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331화 (331/538)

331. 챕터46. 퍼지다 (2)

게다가 반항 또한 크지 않았다.

첫째 이유는 이들 이주민 마을의 세가 원주민보다 강력해서, 조선의 통치를 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

어째 남주에서 머리 빠지게 고민했던 것과 상황이 조금 달랐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족이주민들은 통치세력에게 강력하게 반발해서 중국을 떠났다기 보단, 힘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밀리고 밀리다보니 이곳까지 흘러들어온 이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객가인들처럼 똘똘 뭉친 한무리가 아니라, 어쩌다보니 하나둘씩 뭉친 군집에 더 가까웠던 거지.

그러니 지금처럼 빈궁하게 얼렁뚱땅 살기 보다는, 차라리 조선에 흡수되는 게 안정적이고 낫다고 보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그 뿐일까. 어째 주인 없고 빈 땅 많은 대만섬에 대한 소문이 퍼졌는지, 명이 망하고 나서 이주한 이들 뿐만 아니라 근 몇년 사이 최근에 이주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니 중국전역을 뒤흔든 조선군에 대한 소문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고, 그 무서운 조선군이 이 땅에 왔다는 사실에 알아서 허리를 굽히고 들어왔지.

둘째 이유는 남상주에서 벌어진 전투가 조선군의 압승으로 끝나고, 무자비한 학살이 아닌 온건한 흡수로 이어졌다는 소문이 쫙 퍼져서였다.

일부러 도망치게 놔둔 보람이 확실히 있었는데, 소문은 날개 달린 말처럼 빠르게 남쪽 원주민 마을을 향해 쭉쭉 뻗어나갔다.

사실 남중주, 남하주의 원주민들은 나름 고심이 깊었다.

북쪽에선 어설프게 연맹 혹은 동맹이 만들어지고 있었는데, 이주민이 급작스럽게 밀려오면서 그 속도가 더욱 빨라진 상황.

게다가 이곳 또한 이주민이 밀려오면서, 원주민보다 이주민이 더 많아져서 주도권을 잃고 있었다.

강남한족은 대만 원주민보다 발달된 문명세계에서 살던 이들이고, 농사부터 장사까지 뭐가 됐든 앞서 나가는 이들 아닌가.

이 때문에 이따금씩 들리던 무역상인들이 남중주와 남하주에 자주 들락거리면서, 기존의 질서와 체계를 뒤흔들고 있었지.

당연히 충돌이 벌어질 수밖에 없고, 조선군이 없던 시절에도 점점 둘 사이의 관계는 악화되어 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뜬금없이 조선군이 튀어나와, 제1의 경계 대상이었던 남상주의 연맹왕국을 개박살 내버렸다는 소문이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

원주민들은 “조선군을 이용해서 이주민들을 압박하자.”라는 생각을 했고, 이주민들은 “조선군이 그렇게 강력하다면 우리로는 막을 수 없다. 차라리 굽히고 들어가서 이권을 챙기자.”라고 마음먹은 거지.

이리하여 남중주와 남하주의 정복은 생각 외로 순탄하게 진행 됐고.

남중주 개척을 위해 일군을 떼어놓은 연오랑은 남하주로 직접 와서 이곳을 지휘하고 있는 중이었다.

“으차.”

그는 지난 과거를 더듬기 무섭게, 해안가에 널려 있던 바위에서 몸을 일으키곤 걸음을 옮겼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가장 먼저 만들어야 할 건 역시나 부두.

원주민과 이주민을 죄다 긁어모아 인부로 만들어 부려 먹는 중이니, 이들의 식량은 조선군이 지원해야 하지 않겠나.

풍족한 보급이 없다면 민심이 흐트러지고, 더 나아가 개척작업에 지장을 줄 수 있다.

‘나름 잘 풀리고 있어. 확실히 2차 보급대가 온 게 도움이 되는군.’

“...”

연오랑은 강을 따라 끊임없이 흘러내려오는 뗏목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미래에는 애하. 지금은 남하주 강이라 불리는 상류에선 벌써부터 대규모 벌목이 진행되고 있었고, 뗏목 위에는 산맥의 채석장에서 긁어낸 바윗돌이 올려져 있었다.

더불어 강가 한쪽에는 개척한 땅에서 파낸 돌덩이 또한 끄집어내어 한자리에 모아 놨지.

“생각보다 양이 많은데? 정착을 잘 했나봐?”

“장인들이 워낙 많이 오지 않았습니까. 본토에서 온 제재,채석,건설 출신이 확실히 도움이 되는 모양입니다.”

“음.”

어쩌다보니 비서 역할을 하고 있는 윤평의 말에,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제 다들 돈에 눈을 뜬 모양이야.’

이곳 남주도에 오면 한동안 세금도 면제, 토지는 기업이 취할 수 있는 최대치를 거의 공짜로 얻을 수 있고, 사원으로 써먹을 인부 또한 거의 공짜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라서, 조정의 보급 없이는 원주민을 먹여 살릴 수도 없다.

달리 말하면 비록 지금 당장은 돈을 벌 수 없지만, 개척과 건설작업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조정의 돈으로 기업을 공짜로 키울 수 있는 거지.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의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본토에서의 이주 열기는 뜨거웠다.

“출신은 어때? 대부분 양민이지?”

“중구난방입니다. 착호군에 속해서 속량된 천민도 있고, 사원으로 근무하던 양민도, 몰락했던 양반도 있고, 버젓이 기업을 일구는 양반 자제 중에선 아예 집안에서 떨어져 나온 이들도 있습니다.”

“오...”

연오랑이 작게 휘파람을 불자, 윤평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이주는 생각 외로 불야성이었으니까.

개혁 전의 조선을 기억하는 윤평에게는 이 모든 상황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지난날 조선이 백성들을 이주시키는 게 얼마나 어려웠고, 또 얼마나 고단했던가.

헌데 지금은 알아서 오겠다고 소매를 걷고 나서는 이들이 한 가득이니... 좋으면서도 뭔가 씁쓸할 수밖에.

“북방의 여진과 몽골계도 꽤 오고 있습니다.”

“그치들이 왜?”

“이곳에 목장이 없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지 않았습니까.”

“음...”

바다 건너에서 이뤄지는 대규모 원정이자 개척 아닌가.

바로 위에 붙어 있는 만주 땅을 차지하는 건, 어떤 면에선 조선인에게 그리 낯선 게 아닐 수도 있지만... 생전 있는 줄도 몰랐던 남주도를 조선의 강역으로 만드는 건, 조선을 흔드는 장안의 화젯거리였다.

“북방에도 땅은 넘쳐날 텐데?”

“땅이 문제가 아니라, 본토보다 경쟁이 덜하지 않겠습니까.”

“그런가.”

“예. 그럴 겁니다.”

연오랑은 조선을 말박이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조정은 지금도 그 계획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목마장을 미친 듯이 늘려가며 말을 키우고 보급하고 있으니, 땅이 문제가 아니라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졌다.

이는 곧 말 값의 하락으로 이어지니, 벌써부터 돈냄새를 맡은 이들이 대거 이곳으로 와서 남주도의 말 시장을 개척하려고 하는 거지.

조정의 말 증산계획이 남주도라고 해서 달라지진 않을 테니까.

“일본계 및 해안가 출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

“이곳에서 수산기업을 만들려는 이들도 한둘이 아니지요.”

“같은 이치군?”

“예.”

목마장을 만들려는 것과 똑같은 상황.

남주도 원주민들의 어업이야, 신형어선을 운용하는 조선의 어업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안될 게 분명.

일단 먼저 뛰어들어서 자리를 선점하려는 이들도 적지 않은 모양이다.

특히나 이곳은 조선의 바다와 달리 따뜻하지 않나. 어종 또한 완전히 다를 테니, 이걸 노리고 한탕 하려는 이들도 분명히 있을 거다.

‘다른 기업도 전부 마찬가지겠지. 음... 역시 내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하고 있어.’

더 말할 필요 있나.

온갖 직종의 장인들이 자신도 기업을 세워 떵떵거리는 집안을 만들기 위해서 죄다 달려왔나 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부두를 건설하는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왕인이 이끄는 해군은 부지런히 남주와 다른 개척도시를 오가며 보급품을 실어 날랐고, 가장 먼저 날랐던 건 역시나 건설기계들이다.

벌써 완성된 수차는 쿵쾅쿵쾅 굉음을 내며, 돌을 파쇄하거나 나무를 깎아댔다.

큼지막한 거중기는 뗏목 위에 실린 바윗돌과 뗏목 그 자체를 땅위로 끌어올렸고, 말과 물소를 이용한 축력식 공작기계들 또한 매일같이 돌아가며 부두자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제대로 된 강철 농기구조차 없던 원주민과 이주민들 입장에선, 이 모든 게 눈이 팽팽 돌아갈 별세계의 물건들 아닌가.

남주에서와 마찬가지로 구슬땀을 흘리며 작업을 하면서도, 마음은 꿈결을 타고 둥둥 떠다니며 넋이 반쯤 나간 모습이었다.

허나 나름 시대의 최첨단을 달리는 광경과 정반대의 야만적인 광경도 함께 펼쳐진다.

깨끗하게 밀어버린 항구의 잘 보이는 한곳에는, 장대에 박아 놓은 머리통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으니까. 날이 더워서 그런지 몰라도, 썩은내가 이곳까지 풍기는 것 같다.

오래전 해서여진을 다뤘던 것처럼, 이곳에서도 반항하는 이들의 목을 잘라 전시해 놨다.

다른 점이라면 원주민들이 두려움에 떨기보다는 오히려 반기는 이들이 더 많았다.

까닭은 저 머리통이 평야지대에 살던 이들이 아니라, 산악부족이기 때문.

이 또한 원래 역사와 조금 비틀렸는데, 이주민이 점점 많아지면서 평야지대가 원래 역사보다 더 빠르게 발전하지 않았나.

달리 말하면 산악부족민 입장에선 약탈할 거리가 더 많아졌다는 뜻이고, 힘들게 수렵채집을 하는 것보단 그냥 평야의 마을을 약탈해서 식량과 생필품을 구하는 게 더 이득이 된 거지.

게다가 이들은 납치해서 부려먹는 것보다는, 그냥 죽여서 빼앗는 걸 선호하지 않았나.

그렇다보니 산악부족을 가차 없이 때려잡는 조선군에게 오히려 호감을 표시했다.

반대로 이러한 변화 때문에. 산악부족은 산악부족 답지 않게 산맥에 꽁꽁 숨는 게 아니라, 약탈하기 편하게 산 아래 근처로 내려와 있었고... 덕분에 토벌이 쉽게 진행될 수 있었지.

‘그래도 아직 많이 남아 있을 거야. 걔들은 진짜 산에서 사는 놈들이겠지?’

연오랑은 수백개가 넘는 머리통 꼬치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저게 뭔 짓인가.’ 싶기도 한데, 조선군도 좋아하고 원주민도 좋아하니 별 수 있나. 그냥 그러려니 하고 눈길을 피하는 수밖에 없다.

열심히 항구를 건설하고 있는 지역을 벗어나, 게르가 가득 박힌 숙영지로 향하던 그 때.

전령과 함께 연대장들 몇이 사색이 된 채로 연오랑에게 달려왔다.

“...?”

대체 뭔 일이 또 터졌기에 저러나 싶어 바라보자, 모두가 더듬거리며 말을 토해냈다.

“역... 역병이 터졌답니다.”

‘이런 쓰벌...’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욕이 터져 나오고 얼굴이 구겨졌다. 그렇게 조심하고 또 조심했는데, 결국 일은 벌어진 모양이다.

“어디서? 무슨 병이냐?”

“남상주에서 터졌고 병은 정확히 확신할 수 없으나... 알려온 바로는 발열과 복통, 설사, 피... 피똥을 싼다고 했습니다.”

“적리赤痢냐?”

“그...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샹. 이질痢疾이야?’

연오랑은 어쩔 줄 몰라 하는 전령과 연대장을 보며 다시금 속으로 쌍욕을 내뱉었고, 전령이 건넨 서신을 냉큼 읽어나갔다.

*****

“아악.”

“으...”

온 사방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신음소리가 진동하고, 모두가 두려움에 벌벌 떤 눈동자로 황망하게 하늘을 원망하며, 또 몇몇은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사람들을 부렸다.

“쓰...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그게...”

남주에서 남상주로 내려와서, 군의관들과 함께 약초를 채집하고, 재배하고, 위생상태 전반을 감독하던 전순의.

그는 붉은 갑옷 대신 진녹색 옷을 입은 군의관을 닦달했다.

약초 찾으려고 잠깐 동쪽 산맥지대에 갔다 왔는데, 이게 대체 뭔 난리란 말인가.

“증상으로 보아 적리 같습니다.”

“아...”

오면서 대충 보고 혹시나 했는데, 군의관의 대답에 전순의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고 말았다.

“원인은?”

“얼마 전에 비가 계속 내리면서 강이 넘치지 않았습니까. 그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

전순의는 자기도 모르게 발을 쿵쿵 구르며, 괜한 땅에 화풀이를 했다.

머릿속에선 ‘이거 어쩌지?’라는 생각과 함께, ‘어떻게 해결하지?’라는 생각이 빙빙 맴돌았다.

‘침착하자. 침착. 일단 하나씩 해결하자.’

“처치는?”

“일단 격리시키고는 있으나, 얼마나 번졌는지는 파악하기 힘듭니다. 이곳에 워낙 많이 몰려 있지 않습니까.”

“음...”

군의관 또한 황망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연신 말을 내뱉었다.

남상주가 조선군의 손아귀에 떨어진지 벌써 3주에 가까워졌고, 이곳 평야지대에 살던 원주민들은 죄다 해안가 강가로 끌려와 부두와 항구를 건설하는 일에 동원됐다.

마을 간의 소속도, 부족 간의 다툼도, 이 거대한 물길 앞에는 죄다 휩쓸려 사라졌고, 모두가 과거를 잊고 한 덩어리가 되어 조선군의 지휘에 맞춰 움직이고 있었지.

문제는 조선군이야 게르를 가져왔으니 따로 숙영하면 그만이지만, 이들 원주민을 허허벌판 공사장인 항구에서 숙식하며 계속 묶어둘 순 없는 노릇 아닌가.

해서 원래 살던 마을에 머물면서 출퇴근 비슷하게 부리고 있었으니... 역병이 걸린 환자가 어디까지 퍼졌는지 짐작할 수도 없었다.

“돌아다니지 못하게 막았지?”

“예. 모두 격리했습니다.”

“일단 그러면 됐다. 대감께 연락은 했고?”

“물론입니다.”

군의관은 당연하다는 듯,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연오랑의 업적은 셀 수도 없지만,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의약에 관해서 독보적으로 빛나지 않나.

분명 역병에 대한 대처 또한 알거라 생각하고선, 전순의에게 알리기도 전에 먼저 전령을 보낸 모양이다.

“연대병은?”

“연대병들은 문제없습니다. 원주민 특히나 이곳에 머물면서 일했던 이들에게서 발병했습니다. 아무래도...”

“아무래도 뭐?”

“강이 넘치면서 오물이 섞여 들어가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 그럴 거야. 망할 놈들.”

전순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끝내는 욕을 내뱉고 말았다.

비록 태풍이 오진 않았지만, 얼마 전에 며칠간 비가 거세게 몰아쳤었다. 남쪽에서 몰려온 비구름이니, 분명 남하주에서도 한차례 비가 쏟아졌을 테지.

보나마나 원주민들이 아무렇게나 싸지른 오물이 빗물에 섞여 들어갔을 거고, 그 오염된 물과 강물을 아무렇지 않게 먹다가 죄다 역병에 걸렸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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