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355화 (355/538)

355. 챕터48. 파고들다 (6)

더불어 미래의 마카오 섬은 수백년간 간척을 해서 그 정도 크기가 된 거지만, 지금의 마카오 섬은 생각보다 작고 지형도 좋지 않았다.

결국 어쩌다보니 조선이 꽤나 많은 땅을 뜯어낸 셈이 됐는데, 광주도 이걸 받아들였다.

절대 그럴 일은 없어야겠지만... 만약 조선이 회까닥해서 광주 앞바다 사자만을 봉쇄하기라도 한다면, 광주 입장에선 육지로 연결되어 있는 조차지를 공격하는 시늉이라도 해봐야하니까.

그렇게 협약을 끝마친 사신단은 전부 근거지로 돌아갔고, 조선본토의 조정에서 답서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리던 중.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남주도 함대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끄응...”

“일어나셨습니까. 대형.”

“물 있냐?”

“예.”

유 두목은 눈도 뜨지 않고, 부하가 건네준 표주박을 넘겨받아 벌컥벌컥 들이켰다.

찹찹 소리내어 물을 얼굴에 끼얹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고, 눈곱을 떼며 몸을 일으켰다.

슬그머니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토끼눈을 하고서 그를 주시하고 있다.

“잠 안 잤냐? 다들 꼴이 왜 저래?”

“잠이 오겠습니까.”

피식 웃는 소두령을 보며, 유 두목은 비 맞은 강아지마냥 젖은 머리를 털었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나도 그래서 술을 대차게 말아먹었으니까.’

오늘이 바로 결전의 날.

부하들은 들뜬 마음에 뜬눈으로 밤을 지센 게 분명했다.

유 두목 또한 다른 해적단 두목들과 만나 회합을 하지 않았으면, 같은 꼬락서니를 하고 있을 거다.

다만 괜히 긴장한 모습을 보여줄 수 없는 노릇이니,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두려움을 몰아내기 위해 술을 더 많이 마셨을 뿐이지.

“그럼 다들 깼나보군?”

“예.”

“움직이자.”

“...!”

그가 입을 떼기 무섭게 침묵이 깨지며 동요가 시작됐고, 온 사방에 대충 널브러져 있던 부하들이 각자의 날붙이를 챙겨들고 몸을 일으켰다.

“후...”

여름이 성큼 다가왔건만 차가운 바닷바람이 밀려오자, 유 두목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고개를 쓱 돌려 다른 집들을 살펴보건만, 쿵쾅거리는 심장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사이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해적단이 떼거리로 몰려 있는데, 이들을 한자리에 모아두면 뭔 일이 벌어지겠나.

그것도 두목들이야 모여서 회합을 한다지만, 부하들은 딱히 할 일도 없어서 술 퍼먹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안하지 않나.

해서 해적단 별로 모여 구분해서 지내고 있었고, 유 두목이 이끄는 해적단이 함께 움직여도 이걸 알아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행이군요.”

“뭐가?”

“보초가 없으니까요.”

“뭔 소리야. 우리가 회합할 때 마을에 보초를 세운 적이 있냐?”

“흐흐.”

소두령은 핀잔을 들었지만 그저 실실 웃어대기 바빴다. 아마 녀석도 두려움과 긴장을 몰아내기 위해서 시답잖은 소리를 내뱉은 모양이다.

계획은 이미 여러 번 주지시켰는데, 여러말 할 필요 있나.

“가자. 조용히.”

“예.”

부하들은 대꾸도 하지 않고, 유 두목을 따라 줄줄이 마을 뒷산으로 기어들어갔다.

태양은 바닷속에 숨어 있지만 여명은 어느새 밤하늘을 몰아내고, 닿으면 찔릴 정도로 서늘한 푸른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횃불이 없어도 앞은 충분히 보였고, 모두는 입을 앙다물고 산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땀을 내며 등산을 끝마쳐 산을 통과하자, 고운 모래밭이 눈에 들어왔다.

쏴락쏴락. 파도에 맞춰 모래알이 노래 부르는 소리가 진동을 하고, 그 모래터 한가운데에 작은 모닥불이 몸을 흔들고 있었다.

“빠진 놈 없지?”

“예. 보초는 다섯을 세우기로 했으니, 다 있는 게 맞습니다.”

비록 마을에는 보초를 세우진 않지만, 그래도 섬 가장자리에는 혹시 몰라 보초를 세워 왔었다.

물론 뭐 “올 사람도 없는 데, 이 짓을 왜 해야하냐?”라는 불만이 터져 나왔지만... 어쩌겠나. 회합 때마다 그러기로 했으니 그냥 그렇게 하는 거지.

지금 보이는 저 녀석들이 바로 그 불평불만 많은 보초들이다.

“가자.”

“예.”

부하들을 수풀사이에 남겨두고, 유두목과 소두령들만 숲에서 나와 모래터로 다가갔다.

소두령 둘은 언제 가져왔는지 손에는 술병을 쥐고 있었고, 모래알 밟는 소리에 보초들이 시선을 돌리자 냉큼 술병을 흔들어댔다.

“어...?”

“유 두령님.”

“헤헤.”

보초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술병을 보면서 입맛을 다셔댔다.

다른 놈들은 죄다 술판에 빠져 있는데, 자기들만 밤바다를 보면서 궁색을 떨었지 않나. 눈빛으로 “그거 우리 주면 안 됩니까?”라고 무언의 압박을 하고 있었다.

“꼭두새벽부터 어쩐 일로...?”

“산책 중이다. 그래야 오래 살지.”

“예?”

“큭큭.”

유 두목이 시답잖은 농담을 던지자 보초들은 피식 웃어댔고, 이내 소두령이 술병을 건네주자 하나같이 “와하하!” 목청 높여 아부를 해댔다.

그렇게 다들 술에 정신이 팔려 한 모금씩 나눠 먹는 동안, 유 두목과 소두령들은 보초들 사이에 끼려는 것 마냥 걸음을 옮겼고...

“크헉!” “컥.” “억!”

옆에서 다가오는 일행을 향해 앉을 자리를 비켜주려던 보초들은, 외마디 비명만 내지르며 머리통에 박도날이 꽂혀 쓰러지고 말았다.

“후...”

“흡...”

부하들이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심호흡을 하자, 유 두목 또한 애써 동요를 가라앉혔다.

칼밥 먹고 사는 인생을 살았는데, 머리통 깨부수는 게 뭐 대수겠냐마는...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지 않나.

첫 살인을 할 때처럼, 피가 맹렬히 몸을 질주하는 기분이었다.

“가져오라고 해라.”

“옙.”

소두령 중 하나가 숲으로 되돌아가자, 다른 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주 두목과 황 두목도 오고 있겠지요?”

“그야 당연하지. 아마 서가 놈도 올걸?”

“음...”

소두령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세상 모든 게 궁금한 어린아이마냥 또 질문을 던졌다.

“정말 오겠죠?”

“오겠지. 약속한 날이 오늘이니까.”

“음...”

“뭐 문제 있겠냐. 이놈들 죽은 건 아무도 신경 안 써.”

유 두목은 발치에 쓰러진 시체들을 툭툭 걷어차며, 애써 불안감을 지워냈다.

조선군이 오면 좋은 거고, 안 오더라도 문제 될 거 있나.

해적놈들끼리 술먹고 싸움이 벌어지는 건 일상다반사고, 죽는 사람이 나오는 것도 다반사다. 그럴 때에 대전쟁이 벌어지지 않게 하려고 이런 회합이 시작된 거 아닌가.

미안하다고 정중히 사과하고, 목숨 값을 배상해주면 그만이다.

이윽고 기다리고 있자, 숲이 흔들리면서 부하들이 생나무가지를 가지고 우르르 몰려왔다.

순식간에 거대한 모닥불 세 개가 만들어졌고, 생나무가지가 타면서 메케한 연기와 함께 붉은 불꽃이 덩치를 불려갔다.

“마을에서 보이진 않겠죠?”

“연기? 흐릿해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걸. 불빛이야 산이 막고 있으니 당연히 안 보일 거고.”

“...”

다 알면서도 굳이 묻는 걸 보면, 적잖게 떨리는 모양이다.

그렇게 불길을 크게 만들어 놓고 장작을 집어넣고 있자, 기다리던 이들이 하나둘씩 등장했다.

함께 하기로 한 주가와 황가가 부하들을 이끌고 모습을 드러낸 것.

다만 남주에 함께 가지 않았지만, 결국엔 함께 하기로 한 서가 또한 부하들을 이끌고 왔다.

“왔냐? 그쪽도 정리했고?”

“오냐.”

“너도?”

“어.”

해적단 두목 넷은 서로 손을 맞잡으며 눈을 깊게 마주쳤다.

이제 돌이킬 수 없지 않나.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일만 남았다.

“혹시 모르니까 해안에 펼쳐놔야겠지?”

“그게 더 수상해 보이지 않겠냐? 그냥 숲에 남겨두는 건 어때?”

“그럼 조선군이 의심하지 않을까?”

“우리와 소두목들은 전부 나와서 기다리고 있으면 되겠지.”

“음...”

두목들은 빠르게 의견을 교환했고, 이내 곧 부하들을 숲 언저리에 잘 보이게끔 숨기기로 결정했다.

바다로 오는 조선군에게는 보이고, 산을 넘어와야 하는 해적 놈들에게는 안 보여야 하니까.

“조용히 움직여라.”

“입 열지 마라. 아니 그냥 숨도 쉬지 마!”

소두령들은 부하들을 다그치며 몰아갔고, 이내 곧 모래터에는 발자국만 어지럽게 남았다.

다 합쳐봐야 사백명 정도 되려나? 엄청 적은 숫자처럼 보이지만, 해적단 백명이면 나름 꽤 큰 편이다.

왜구와 함께 날뛰던 전성기는 끝난 지 벌써 수십년이 지났고, 해적단은 덩치가 크면 클수록 그만큼 많이 약탈을 해야 유지가 되는데... 상단호족이 권력자가 되면서 상단호위들 또한 엄청나게 불어났다.

당연히 수익이 악화되니 대해적단은 해체 수순을 밟았고, 송사리처럼 작은 녀석들만 떼거리로 남게 된 거지.

힘이 약해진 해적단은 또 상단호위에게 쓸려나기 십상이라서, 해적질을 때려 치고 진짜 상인으로 변신한 이들도 부지기수다.

그렇게 두목들이 모여 앉아, 보초들 주려고 가져왔던 술을 한 모금씩 나눠먹으며 얼마나 기다렸을까.

이내 곧 바다에서 낯선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최락.최락. 파도를 때리는 요상한 소리와 함께, 물안개를 뚫고 검은 그림자가 하나둘씩 파도 너울 너머로 보였다.

“음...?”

“진짜로 왔다.”

“나도 보여.”

모두는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모닥불에 타고 있는 장작개비를 집어 들어 흔들어댔다.

검은 그림자는 점점 더 가까워지는데, 그 수가 상상외로 많다. 아니다. 예상은 했지만, 눈으로 직접 보니 훨씬 많아 보인다.

“몇 척이지?”

“못해도 스무척은 되어 보이는데?”

“허. 가만있자...”

두목들은 머리를 굴려가며, 점점 선명해지는 조선군을 기다렸다.

나룻배처럼 생긴 작은 배를 타고 오고 있는데, 대충 십여명쯤이 타서 열심히 노를 젓고 있었다.

저 작은 배를 조선의 엄청나게 큰 배에 실어서 왔을 터...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없었던 싸움배를 전부 끌고 온 게 분명하다.

촤락. 턱턱. 파도를 헤치며 다가온 나룻배는 이내 모래톱에 닿았고, 첨벙첨벙. 거침없이 몸을 날린 조선군들은 바닷물에 몸을 날려 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나룻배에 남아 있던 조선군 둘이 다시 노를 저어 되돌아갔고, 모래에 상륙한 조선군들은 힐끔 두목무리를 살피더니 반원을 그리며 모래터에 자리를 잡았다.

“...”

꿀꺽. 두목들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하나같이 검은 두정갑을 껴입고, 몇몇은 얼핏 지나치며 봤던 짐승갑옷을 입고 있다.

키 보다 더 큰 장창을 쥐고, 등에는 활과 화살통을, 허리춤에는 장도와 전투도끼, 대도 등을 꼈다.

“...”

이런 완전무장한 모습도 살벌한데, 말 한마디 없이 알아서 포진하고 진영을 잡는 걸 보면... 이들이 얼마나 숙련된 병사들인지 곧장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해적들도 남해가 좁다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칼밥을 먹었지만, 이런 상대와 싸워본 적은 단연코 없었으니까.

“말에서 내렸어도 무시무시하고만.”

“그러게 말이야.”

“갑옷을 안 입은 병사가 없군.”

“음...”

다들 한마디씩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서로를 훑었다.

해적이 갑옷이 웬 말이며, 활은 또 웬 말이냐.

저렇게 값비싼 무장을 할 정도로 재력이 있으면, 애초에 해적이 되지도 않을 거다.

그렇게 지켜보기도 잠깐. 조선군 중 몇이 순식간에 두목 앞에 다가와 있었다.

“유씨, 주씨, 황씨 상단... 그런데.”

살짝 어색한 북방한어지만 두목들은 알아들을 수 있었고, 이내 조선군 무관의 시선이 한곳에 멈추자 황급히 입을 열었다.

“이쪽은 서씨상단주입니다. 저희와 같이 이주사업을 했던 친구인데, 남주에 갈 때는 함께 가지 못했습니다.”

“계획에 없던 일인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놈도 부하들을 다 데리고 왔으니까요.”

“저기 숲에 숨어 있는 이들을 말하는 건가?”

“예.예.”

조선군 무관이 날카로운 눈빛을 숨기지 않자, 해적두목들은 얼른 허리를 굽혀가며 비위를 맞췄다.

특히나 목숨이 칼날 위에 올라간 서씨 두목은 아예 엎드릴 요령인양 정수리를 훤히 드러내 보였다.

“하나라도 손이 많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

조선군 무관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계속 지켜보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고, 두목들은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룻배는 끊임없이 오갔다.

한번 오갈 때마다 거의 백여명씩 쏟아내는데, 어째 끝이 안 보인다.

“...”

두목들은 안도의 마음이 드는 동시에, 한편으론 두려움에 질식할 것 같은 마음도 함께 들었다.

대체 이게 몇 명인가. 진영을 짜고 있던 조선군은 점점 모래사장을 장악해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모래사장이 검은빛으로 도배가 될 지경이다.

숲에 숨어 있던 부하들은 이제 모래밭으로 다 나와 있었는데, 검은장막에 파묻혀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다.

이윽고 상륙이 모두 끝났는지, 병력을 싣고 온 나룻배를 모래터 위로 끌어올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연대장님. 데려왔습니다.”

“음.”

42연대장 유응부. 원래 역사에선 단종복위운동에 참가했던 무신이지만, 지금 역사에선 몽골원정 때부터 착호군에 들어와서 착실하게 승진코스를 밟아 이젠 연대장이 된 인물.

그는 이미 남주에서 한번 봤던 해적두목들을 쓱 훑어봤다.

조선은 해적단 퇴치를 마음먹었고, 해적두목들을 속옷까지 탈탈 털어서 이번 회합과 팽호제도의 섬에 대한 정보를 얻지 않았나.

그 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지... 두목들은 안면이 있는 유응부를 보며,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애매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너희와 함께 하기로 한 이라고?”

“그렇습니다.”

유응부의 시선이 서씨에게 향하자, 서씨는 아까부터 계속 그랬던 것처럼 넙죽넙죽 허리를 숙였다.

“됐다.”

“감사합니다. 장군.”

“마을에 모인 이들은 몇이냐?”

“예상보다 조금 달라졌지만 크게 차이가 나진 않습니다.”

회합은 나름 자유로운 방식이었고, 안건에 해당되는 이들이 눈치를 보며 알아서 모이는 게 일반적이다.

다만 이번 안건은 조선의 진출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거의 모든 해적단이 참여했는데... 그럼에도 예상에 없던 이들이 왔고, 또 와야 했을 이들이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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