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332화 (332/538)

332. 챕터46. 퍼지다 (3)

“우리말을 귓등으로 들었다는 거군.”

“예에...”

전순의와 군의관 모두 착잡한 표정을 지우질 못했다.

개혁이 시작된 후로, 요 몇 년간 조선에는 역병이 발발하지 않았다.

“대체 전과 달리 뭐가 달라졌기에 이럴까?”라는 의문을 품고, 의약부 관원들뿐만 아니라 조정에서도 깊은 관심을 보였지.

사람 목숨이 달린 것도 그렇지만 격리되면 그 일대가 그대로 마비되어, 못해도 몇 달은 아무것도 못해서 조정이 그들을 먹여 살려야 했으니까.

어찌 보면 역병관리도 돈 문제가 걸려 있는 거지.

그리고 당연하게도 역병이 발생하지 않은 근원을 파고들면, 착호군에서부터 시작된 위생관리와 닿아 있었다.

수만명이 운집해 있고, 온갖 낯선 곳을 돌아다녔던 착호군이 단 한 번도 역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 시대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이었으니까.

“공용화장실을 제대로 안 썼겠지?”

“예.”

이미 전순의가 이곳에 있을 때도 그랬지만,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오히려 잔소리꾼이 사라져서 더 막 싸지르고 다녔을 지도 모르고.

저 화장실이 뭐 대수냐 하겠지만... 무려 나이팅게일이 등장한 크림전쟁 시기까지도 군대에서 저걸 관리하지 못해서, 총칼에 맞아 죽은 병사보다 전염병으로 죽은 병사가 훨씬 많았다.

연오랑이 처음 착호군에 화장실 개념을 도입했을 때도 온통 불만투성이었고, 그가 머리통을 깨가면서 억지로 시켰지 않나.

만약 똥오줌이 비료로 변해 돈이 되고, 또 그게 초석의 재료가 되는 게 알려지지 않았으면, 조선에서도 화장실 문화가 쉽게 퍼지지 않았을 거다.

‘빌어먹을... 차라리 오물수거기업을 먼저 만들었어야 했어. 화약을 굳이 만들 필요가 없다고 후순위로 밀어놓은 게 실수야.’

전순의는 자신, 그리고 남상주 관원들의 실수를 되짚었다.

화약이든 거름이든, 하루이틀 사이에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못해도 한두해는 푹 삭혀야 완성되는 물건.

나아가 한곳에 몰아넣지 못하고 살던 마을에 그대로 내버려두는 바람에, 제대로 된 오물수거기업을 만들지 못했다. 당장 그게 급한 건 아니었으니까.

그 실수가 이렇게 큰 역풍이 되어 날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목욕탕도 잘 사용을 안 했겠지?”

“그렇습니다. 연대병은 꼬박꼬박 씻었지만... 이들은 왜 이래야 하는지 아무리 말을 해도 이해를 못하더군요.”

“씁...”

자기도 모르게 속에서 부글부글 화가 끓어올랐다.

조선이야 고려 때의 문화가 남아 있어서 목욕탕에 쉽게 익숙해졌고, 유학적 관념이 퍼지다 말았기에 홀딱 벗고 씻는 기존의 문화가 그대로 이어졌다.

무려 왕실에서도 전용 욕탕을 만들어서, 옷을 다 벗고 반신욕을 비롯한 각종 수욕을 즐기는 상황 아닌가.

양반가를 비롯한 양민들은 공용목욕탕을 오히려 애용하고 있었지.

그들이 느끼기에도 어디 냇가에 가서 씻거나 매일같이 목욕물 길어 와서 씻는 수고에 비하면, 그냥 공중목욕탕에 가서 씻는 게 편하고 싸게 먹혔으니까.

대만 원주민들과 달리 조선에 편입된 몽골, 여진 또한 목욕문화에 쉽게 익숙해졌다.

오히려 그쪽에선 한증막이 주가 되어 목욕으로 이끌었던 것.

거긴 워낙 추운 곳이라서, 뜨뜻한 한증막과 목욕탕을 즐기다보니 자연스레 조선의 목욕문화를 받아들이게 된 거지.

‘하지만... 이곳은 중국문화가 어렴풋이 깔려 있지 않나.’

전순의는 강남원정 때를 떠올리며 자기도 모르게 ‘더러운 한족놈들.’이라는 욕이 절로 튀어나왔다.

한족들은 강북에서 강남으로 내려왔고, 풍토가 다른 곳에 살면서도 목욕문화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물이 귀한 곳에서 물이 흔한 곳으로 왔으면 좀 자주 씻어야 하는데, “굳이?”라는 말과 함께 달라진 게 없는 거지.

원주민은 더 말할 필요가 있나. 이들도 예전 고려인들처럼 그냥 강가에서 대충 씻는 게 끝.

시대가 시대인지라, “떼를 벗기지 않는 게 더 건강하다!”라는 미신적인 잘못된 의학개념이 퍼진 건 아니지만, 그냥 “어차피 더러워지는데, 굳이 그렇게 꼬박꼬박 씻어야 돼?”라는 귀찮음을 벗어내지 못했다.

“물도 잘 안 끓여 마셨고?”

“예... 저희가 집집마다 뒤지고 다닐 수도 없고, 날도 더운데 더운 물을 내주면 다들 싫어하더군요. 이게 차라는 걸 알면서도 말입니다.”

“...”

“강남이주민들은 쉽게 보기 힘든 차인 걸 알고 잘 먹는데, 원주민들은 그다지...”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보나마나 목이 마르면 대충 강가에 가서 물을 퍼먹었을 거다. 그게 똥물이 잔뜩 섞여 있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중국인들이 흔히 뜨거운 물을 즐긴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문화가 모든 사람들에게 강제된 건, 무려 국공내전 시절과 중국공산당이 집권하고 나서부터다.

당연히 이 시대 사람들에게 뜨거운 물은 차나 밥을 하는 용도였고, 물을 끓이는 것 자체가 수고로움을 감수해야하고 땔감 값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부잣집에서나 물을 끓여 마셨지만, 일반 백성들은 그냥 아무렇게나 마셨던 거지.

안 그래도 황토와 석회가 많이 섞인 중국의 물은 병 걸리기 딱 좋은 물건이라서, 중국 내에서 전염병이 끊이질 않았고.

이곳 대만도 석회수가 많아서 조선인들이 느끼기엔 물맛이 영 이상했지만, 원주민들은 그런 걸 신경이나 썼을까.

“후...”

“...”

‘셋 중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전부 엉망이었으니...’

이런 생각이 절로 떠오른다.

예전과 똑같이 생활했는데 갑자기 역병이 퍼진 건, 이 곳에 사람이 밀집되면서 흡사 과부하가 걸린 상황.

무식하게 말해서 예전에는 강물에 열명이 똥오줌을 쌌다면, 지금은 백명이 똥오줌을 쌌고 그걸 마신 꼴이 된 거지.

“역시 때려서라도 말을 듣게 했어야 했나...”

“...”

전순의가 무서운 소리를 내뱉어 보건만, 군의관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절래절래 내저었다.

원주민들은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를 못했지만, 두들겨 패며 시키다보면 따라 했을지도 모른다.

허나 이들을 잘 다독여서 부려먹고, 또 조선으로 데려가야 하지 않나. 매보다는 당근이 우선이 될 수밖에 없으니, 함부로 두들겨 패기에도 처지가 애매했던 거지.

화장실 안 쓴다고 두들겨 팼다가는, “아니! 왜 똥 싸는 것까지 참견하고 난리야!?”라며 이해 못하는 원주민과 이주민들에게 악감정만 심어줄 테니까.

‘어차피 본토로 데려가면 해결 될 거라 믿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게 실수야.’

그는 괜히 답답해서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허나 고민의 시간은 짧았다. 이미 일이 벌어졌는데, 후회하고 낙담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일단은 할 일을 하는 게 우선이다.

“환자들부터 보지.”

“예.”

전순의는 군의관을 비롯한 의원들과 환자들을 살폈고, 고작 하루가 지나기 무섭게 드디어 올 게 왔다.

남하주에서 쉬지도 않고 곧장 달려왔는지, 벌써 연오랑이 왔다고 연대병이 알려온 것이다.

“씁...”

“저희 쪽은 그냥 비구름이 스치고 지나갔는데, 이곳에선 폭우가 내렸나 봅니다.”

“그러게 말이다.”

연오랑과 윤평. 그리고 이들을 호위할 호위기병들은, 눈앞에 펼쳐진 난장판에 고개를 절로 내저었다.

역병도 역병이지만, 강가 하류에 살던 마을은 전부 침수됐고, 애써 지어놓은 부둣가와 항구대지만 겨우 멀쩡히 남아 있었다.

그나마 날이 밝으면서 물이 빠지긴 했지만... 마을은 온통 뻘밭처럼 변해 있었고, 쓰레기인지 집기인지 모를 조잡한 생활용품들이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쓱 살펴보니, 강이 흘러넘쳐 하류 삼각지를 휩쓸고 간 흔적이 여실히 남아 있었다.

“총사령관님...”

“이곳 지대가 낮은 걸 몰랐나?”

“죄송합니다. 부두와 항구를 짓기 좋은 곳을 찾다보니, 시야가 좁아졌습니다.”

마음고생 몸고생을 많이 했는지, 이곳을 담당하는 건설부 관원은 눈 밑이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다.

자기 잘못을 알긴 아는 모양인지, 차마 고개도 들지 못하고 목소리가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변명을 안 하고, 솔직한 답을 하는 건 그나마 마음에 들었다.

“후...”

‘됐다. 이놈들을 타박해야봐야 뭔 소용이 있겠어. 보나마나 사람이 부족해서 밤잠을 설친 모양인데.’

연오랑은 대충 손을 휘젓고선 타박을 멈췄다.

당장 부두를 만들지 못하면 원주민이 굶어야 하고, 이러면 조선이 이들을 집어삼킨 명분이 약해지지 않나.

이들의 마음속 불만과 의심을 완전히 꺾어버리려면, 앞도적인 조선의 위용을 보여줘야 했다.

조선군을 통해 무력을 보여줬다면, 이번엔 무지막지한 보급품, 그것도 이들이 지금껏 보지도 못했던 최첨단 물품을 풀어서 기술력과 경제력을 뽐내야 할 차례인 거지.

이래야 “와. 조선은 대단한 나라구나. 조선인이 되는 게 좋은 선택이야.”라고 쉽게 받아들일 테니까.

다만 이곳으로 데려온 관원의 수가 부족해서, 과부하가 걸린 모양이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더 조사를 했어야 했는데, 이곳이 상습 범람지인 걸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택리부 관원 또한 냉큼 죄를 토해냈고, 연오랑은 다시금 손을 내저었다.

“됐다.”

‘보급대가 계속 오면 사정은 나아지겠지.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이들 심정도 이해는 됐다.

택리부 관원들이 무장상단과 돌아다니긴 했어도, 이곳 지대가 낮을 걸 어찌 알았겠는가. 다른 거 조사하느라 바빠서, 이렇게 세밀한 지형조사까지 하는 건 힘들었을 거다.

나아가 남상주를 정복하고 나서부턴, 마을을 관리하고 신도시건설계획을 짜느라 여념이 없을 터... 지금껏 멀쩡했던 이곳이, 느닷없이 침수될 거라고는 확인하지 못했겠지.

“부두는 옮겨야 겠군?”

“이번 폭우로 고지대와 저지대가 확실히 구분된 터라, 부두는 반대쪽으로 옮길 예정입니다.”

“그것도 그렇지만 일단 제방부터... 아니군. 수로를 파서 물길부터 흩트려야겠군. 이제 곧 태풍이 올 테니까.”

“계획은 세워놨습니다.”

연오랑의 물음에, 택리부와 건설부 관원은 재깍재깍 답을 이어갔다.

조선땅을 죄다 뒤집어 놓은 이들은 충분히 능력 있는 인재들이고, 이번 사태는 따지고 보면 정보수집미흡과 불가항력이 합쳐져서 벌어진 일 아닌가.

“여기... 이렇게 만들 계획입니다.”

택리부 관원이 말을 하기 무섭게, 뒤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하급관원이 냉큼 달려와 어설픈 지도를 내밀었다.

조선본토에서 개간하면서 늘 보던 지도와 닮았다.

꼭 종이 위에 지네가 기어가는 것처럼 보였는데, 지네 몸통이 강줄기라면 지네 다리는 수로라고 볼 수 있었다.

겨울에는 마르고 여름에는 넘쳐흐르는 조선의 강을 다스리기 위해서, 조선은 상류에서부터 수로를 파서 작은 저수지로 물을 받아내지 않았나.

이곳에서도 마찬가지. 상류에서 유입되는 양을 줄여서, 하류가 침수되는 걸 막겠다는 거다.

“이곳 중상강 상류부터 수벽을 쌓고 수로를 팔 계획입니다.”

‘중상강이라... 이름 참 대충 붙였네.’

남상주 위쪽으로 흐르는 다자강을 중상강이라 했고, 다자강 북쪽에 위치한 다안강을 상상강, 남상주 아래쪽으로 흐르는 다두강은 상하강이라 부르기로 했단다.

“좋아. 부두건설은 계획대로 진행하고, 다른 작업은 뒤로 미루고 전부 수로를 파는 일에 동원해라. 태풍이 오면 사정이 또 어찌될지 모르니까. 원주민들의 경험을 모아서 정리해 놓는 걸 잊지 말고.”

“알겠습니다.”

연오랑이 별말 안하고 그냥 넘어가자, 모두는 살짝 표정이 밝아져서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원주민들은 이미 여러 형태로 인부가 되어 동원되고 있는 중인데, 그 인력을 다 뽑아서 수로 건설에 먼저 투입해야 할 것 같다.

“건설공구가 부족하진 않지?”

“예. 2차 보급대가 본토에서 싣고 온 물량이 있어서 괜찮습니다. 2차 보급대에 껴서 온 강남물소도 있고, 또 보름 내로 자동상인이 보급품을 실어올 예정입니다.”

“음.”

연오랑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택리부 관원의 말을 들었다.

건설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전부 듣고 나선, 마을들과 멀리 떨어져서 덩그러니 서 있는 천막촌으로 걸음을 옮겼다.

“으...”

“흐...”

제대로 신음조차 내지 못하고 빌빌 거리는 이들이 온 사방에 널려 있었는데, 집을 짓지 못해서 햇빛을 겨우 막을 천막 아래에 모아 놓고 있었다.

“음...”

“쩝.”

거지꼴도 이런 거지꼴이 없을 정도로 상거지꼴이지만, 어쩌겠는가.

당장 이렇게 격리시키지 않으면 원주민들의 동요가 들불처럼 번져나갈 거다.

‘후... 이건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지.’

혹시나 싶어서 되물었다.

“자기기업 사원들은 충분하지?”

“예. 지금도 좋은 흙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고, 이미 자리를 잡은 이들은 원주민들과 함께 가마를 만들고 있습니다.”

조선식 기와집을 짓는 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해도, 이곳은 애초에 아무런 인프라가 없는 곳 아닌가.

처음부터 시작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마을 주민이 살 집을 짓기도 바쁜 와중에, 임시병동을 짓는 건 한참 무리다.

연오랑이 성큼성큼 격리된 지역으로 걸어가자, 윤평이 조심스레 그의 앞을 막았다.

“대감.”

“...?”

“역병이 퍼진 곳인데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뭔 소리야. 이질이 가까이 간다고 해서 전염되는 거 봤냐. 그냥 지켜보는 걸로는 안 걸린다. 나 몰라?”

“...”

연오랑은 피식 웃으며 말을 했고, 윤평은 할 말이 없어서 입을 꾹 다물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