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352화 (352/538)

352. 챕터48. 파고들다 (3)

‘오스만은 티무르에게 두들겨 맞고 발칸반도를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독립시켜줬잖아? 하지만 진짜로 독립하게 될 수도 있는 거고, 티무르제국이라면 그걸 더욱 바라겠지. 킵차크 칸국도 마찬가지일 테고.’

만약 일이 이렇게 흘러간다면, 원래 역사에서 있었던 오스만의 동로마 멸망 또한 늦출 수 있지 않을까? 동로마의 멸망이 늦춰진다면 서유럽의 발전 또한 흔들리게 될 거고.

‘너무 먼 미래이긴 한데... 조선이 여기까지는 몰라도 이번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을 거야. 북방의 안정과 고착화를 위해서라도 심혈을 기울여 준비해야 하지.’

지금까지의 상상은 전부 연오랑만 알고 있는 거지만, 조선조정에서도 이 무역로를 유지해야만 정세가 안정되고 이득을 취할 수 있다는 걸 명백히 인식하고 있을 터.

결론적으론. 조선내부에서 서방 몽골계가 원하는 무역품을 다품종, 대량생산해서 창주에 쟁여놔야, 이 모든 계획이 무탈하게 진행될 거다.

둘째는 일본 무역항의 개방과 은행설립.

지금쯤이면 일본 막부로도 사절단이 떠나서, 무역항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을 거다.

연오랑은 전국시대가 발발하지 않고, 발발하더라도 최대한 작게 그리고 빠르게 해결되길 바라고 있다.

조선조정 입장에선 일본이 중구난방으로 근본도 없이 쪼개져 있는 것보단, 하나의 창구로 통일되어 효율을 높이길 바라고 있고.

이를 위해서 알게 모르게 막부의 권위를 높이고 영향력을 높이는 걸 도와주고 있는 상황.

이번 일도 그러한 방편으로, 무역항 설립에 있어 선택지를 막부에 넘겨주는 쪽으로 가지 않았나.

‘막부는 분명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일 거고, 중앙집권에 열을 올리는 이상 무역항 설립을 이용해서 다이묘의 힘을 빼길 바라고 있겠지.’

이제 선택지는 다시 다이묘에게 넘어간다.

막부 밑으로 들어가서 기존의 권리를 일정부분 토해내고 무역항을 얻을 것인가, 아니면 무역항을 포기하고 기존의 권리를 유지할 것인가.

‘아무리 막부라고 해도 함부로 찍어 누르긴 힘들 거야. 막말로 다이묘들이 막부 대신 조선에 충성을 받치겠다고 들고 일어서면, 그거야 말로 골치 아파지는 일이잖아?’

이런 상황은 결코 흔한 건 아니지만, 반대로 또 없던 일도 아니다.

박쥐처럼 굴던 옛날 대마도가 조선과 일본막부 둘 모두의 신하를 자처하곤 했고, 규슈지방에서 힘을 꽤 쓰는 오우치 가문도 매번 조선을 뜯어먹으려고 하면서 말뿐만인 충성맹세를 날리기도 했으니까.

허나 조선의 위상이 확연히 달라진 이상, 수틀리면 가짜 충성이 아닌 진짜 충성을 할 수도 있는 거지.

다이묘들은 완전히 탈바꿈한 조선조정에 충성을 바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전혀 모르고 있겠지만, 개혁 이전의 조선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런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그러니 외교권이나 군사권 일부를 막부에 넘겨주는 정도로 끝나게 될 텐데... 그게 곧 다이묘들의 힘을 약화시키는 첫 단추가 되겠지.’

모든 일은 처음이 어려운 법.

이런 식으로 다이묘가 이권을 위해 막부에게 하나둘씩 권리를 빼앗기면, 결국에는 다이묘가 다이묘가 아닌 상황으로 변질될 거다.

이런 걸 알면서도 이 일이 가능성이 있다고 본건, 지금 다이묘들은 근본도 없는 센코쿠 다이묘가 아니라 역사와 전통이 있는 슈고 다이묘이기 때문.

다이묘들은 지방영주일 뿐만 아니라 막부의 관직을 받은 고위관원이다.

막부는 다이묘를 관직에 올렸다가 날려버리기를 반복하며 다이묘를 길들였고, 다이묘는 그걸 알면서도 관직을 통한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받아들이고 있었지.

또한 스스로를 신의 자손이라 자부하는 유서 깊은 천왕가 및 공가와도 혈연관계를 맺어 지배층으로 군림했다.

유럽의 귀족이나 고려귀족처럼, 견고한 신분제 위에 군림하는 진짜 지배층인 거지.

이런 이들에게 사치와 허영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남들 보다 더 우월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선, 남들이 쉽게 구할 수 없는 신문물을 마음껏 쓰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고. 이게 곧 위신과 위엄으로 이어지지 않나.

그런 면에서 신문물인 조선물산과 중국물산을 받아들이고 사용하는 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문제지.

‘다이묘들은 막부와 손잡고 군비지출을 줄여 풍족하고 발전된 영지를 유지하든지, 아니면 그냥 지금처럼 힘겹게 살아가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데... 아국이나 막부입장에선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 않나. 어차피 무역항을 열 곳은 많이 있으니까 말이야.’

아마 한명이라도 제안을 받아들여 무역항을 열면 엄청난 꿀단지를 얻게 될 터, 도미노 현상처럼 다들 따라하게 될 거다.

셋째는 이곳 대만섬을 경락하는 작업.

“이 중 일본과 남주도 계획의 필수전제조건이 되는 게 바로 해군의 활동유무입니다. 경애도와 남방조차지를 위해 해군이 자리를 비울 수 없는 노릇 아닙니까?”

“음...”

“하긴 그게 더 중요하긴 하지.”

“...”

관원의 말에 모두가 다시금 침묵에 잠겼다.

일본 다이묘들을 압박하기 위해서, 그리고 세토 내해에서만 활동하는 왜구가 나오지 않도록 막기 위해선 해군의 순찰이 필수적이다.

대만섬 또한 마찬가지.

대만섬을 온전히 통치하려면 앞으로 조선과 대만섬을 직통으로 잇는 항로를 조선해군이 지켜야 한다. 나아가 일본과 대만섬, 복건을 잇는 항로도 함께 지켜야 하고.

“결국 전함이 부족해서, 확장을 더 진행하는 건 문제라는 거군?”

“그렇습니다. 이건 시간 말고는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만약 여기서 더 남방으로 조차지와 강역을 넓힌다면 보호해야할 범위가 넓어지니, 지금의 해군으로는 전부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

‘흠. 맞는 말이야. 당장 해적을 정리하는 것조차도 빠듯하잖아?’

조선의 모든 해군은 대만 원주민을 본토로 옮기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애초에 대만원정을 나선 이유가 본토의 노동력 부족을 충당하기 위해서 아니던가.

이건 절대 후순위로 미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적어도 10차 보급대가 오갈 때까지는 해군이 여기에 붙들려 있어야 한다는 뜻.

‘올해는 물 건너갔다는 말이고... 내년부터는 동해와 일본북부를 누비고 다녀야 하니 또 전함이 부족하겠군.’

“그렇게나 전함이 필요할까?”

“필요할 거라 보고 있네. 보게.”

“...”

자신감을 얻었는지, 반문을 던졌던 관원은 연이어 자신의 생각을 털어놨다.

“자동과 광주에 만드는 조차지는 사실 큰 문제가 없을 걸세. 당장 조차지를 건설한다고 해서 바로 아국이 관리할 수도 없는 거고, 일단은 부두와 항구, 거주지부터 만들어야 하지 않나.”

“그렇지.”

“광서와 광동에서 밀려든 한족 유민이 넘쳐나서 오히려 문제가 되는 판국이니, 지난날 청도와 상해에서 보다도 더욱 인력을 수급하는 건 쉬울 터. 조차지 공사는 큰 어려움이 없을 걸세.”

“조차지 건설비용은 자동과 광주상인회가 담당할 테니까?”

“그야 당연한 말 아닌가.”

관원은 그리 말을 하고선, 슬쩍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

청도와 상해는 조선이 요구해서 얻어낸 거지만, 자동과 광주는 그들이 요구하는 거다.

당연히 조건 또한 달라져서, 조차지 건설에 필요한 보든 부대비용을 그들에게 미뤄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거다.

“거기에 추가로 또 다른 조건을 내건다고 해도, 그들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걸세. 허나 아까 말했듯이. 당장 하루 끼니를 걱정하는 한족유민이 넘쳐나니, 돈은 청도나 상해보다 적게 들어갈 걸세.”

하루 일당이 아니라, 그냥 하루 식량만 제공해도 일하겠다고 나서는 이들이 해일처럼 밀려들 거다.

“하지만 경애도와 현항, 그리고 진랍국의 남부에 조차지를 만드는 건 전혀 다른 일입니다. 특히나 경애도를 보시지요. 그곳이 비록 지난날 원,명 시절에 홀대 당했던 땅이라곤 허나 그래도 적지 않은 수가 살고 있을 겁니다.”

“...”

“대리가 대월을 압박해 경애도의 이족을 불러들인다고 해도, 얼마나 갈지 모르는 일이고... 그 땅을 아국의 강역으로 만들기 위해선, 이곳 남주도에 기울였던 노력만큼은 기울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족이라서 더 쉽지 않겠나?”

“오히려 반대일지도. 중국의 관습을 기억하는 한족이니, 조선화교육을 시키는 일이 더 어려울지도 모르지.”

“흠...”

‘해남도에 사람이 과연 그렇게 많이 살까...’

연오랑은 속닥거리며 의견을 나누는 관원들을 보며, 그 또한 머릿속에 주판을 올려 계산을 해봤다.

아무리 해남도가 유배지로 활용되었다고 해도, 옛 명나라의 처소나 명나라의 통치를 따랐던 한족이 살고 있을 거다.

과거의 해금령 때문에 한족마을은 전부 해안에서 밀려났을 테니, 그 자리를 이족이 차지했을 거고... 명이 망한 후에도 이미 터 잡은 이족이 한족에게 자리를 비켜주지도 않았을 거다.

‘그래서 같잖지도 않은 해적. 아니 바다의 날강도 같은 놈들이 광주를 약탈하고 그랬겠지.’

이놈들은 대월의 영향력 하에 있을 테니 얼추 정리가 된다고 해도, 해남도 내륙에 사는 한족의 수는 아무리 못해도 십만은 넘지 않을까?

‘해남도가 대만섬보다는 작긴 해도 얼추 비슷한 크기잖아? 그 땅도 미개척지가 넘쳐날 테니 소수민족이 얼마나 짱박혀 있는 지 알 길이 없겠지. 명나라는 관심도 없어서, 그냥 건드리지만 않으면 대충 알아서 놀라고 하고 넘겼을 테고.’

여기에 최근이 급증한 이주민까지 더해지면, 어쩌면 이십만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의 생각보다 경애도 백성들이 많다면, 그저 대리의 제안과 해적퇴치를 명목으로 얼렁뚱땅 일을 진행해서는 안 될 겁니다. 남주도를 경락하기 위해서 몇 년을 준비했는데, 남주도와 비견될 경애도를 경락하는 일을 대충하면 되겠습니까.”

“음...”

“맞는 말이지.”

“그쪽은 한족이 살고 있어서 농사를 짓고 있을 테니 식량문제는 이곳보다 덜하겠지만... 그래도 보급이 없으면 힘들겠지.”

“게다가 경애도는 남주도보다도 더 멀리 있지 않나. 본토에서 경애도까지 간다치면 느긋하게 잡아도 보름은 걸릴 걸세.”

“음... 경애도를 경락하려면 오히려 광주와 자동의 조차지가 먼저 건설되어야 할지도 모르겠군.”

“...”

‘맞는 말이야. 보급이 곱절로 힘들어지겠지.’

연오랑 또한 동의하며 손가락을 두들기고 있을 때. 생각에 잠겨 있던 정인지가 뜬금없이 박수를 치며 입을 열었다.

“아!”

“...?”

“대리가 도와준다는 말. 그 말이 빈말은 확실히 아니군요. 이 자식들 진짜 달콤한 미끼를 던지는데요? 이곳 남주도 경락을 절강이 도와줬던 것처럼, 대리가 도와주겠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

모두의 눈동자가 자신에게 향하자, 정인지는 더욱 자신이 붙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대리는 이미 대월을 관통하는 홍강을 통해 무역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해남도는 대월의 수도인 승룡. 하노이에서 바로 코앞에 붙어 있는 섬.

그들 입장에선 어차피 무역을 하러 내려오는 김에, 해남도까지 가는 건 큰 문제가 안 되는 거지.

“대리는 사천과 긴밀한 관계에 있으니, 절강상인보다도 많은 자원과 식량을 보급할 수 있을 겁니다. 사천의 물산이 풍부한 건 다들 아는 사실 아닙니까.”

“하긴 사천이라면...”

“그치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겠지요.”

사천은 조선인들조차 잘 알고 있는 꿀땅 아닌가.

고대시절부터 여기서 힘을 키워 왕조나 독립세력을 꿈꿨던 이들이 한둘이 아니니, 지금이라고 딱히 달라질 건 없을 거다.

“차마고도가 막히고 중국내륙으로 진출하기 힘들어졌는데, 그들은 다툼을 멈추고 연맹을 이뤄 하나로 뭉쳤으니... 이제 슬슬 잉여 생산품이 쌓이기 시작했을 터, 대리의 남방진출은 어쩌면 이 물건을 팔아넘기려는 속셈일 수도 있겠지요. 그런 면에서 보면 아국이 경애도를 경락하는 것만큼 좋은 시장이 또 있겠습니까?”

“오호...!”

“과연. 과연. 충분히 가능한 말씀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돈놀이에 해박한 재정부, 조폐부 관원들이 먼저 이해를 하고선, 고개를 마구 끄덕여댔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잉여생산물이 넘쳐나, 식민지개척에 열을 올렸던 제국주의 시대까지 갈 것도 없다.

이 시대도 잉여물산을 다른 지역에 팔아넘겨 이득을 얻고, 또 그 이득을 얻기 위해 다른 나라와 세력을 공략하는 개념은 전혀 낯선 게 아니지 않나.

당장 동남아시아의 소국들이 그러고 있으니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동안에도, 대리는 아국을 유심히 살핀 게 분명하죠. 그러니 조차지를 제안했겠죠. 자동과 광주가 흔들리는 건 익히 알고 있을 테니, 아국이 그곳에 조차지를 만들 계획이라는 것 또한 얼추 짐작하고 있을 거고...”

“광주와 자동상인은 조차지 건설에 힘을 쏟을 테니, 경애도 공략에 있어서 지원을 하는 건 힘들 거라고 생각했고... 그 자리를 대리가 차지하려고 한다는 말씀이시지요?”

“더불어 대리와 사천은 아국이 경애도로 진출하는 일을 도와주며 시장을 만들어서, 그간 구하기 힘들었던 북방물산을 내륙과 남방소국에 팔 생각을 가지고 있을 테고요.”

“그야 당연한 말. 그치들은 조운선을 통해 식량을 한가득 싸가지고 올 텐데, 빈 배로 돌아갈 생각을 했겠나. 당연히 아국의 물품을 전부 쓸어가겠지.”

“정답!”

정인지는 그리 말을 하고 히죽 웃었고, 다들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어 미간을 찌푸렸다.

간단히 말해서 남주도 개척사업을 지원하면서 절강과 복건이 꿀을 빠는 걸 봤으니, 경애도 개척사업을 지원하면서 대리가 꿀을 빨겠다는 것.

조선은 남방으로 계속 진출할 걸로 보이고, 조차지가 완성되면 덩치를 불린 광주와 자동상인회가 경애도 개척사업을 지원하면서 꿀을 빨 것 아닌가.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대리가 먼저 끼어들겠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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