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339화 (339/538)

339. 챕터46. 퍼지다 (10)

“게다가 지난 전쟁 때 조선군이 얼마나 뜯어갔는지 잊으셨습니까? 산동, 남직례, 절강은 지난 전쟁의 원정전비를 아직까지도 갚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론 그들이 이득을 봤지만, 돈으로 따져보면 수지타산을 오히려 못 맞추지 않았습니까.”

다들 이미 익히 들은 이야기라서,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조선군을 불러들인다고 쳐도, 싸움이 끝나기라도 하겠습니까? 조선군이 아무리 잘 싸운다한들, 싸워주지 않으면 그만. 보나마나 이족놈들은 산맥 깊숙한 곳으로 도망쳐서 나오지도 않을 텐데...”

“그렇소. 조선군이 우리 뜻대로 열과 성을 다해 싸우겠소? 보나마나 미적거리며 시간만 끌면서, 우리에게서 전비만 뜯어내려고 할 거요.”

불을 보듯 뻔하다. 남의 싸움에 끼어든 이들 중에서, 제대로 싸울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것도 기회가 된다면 광주를 꿀꺽 해버릴 검은 속내를 품고 있는 조선이라면, 분명히 질질 끌면서 광주의 이권과 땅을 뜯어먹을 거다.

“결국... 결론은 조차지를 우리가 먼저 제안해야하는 게, 그나마 이득이라는 거군.”

“...”

상석에 앉은 노인이 지난한 토론을 끝마치자, 다들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허면 더 고민할 것 없이 바로 진행하지. 시간을 끌면 끌수록, 자동상인들의 선택지만 넓어질 터... 이주섬으로 가는 상행이 언제라고 했지?”

“대략 보름후면 조선에서 오는 상단이 도착한다고 했습니다. 자동으로 끌어온 상단은 조선상단을 따라서 움직일 예정입니다.”

“좋아. 그럼 우리도 거래를 끝마치고, 배를 가져오도록 하지. 이주섬으로 갈 때 함께 가서 조선의 의향을 떠보는 게 수순이겠군.”

“그렇습니다.”

“예. 그렇게 하시지요.”

노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가주들은 휘하 가병들을 불러 명령을 내렸다.

어째 대만섬 점령의 여파가 엉뚱한 곳까지 퍼져나가, 광주상인이 조선으로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같은 시작.

“와아!”

“부어!”

“이쪽으로 가져와! 거기 말고!”

등불을 환하게 밝힌 3층 주루에선, 딱 봐도 흉악하게 생긴 이들이 한바탕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허리춤엔 하나같이 박도를 차고, 한손에는 술잔을 다른 한손에는 유녀를 끼고 앉아서 부어라 마셔라 간을 괴롭히고 있었다.

“비켜. 이 새끼들아.”

그리고 그런 난장판을 뚫고, 땀냄새를 풀풀 풍기는 덩치가 몸을 비집고 나아갔다.

“소두령! 죽다 살아났는데 한잔 하셔야지요!”

“닥쳐!”

고주망태가 된 누군가가 술병을 흔들며 목청을 높였지만, 소두령이라 불린 덩치는 버럭 욕을 내뱉고선 거침없이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3층까지 올라가자, 소란스러움이 조금 가신다.

부하들이 이곳까지 차지하진 않은 터라, 몇몇 덩치들만이 창가 쪽에 앉아서 조용히 술잔과 젓가락을 놀리고 있었다.

“대형.”

덩치는 후다닥 달려가 상석에 앉은 두목에게 인사를 했고.

“왔냐?”

“죽다 살아난 것치곤 얼굴이 좋은데?”

“지랄하고 있네. 닥치고 한 잔 따라봐.”

그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냉큼 널려 있는 의자를 챙겨와 술판에 끼어들었다.

목이 마렵긴 했는지, 옷자락에 술을 죄다 흘려가며 벌컥벌컥 목구멍에 쑤셔 넣었다.

“크흐...”

목구멍을 달구는 술을 쑤셔 넣기 무섭게,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이건 뭔 술이냐? 맛이 다른데?”

“조선에서 온 술. 소주라고 하던데?”

“독하면서도 깔끔한 게... 나쁘지 않고만.”

낯선 술. 그것도 남방을 뒤흔들며 소문이 퍼져나간 조선에서 만든 술이라. 이런 기회가 또 어디 있겠나.

생전 처음 맛보는 술이지만, 나름 입에 맞는지 한번 더 술잔을 털어 넣었다.

“크...”

“이제 좀 진정했냐?”

“예. 두령.”

“그럼 털어놔봐라. 대체 뭔 일이 벌어진 거냐? 진짜 조선군을 만난 거냐?”

“그렇습니다. 아마 제가 아니고 다른 놈들이었으면, 분명 물고기 밥이 됐을 겁니다.”

“지랄하고 있네.”

“저거 또 사기치고 있네.”

덩치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잘난 체를 하자, 사방에서 견제가 날아든다.

“너였으면 오줌 질질 싸면서, 목숨을 구걸했을 거다. 인마.”

“이 새끼가 죽을라고?”

“그만! 조용히 해라.”

한소리를 들은 누군가가 벌떡 일어나 박도에 손을 대자, 두목으로 보이는 이가 쾅! 탁자를 후려치며 진정시켰다.

“시답잖은 소리 그만하고, 빨리 그간 사정이나 풀어라.”

“예.”

덩치는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변설가의 자질이 있는지, 추임새까지 넣어가며 맛깔나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특별할 게 없는 날이었다.

언제나처럼 유민들을 싣고 배를 띄웠고, 망망대해 남쪽으로 나아갔다. 조선이 이주섬 북쪽에 터를 잡았다는 소식은 애저녁에 퍼진지 오래. 그리고 얼마 전엔 대규모 선단을 꾸려서 이주섬으로 갔다는 소문도 퍼졌다.

하지만 그게 뭔 상관이랴. 조선군이 있는 곳은 이주섬 북쪽이고, 자신이 향하는 곳은 이주섬 남쪽 끝자락이다.

헌데 이게 웬 일? 가는 길에 떡하니 조선전함이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뭐 해볼 틈도 없이 순식간에 따라잡혔다.

“쿵쿵! 굉음이 터지는데, 난 화포를 갈기는 줄 알았단 말이지. 그런데 웬 걸? 창대만한 화살이 날아와서 뱃전에 퍽퍽 꽂혔다 이거야. 갑판이 부서지는 줄 알았지.”

“지랄하고 있네. 창대만한 화살은 무슨.”

“하. 이 새끼들이 또 못 믿고 있네. 부하들에게 가서 물어봐! 거짓말인지.”

“그래서?”

또 실랑이가 이어지려하자, 두목이 얼른 끊고 말을 이었다.

이들은 몰랐지만, 창대만한 화살은 고래를 잡을 때 써먹던 대형쇠뇌에서 쏘아올린 작살창.

그 끝엔 밧줄이 달려 있어서, 고래처럼 등이 꽂힌 덩치의 배는 꼼짝없이 조선전함에 붙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곧장 문정이 진행됐는데...

“이거 어쩌나 싶었는데, 내가 또 한 머리하지 않냐? 그래서 기지를 발휘해서...”

“발휘해서...?”

“솔직하게 털어놨지. 유민을 싣고 이주섬으로 간다고 말이야.”

“에라이.”

덩치가 다시금 히죽 웃자, 이야기에 빠져 있던 이들은 다들 심통을 부리며 욕을 뱉어냈다.

헌데 요상하게도 그게 먹혀들었다. 조선군은 대충 알았다고 하더니 유민들을 조선함선으로 옮겼고, 다음부터 여기에 오지 말라고 하고서 그냥 보내주는 게 아닌가.

뭔가 똥을 싸다가 만 것 같은 이 허무한 이야기가, 덩치가 죽다 살아난 이야기의 전말이었다.

“그냥 그렇게 보내줬다고?”

“그렇다니까?”

“네 놈 상판대기를 보면 해적인 걸 분명히 알아차렸을 텐데...?”

“지랄하지 말고. 네 놈이나 나나 뭔 차이가 있다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적질을 한 게 언젠지 기억도 안 나는데, 뭔 놈의 해적?”

덩치가 불퉁한 소리를 내뱉으며, 연신 술을 퍼먹었다.

“흐음. 그냥 보내줬단 말이지?”

“예.”

“왜 그랬을까...?”

“...”

두목이 혼자 중얼거리자, 모두는 할 말이 궁색해져서 눈동자만 열심히 굴려댔다.

하긴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해적인지 상선인지 헷갈리니 내버려둔 건 그렇다 쳐도, 대체 조선군은 왜 유민을 챙겨갔을까?

“음...”

“그나저나 조선군이 이주섬을 돌긴 도는 모양이군.”

“해안까지 가서 확인하지 못했지만, 조선군은 분명 무장을 하고서 해안을 빙빙 돌고 있었다고. 전에 그냥 스쳐지나가듯 봤던 조선군의 움직임하고 확실히 달랐어.”

덩치는 자기가 봤던 걸, 다시금 열심히 풀어댔다.

조선군이 이주섬 북쪽에 자리 잡고 나서, 조선전함이 섬을 빙빙 도는 걸 멀리서 본 적이 있었다. 허나 이번엔 달랐다. 아예 남쪽 해안을 지키는 것처럼 천천히 느긋하게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앞으로 조선수군이 이주섬에 머무를 게 분명해.”

“쓰벌. 그럼 이제 우리 돈줄이 마른다는 거네?”

“씁... 해적질을 다시 시작해야 하나?”

“안 그래도, 조선 때문에 모임을 하기로 하지 않았냐? 분명 그 놈들도 똑같은 고민거리를 안고 있을 거야.”

두목이 조용히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겨 있자, 소두목들이 이런저런 말을 풀어놨다.

‘이거... 골치 아프게 됐는데.’

두목은 머리를 감싸고 의자에 푹 기대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도 한 때는 해적이었다.

해적과 왜구를 막기 위해 실시한 해금령은 오히려 거꾸로 해적과 밀수업자가 더 늘어나는 상황을 만들었고, 명나라 내륙까지 쳐들어와서 약탈해대는 해적은 줄어들었지만 반쯤 밀수업자인 무장상단의 수는 더욱더 불어났지.

허나 명이 망하자, 해적의 전성시대가 끝이 났다.

빛이 있어야 어둠이 있는 것처럼. 양지의 권력자가 행사하는 규제와 통제가 있어야, 그 빈틈과 부스러기를 먹고 자라는 음지의 권력자가 나타나기 마련 아닌가.

허나 음지의 권력자이자 암묵적인 권력자였던 호족과 상인세력이 양지로 진출했고, 당연히 밀수를 비롯한 음지의 일이 양지로 올라왔다.

허면 굳이 수지타산 안 맞게 뭐 하러 그런 짓을 하겠나. 누구의 규제도 없이 그냥 직접 장사하면 그만인 것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러한 쇠퇴에 기름을 끼얹는 일이 벌어졌다.

바로 조선수군이 서서히 남쪽 바다로 내려오기 시작한 것.

상해와 조선의 무역로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복건 일대까지 순찰을 돌기 시작했으니... 해적질이 어디 쉽겠나.

천진과 남통을 박살냈다는 소문은 이미 퍼진지 오래라서, 해적들은 감히 조선군과 싸워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름 머리가 돌아가는 두목은 다른 길을 선택했다.

명이 망하고 나서 소수민족에게 밀린 광서, 광동의 한족 유민은 끝도 없이 광주와 복건으로 밀려왔다. 이들 해안도시 입장에서도 이 유민은 골칫거리였고, 말은 안했지 누군가 치워주길 바랐다.

두목은 바로 이 점을 주목.

해적질을 하면 그 약탈품을 사줄 장물아비가 필요한데, 도시마다 상인회로 결집한 이들은 함부로 장물을 사들이지 않았다.

예전 명나라 시절에는 상인들이 전부 조정과 관아의 밑에 찌그려져 뜯어 먹히던 신세였으니, 장물이든 뭐든 가리지 않고 이윤을 추구했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나.

장물을 함부로 사들이거나 해적을 부렸다가는, 해안도시의 상인회와 상인회끼리의 큰 싸움으로 번지게 되니까.

물론 지난날 산동, 절강, 복건, 광동상인들은 이러한 무력투쟁을 한바탕 하면서 지금의 균형을 만들었고, 이렇게 미친 듯이 군비를 지출하며 무력으로 싸우는 건 돈놀이를 하는 상인들 입장에선 무조건 손해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지.

해서 죄다 손을 털고, “우리끼리는 해적들 이용해서 약탈하지 맙시다.”라고 신사협정을 맺게 됐다.

물론 이렇게 했어도. 뒷구멍으로는 적대상단을 적당한 수준에서 약탈한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결국 두목은 부활의 날갯짓을 하는 자동상인과 연줄을 맺어 장물을 처리할 계획을 세웠고, 그걸 위해선 이들의 골칫거리를 치워주는 게 최고지 않나.

해서 떠밀려 오는 유민을, 저기 빈 땅이 넘쳐나는 이주섬에 던져놓기로 한 거지.

헌데... 이게 처음 계획과 달리 꽤나 쏠쏠했다.

일가친척과 함께 이주하려는 유민에게서 용선료를 받고, 딱히 목숨 걸고 싸울 일도 없고, 거리도 그리 멀지 않아서 계속 배를 띄울 수 있고, 이주섬으로 가려는 유민고객은 끝도 없이 많다.

이러다보니 어느새 해적에서 수송업자로 업종을 변경한 셈이 되어버린 거지.

하지만 조선군이 또 등장해서, 이들의 밥줄을 끊으려 하고 있었다.

“조선군의 함선이 몇이나 되는지 모르지?”

“예...”

“뭐 듣기론 서른척이니, 마흔척이니, 백척이니 하는데, 죄다 중구난방입니다.”

“그렇습니다. 산동, 절강, 복건 전체에 조선배가 돌아다니는데, 뭐가 뭔지 파악하는 일이 쉽겠습니까.”

“다만... 지난 전쟁 때를 떠올려보면, 못해도 서른척은 될 겁니다.”

“끄응...”

남통성을 포위하고 박살내던 전함만 스무척이 넘었으니, 조선과 중국을 오가는 함선은 따로 있을 게 분명. 그걸 생각하면 최소치로 잡아도 서른척이다.

“네가 봤던 조선배 말이다.”

“예. 대형.”

“지금 부두에 묶여 있는 배하고 같은 배였냐?”

“그렇습니다.”

“흐음...”

두목은 다시금 장고에 빠져들었고, 이내 술맛도 다 떨어졌는지 소두목들은 두목의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쓱쓱. 손을 놀려 탁자를 정리하고선, 두목은 술잔 몇 개를 긁어모아 흩트렸다.

“딱 봐도 우리 배보다 최소 두배, 많으면 세배는 더 클거야. 그렇지?”

“예.”

“맞습니다.”

다들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나. 가까이 가서 살피진 못했지만, 멀리서 봐도 옆에 있던 복선이 애기처럼 보일 정도로 거대한 함선이다.

“너. 붙잡힐 때. 조선군이 몇이나 갑판에 서 있었는지 기억나냐?”

“물론입니다. 죽다 살아났는데 잊어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못해도 백명이 넘었습니다. 그들이 쏴댄 화살이 제 배의 선수에 쏟아졌으니까요.”

“끄응...”

“큼.”

해적선은 애초에 짐을 적게 싣고 사람을 많이 싣는데, 그럼에도 조선전함보다 사람이 적었다. 애초에 갑판에 백명이 넘는 궁병을 싣고 다니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함포를 다루는 병력은 또 따로 있을 거란 말이지? 너 함포는 봤냐?”

“함포는 못 봤습니다만... 제 배에서 고개를 치켜들어야 갑판벽이 보일정도로 높았으니, 분명 2층 혹은 3층갑판에 함포가 있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멀리서 봐도 딱 봐도 엄청 높지 않습니까. 안에 사람을 바글바글하게 태울 수 있을 겁니다.”

“음...”

배의 길이와 폭이 커지면 당연히 부피. 배수량은 곱절로 커지기 마련. 당연히 그 안에 타는 병력 또한 엄청나게 많을 거다.

“그런데 속도는 또 무지하게 빠르단 말이지? 딱 봐도 돛대도 많고 돛도 엄청 많으니까. 저걸 다 어떻게 움직이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다들 봐서 아는 터라, 두목의 혼잣말에 침묵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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