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358화 (358/538)

358. 챕터48. 파고들다 (9)

“해적들이 쓰던 배니 얼마나 써먹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보통 값어치를 하는 게 아니겠지?”

“그렇습니다.”

“예. 뭐든 시켜만 주십시오.”

혹여나 무를까 싶어서, 다들 유응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답을 했다.

“가봐라. 마을 사람들을 데려오는 일도 앞장서고.”

“옙!”

“알겠습니다.”

다들 신나서 부하들을 모았고, 유응부 또한 명을 내려 마을주민이 사는 안쪽 마을을 접수하게 시켰다.

언제나 그랬듯이, 전투보다 전장정리가 더 오래 걸리는 법.

항복한 해적들은 자기 손으로, 죽은 동료들을 끄집어 내야했다.

다만 넋이 나가 있어서 그런 건지, 살아 있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본래 소속이 다른 해적단이라서 별 생각이 없는 건지 모르겠다만... 반항하지 않고 곧장 움직였다.

죽은 사체들은 속옷만 남겨두고 싹 벗겨서 구덩이에 쌓아두고, 해적들의 무기나 갑옷, 기타 옷가지와 소지품들을 탈탈 털어 모았다.

얼마나 알뜰살뜰 긁어모았냐 하면, 함포로 쏴댄 포탄까지 긁어모았을 정도.

아무리 포탄이 잡철에 가까운 물건이라지만, 그래도 철은 철이다.

강철이 나오기 시작한 조선입장에서는 가치가 떨어지는 철이지만, 다른 나라에선 이것도 아깝다고 볼 정도의 품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물건을 수백발을 넘게 쏴댔는데, 그냥 버릴 수 있나. 전부 회수하다보니 산처럼 쌓였고, 쓸만한 건 재활용하고 망가진 건 녹여서 다시 포탄으로 만들 계획이었다.

“히익!”

“헉.” “허...”

두려운 눈을 숨기지 못하고 마지못해 끌려온 마을 주민들이 기겁하던 것도 잠시.

그들 역시 조선군의 눈치를 보며 재깍 손을 놀렸다.

그들도 아침부터 하늘이 뻥뻥 찢어지는 굉음을 들었을 터, 분명 사단이 난 걸 직감하고 살펴보러 나오기 무섭게 사로잡히지 않았나.

해적들이 떼죽음을 당한 걸 두 눈으로 봤는데, 감히 대항할 생각이나 했을까. 다들 곱게 두 손을 내밀고 와서, 정리하는 걸 도왔다.

“여기입니다.”

“허...?”

“과연. 해적은 해적이군.”

전장정리가 한참인 와중. 유응부와 지휘관들은 마을 안쪽에 위치한 창고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비단, 향신료, 염료나 안료, 포목 등의 물건이 산처럼 쌓여 있었기 때문.

“이게 다 약탈한 물건이란 말이지?”

“들어보니 약탈도 하고 거래도 한 모양입니다. 이왕 이곳에서 모인 김에 필요한 물건으로 교환도 하고 말입니다.”

“음...”

해적들을 취조해 알아낸 사실을 대대장이 털어놓자, 다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해적들은 장물을 처리해 줄 상인이 뒷배로 꼭 있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 정도 덩치가 있는 상인은 보통 특정물품에 집중하는 도매상이 대부분인바. 해적들이 아무 물건이나 약탈을 해온다고 한들, 그걸 처리해서 돈으로 바꾸는 건 또 다른 문제다.

해서 해적들은 아예 이곳에서 서로 약탈품을 교환해서, 자신과 손을 잡은 상인이 다루는 품목으로 바꿔왔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 수 있으니까.

“이것만 내다팔아도, 이번 전투의 전비는 벌 수 있겠군?”

“그렇습니다. 재정부 관원들이 얼마나 쪼아댔습니까.”

“재정부뿐이겠습니까. 군수부에서도 화약을 조금 쓰라고 매번 우는 소리를 하지 않았습니까.”

“흐흐.”

“헤헤.”

야전군 입장에선 어떻게든 안전하게 승리해야 하니 압도적인 화력을 쏟아 붓기를 원하지만, 군수물자를 보급하는 재정부와 군수부가 “제발 좀 아껴 써라!”라고 외쳐대던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다들 그간 겪었던 잔소리를 떠올리며, 하나같이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창고를 정리하라고 시킨 후에, 밖으로 나오자 전장정리를 하던 중대장 한명이 얼른 다가와 보고를 늘어놨다.

“연대장님. 포로 정리가 끝났습니다.”

“몇이나 되냐?”

“사망 1321명. 경상 412명. 포로 2331명입니다.”

“아군은?”

“중상자는 없고, 경상자 84명입니다.”

“대승이옵니다!”

“흠. 좋군.”

다들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함박웃음을 머금었다.

대승도 이런 대승이 또 없다.

내통자를 통해 적 정보를 파악하고, 기습을 통해 선제공격을 했다지만... 어찌됐건 두 배가 넘는 적을 상대로, 적은 피해로 승리하지 않았나.

충분히 자랑스러워하고도 남았다.

“의외라면 의외인 건...”

“...?”

“포격을 그렇게 맹렬하게 퍼부었는데도, 생각보다 적의 사상자가 적군.”

“음...”

“그런가...”

유응부의 의견에, 다들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리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해서 알쏭달쏭했다.

화포의 힘은 분명 막강하고 위력적이지만, 화포만으로는 적을 섬멸할 수 없는 모양이다.

반나절 가깝게 포격을 쏴댔는데, 사천병력 중에서 반수 이상이 그대로 살아남았지 않나. 정신적으로 무너뜨리는 건 충분해도, 물리적으로 적을 분쇄시키는 건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같은 생각인가?”

“아무래도... 진영과 전열을 무너뜨리는 데에는 화포보다 좋은 게 없지만, 흩어진 상태에선 확실해 효과가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이미 목표를 달성한 것과 다름없지 않습니까? 포격만큼 사기를 쉽게 꺾어버릴 수 있는 건 없으니까요.”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다들 포격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의견을 고수했다.

막말로 포격 없이 생으로 근접전을 벌였다면, 머릿수가 몇 배는 부족한 조선군이 애초에 포위망을 형성하는 것도 힘들었을 것 아닌가.

수지타산을 맞춰야 군대도 유지될 수 있는 거지만, 전투의 압도적인 유리함을 위해서는 화포가 필수적이다.

“총통은 어떤가?”

“음...”

유응부의 말에 대대장들 모두 잠시 고민에 잠겼다.

이번 전투에 총통이 동원된 건, 야전화포를 사용할 수 없어서 궁여지책으로 활용한 것과 공세적 작전에 있어서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그간 총통을 제대로 활용한 적이 없었고, 대만원주민을 상대로 써먹었다지만 그건 화약무기를 처음 본 원주민들을 정신적으로 타격주기 위함이었다.

그간 올라온 전투보고서를 봐도, 총통에 맞아죽은 산악부족민보다 화살과 창칼에 맞아죽은 적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해적들은 겪어보진 않았어도 화약무기에 대해서 얼추 알고 있었을 테니, 원주민과는 또 다른 반응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던 거지.

그리고 이렇게 열심히 강평을 하고 전투보고서를 작성해야, 앞으로 조선군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되는지 계획할 수 있는 자료가 되지 않겠나.

다들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애매합니다. 아무리 총통중대로 활용한다고 해도, 야전화포의 위력에 비하면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사정거리가 너무 짧고, 재장전시간이 길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맞습니다.”

부정적인 의견이 먼저 나왔다.

전장을 정리하면서 살펴본바. 적을 돈좌시킬만한 저지력이 있는 건 분명하지만, 만약 총통에 익숙한 적이거나 기병과 같이 기동력이 빠른 부대를 상대로는 위험한 측면이 있었다.

게다가 살상력 또한 생각보다 낮았다.

애초에 산탄에 가까운 물건이라서 사정거리가 짧다보니, 조금만 멀어도 제대로 타격을 주기가 힘들었다.

총통중대는 전장정리를 하면서 전투복기도 함께 했는데, 콩알만한 쇠구슬에 맞아 죽은 적은 한눈에 봐도 티가 나지 않나.

그렇게 확인해본 결과. 대다수는 총통보다는 화살과 창에 죽은 이들이었다.

“화포와 같은 약점이니, 운용하는 것 또한 사실상 보병대보다는 화기대처럼 운용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소모되는 화약을 보자면 확실히 야전화포에 비해 적게 들어가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많이 먹는 것도 사실입니다.”

“음...”

지금의 총통은 생각보다 구경이 커서, 미래의 조총과 비교하면 몇 배나 많은 화약을 필요로 했다.

게다가 총통은 중대로 운용되어야 하니, 소모하는 화약양을 화기대의 화포와 비교할 수밖에 없는데... 이걸 생각하면 또 화포와 총통의 위력을 비교하는 꼴이 될 수밖에 없다.

“총통중대 다수로 편제해서 단독병과로 운용하는 건 어떤가?”

“절대 불가합니다.”

“적을 돈좌시킬 위력은 분명히 있지만, 창병대의 호위가 없으면 2파, 3파 돌격을 막아낼 수 없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이번 전투에서 총통중대가 1파를 돈좌시키는 동안에도 궁병대가 뒤따르던 2,3파를 견제해서 적들의 돌파를 무너뜨리지 않았습니까. 미약한 사거리로는 전열 전체를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유응부의 물음에 다들 한마디씩 곁들였다.

표면적으로 보면 전열은 선과 선으로 맞부딪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앞에 선 창병대와 총통중대 뒤에선 궁병대가 끊임없이 화살을 쏘고 있었다.

그래서 적들이 쉽게 다가오지 못했던 거고. 그렇게 제대와 제대간의 거리가 멀어져서 돌파속도가 중구난방이 되자, 전열이 헝클어져서 조선군이 포위진영을 만들 시간을 벌 수 있었던 거지.

“모든 중대를 총통중대로 바꾸는 건 무리다는 말이군.”

“절대 무리입니다. 적의 공세를 코앞에서 무너뜨릴 강력한 저지력을 가진 건 분명하지만, 그걸 활용하기 위해선 창병대와 궁병대와 함께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흠.”

“굳이 총통중대를 계속 활용하려면 그 수밖에 없을 겁니다.”

총통보다 발달된 머스킷으로 구성된 유럽군조차, 창병과 연계한 테르시오 전법을 만들지 않았나. 총통중대만 활용하는 건 한참 시기상조다.

“기병일 경우에, 총통중대는 사실상 없다고 봐야할 겁니다.”

누군가의 말에 다들 머뭇거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땅 위에 발을 딛고 쏴도 조준이 형편없는데, 말 위에서 쏘면 제대로 맞기나 하겠나.

게다가 도화선을 불을 붙여놓고 알아서 발사되기를 기다리는 방식이라서, 필연적으로 멈춰서 조준할 수밖에 없는 바.

이건 기동하면서 활을 쏠 수 있는 궁기병의 이점을 스스로 버리는 꼴이다.

“하지만 화포에 비해 좋은 점도 있지 않습니까. 일단 가벼워서 기동이 편하지요.”

“게다가 화포는 재장전시간도 길뿐더러, 근거리에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공세적 작전에 있어서는 조금 애매하지만, 방어를 할 때. 특히나 전함에서 적을 상대할 때는 총통이 꽤 쓸만할 겁니다.”

부정적인 의견이 지나가자 긍정적인 의견이 뒤를 이었다.

“전함에서 사용한다라...”

“그렇습니다.”

유응부는 자기도 모르게 마지막 의견을 되새겼다.

조선군이야 함대전을 근거리 포격전으로 상정하고 훈련하지만, 다른 모든 나라는 일단 달라붙어서 선상백병전으로 이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그렇기에 선체가 높은 신형전함이 앞도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지 않나. 헌데 여기에 총통이 합쳐지면 더 막강한 방어력을 보일지도 모르겠다.

“전함은 사실상 작은 성이나 마찬가지고, 적들은 동원할 수 있는 병력에 한계가 있으니... 교전구역과 병력 숫자 또한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적들이 아군전함을 상대하려면 필연적으로 사다리나 그물사다리를 통해 올라타야 하고, 그래서 해군병들이 창술을 익히지 않았습니까. 근거리에서 화포를 사용하기 애매할 때에는, 총통이 훌륭한 대체제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일 리가 있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군.”

대대장의 의견에 지휘관들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함대전은 육지처럼 모든 병력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쉽게 지원을 올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무리 사방에서 포위하고 달라붙는다고 한들, 배라는 물건에 타고 있는 이상 축차공격에도 시간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거지.

적함에는 탑승할 수 있는 병력에 한계가 있고, 그런 병력을 일시적으로 무력화 시킬 때는 총통의 일제사격이 충분히 효과를 발휘하지 않을까.

어차피 창칼을 맞대고 싸울 정도로 바짝 달라붙을 테니, 사정거리를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거고.

“그런 면에서는 함포보다 나을 지도 모릅니다. 함포는 아예 적함을 부셔버릴 위력이 있으니, 포위를 당한 경우에는 적이 달라붙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총통을 사용하면 배는 남겨두고 적들만 사상시킬 수 있는 효과가 있을 지도 모릅니다.”

“원거리에서는 함포를, 근거리에서는 총통을 쓴다. 이거군?”

“예.”

“그럴 바에는 차라리 그냥 근거리용 함포를 쓰는 게 낫지 않나? 안 그래도 함포의 위력이 너무 세서 적함에 쓰기 애매하다는 말도 있지 않나.”

“음...”

다시금 다들 머리를 싸매고 궁리에 들어갔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화포에 비해 배가 너무 약해서, 철환을 쏘면 아예 선체를 뚫고 지나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서 적함을 부술 때는 철환보다 장군전을 쓰는 게 낫다는 판단이 내려졌고.

원래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항해시대가 열리고 화포는 계속 발전해 가는데, 나무로 만든 배는 방어력에 있어서 한계가 있기 마련.

해서 나중에는 포신의 길이를 줄이고 구경은 크게 하여 가볍게 만든 카로네이드 포. 이른바 산탄대포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은 캐논포를 달고 다니지 않았나.

“그래도 함포는 함포의 역할이 있으니, 그렇게 전부 바꾸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맞는 말이야. 당장 우리도 함포 포격의 지원을 받지 않았나? 역할을 하나로 묶는 건 곤란할 지도 모르지.”

“그것도 그렇긴 한데...”

“다만 근접전용 함포에 대해서 논의해보는 건 나쁘지 않겠군. 어차피 지금도 함포에 조란탄을 쓰는 건 흔하니까 말이야.”

“그것도 그렇고, 배에 고정시켜서 쓰는 함포와 연대병이 개별 운용하는 총통은 쓰임새가 또 다르지 않겠습니까? 전부 대체하는 건 무리라고 사료됩니다.”

“맞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두서없이 흘러나왔고, 유응부를 비롯한 지휘관들은 열심히 작은 공책 위에 연필을 휘날리며 의견을 적어나갔다.

쓸데없는 의견일 수도 있지만... 꼼꼼히 많이 적어서 다시 한 번 정리하다보면, 뭐라도 쓸만한 의견이 하나쯤 걸리지 않겠는가.

판단은 이들이 하는 게 아니라 조정과 군부에서 할 테니, 일단 많은 의견을 적어 올리는 건 나쁠 게 없었다.

그렇게 지휘관들이 전투보고서를 적느라 날밤을 세는 동안에도, 전장정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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