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336화 (336/538)

336. 챕터46. 퍼지다 (7)

“헌데... 굳이 벌써부터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아니지. 지금부터 해놔야지. 당장 올해 가을이 되면 수확을 할 수 있을 텐데, 미리미리 준비를 해 놔야 분란이 없을 거다.”

연오랑은 윤평의 의문을 단칼에 잘라냈다.

사탕수수밭은 곧장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사업이 될 거고, 저 원주민들 사이에 껴 있는 수많은 조선인들은 이 사탕수수밭의 주인이 될 거다.

애초에 저들은 이곳에 사탕기업을 설립하기 위해서 이주한 이들이니까.

그래서 기업제한법에 맞춰 확보할 수 있는 최대한도의 토지까지 땅을 늘렸고, 저들은 아마 그 어떤 이들보다 먼저 대만섬에 안착하게 될 거다.

‘저들을 통해 조선의 농산기업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원주민들이 쉽게 알게 될 터, 지금부터 분란이 생기지 않게 조정하는 게 중요하지. 나중에 임금 등이 본토와 달리 설정 되서 문제가 터지면 곤란하니까.’

제재기업, 자기기업, 건설기업과 같은 경우. 지금 당장은 관과 함께 움직이고 있는 터라, 이게 기업인지 관의 주도인지 경계가 아리송했다.

그리고 공사는 끊임없이 진행될 거니, 관에서 민간으로 완전히 넘어가는 건 시간이 걸릴 게 분명. 원주민들이 기업이라는 행태를 가장 쉽게 인식하는 건 사탕농장이 될 거다.

‘농사를 짓고 있긴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미봉책. 게다가 아직 섞지도 않았는데 저들에게 벌써 땅을 나눠줄 순 없으니까.’

연오랑은 사탕수수밭을 한 번, 고개를 돌려 저 멀리 보이는 논밭을 굽어봤다.

원주민을 조선본토로 데려가는 큰 일이 끝나고 난 후에도, 한 번 더 큰 작업이 남아 있다. 바로 본토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백성들을 섞어 버리는 일.

촌장일가나 종교지도자를 날려서 부족마을의 구심점을 날려버렸으면, 다음 할 일은 촌락단위에서 가족단위로 마을을 해체하여 뭉치는 걸 방지하는 것.

인구조사를 끝마치고 나면, 남주의 원주민을 남상주로 보내고, 남중주에서 남하주로. 등등. 가족단위로 갈기갈기 찢어서 흩뿌리고, 그 다음에 땅을 나눠줘서 자영농으로 키운다.

원주민들도 평생 살면서 자기 동네 밖을 나가본 사람이 극소수이니, 생판 모르는 다른 마을 사람들과 섞여 살게 되면 무슨 심정이 들겠는가.

부모를 잃어버린 아이나 다름없을 거고... 앞으로 발생할 무수히 많은 시시콜콜한 다툼을 조정하면서, 조정과 관아가 원주민이 의지할 새로운 부모가 되는 거지.

‘이건 지금껏 북방과 본토에서 꾸준히 진행해왔던 작업이잖아? 효과는 탁월할 거고, 크게 어려울 일도 없을 거야.’

“문제라면...”

“...?”

“율법부 관원들이 다음 보급대에 오던가?”

“그렇습니다.”

연오랑은 혼자 곰곰이 생각을 이어가다가 뜬금없이 물었고, 윤평은 의아해 하면서도 냉큼 답을 했다.

‘갑자기 그건 왜 묻냐?’라는 눈빛이 여실하다.

“지금이야 정신이 없으니까 별말이 안 나오겠지만,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나면 시시콜콜한 분란이 발생할 거다. 규칙도 없이 야만인처럼 생활하진 않았을 터, 부족마을마다 관습이 다를 수 있으니 그걸 통합하고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할 거 같아서 말이야.”

“아...”

“필요 없는 건 덜어내고, 필요한 건 얼추 비슷하게 준용해서 조선법을 덮어 씌워야겠지. 그때 가서 부랴부랴 준비하면 늦는다.”

“예.”

윤평은 혼자 앞서나가고 있는 연오랑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와서 이런 생각을 하면 웃기지만, 조선이 바다 건너의 땅을 정복하는 건 유구한 역사 이래로 처음 있는 일 아닌가.

사서에 길이 남을 대업이 분명하고, 연대병들 모두가 그에 감격해서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하고 있건만... 연오랑은 별다른 감흥이 없어 보였다.

그러니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철한 눈으로, 그저 다음 할 일을 차곡차곡 찾아가는 거겠지.

‘놀랍지도 않은 모양이군. 하기야... 남주도 원정을 처음 발안한 게 대감이지 않나.’

남주도의 존재 자체를 모르던 이들이 태반일 때도, 혼자 강력하게 주장해서 밀어붙였으니... 그가 어디까지 보고 있는지는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연오랑이야 미래를 알고 있으니 대만이 별 볼일 없는 걸 알고 일을 진행한 거지만, 조선인들 입장에선 그게 아니지 않나.

정보의 괴리가 오해만 더욱 크게 낳고 있었다.

*****

“이쪽으로!”

“길 막지 말고 비켜!”

“소를 왜 끌고 와! 가득 찬 거 안보이냐!”

온 사방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허공을 맴돌고, 각기 다른 복장을 한 사람들이 부표처럼 길가를 떠돌았다.

터번을 쓴 이들도, 명나라 식 복장을 한 이도, 소수민족인 걸 티내기라도 하는 듯 화려하게 치장된 옷을 입은 이들도.

인종과 민족의 용광로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 자동포구는 땀냄새와 바다의 짠내음이 뒤섞여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다.

이렇게 부산스러웠던 적이 언제던가.

자동에 터 잡고 살던 노인들은 다시 돌아온 부산함에 눈시울이 붉어졌고, 명이 망하고 나서 새롭게 자동으로 들어온 신참들은 눈에 불을 켜고 돈벌이를 찾아다녔다.

그 중 제일은 역시나 조선의 연줄을 잡는 일.

가장 크고 좋은 부두를 차지한 거대한 함선의 짐을 옮기는 일조차도, 이젠 자동상인회의 연줄이 없이는 하기 힘든 귀한 일이 되어버렸다.

“허...”

“과연 소문대로군.”

몇몇 상인들은 주륵주륵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저 멀리 보이는 조선함선을 유심히 살폈다.

덥지도 않은지 갑옷을 입은 조선군이 부두를 지키고 있었고, 매의 눈빛으로 짐을 옮기는 짐꾼들을 살피고 있다.

짐꾼들이 줄줄이 짐을 옮긴 곳은, 자동상인들이 조선인들에게 비워준 거대한 상가 일대.

그곳에도 조선인들이 하나둘씩 자리 잡고 물건을 전시해 놨는데, 온갖 행색을 한 이들이 상점을 조심스럽게 살피고 있었다.

“저들이 고려인들이란 말이지?”

“그... 고려인이라고 부르면 싫어한답니다. 망한 나라를 왜 들먹이냐고 하면서요.”

“음.”

딱 봐도 귀티가 줄줄 흐르는 노인의 말에, 청년이 조심스럽게 답을 했다.

“하긴 나라가 바뀌었으니...”

노인은 잠시 눈을 찡그렸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말이고, 거래를 청하러 온 입장에서 심기를 거스르는 발언은 삼가야 하니까.

상점거리로 조금 더 다가가자, 확실히 낯선 이들인 게 티가 난다.

“특이한 옷을 입었군.”

“예. 조선복장인 모양입니다. 유행하던 고려양과는 사뭇 달라 보입니다.”

“음...”

과거 명나라 시절에는 원나라에서 내려온 복식이 유행했고, 고려의 복식이 원으로 넘어와 명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고려의 복식이 명나라에서 유행했었다.

이를 고려양이라 불렀는데, 명이 망한 후에도 얼추 남아 있었지. 다만 명나라 시절에도 주류에 편입하지 못한 이 먼 강남 끝자락에선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라서, 사실 이들은 고려양에 익숙한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소문으로만 듣던 것과는 너무나 달라서, 저들이 자신들을 고려가 아닌 조선으로 부르라는 말이 충분히 납득됐다.

어째 오해 아닌 오해를 한 거지만, 이들은 죽었다 깨나도 속사정을 알 수 없을 거다.

“...”

“흐음.”

더욱더 다가간 둘은 이리저리 손짓하며 짐꾼을 부리고 있는 이들을 유심히 살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더욱더 티가 난다.

이 시대의 옷은 보통 원피스로 된 옷이 많았고, 관복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한 경향을 보였다.

허나 저들은 상하의가 완전히 분리된 옷을 입고 있었고,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팔다리에 딱 붙을 정도로 품이 좁다는 것과 주머니가 여기저기에 달려 있다는 점.

“주머니를 아예 옷에 붙인 건가?”

“그렇습니다.”

“호오...”

조선이든 중국이든 이 시대엔 보통 낭囊이라 불리는 작은 주머니를 따로 패용하고 다녔다.

호주머니라는 말과 행색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후금과 청이 등장하고부터니, 지금 조선의 의복은 시대를 한참 거스른 양태였지. 이건 다 연오랑이 미래의 군복을 이 시대로 끌어와 만들면서 벌어진 여파였다.

“저기 마괘馬掛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조금 특이하지 않습니까. 가슴이 볼록 튀어나와 있는데, 속으로 주머니를 달아 놨다고 합니다.”

“흐음...”

마괘는 유목민족이 입는 털가죽조끼와 같은 물건으로, 원나라 시절에도 잠깐 유행했던 옷.

이건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마고자나 쾌자, 배자 등의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는데... 청의 영향을 받아 조선중후기에 등장했어야 할 물건이, 어째 시대에 걸맞지 않게 벌써부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었다.

조선인들조차도 자고 일어나면 생경한 복식이 튀어나와서 놀라고 있는 판국이니, 조선과 관계없던 강남인들에게는 더욱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헌데 들어보니 저들은 상인이 아니라 관원들이랍니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아예 거래에 끼지도 못한다고 하더군요.”

“관원?”

“예.”

청년은 미리 와서 익히 눈여겨봤는지, 이런저런 설명을 풀어냈다. 관원인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배자 안에 껴입은 녹색관복이었다.

“허허. 관원이 장사를 한다. 이거 참...”

“...”

노인은 자기도 모르게 너털웃음을 내뱉으며,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관원이 장사를 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명확하게 답이 나오질 않는다.

“그리고 저기 상점거리에 풀리는 상품 말고, 진짜 사치품은 따로 자동상인을 모아서 판다고 하더군요. 저희는 낄 수가 없었습니다. 조선이 딱히 말을 하진 않지만 은연중에 회회인들을 밀어주는 것 같더군요.”

“회회인을?”

“예.”

“이런...”

노인은 자기도 모르게 혀를 찼고, 청년 또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복건을 비롯한 광동,광서의 상계는 한족, 소수민족, 회회인계로 나뉘어서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고, 특히나 회회인계열은 동남아시아와 연계하여 야금야금 강남상계를 파먹었었다.

한족을 위시로 명나라 시절에 기세가 한풀 꺾이긴 했지만, 명이 망한 지금은 다시 또 부활해서 힘을 넓히려고 하는 상황.

“그런데도 자동의 회회인을 밀어준다라... 생각 없이 자동호족과 손을 잡으려는 건 아닌 모양이구나.”

“아마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조선이 생각보다 강남상계에 대해 아는 게 많은 모양이로군.”

“예. 분명히 절강 놈들이 주저리주저리 입을 놀리지 않았겠습니까.”

청년은 고자질을 하듯 못마땅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고, 노인 또한 같은 표정을 짓고 말았다.

경쟁자가 다른 큰손을 데려와 판을 흔들려고 하는데, 이걸 누가 좋아하겠는가.

“일단 가서 보자. 뭐가 있는지 봐야겠구나.”

“예.”

둘은 성큼 다가가 상점을 조심스럽게 살피기 시작했다. 꽤나 이상한 모양새지만, 이렇게 와서 슬쩍슬쩍 구경하는 상인이 어디 한 둘인가.

인파에 파묻혀서 특별할 것도 없어보였다.

‘음...’

사실 조선이나 중국이나 만드는 상품은 거의 엇비슷하고, 품질은 오히려 중국이 조금 더 낫지 않나.

경쟁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고민을 해봐야했고, 이리저리 눈으로 구경만 계속 이어가던 찰나. 노인의 눈을 사로잡는 물건이 떡하니 들어왔다.

“저쪽으로 가보자.”

“예.”

냉큼 앞서서 상점으로 다가가자, 낯선 갑옷과 낯선 장도를 든 군병이 둘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봤다.

황급히 눈을 깔고 입을 열자,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관원이 살짝 어색한 북방한어로 말을 걸어왔다.

“상인인가?”

“그렇사옵니다.”

이들이 민남어가 아닌 북방한어로 답을 하자, 관원의 얼굴이 펴지는 게 확연히 티가 났다. 필담을 하지 않아도 되니, 일이 덜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우린 작게 거래를 안 하는 거 알고 있나? 현물로만 받는 것도 알고 있고?”

“예. 듣고 왔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물소를 가져왔습니다.”

“오? 물소?”

관원이 눈을 반짝이며 되묻자, 둘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몇 두나?”

“오백두 이상 가져왔습니다.”

“호오...”

관원은 반색을 하며 답을 하면서도, 금세 눈빛이 돌변해 둘을 낱낱이 살피기 시작했다.

물소가 아무리 값이 싸다고 해도 소는 소다.

오백두나 가져올 수 있는 인물이라면 그냥 상인이 아니라 거상이라고 불러도 전혀 이상치 않고... 이 정도 되는 상인호족이라면 여길 돌아다닐 이유가 없다.

“자동상인이 아니군?”

“그렇습니다. 광동의 광주에서 왔습니다.”

“오호라...”

척하면 척하고 알아차렸는데 숨길 수가 있나. 노인과 청년은 놀란 기색을 애써 숨기며 조심스럽게 답을 했다.

“광주라... 뭐 문제될 건 없겠지. 물건을 보겠나?”

“예.”

관원이 허락을 하자, 노인은 냉큼 고개를 숙이며 다가갔다.

“까놓고 말해서 강남의 면포보다 질이 좋다고는 단언할 수 없지만, 이 정도 크기의 광목廣木은 없을 거라 자부하네.”

자고로 상인이란 없는 것도 있는 것처럼 입을 놀려서 팔아야 하는데, 관원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밀고 당기는 것도 없이 시원하게 내지른다.

“그렇사옵니다.”

허나 속뜻을 읽어내고서도, 노인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관원은 자기 키보다 높게 솟은 광목두루마리를 가리켰으니까.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면포를 가내수공업으로 만들었다.

다만 머릿수로 밀어붙여서 압도적인 생산량을 자랑했던 거지, 보다 월등히 앞선 기술력으로 만든 건 아니지.

물레를 비롯한 직조기의 크기는 어디나 대동소이해서, 한필의 면포를 길게 뽑아낼 수 있어도 폭을 늘리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

헌데 이건 폭이 2미터에 가까울 정도로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지 않나.

자고로 큰 걸 잘라 쓰는 게, 작은 걸 붙여 쓰는 것보다 훨씬 편하고 쉽기 마련이니... 두 상인이 놀랄 수밖에 없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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