 야자수가 튀어나오는 걸로 보아, 아무래도 수종에서 가장 차이가 나는 것 같다. 게다가 대만섬의 산은 조선보다 더 험해서, 산을 타넘는 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닐 거다.

그걸 빼면 뭐... 산세에 계곡과 강, 늪지와 습지가 얽혀 있는 게 조선과 판박이다.

‘산악부족도 저 산 꼭대기에는 못 살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놈들 잡으러 다니려면 개고생을 할 것 같단 말이지.’

연오랑은 끔찍한 상상을 애써 떨쳐내고서, 금세 연대병이 포위하고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오...”

“과연! 진짜 객가인이군.”

“저게 그 토루인가?”

‘이야... 이걸 보게 될 줄이야.’

연오랑은 물론이고, 함께 따라온 연대장과 지휘관들이 하나같이 감탄을 표했다.

객가인은 송대부터 이런저런 전란을 피해 강남으로 이주해 온 이들이었는데, 특이하게도 토루라는 거대한 집단건물, 혹은 공동주택을 만들어 살았다.

미래의 아파트와 비교하면 비슷하지 않을까? 3~5층짜리 건물을 원형이나 타원형으로 지어 올려서, 주거지 겸 성벽으로 써먹은 거지.

어쩔 수가 없는 게 이주민과 원주민간에는 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없고, 이건 나라와 관아가 존재해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런 민간의 패싸움을 계투라 불렀는데, 단순히 패싸움을 넘어서 무기를 들고 죽고 죽이는 싸움을 벌였다.

이 계투는 워낙 뿌리 깊게 남아서, 앞으로 수백년 후의 중국에서조차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정도였지.

이런 계투에 대응하고자 객가인들은 방어용 거주지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게 곧 토루로 발전하게 됐다.

다만 이걸 다들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본 건 처음이라서 꽤나 신선하게 느껴졌다.

“충성!”

하지만 그런 감정은 상관없는 다른 지휘관들의 마음속에서나 피어오르는 거고, 원주민 마을을 정복하러 온 홍사석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었다.

성벽이나 다름없는 토루지만 연대는 화기대를 끌고 다니지 않나.

당장 때려 부순다면 때려 부술 수 있는데, 원주민을 최대한 온건하게 살려서 끌고 가려는 게 목적이다보니... 홍사석 입장에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 연오랑에게 알리게 된 거지.

그런 심정이 그대로 얼굴에 표시되는지, 홍사석은 연오랑을 앞에 두고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송구하옵니다.”

“됐다. 토루 밖으로 도망친 이들은 없지?”

“예. 밖에 있던 포로들은 전부 잡아놨습니다.”

홍사석은 연오랑의 비위를 맞추며, 냉큼 입을 놀렸다.

“항복서신은 보냈나?”

“예. 하오나 화살이 대신 날아오더군요.”

“오? 화살도 쏴?”

“예. 나름 무장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가서 보지.”

“옙!”

허풍이 아닌 듯, 홍사석은 냉큼 연오랑을 이끌고 토루 근처로 다가갔다.

당연하지만 포위를 하고 있는 37연대에 대항해 토루 위에서 망을 보고 있던 객가인들은, 또 다른 기병대가 다가오자 한바탕 난리법석이 벌어졌다.

그 소란이 얼마나 컸는지, 토루 밖에 있는 연오랑 일행에게도 들릴 정도.

“오...?”

“진짜 무장을 했네?”

“방금 전에 봤던 원주민과는 전혀 다르군요.”

“거참. 바로 코앞에 두고서 이렇게 다를 줄이야.”

다들 망원경은 가지고 있었기에, 모두가 토루 꼭대기에 위치한 층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토루 꼭대기엔 기와로 지붕을 올렸고, 흡사 총구마냥 군데군데 창문을 만들어 밖을 공격할 수 있게 만들어 놨었다.

그 속을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니, 꽤 많은 이들이 대도로 무장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대도라... 이놈들 진짜 수상한데.’

중국의 무기 중에서 대도, 박도, 월도등으로 불리는 무기가 있는데, 그냥 한손으로 쓰는 큰칼을 마구잡이로 혼용해서 쓰는 편이었다.

단순히 무기로만 쓰이는 게 아니고, 나무나 풀을 베고, 고기도 썰고, 길도 내고 등등. 다용도로 쓰이는 물건이었지.

“저기 보시죠. 비갑을 찬 이도 있습니다.”

“음? 정말이군.”

“허허?”

누군가의 말에 망원경이 한곳으로 몰렸고, 연오랑 또한 살펴보니 열어놓은 나무창 너머로 중국식 갑옷을 입은 인물이 뭐라뭐라 소리치는 게 보였다.

아마도 촌장쯤 되지 않을까 싶다.

그 옆으로는 한족이 그렇게 좋아하는 팔 보호대인 비갑을 찬 이들이 함께 하고 있다.

“수상하지?”

“예. 아무리 봐도, 강남에서 넘어온 지 얼마 안 된 이들 같습니다.”

모두는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갑옷을 입은 이들은 여기 와서 처음보지 않았나. 원주민이라고 보기에는 한참 무리가 있다.

“정찰대를 여기까지 보내지 않은 건가?”

“분명 보내긴 했겠지만, 저렇게 무장한 모습을 보여주진 않은 모양입니다.”

“아마 저희가 진공경로를 바꿔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무장상단은 최대한 많은 곳을 돌아다니면서 회유를 하는 동시에, 진공경로도 만들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군이 산에 바짝 붙어서 오지를 들쑤시고 다닌 탓에, 무장상단도 여길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거군?”

“그런 걸로 사료됩니다.”

연오랑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모두의 시선이 그의 입에 집중됐다.

사실 여길 제대로 모르고, 저들이 무장을 하든 말든, 그게 뭔 상관이냐.

밟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게 중요한 거지.

“화포를 방열하고 입구를 노려라. 그나마 덜 다치는 게 좋지.”

“옙!”

“다시금 항복서신을 보내라. 지금 항복하지 않으면 토루를 다 무너뜨린다고 해.”

“알겠습니다.”

홍사석은 냉큼 달려 나갔고, 이내 곧 화포 20문이 방열을 시작했다.

“어쩔 것 같습니까?”

“강남에서 넘어온 지 얼마 안됐으면, 저들이 아무리 무지렁이라도 화포를 모를 리가 없겠지.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릴 거다. 아마 골치 아플 거야.”

“...”

객가인은 폐쇄성이 엄청 강해서 지들끼리만 모여 사는 이들. 당장 눈앞에도 저런 괴상한 집단거주지를 만들어서 생활하지 않나.

그러니 항복할지 말지 고민하는 게 가벼운 일은 아닐 거다.

“...”

“답이 없군.”

하지만 맞아 봐야 정신을 차릴 건지, 아니면 토루를 믿고 있는 건지 몰라도 항복서신을 보냈는데도 답이 없었다.

“화포를 모르나?”

“글쎄요... 강남에서 왔다지만 화포를 직접 본 이들은 없는 모양입니다.”

다들 확신 없는 목소리를 내뱉었고, 연오랑 또한 고개를 끄덕이고선 명을 내렸다.

“부셔라. 급하게 쏠 것 없이 천천히 쏴라. 괜히 사람 많이 죽으면 수습하는데 피곤해진다.”

“옙!”

홍사석은 다시 또 냉큼 달려가 화기대장과 화포병들을 갈궜고, 그들은 “화포를 쏘는데 사람 다치지 않게 살살 쏘라는 게 뭔 말이야?”라는 표정으로 궁시렁거렸다.

쾅!콰콰쾅! 어찌됐건 화포는 불을 뿜기 시작했고, 고작해야 100보 조금 넘는 거리에서 쏴댄 화포는 굉음과 탄내를 뿜어내며 힘을 과시했다.

‘튼튼 하려나? 모르겠네.’

연오랑도 토루를 보는 게 처음이지 않나.

밖에서 보면 그저 흙으로 죄다 발라놔서 두께가 어느 정도 되는지 가늠도 안됐다.

‘하지만 성벽도 부수는데, 토루를 못 부술 리가 없겠지.’

그의 예상대로 콰쾅! 눈에 보이지도 않게 날아든 포탄은 토루 입구를 가볍게 부수고 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토루 안쪽의 원형 공간에는 우물을 비롯한 사당, 공동시설이 있는데 그걸 다 박살내 버린 모양이다.

“음. 쉽게 뚫리는데요? 듣기로 토루의 입구는 철을 발라 보강한다고 들었는데...”

“여기서 그게 되겠어? 철문을 만들 돈이있었으면, 저들이 이 낯선 땅까지 이주하지도 않았을 거다.”

“그렇겠지요?”

연오랑의 핀잔 아닌 핀잔에 윤평은 히죽 웃었고, 그 웃음소리에 맞춰 화포는 느긋하게 하지만 꾸준히 불을 쏘아냈다.

쾅! 굉음과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자, 펑! 토루의 벽면에 부서져 흙부스러기와 안에 들어간 나무조각들이 떨어져 나왔다.

“꼭대기층을 노려라. 충격을 더 줘야겠다.”

“옙!”

“포각을 올려!”

화포병들은 열심히 손을 놀려 포각을 높였고, 이내 곧 다시 쾅쾅쾅! 순차적으로 불을 뿜었다.

고작해야 100보를 두고 고정된 진지에서 쏘는데 빗나갈 리가 있나. 포탄들은 정확히 토루의 지붕을 박살내며 반대편으로 날아갔고, 와장창! 가루가 된 기와 파편이 우박처럼 안으로 쏟아져 내렸다.

“이제 항복하겠지?”

“그렇지 않겠습니까.”

다들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밖에는 이미 이천에 가까운 기병이 느긋하게 빙빙 돌면서 몸을 풀고 있고, 입구에선 화포가 불을 뿜어댄다.

가만히 있으면 포탄에 맞아 죽고, 나오면 말발굽에 밟혀 죽는 다면, 항복하는 게 정답 아니겠나.

“저기!”

“발포 중지!”

“발포 중지!”

누군가 외치기 무섭게, 복명복창하며 화포병들이 손을 멈추며 대기했다.

“뭐 보이나?”

“예. 처음에 봤던 곳 있지 않습니까. 그곳에서 흰 깃발이 올라왔습니다.”

“저게 항복 표시인 것도 알고... 쟤들 정말 수상하군.”

“예.”

연오랑을 비롯해 모두가 토루 앞으로 나아가며 중얼거리고 있자, 반쯤 박살난 토루의 정문이 완전히 무너져 먼지구름을 피워냈다.

느긋하게 서서 기다리고 있자, 촌장 일가로 보이는 이들이 줄줄이 걸어 나왔다.

그래도 죽은 사람은 없는 모양이다.

파편에 맞아 피를 흘리는 이들이 있긴 한데 크게 다친 것 같지 않고, 누가 부축하지 않아도 제 발로 걸어 나오고 있다.

연오랑이 백호가죽을 껴입고 있으니 딱 봐도 우두머리처럼 보이기 마련. 이들은 화들짝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쿵쿵쿵! 연오랑과 지휘관들 앞에 엎드려 머리를 땅에 박았다.

“항복하겠냐고 물어봐라.”

“예.”

통역의 말이 터지기 무섭게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목청을 높여댔다. 아무래도 화포의 공격에 꽤나 넋이 나갔는지, 어째 또박또박 말을 하는 이들이 없다.

“어디서, 언제 왔냐고 물어봐라.”

“대략 이십여년전에 복건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이십년?”

“허?”

“흐음?”

촌장으로 보이는 노인의 대답에, 연오랑은 물론이고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왜 벌써와? 역시 객가인은 이 시기에 없어야 되는 거 아냐?’

연오랑 또한 자신이 생각했던 대만과 뭔가 비틀린 것 같아서, 냉큼 사정을 토해내라 쏘아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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