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354화 (354/538)

354. 챕터48. 파고들다 (5)

다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힐끔 연오랑을 바라봤다.

조차지라는 개념을 완성한 건 조정관원들이지만, 처음 꺼낸 건 연오랑이니까.

“자동과 광주에 조차지를 만들려는 이유 또한 그것 아닙니까.”

두 세력이 조선을 등에 업고 안전과 독점무역을 도모하기 위해서 조차지를 원한다면, 조선은 위와 같은 이유로 조차지를 원했다.

그저 조선물산을 팔아넘길 요령이었다면 뭐 하러 관리하기 불편하게 조차지를 만들까. 어차피 코앞에 있으니 그냥 대만섬을 무역항으로 개방하면 그만인데 말이다.

“그러니 현항과 진랍국의 조차지는 절대 포기할 수 없습니다. 보시지요. 본토에서부터 청도-상해-남주도-자동-광주-경애도(해남도)-현항(다낭), 끝으로 진랍국의 조차지까지. 이렇게 조차지를 통해 이동하면 바람의 영향이든 태풍의 영향이든 상관없이 아국함선은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편한 항로와 안전한 무역항은 아국뿐만 아니라 타국 상인까지 끌어온다는 뜻이겠군.”

“그렇습니다. 그곳까지 북방물산을 풀지 않아도 됩니다. 조차지 자체가 효과가 있을 테니까요.”

“...?”

“청도와 상해는 상인이라고 해봐야 중국상인 밖에 없지만, 남방은 다르지 않습니까? 이곳엔 출신을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남방소국의 상인이 오가는데, 그들을 아국의 조차지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엄청난 세금을 걷을 수 있을 겁니다.”

“흐음.”

“세금이라...”

재정부 관원이 왜 저렇게 열불을 토하나 했는데, 역시나 돈이 걸려 있는 문제라서 그런 모양이다.

‘하지만 마냥 틀린 말은 아니야.’

간단히 말해서 대항해시대 때 동인도회사가 했던 짓을, 조선이 하겠다는 뜻과 같지 않나.

다른 점이라면 동인도회사는 반쯤 민간 기업이라서 간접적인 식민통치정도로 그쳤다면, 조선은 그 땅을 아예 조선땅으로 만들고 원주민을 조선인으로 바꿔버린다는 차이가 있다.

이러한 방침은 곧 강력한 조선군이 주둔한다는 뜻이자, 그간 자기들끼리 수십, 수백년간 맺어온 은원관계와 전혀 관계없는 중립세력이 등장한다는 뜻.

동남아시아의 소국 및 강남상인, 심지어 몇 없는 인도상인까지도, 안전을 담보받기 애매한 소국의 무역항보다는 철권통치를 시행하는 조선무역항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소국의 무역항은 그 자체가 목숨줄이지만, 덩치가 엄청난 조선에게는 무역항 하나 정도는 별거 아니니까. 그러니 정책이나 기조가 왔다갔다하면서, 상인들을 쥐어짜내지 않을 가능성이 큰 거지.

관세 및 무역항에 지내면서 지불해야할 유지비용이 있지만, 그거야 다른 무역항에서도 내야 되는 거고.

“무슨 말인지는 충분히 이해했다. 다만 지금 당장은 힘들다는 거지. 현항은 그래도 괜찮을 거다. 대월을 막아야 하는 참파는 당장이라도 아군이 주둔하기를 원할 터, 그쪽도 연대 하나를 파견하는 정도면 참파가 알아서 유지를 해주겠지. 조차지를 만들어주는 것 또한 참파인들을 동원해서 하면 그만일 테고.”

“해군이 동원되지 않아도 가능하다는 말씀이십니까?”

“물론 쉽진 않겠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지. 현항의 조차지는 우리가 먹여 살려야 할 백성이 없잖아? 참파인들이 알아서 할 일 아니냐. 그러니...”

연오랑은 그리 말을 하고서 왕인을 바라봤고, 왕인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도 경애도와 마찬가지다. 배 한척 정도는 빼서 무역품과 보급품을 날라야 유지가 가능할 거다.

“그래도 전마를 옮기려면 함선이 많이 필요할 겁니다.”

“그건 그렇지만 일단은 연대병만 옮기고 차근차근 생각해보자고. 다른 방편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중요한 건 병력의 수가 아니라, 아군이 주둔한다는 그 자체니까.”

연오랑은 빙긋 웃으며 그리 말을 했고, 모두는 그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며 또 뭔가 꿍꿍이를 짜고 있다는 걸 짐작했다.

“진랍국 조차지의 필요성은 다들 이해했지만, 지금 당장 불가능하다는 것 또한 이해했지? 그러니 일단은 경애도와 현항에 진출하는 게 먼저다. 이것만 해도 올해는 훌쩍 지나갈 테니, 내년에 상황을 봐서 진랍국 조차지로 진출할지 말지 결정하면 되겠지.”

“...”

“대리가 남방으로 진출한 이상 섬라, 진랍, 대월이 어떻게 반응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고, 그들이 적대할 수도 있으니 굳이 우리가 먼저 얻어맞을 필요는 없잖아? 일단은 정세를 지켜보면 되겠지.”

“알겠습니다.”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모두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자. 그럼 논의는 다 끝났지? 그럼 대리 사신을 불러와라.”

“옙!”

관원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대리 왕자와 사신단이 들어왔고, 그들은 연오랑 및 관원들과 다시금 입싸움을 하며 결론을 내렸다.

*****

대리를 비롯한 다른 세력과의 협상은 쉽게 끝이 났다.

화포를 지원한다는 큰 산을 넘은 이상. 화포 대금을 얼마로 할지, 언제 지원할지, 경애도(해남도)에 지원하는 물량을 얼마나 할지, 서로가 바라는 무역품이 무엇인지 등등은 실무자들이 세부적으로 논의하면 될 일.

왕자와 사신단은 연오랑이 승낙을 했어도, 조정에서 한 번 더 논의가 벌어질 거고 거기서 틀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받아들였다.

애초에 이렇게 가는 게 당연한 거고, 보아하니 대리도 이 일이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바로 진행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

앞으로 서로 손을 잡고 진행할 계획이 한 가득인데, 벌써부터 빨리 안 된다고 성질을 긁을 필요는 없는 거지.

참파의 사신과의 협상도 물 흐르듯 진행됐다.

웃기게도 이걸 도와준 건 다름 아닌 대리 사신단. 이걸로 더욱 확실해 졌는데, 대리는 확실히 대월을 견제하고 있었다.

광서와 광동의 소수민족들에게는 한족보다는 대리의 백족이 가깝게 느껴지지만, 백족보다는 또 대월의 월족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애초에 죄다 대월의 문화권에 속해 있다가, 월족이 인도차이나반도로 밀려난 거니까.

이렇다보니 홍강을 공유하려는 대리 입장에서는 대월이 무작정 커지는 걸 경계할 수밖에 없는 바.

그렇다고 직접 적대하자니 홍강이 막히는 터라, 조선을 이용해서 참파를 움직여 대월의 남하를 막기 바라는 것이었지.

해서 참파와 대월의 속사정을 전부 알아낼 수 있었고, 이걸 이용해 정인지를 비롯한 외교무역부 관원들은 참파 사신을 탈탈 털어먹었다.

그 결과. 직접 가서 봐야 알겠지만 현항(다낭)의 해안지대 전역을 조차지로 인정받았는데, 그 크기는 청도나 상해의 5배에 달하는 엄청난 땅.

이 정도면 외부의 지원 없이, 현항을 완전히 조선땅으로 만들어 자급자족을 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역사와 전통이 흐르는 현항을 이렇게 쉽게 넘겨 줄 수 있었던 건, 이 시대의 항구도시는 사실 해안에 바로 붙어서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

소주,항주,영파,광주 모두 해안선을 파고들어 강과 이어지는 곳에 만들어지지 않았나.

이러한 무역항은 고래로부터 해적들의 끊임없는 공격을 받았고, 이에 대한 방비를 쉽고 편하게 하기 위해서는 내륙에 자리 잡을 수밖에 없는 거지.

현항도 마찬가지라서 참파의 근거지는 한참 내륙 쪽에 위치했고, 참파가 성장하면서 그 중심지 또한 이리저리 옮겨 다닌 터라... 지금의 현항 해안은 한적한 어촌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곳이었다.

하지만 조선은 바다로의 공격을 두려워하긴 커녕, 오히려 해적들을 때려잡고 다니지 않나. 그렇다보니 서로의 이득이 맞아서 해안가 일대를 전부 차지할 수 있었다.

광주와 자동상인과의 협상 또한 손쉽게 진행됐다.

이쪽이야 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

생각지도 않았던 대월,참파,대리 사신이 우르르 몰려와 속닥속닥 조선과 밀약을 맺기 시작했으니, 이걸 청신호로 받아들일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나.

여기에 조선이 광주와 자동을 놓고 경쟁을 시키자, 그들은 두손두발 다 들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손해를 보는 제안이라고 해도, 조차지가 만들어지지 않는 손해보다는 적을 테니까.

그래서일까? 그들도 조선을 꼬드기기 위해 단단히 준비한 게 분명한 것이, 조선이 꼭 필요해 보이는 걸 미끼로 내세웠다.

광주상인회가 제안한 건, 다름 아닌 설탕장인과 첨가제의 판매.

사탕수수로 설탕을 뽑아내는 건 다들 얼추 알고 있지만, 그렇게 뽑아낸 설탕은 사실상 흑당이나 당밀, 대체로 카라멜 색깔이 나는 형태의 설탕 아닌가.

허나 강남상인들은 오래전부터 여러 첨가제를 추가해서, 눈처럼 하얀 백설탕을 만들 줄 알았는데... 무려 그걸 알려주겠다고 한 거지.

다만 여기에도 제한이 걸렸다. 중국내륙에 파는 건 금지하고 다른 나라에만 팔도록 조건을 내걸었고, 조선은 냉큼 받아들였다.

이런 식의 제한조건이 어색할 것도 없는 게, 당장 상해조차지를 만들면서 절강 염상의 시장을 침범하지 않기 위해 강남에 소금을 팔지 않기로 조약을 맺었지 않나.

조선 입장에선 조선본토와 일본, 언젠가 닿게 될 동남아시아. 그리고 끝을 모르게 확장 중인 몽골에게만 팔아도 충분히 남는 장사라고 판단한거지.

아마도 광주상인회는 대만섬을 아예 사탕수수섬으로 만들어버린 걸 모르기 때문에 이런 후한 제안을 던진 것 같은데...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두고 봐야 알 것이다.

이에 질세라, 자동상인회도 꽤 매력적인 제안을 던졌다.

바로 염료와 안료의 수입을 싼값에 해주겠다는 것.

특히나 염료의 경우에는 아예 각종 염료나무와 염료장인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염료는 옷감을 염색하는 데 쓰이는 색소로 조선 자체적으로 생산해서 쓰는 게 꽤 있었다. 허나 대부분이 식물성 염료인 터라, 당연히 기후조건에 따라서 키울 수 없는 식물이 있기 마련.

다만 조선이 남주도로 진출한 이상, 이제부턴 아열대나 열대기후에서 자라는 염료식물도 얼추 기를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았나.

그간 조선의 발전을 이끌어 온 노가다반복작업과 온갖 정보수집이라는 게 있으니 어떻게든 알긴 알아갈 텐데... 본래부터 아는 장인들을 통해 배우면 더 빨리 익힐 수 있는 법이지.

안료는 물,기름 등에 용해되지 않는 착색제를 말하는데, 보통 광물을 통해 얻는 경우가 많았다. 염료가 직물류를 염색했다면, 안료는 건물을 비롯한 온갖 것에 색을 입히는 데 사용되던 물건.

당연히 조선내부에서 구할 수 있는 안료가 있지만, 대다수는 중국에서 수입해서 써먹었다. 오죽했으면 안료도 약재와 마찬가지로 당채唐彩라 불렀을까.

이러한 안료 중에서도 가장 귀하게 여겼던 물건은 회청回靑으로, 미래에 코발트블루라 불리는 물건이었다.

이름에 회가 들어간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이건 페르시아에서 생산되어 인도를 거쳐 중국으로 들어왔는데, 조선청화백자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터라 정신 나간 가격을 자랑했지.

원래 역사에서 중국으로부터 수입이 힘들어지자, 조선팔도를 박박 뒤져서 토청土靑이라는 다운그레이드판 물건을 찾아 만들어냈을 정도다.

이건 회회인 네트워크가 살아 있는 자동상인회만 할 수 있는, 꽤나 귀한 제안이었지.

조선입장에선 본토에서 사용하는 것 말고도 일본에도 팔아먹을 수 있고. 또 이 안료를 이용해 유약을 만들어, 보다 발전된 도자기를 완성시켜 서역에 팔아넘길 수 있지 않나.

겉으론 시큰둥한 모습을 보였지만, 속으론 쌍수를 들고 환호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광주와 자동이 엄청나게 손해를 본 것 같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조선이 남주도에 진출한 이상, 언제가 됐든 분명 남방소국과 직거래를 시작할 거다.

그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야 얻을 수 있는 북방물산을 직접 구입할 수 있게 됐는데, 동남아시아 상인들 중에서 조선의 손을 잡지 않을 상인이 있겠는가.

당연히 그간 중계업자 역할을 하던 광주와 자동상인은 낙동강 오리알이 되는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될 텐데...

그럴 바엔 화끈하게 조선을 밀어줘서 거래량 자체를 키워 이득을 챙기고.

조선이 남방시장에 진출할 준비를 하는 동안 시간을 벌어서, 불어난 이득을 바탕으로 광주와 자동의 덩치를 더욱 키우겠다는 계산이었지.

중계업자 역할을 못하게 되더라도, 자체적으로 무역도시를 유지할 수 있게 내실을 다질 기회로 삼은 것이다.

서로간의 꿍꿍이는 잘 맞아떨어졌고, 조차지 문제 또한 순식간에 진행될 수 있었다.

자동은 해안에 가깝게 붙어 있는 도시긴 하지만, 이쪽은 그간 부침을 꽤나 겪지 않았나.

명이 건국됐을 때 도시가 피바다가 될 정도로 초토화를 당했고, 그 후에는 해금령으로 인해 도시자체가 몰락해 해안에서 떨어진 내륙으로 근거지가 옮겨졌다.

명이 망한 후. 슬금슬금 해안 쪽으로 다시 나와서 옛 성쇠를 되찾으려고 하는 상황이었으니.... 움푹 파인 만을 끼고 있는 자동 인근에는 빈 땅이 생각 외로 많았다.

광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광주는 해안선을 깊게 파고든 사자狮子만의 끝자락과 광주를 관통하는 주강珠江의 하류가 맞닿는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광주에서 살짝 거리가 있고 해적들의 오랜 약탈로 인해서 해안가 일대는 빈 땅이나 다름없었기에, 조차지로 넘겨주는 건 전혀 아깝지 않은 상황.

오히려 조선이 고민을 해야 했다.

미래의 마카오 지역을 먹을 건지, 홍콩 지역을 먹을 건지를 택해야했는데... 결론은 마카오로 굳혀졌다.

홍콩 지역 바로 위에는 미래의 선전시. 지금은 남두라는 지역이 있는데, 이곳은 광주의 부속도시로 송대부터 번영한 곳이다.

한족이 우글거리며 사는 이쪽으로 조선이 진출하는 건, 서로 알게 모르게 피곤할 일이 많이 생기지 않겠나.

해서 마카오. 지금은 향산현香山縣이라 부르는 곳으로 결정했는데, 여기서도 한 번 더 꼬아서 섬이 아닌 섬을 마주보고 있는 내륙에 자리 잡았다.

섬이 좋긴 하겠지만, 빠르게 개척 및 개간을 하려면 육지와 연결되어 있는 편이 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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