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328화 (328/538)

328. 챕터45. 정복하다 (9)

“헌데 대대장님.”

“...?”

“병사가 부족할 텐데, 저흴 이렇게 빼도 되겠습니까?”

“원주민을 이송하고 있는 33연대가 도와주고 있잖나? 큰 문제는 없을 거다. 오히려 우리 일이 더 급한 걸지도 모르지.”

“음...”

중대장은 머리를 긁으며 생각에 잠겼고, 이징석 또한 괜한 우려를 날려 보냈다.

남주도 선발대는 전원 특전대로 구성되어 있었고, 본대가 남하한 후로 이들은 연오랑의 명을 따라 북쪽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북쪽에 있다는 항구지역을 점거하는 한편, 이 근방에 있는 산악부족도 함께 정리를 해야 했으니까.

‘다만 너무 빠른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오히려 지금 움직이는 게 나을 지도 모르겠군. 나름의 성동격서 아닌가.’

조선군의 움직임은 초미의 관심사고, 남쪽은 몰라도 북쪽에선 조선군이 남하한 걸 몰래몰래 훔쳐봤을 게 분명.

그런 대병이 움직이는 와중에도, 따로 병력을 쪼개서 북쪽을 공략할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거다.

“너무 걱정하지마라. 설령 우리의 움직임을 알아차렸다고 해도, 힘으로 밀어붙이면 그만 아니냐? 우리가 누구냐.”

“특전대입니다.”

“그래.”

이징석은 기운찬 대답에 히죽 웃었고, 중대장 또한 미소를 이어받았다.

연오랑을 만날 때만해도 개차반이었던 이징석이지만, 그 후로 벌써 십년이 지나지 않았나.

착호군은 그 누구보다 낮선 곳을 많이 돌아다니며 세상 보는 눈을 넓혀갔고,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낮선 곳을 탐험하고 다녔던 이들이 특전대다.

이징석도 사람이 바뀌어 특전대에 녹아들어갈 수밖에 없고,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면 대대장의 자리까지 오르지도 못했을 거다.

“오단.”

“예. 장군님.”

“여기로 가면 산을 타 넘을 수 있는 것 맞지?”

“그렇습니다.”

이징석의 물음에 이질적인 행색을 가진 두 사람이 냉큼 다가와 입을 놀렸다.

머리를 박박 밀어버린 몽골계 원주민은 몽골말을 내뱉고 있었고, 피부가 조금 까무잡잡한 이는 조선말을 더듬거리며 답했다.

선발대가 남주에 도착하고 원주민을 쓸어 담을 때.

북쪽 화산지대 인근에 살던 산악부족 중 몇 개가 조선군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왔다.

이곳은 여진과 묘하게 닮았다고 하지 않았나.

몇 명 되지도 않는 산악부족임에도 지들끼리 싸우며 사이가 나빴고, 다른 부족마을에 비해 세가 부족한 부족은 좋은 자리를 빼앗기고 밀려났다.

그래서 짐승도 살기 버거운 화산지대로 터전을 옮겼던 거지.

남주의 평야지대를 정복한 선발대는 이내 곧 근처의 산을 쑤시며 정찰을 시작했고, 무장상단과 산악부족은 어색한 조우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분위기는 나름 괜찮았다.

안 그래도 힘이 부족해서 밀린 산악부족은 궁핍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으니 조선의 신문물을 반길 수밖에 없었고, 반대로 선발대는 선물이자 대금으로 내놓은 물건에 만족을 표했다.

이들이 내놓은 물건은 다름 아닌 유황이었으니까.

그렇게 몇 번 교류를 이어가자. 화산지대 인근의 산악부족은 결국 남주로 내려와 조선에 흡수당했고, 그 중 몇몇은 조선군에 매료되어 길잡이를 자처할 정도가 됐지.

다만... 입고 있는 갑옷이 영 익숙하지 않은지, 계속 어깨를 으쓱거리며 몸을 긁고 있다.

“왜? 벌레에 쏘였나?”

“그게 아니라 갑옷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답니다.”

“그래도 입으라고 해라. 안 그러면 화살을 맞을 테니까.”

“...?”

의아한 눈빛을 숨기지 못하고 있자, 이징석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적들이 쏘는 화살 말고, 우리가 쏘는 화살. 갑옷을 안 입으면 아군인지 적군인지 구별을 못 하잖냐.”

“예...”

몽골말을 하는 이가 통역을 해주자, 길잡이 원주민의 눈동자가 보름달마냥 커져서 냉큼 고개를 끄덕여댔다.

산악부족은 수렵생활을 하니 활을 쏠 줄 아는 사람이 많았기에, 평야의 원주민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조선군과 비교하면 쓰나.

기후와 환경이 다르니 사냥술에선 우위를 가릴 수 없다고 쳐도, 활과 궁술에선 우위가 확연히 갈린다.

조선군은 이 땅엔 없는 불곰과 호랑이를 사냥하던 이들.

전원이 기사를 할 줄 아는 조선군은 세계에 유래 없을 특이한 병종이고, 수백명이 말을 타고 떼 지어 몰려다니면서 화살을 쏘는 걸 보며 원주민 사냥꾼들은 기가 팍 죽을 수밖에 없지.

게다가 활과 화살조차 원주민이 쓰는 목궁과 비교할 수도 없는 명품 아닌가.

원주민 사냥꾼들은 각궁에 홀라당 눈이 뒤집혀서, “나도 저거 갖고 싶다!”라고 외치며 조선군이 되겠다고 달라붙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길잡이를 자처하게 된 오단이라는 인물은 그런 사냥꾼들 중에서도 가려 뽑힌 인물이니, 이징석의 말을 결코 농담으로 받아들을 수 없었지.

특전대대는 계속해서 북동쪽으로 나아갔다.

남주를 가로지르는 남주강은 동쪽 산맥의 여기저기에서 흘러들어오는 지류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큰 강이고, 그 지류 중 하나는 미래에 기륭이라 불리는 지역 인근으로 이어져 있었다.

“이쪽은 그래도 완만하군. 북방이랑 비슷한데?”

“예. 수종은 조금 다르지만, 이곳도 개척해서 길을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징석의 물음에 중대장들, 이곳 출신인 원주민 오단이 이런저런 의견을 내뱉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니, 강줄기 또한 낮은 지대인 협곡을 따라 흐를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이 협곡지대가 얼마나 넓은지, 지류 근처에 공간이 있는지가 문제인데... 이곳은 충분히 강을 끼고 이어지는 도로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완만한 지세였다.

“뗏목을 만들어서 움직이기에는 충분하고... 수심은?”

“잠시만... 이제 곧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중대장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기병들에게 묶인 밧줄에 이끌려 천천히 딸려오고 있는 뗏목을 가리켰다.

작게 만들어진 뗏목 위에서, 특전대원 몇이 긴 장대를 들고 푹푹 쑤시고 있는 게 보였다.

잠시 멈춰 서서 기다리고 있자, 특전대원이 우렁차게 목청을 높였다.

“충분하군?”

“예. 대형까지는 힘들어도 중형은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래의 판옥선을 닮은 대형조운선이 등장하면서, 조선 함선의 체급이 한 단계씩 올라간 상황.

중대장이 말한 중형조운선은 대맹선을 의미했으니, 이 강은 생각보다 작지 않은 편이었다.

‘근처에 제제소나 유황광산을 만든다고 치면... 이쯤에 부두를 만들어야겠군. 위로 가면 더 얕아질 테니까.’

만주에서 이렇게 만든 부두와 항구가 한둘이 아니지 않나.

예전 지리감 소속 관원들과 함께 돌아다니며 보고 배운 게 있는 터라, 어렵지 않게 지세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전문가를 불러본다.

“어떤가. 여기가 좋겠나?”

“예. 지세를 보아하니, 더 올라가면 이제 물줄기가 흐려질 겁니다. 여기에 부두를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함께 따라온 지리감. 이제는 택리부로 바뀐 관원이 거리를 측정해주는 기리고차에서 내려 냉큼 달려와 답을 했다.

“표시해 놔라.”

“옙!”

이징석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특전대원들 몇이 나뭇가지를 꺾어와 땅에 박아 넣고 오색끈을 묶었다. 근처의 나무에도 비슷한 표시를 이어갔다.

계속 걸음을 옮기자 택리부 관원의 말대로 강줄기는 점점 얕아졌고, 대신 오밀조밀하게 뭉친 산세가 모두의 시선을 가로막았다.

“산을 타야겠군.”

“타는 게 아니라, 길을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가.”

이징석이 피식 웃자, 중대장을 비롯한 택리부 관원이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올라가봐야 알겠지만 산세가 이어지진 않은 것 같습니다. 이 고개만 넘어가면 더 높은 산은 없는 것 같으니, 일단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을 터야 할 것 같습니다.”

“확인하지.”

이징석은 잠시 본대를 멈추고 특전대원을 뿌렸고,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몰고 산으로 들어갔다.

잠시 숨을 고르며 기다리고 있자, 정찰을 나간 이들이 속속 돌아와 어디로 길을 내는 게 좋을지 일러왔다.

특전대가 이런 작업을 한두번 한 게 아니지 않나. 비록 이곳이 낮선 남방이라고 해도 본토나 만주땅과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오단. 이 산을 넘어가는 게 맞나?”

“예. 제대로 왔습니다. 여길 넘어가면 바다가 나옵니다.”

이 인근은 본래 오단의 부족이 살던 땅이었고, 밀려난 후에도 몰래몰래 사냥을 하러 드나들었던 곳.

누구보다도 잘 아는 터라, 자신 있게 답을 했다.

“어디가 제일 완만하지?”

“그게...”

산악부족민 오단은 답을 하기 무섭게 택리부 관원에게 끌려갔고, 흡사 취조 당하듯이 이런저런 말을 토해냈다.

이윽고.

“이곳이 좋을 것 같습니다.”

택리부 관원은 미완성된 지도를 놓고 설명을 이어갔고, 지휘관들 모두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산을 끼고 사선으로 빙 돌아서 가는 길을 내자고 말하고 있었는데,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이곳은 미래에 기륭과 타이베이를 잇는 터널이 만들어지지만, 이 시대에 그게 가능할 리가 있나.

당연히 산을 타넘는 길을 만들어야지.

“숙영지를 짓는다. 한동안은 이곳에 머물러야 할 것 같군.”

“옙!” “넵!”

이징석의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중대장들은 곧장 특전대원에게 달려가 명을 내렸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게 꼭 개미떼 같다.

이들이 매번 하던 게 이런 일이지 않나. 이들이 만든 숙영지는 이제 곧 새로운 마을이자 역참과 비슷하게 바뀌게 될 터라, 다들 신중하게 생각하고 벼락처럼 움직였다.

숙영지를 완성하고 난 후에는 본격적으로 개척작업에 돌입했다.

모두가 도끼와 톱, 삽을 들고서 길을 내기 시작. 큰 암석지대는 돌아서 길을 파냈지만 바위나 작은 암석은 화약을 이용해 펑펑! 터트리며 길을 뚫어냈다.

거의 일주일에 걸쳐 대충 만들어진 길은, 사두마차가 지나갈 정도의 폭을 가지고 있었다.

말 그대로 말과 마차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대충 만든 길이라서, 길바닥은 종기가 난 것 마냥 잘려나간 나무 꽁다리와 잡초가 빼곡하게 박혀 있었다.

“제대로 길을 만들려면 고생을 조금 해야겠어. 여긴 나무가 더 조밀하게 모여 있는 것 같군.”

“이곳이 특히 그런 것 같습니다. 남주의 평야 인근의 숲은 안 이랬는데 말입니다.”

특전대가 만든 산길은 기리고차를 끌고 가기 위해 만든 임시방편.

진짜 산길은 이제부터 인부를 갈아 넣어야 완성된다.

길옆을 제대로 깎아서 토사가 쏟아지지 않게 정비하고, 양옆과 산길을 관통하는 배수로를 파서 물이 빠질 구멍을 만들고.

길에 박힌 나무뿌리와 잡초를 완전히 뽑아내고, 속살을 드러낸 맨땅은 삼물회를 굳혀 만든 굴렁쇠를 가져와 여러 번 다져야 완성될 거다.

‘못해도 몇 달은 걸리겠군. 그래도 그나마 멀지 않아서 다행이야.’

이징석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구겨졌다.

“흠... 말을 타고 산을 누비는 게 힘들지도 모르겠어.”

“역시 그렇지요?”

그의 말에 중대장도 동감하는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산에서 말을 타고 돌아다니는 것이야 말로 특전대의 주특기인데, 이곳에선 그게 무용지물이 됐으니 아까울 수밖에 없다.

“일단 가보면 더 확실해 지겠지.”

“예.”

줄줄이 이어지는 행렬은 이내 곧 산길을 벗어났고, 산을 벗어나자 확 트인 평지가 눈을 사로잡았다.

양 옆으로 산세가 감싸고, 앞은 짠냄새가 밀려오는 바다가 막고 있는 분지와 같은 곳.

미래에 스페인이 점령하게 될 기륭이 코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이렇게 입지 좋은 곳에 사람이 안 살 리가 있나.

“오단. 여기 사는 이들이 너흴 밀어낸 이들인가?”

“맞습니다. 카타갈란 놈들은 저희뿐만 아니라, 저희와 함께 내려온 알타부족은 물론이고, 동쪽의 오키타라 부족도 약탈하던 흉악한 놈들입니다.”

원한이 결코 얕지 않은지, 오단은 말을 내뱉을 때마다 콧김을 뿜어내며 이를 갈았다. 가만히 놔두면, 먼저 튀어나가 한바탕 칼부림을 부릴 기세다.

“음.”

‘씁...’

이징석은 저 멀리 아른 거리는 마을 형체를 보며, 조용히 이를 갈았다.

그는 함길도 출신이고, 어려서부터 여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살았다. 원래 역사와 다르게 동북방은 꽤나 안정된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분란이 없던 건 아니었으니까.

허나 조선이 북방을 정복하고 나선, 어느 정도 이해는 하게 됐다. 약탈을 하지 않으면 말라 죽게 생겼으니, 어쩔 수 없이 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 게 여진의 현실이니까.

허나 이곳은 다르다.

땅은 넓고 사람은 적다. 기후도 좋아서 농사를 짓는 게 북방만큼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럼 얌전히 농사나 짓고 살아야지. 땅도 넓은데 굳이 다른 부족을 약탈하며 피를 부를 이유가 있을까. 그것도 성인식으로 사람의 목을 떼어 가면서 말이다.

여진이나 몽골은 농사지으려고 조선인들을 납치해 간 거에 비하면, 이들이 하는 짓은 납득할 수가 없다.

정주민족이자 농경민족인 조선인으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행태였고, 이는 이징석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조선군이 갖는 의문이자 불만, 혐오였지.

‘아무리 오랑캐가 오랑캐가 아니라곤 하나, 이들은 전혀 다르지 않나.’

그러니 생판 처음 보는 산악부족을 앞에 두고도, 괜히 전의가 끓어오를 수밖에.

“어찌하시겠습니까?”

“저들이 우리가 오는 걸 알고 있을까?”

“아마 알고 있을 겁니다. 화약을 써서 길을 뚫었고, 몰래 훔쳐보는 걸 발견하기도 했으니까요.”

“적대하는 모습을 보이면, 사정을 봐주지 않고 밟는다.”

“옙!”

이징석의 속마음이 옮기라도 했는지, 중대장들 또한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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