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350화 (350/538)

350. 챕터48. 파고들다 (1)

조선이 전혀 모르던 사실을 대리가 안다는 건, 이들이 여길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살폈다는 뜻 아닌가.

비단길을 새롭게 개척하려는 계획이 하루 이틀 사이에 만들어진 게 아님이 분명했다.

‘우리가 끼어든 건 말 그대로 우연. 대만섬에 진출하지 않았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는 줄도 몰랐을 거야.’

“...”

‘그러니 우리가 도와주지 않아도 대리는 이 일을 진행할 거다. 화포가 있으면 분명 도움이 되는 건 확실하지만,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 아닌가. 우리를 믿긴 하지만, 우리에게만 의지할 생각은 없는 거지.’

연오랑은 손가락을 튕겨가며 생각을 거듭했고, 정인지 또한 연필을 휘날리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다만 생각하는 건 대략 비슷한 모양이다.

“진랍국 남방에 진출하는 걸 도와준다는 말은 실질적으로 보급을 해줄 거라고 생각해도 무방한가?”

“그렇소. 미공하를 따라 남하하면 운남에서 남쪽 끝까지 닿을 수 있는 바. 충분히 도와줄 수 있소.”

“흐음. 설령 그곳에서 거래를 한다고 해도, 거길 거슬러 올라가는 길을 결코 쉽지 않을 텐데?”

“... 어떻게든 수가 생기지 않겠소?”

연오랑이 미공하에 대해서까지 잘 알거라고 생각하진 못했는지, 왕자는 살짝 경계하는 눈초리를 뿌리며 조심스럽게 답을 했다.

매콩강은 길어도 너무 길고, 그 지류도 엄청나게 복잡해서 미래에도 전부 조사하지 못한 곳. 이 시대엔 큰 줄기 말고 지류는 잘 알지도 못할 거다.

나아가 이쪽은 상류로 올라갈수록 협곡과 폭포 등이 부지기수로 등장하는데, 거기로 배를 몰아가는 것 또한 어려울 것 아닌가.

‘그런데도 그건 쏙 빼놓고 지도만 보고 쉬울 거라고 말을 하고 있단 말이지. 우리가 모를 거라고 믿는 모양이야.’

“...”

연오랑은 히죽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고, 왕자와 사신단 일행은 애써 표정관리를 하느라 바빴다.

‘하지만... 나쁘지 않은 제안임은 분명하군.’

연오랑은 조선관원들의 얼굴을 쓱 살피고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제안은 잘 들었소. 잠시 휴정하고 서로 의견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군. 오래 걸리지 않을 거요. 쉬었다가 다시 이야기를 합시다.”

“그렇게 하시오.”

왕자와 사신단 또한 할 이야기가 많은지 냉큼 동의했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어떻게 봤냐?”

“...”

“사정이야 어찌됐건... 아국에게 손해는 아닐 것 같습니다.”

연오랑의 물음이 터지기 무섭게, 관원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더니 누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손해는 아니다?”

“예. 사실 대리가 얼마나 이득을 얻든 그건 아국이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이 일로 아국이 얼마나 이득을 얻을 수 있는지가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런 면에서 보면 결코 나쁜 제안은 아닙니다.”

이번 일은 대리와 조선이 서로 주고받는 일이 아니다.

대리나 조선이 서로 얼마나 내놓고 얼마나 챙기느냐의 싸움이 아니라, 인도차이나 반도를 놓고 각자 이득을 챙기는 상황.

“맞는 말이지...”

진랍국의 조차지 문제는 둘째 치고, 해남도를 차지할 수 있는 건 무조건 조선에게 이득이 되는 상황 아닌가.

해적 퇴치라는 명분이 있기도 하겠지만, 대월과 대리가 조선의 손을 들어주면 더 큰 명분이 생길 거다.

“게다가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말입니다.”

“...?”

“이 일은 하루이틀 사이에 준비된 게 아니고, 아국이 남방에 진출하기 전부터 준비된 일로 보입니다. 어쩌면 이미 진행 중일지도 모르고요.”

정인지는 한참을 침묵하더니 드디어 의견을 표했다.

이야기를 들어 보건데, 그리고 돌아가는 사정을 짐작해 봤을 때. 대리는 “어차피 우린 움직이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조선을 이용하자.”라는 심보가 훤히 보였던 것.

“어째서?”

“까놓고 말해서 아국이 진랍국에 진출하는 게, 마음먹는다고 곧장 진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 때까지 대리가 기다려서 우리와 손발을 맞출 리가 없으니, 이미 남방북쪽에선 대리가 남하하고 있을 겁니다.”

“음.”

“그게 비단길을 되살린다는 명분이든, 미공하를 차지한다는 명분이든 상관없이, 그들은 우리가 끼어들든 말든 미공하를 따라 남하하고 있을 겁니다.”

“음...”

“하긴.”

몇몇 관원은 동의를 표했지만, 또 몇몇 관원은 반대의견을 털어놨다.

“아국에 화포를 구입하려고 마음먹은 이들인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하를 하겠습니까?”

“글쎄... 내가 보기에 화포는 부수적인 일 같은걸? 남방의 밀림에서 화포가 과연 얼마나 효과를 발휘하겠나. 당장 아국조차도 남주도의 동쪽산맥에서 화포를 운용하기 벅차잖아?”

“음.”

“남방 땅은 남주도보다 훨씬 초목이 우거지고, 제대로 된 길도 없을 텐데... 화포를 운용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거야.”

정인지는 그리 말을 하고서 연오랑과 왕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군사의 문제에 있어서는 두 사람이 전문가 아닌가.

“맞는 말이다. 그곳은 이곳의 산림과 또 식생이 다르니, 화포를 쉽게 사용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겠지. 사용을 한다면 아마도 마을이나 미공하 인근의 도시를 공략할 때 공성전 용도로 사용될 가능성이 크지.”

“그렇습니까?”

“아...”

‘그게 맞을 거야. 미래에 베트남 전쟁을 생각하면, 이 시대의 화포를 밀림에서 사용하는 게 어디 쉽게 되겠어? 명의 화포를 그대로 사용하는 대리라면, 조선처럼 이동이 용이한 포가의 개념도 없을 테니까.’

이 시대의 화포는 수십키로 너머에서 타격하는 포병의 역할을 절대 못하고, 가시거리 안에서 사정거리가 나온다.

그냥 눈 뜨고 있어도 어지럽게 서로 얽혀 있는 밀림에서, 화포를 쏴봐야 뭐 얼마나 쏠 수 있을까.

“어쩌면... 사천을 돕기 위해서, 그럴싸한 명분과 이권을 가져다 붙인 걸 수도 있겠군요.”

“그럴 수도 있겠지. 문제는 버리기엔 꽤 아까운 제안을 가져왔다는 점이겠지...”

“하오나. 과연 대리가 남방으로 진출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대월, 란쌍, 파간, 섬라, 진랍 모두가 약화되어 있다고는 허나, 그렇다고 대리가 이들을 모두 압도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음...”

누군가 그리 운을 떼자, 다들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이쪽 사정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하는 터라, 함부로 입을 열지 못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가능할 것 같단 말이지.’

다만 미래를 아는 연오랑이 보건데, 어째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대리는 원이 망한 후부터, 명이 망한지 한참 지난 지금까지도 별다른 전란을 겪지 않았지.”

대리는 원의 뒤통수를 치고 명에 붙었고, 명이 망하자 다시 뒤통수를 치고 부활했다.

애초에 윗대가리만 타민족의 지배를 받고, 실제로는 단씨가 자치권을 행사했으니... 얼마 되지도 않은 지배층만 처리하고 나면 그대로 운남을 꿀꺽할 수 있다.

대리가 무서워했던 건, 원이든 명이든 내륙에서 밀려올 수만대군이었지, 대리에 주둔하고 있던 병력이 아니니까.

그 결과. 중국이 개판이 나서 분열합작을 이어갔을 때도, 재빨리 정리를 끝마치고 홀로서서 앞서 나아갈 수 있었다.

“강역 또한 아국보다 넓고, 가호도 아국보다 많다. 아마 우리 생각보다 훨씬 많은 병력과 자원을 보유하고 있을 거야.”

“음...”

“그런가...?”

운남성이 성 하나라서 왠지 작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선반도는 물론 일본보다도 큰 땅이다. 고산지대라고 해도 거기에 사는 사람 수 또한 조선을 능가하는 수준.

반대로 미래의 인도차이나 반도는 사람이 넘쳐나는 곳이지만, 이 시대엔 전혀 아니다.

명,청시대를 거치면서 한족의 남하와 그에 밀려난 소수민족이 남하하면서 이쪽 인구가 불어나고,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유럽인들이 인도를 비롯한 다른 동남아시아의 식민지에서 사람들을 데려오면서 이곳의 인구가 불어나고 다양해진다.

그런 시기가 오려면 아직도 한참 남았지 않나.

수많은 민족이 뒤엉켜 산다고 한들, 다들 밀림 어딘가에 박혀서 알아서 살아가는 거지... 인도차이나 반도의 넓은 땅 전체에 사람이 전부 다 사는 게 아니라는 것.

“그리고... 완만하게 통치를 이어받았으면, 이들은 남방을 공략할 방법과 길 또한 알고 있을 거야. 원나라 시절이 오래되긴 했지만, 단씨는 그만큼 원나라과 가깝게 지냈으니까 남아 있는 기록이 있겠지. 실제로도 서로 교류를 했을 거고.”

“음...”

“...?”

다들 뜻 모를 말에 물음표를 그렸고, 연오랑은 미래의 지식을 대충 얼버무렸다.

대월이 원의 원정을 막은 건 유명한 이야기지만, 원이 대월만 공격한 건 아니었다. 인도차이나 북부 전체를 공략했지. 당장 파간국이 원에게 망하고 속국이 되지 않았나.

원과 명을 그대로 이어받은 대리라면, 이곳을 공략할 방법과 루트 또한 당연히 알고 있을 거다.

“게다가 원이나 명은 남방출신이 아닌 대륙 전역에서 긁어모은 병력으로 싸웠지만, 대리는 운남출신으로 구성되어 있잖아? 상황이 전혀 다를 거야.”

기후와 풍토가 다르면 사람의 기질도 달라지기 마련. 풍토병이라는 게 괜히 있고, 물갈이라는 말이 괜히 있을까.

말하지 않아도 원정 대군이 낯선 곳에 와서 개고생을 했을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인데, 대리는 그런 면에서는 신경 쓸 부분이 덜하다.

“병력은 문제가 없고, 실제로도 공략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이 큰 땅을 대리가 점령할 수 있겠습니까?”

“음...”

“흐음. 애매하군.”

“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

다들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허나 연오랑은 다시금 대리의 손을 들어줬다.

‘이 또한 가능할 것 같아...’

대리가 인도차이나 반도로 진출한다고 해서, 조선처럼 그 땅을 전부 강역으로 삼아 직접통치를 하는 게 아니다.

밀림으로 우거진 지리적인 특성상, 산맥과 산맥 사이에 사는 마을은 지리적으로는 가까울지 몰라도 실질적으로는 교류하기 불가능한 곳이 대다수다.

조선에서도 산 넘어 마을에 가려면 빙 돌아서 가야하는데, 이곳은 오죽하겠나.

서로 교류가 없다보니 소수민족들이 자생해 자신들만의 문화와 풍습을 만들기 마련이고, 이래서 하나로 통합하는 게 어려울 수밖에.

“그러니 아국과 다른 통치방법을 적용할 거고, 이는 지금껏 남방을 다스려온 모든 왕조가 하던 일 아닌가. 최고 지배층이 기존왕조가 아닌 대리왕조가 되는 것 뿐이니, 실질적인 저항이 그리 크지 않을 거다.”

“그런 식으로 통치가 가능하겠습니까?”

“뭐... 알아서 되겠지.”

연오랑은 반문을 표하는 관원을 보며, 히죽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운석핵꿀밤 세대이자, 개혁 이후 강력한 중앙집권을 자기 손으로 만들어 온 관원들 입장에선... 아마 지금 보이는 양상은 콩가루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할 거다.

속으론 “저게 한 나라가 맞긴 한가?”라는 의문을 절로 품지 않을까. 허나 느슨한 봉건제에선 그게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미공하 유역을 대리의 땅으로 만드는 것도, 어찌 보면 쉽게 진행될 지도 모른다.”

“...!”

이 시대는 국경이라는 게 제대로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나 초원이나 밀림과 같은 곳은 더욱 그러한 법.

지금 조선이 하는 것처럼 도시와 도시를 잇는 선을 죽죽 그어서 “여기 넘어오면 뒤진다. 여기 다 조선땅이다.”라고 주장하는 나라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

월경지라는 게 너무나도 흔하고, 국경이 기이한 모양으로 형성되는 것도 크게 이상하지 않다.

명확한 국경보다, 국경 근처의 도시와 그 도시의 영향권이 미치는 곳이 나라의 강역이라는 개념이 흔한 거지.

“이족들도 산에 박혀서 사는 것보다 비옥한 미공하 유역에서 거주할 터, 대리는 그런 큰 부족마을을 하나씩 점령해 자기 것으로 만들면 그만일 거다.”

이러면 대리의 강역이 강을 따라 길쭉하게 이어지는 괴이한 형상을 하게 되겠지만, 그게 뭐 대수인가.

어차피 진짜로 대리가 지배하는 땅은 강유역의 각 도시들이고, 그 외의 지역은 알아서 살라고 내버려두는 거지.

그런 자잘한 부족마을은 가만히 나둬도, 언제가 됐건 자치권을 받고 대리왕조에게 복속되는 형태가 될 테니까.

“아...”

“흐음. 그러면 확실히 비단길을 유지하는 것도, 미공하 유역을 차지하는 것도 가능해지겠군요. 같은 이치니까요.”

“그럴 거야 아마. 지도가 지저분해 지겠고만.”

“...”

연오랑이 피식 웃으며 말을 했지만, 다들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따라 웃질 못했다.

말이 지저분해지는 거지, 그 안에서 또 얼마나 난장판이 벌어질까.

“대감 말씀처럼 대리가 그렇게 영역을 차지하면... 기존의 섬라나 란쌍과 같은 나라들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겠군요.”

“그렇지 않겠어? 강을 중심으로 쪼개지는 형상이 될 테니 달갑지 않겠지만, 애초에 부족마을의 느슨한 충성과 동맹으로 맺어진 왕조 아니냐. 자신들이 모실 사람을 기존왕조에서 대리로 바꾸는 거니, 남방왕조들도 쉽사리 대리와 전쟁을 하긴 힘들 거야.”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느슨한 봉건제를 유지하고 있으니, 아무리 같은 민족끼리 뭉친 섬라나 란쌍이라고 한들 “대리가 우리 땅을 빼앗는다. 가서 쳐부수자!”라고 외친다고 들어 먹힐 리가 있나.

“거긴 우리 땅이 아닌데?” “대리는 전처럼 세금만 걷어갈 뿐, 우릴 지배하지도 않는 걸?” “고향을 떠나서 누군지도 모를 놈들을 위해서 싸우라고? 내가 왜?” 이런 반응이 먼저 나오지 않을까.

“당사자가 된 부족마을들은 대항할 지도 모르지만, 그 정도의 병력으로는 대리를 막지 못할 거다. 화포가 없다고 해도, 머릿수로 밀어붙이면 그만일 테니까. 게다가 대리는 한족도 아니잖아? 이족들이 느끼는 것도 또 다르겠지.”

“흐음. 결국 대리는 남방으로 진출한다는 건데... 이 일에 굳이 우리를 끼워 넣으려는 건, 아무래도 시선을 돌리기 위한 술책이 분명하군요. 그런데 우리 입장에선 알고도 당해줘도 될 만큼 달콤하다는 게 문제고요.”

“정답이다.”

정인지가 결론을 내리자, 모두가 하나같이 동의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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