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360화 (360/538)

360. 챕터49. 성장하다 (2)

조선에 기업이 등장하면서 분업화는 일상이 되지 않았나.

돈의 가치를 인정한 순간. 더 효율적으로 돈을 벌기 위한 경쟁이 시작됐고, 당연히 분업화는 조정이 강제하지 않아도 기업집안이 알아서 실시하는 제도이자 방법이 되었다.

지금 보는 것처럼, 제재기업은 나무만 벌목하는 인부 따로, 잔가지를 치는 인부 따로, 나무를 공장으로 옮기는 인부 따로, 나무를 토막 내는 인부 따로, 대패질을 하는 인부 따로 등등.

모든 파트를 세분화시켜서, 단시간에 숙련공을 만드는 방법을 취하고 있었다.

잔가지 치는 게 뭔 기술이냐 할지도 모르지만... 몸을 다치지 않고, 최대한 나무를 많이 살리면서, 들이는 힘과 시간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면 그게 다 기술 아닌가.

“저렇게 나눠진 분야를 전부 섭렵하면 진짜 장인이 되는 거죠.”

“얼마나 걸리냐?”

“글쎄요. 바닥에서 시작하면 못해도 5년은 걸리지 않을까요?”

이순지는 조심스럽게 옛 경험을 떠올리며 답을 했다.

그는 만주땅에서 여진인이 중심이 된 신도시 기업을 키우는 걸 직접 관리감독하지 않았나.

여진인이나 대만원주민이나 크게 다를 게 없으니, 비슷할 거라고 봤다.

“5년이라... 빠른 건가?”

“예전에 비하면 엄청 빠른 거죠. 말이 도제식이지 온갖 잡일을 시키면서 비기를 늦게 가르쳐 주는 장인이 허다했잖아요?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죠.”

“하긴.”

자신만만해 하는 이순지를 보며, 연오랑 또한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 배우러 온 이들을 노비처럼 부려먹는 건, 나라를 불문하고 상식으로 통하는 시대였지 않나. 그걸 깨부순 것만으로도 엄청난 업적을 이룩한 거다.

제재기업을 살펴본 후에는 연기가 잔뜩 피어오르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안 그래도 더운 날씨인데, 멀리 떨어져 있어도 찜통 안에 들어온 것 같은 후끈한 기운이 밀려온다.

‘여긴 잘 돌아가는군. 흙이 괜찮은가 보네.’

“자기기업도 잘 돌아가는군.”

“예. 정작 자기는 못 만들고 있지만요.”

“그렇겠지.”

셋은 여기서도 물끄러미 서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인부들을 구경했다.

자기기업은 말 그대로 흙으로 구워서 만드는 모든 물건을 제작하는 곳. 그렇다보니 정작 도자기나 식기류는 못 만들고, 벽돌, 판석, 기와만 주구장창 만들고 있었다.

“여러 형태로 만드는 군. 색도 나름 다양하고?”

“아무래도 흙이 다른 것도 있고, 강남에서 넘어온 유약을 이용해서 이것저것 만들어보고 있습니다. 색이 달라도 어차피 다 똑같은 기와잖아요?”

“음.”

강남의 모든 걸 흡수하고 있으니, 중국식 건축물에 사용되는 원료와 기술도 흡수하는 건 당연한 말.

유약도 나름 발전을 하고 있었는데, 그걸 시험하고 있는 모양이다.

다만 색은 그렇게 다르더라도, 그 크기만큼은 전부 동일했다.

분업화를 하면서 흙을 채취하는 장인 따로, 흙을 개는 장인 따로, 틀을 찍어내는 장인을 구분하지 않았나.

어차피 매일 같이 틀에 찍어낼 거면, 그 틀조차 다 똑같이 만들어서 효율을 높이는 게 효과적이지. 빈틈없이 가마가 꽉꽉 차도록, 테트리스를 하듯 잘 채워 넣는 게 이득이니까.

기계처럼 움직이면서 자연스럽게 숙련도 또한 무섭도록 상승해서, 완제품이 나오는 속도도 빨라졌다.

다만 특이한 벽돌이 눈에 띄었다. 사실 벽돌이 아니라 무슨 바윗돌만한 물건이다.

“저건?”

“주춧돌처럼 쓸 물건입니다. 부두 만들 때 쓰고 있죠.”

“오...”

이순지는 자랑스럽게 답을 했고, 둘 모두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저건 그간 못보던 물건인데, 석회부두를 만들어 보면서 새롭게 개발한 공법인가 보다.

‘하긴 바윗돌 구해 와서 파묻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니까. 차라리 벽돌 형태로 찍어내는 게 더 편할지도 모르겠군.’

“맞냐?”

연오랑은 그리 생각하며 되물었고, 이순지는 냉큼 동의를 표했다.

“예. 개간하면서 나오는 바윗돌이 많이 있긴 한데, 부족한 면이 없지 않아 있죠. 게다가 크기도 중구난방이라서 결국 또 쪼개서 쓰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그럴 바엔 크기가 일정한 저 벽돌을 중앙에 까는 게 더 편해서 말입니다.”

“흐응.”

부두는 가옥의 주춧돌만큼 무거운 무게를 지탱하는 게 아니지 않나.

저렇게 만든 벽돌을 중심으로 바윗돌을 양쪽으로 쌓고 그 안에 흙과 모래를 채워 넣어 석재부두를 고정시키고, 그 위에 삼물회를 부어 완전히 일체화 시키는 모양이다.

“다행히 석회는 충분한가봐?”

“예. 객가인들이 이곳을 비롯해서 산맥 근처에 살지 않았습니까. 그치들이 석회에 대해 잘 알아서 도움이 많이 됐죠. 석탄광산도 있고요.”

“음.”

‘역시 양은 많지 않아도, 대만섬도 이것저것 광물자원이 많이 있는 건 맞나보네.’

석탄은 당연한 거고, 심지어 조선에서도 찾기 힘든 유연탄 광산까지 있어서 제철소를 만들 수 있을 정도였다.

사족이지만, 팽호제도에서 해적들을 때려잡고 얻은 날붙이들은 전부 제철소의 화로에 들어가서 농기구로 탈바꿈했다.

“객가인 말이 나와서 말인데, 그들이 생각보다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엉?”

이순지의 뜬금없는 말에 연오랑은 괴상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들이 왜?”

“객가인의 습성을 깨부수기 위해서, 저희가 잔뜩 쪼개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대만섬 원주민 중에서 가장 정체성이 강한 부류를 꼽으라면, 당연히 토루에 모여 사는 객가인 아니겠나.

이들을 그냥 놔두면 또 지들끼리 세력을 모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어떤 부족마을보다도 철저하게 가족단위로 찢어서 흩뿌렸다.

“그렇게 홀로 살아야 하니 앞길이 막막했는지 붕 뜨는 모습을 보이곤 했는데, 어쩌다보니 자기기업이나 건설기업으로 흡수된 이들이 상당합니다.”

“그게 상관관계가 있나?”

“그치들은 토루를 만들어서 살았잖아요? 나름 쓸만한 건축기술과 벽돌 다루는 기술을 알아서, 저희가 쏠쏠하게 뽑아먹고 있습니다.”

“아... 그게 그렇게 되는군.”

“하긴.”

실실 웃으며 말하는 이순지를 보며 이제야 이해가 됐다는 듯, 연오랑과 정인지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하긴 토루는 따지고 보면 연립주택이나 마찬가지니까.’

토루는 아무리 못해도 3층이 넘어가고, 그 안에 수백명이 거주하는 공동건물 아닌가.

자기 집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튼튼하게 지을 수밖에 없을 테니, 그들만의 건축기술과 재료가공기술을 가지고 있을 거다.

시선을 돌려 다른 곳을 살피자, 한쪽에선 거무튀튀한 판석을 조심스럽게 수레마차에 싣고 있는 이들이 보였다.

“염전에서 쓸 판석이군? 이곳에서 만드나 보지?”

“여기뿐만 아니라, 다른 자기기업 모두에서 만들고 있습니다. 보셔서 아시죠? 여기 터가 꽤 좋더라고요.”

“어. 안다.”

이순지는 흰 눈밭처럼 변한 소금밭을 머릿속에 그렸는지, 싱글벙글 웃으며 물었다.

남중주. 미래의 타이난 해안은 염전으로 유명한 곳 아닌가.

지금 시대에도 지형은 크게 변하지 않아서, 연오랑이 굳이 언급하지 않았어도 택리부 관원이 먼저 알아차렸다.

대만섬이 비록 비가 자주 내리긴 하지만 유독 강수량이 적은 지역이 있기 마련이고, 바닷물을 말릴 때는 강수문제 보단 증발을 도와줄 기온과 바람의 영향을 더 크게 받지 않나.

그렇다보니 천혜의 염전밭 지대는 딱히 달라지지 않아서, 자기기업이 만들어지기 무섭게 검은색 판석부터 구워댔지.

“염전은 잘 만들어지고 있나 보군?”

“당연하죠. 소금이라면 환장할 사람이 어디 한둘입니까. 원주민이나 이주민도 사정은 다르지 않더군요.”

“음... 게다가 지금 추세로 봐선, 남주도에서 쓸 양 말고도 팔아넘겨도 부족하지 않을 양이 나오겠군?”

“당연히 그렇게 만들어야죠.”

이순지는 지체 없이 답을 이어갔다.

소금도 쌀가마 못지않게 부피와 무게를 많이 차지하는 터라, 아무리 적게 먹는다고 해도 본토에서 전부 가져오는 건 비효율의 극치다.

나아가 여기서 만들어 낼 수만 있다면, 남방의 소금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

대월, 참파는 물론 동남아시아의 소국들도 소금이라면 환장을 할 테니까.

“절강 염상이나 광주 염상과 부딪칠 일이 있을까?”

“에이. 그치들은 남방에 신경도 못 쓸 겁니다.”

“...?”

혹시나 하는 의문을 혼잣말로 던져봤지만, 이순지가 냉큼 고개를 내저었다.

“절강과 남직례의 염상은 중국내륙시장을 장악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없을 거고, 광주 염상은 오히려 우리 소금을 사가려고 할 걸요? 그치들이 아무리 기를 써봐야,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염전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안 되죠.”

“흐음...”

‘음... 소수민족 때문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광주에선 자연적으로 형성된 지형을 이용해서 천일염 비슷한 소금을 만들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자염방식이 주다.

광주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남중주의 염전 또한 엄청난 크기를 자랑할 테니... 미래의 생산량과 생산비용을 짐작해 보건데, 비교하면 곤란할 수준.

나아가 소금이 부족한 건 광주뿐만 아니라, 소수민족이 차지하고 있는 광서와 광동도 마찬가지.

오히려 광주상인은 남중주의 소금을 사서, 소수민족에게 팔아먹으며 그들의 약탈을 자제시키고 길들이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을까?

체급에서 상대가 안 되는데, 조선과 남방소금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건. 알아서 죽겠다는 거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여길 놓고 조금 시끄러워질 수도 있겠군. 아닌가? 별 일 없으려나?’

문제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튀어나올지도 모르겠다.

염전기업은 조정의 관리를 받기 때문에 아무나 소유할 수 없는 바.

일단은 염전을 만들어서 관의 소유로 놓아두고, 본토에서 염전을 구입할 유력가문이 이주해 와야 주인이 정해질 건데... 누가 될지 모르겠다.

‘어쩌면 왕족 중에서 올 지도 모르겠네.’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뭔 상관이랴.

주인이 누가 되든 말든, 소금이 나오고 그걸 팔아서 조선의 영향력을 강하게 만들면 좋은 거지.

자기기업까지 살펴보고 난 후 계속 걸음을 옮기자, 부산스러운 거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고 작은 수레마차에 실린 자재는 전부 남중주의 집을 짓는 데 사용되는 건축자재들.

하나같이 죄다 동일한 규격을 가지고 만들어진 터라, 척하면 척. 모르는 사람이 봐도 “저건 기둥이겠구나.” “저건 판석이겠구나.” “저건 벽채벽돌이구나.”라고 바로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자재만 그럴까. 그 자재를 이용해서 만든 거리답게, 모든 건물이 죄다 똑같은 형태에 똑같은 크기를 자랑했다.

복사 붙여넣기를 한 것 마냥 상가는 물론 창고까지도 다 똑같이 생겨서, 처음 오는 사람이라면 어디가 어딘지 찾기도 힘들 것 같다.

“여기도 비슷하군.”

“흐흐. 그렇죠?”

“그래. 잘했다.”

연오랑의 말은 핀잔인지 칭찬인지 헷갈렸지만, 이순지는 칭찬으로 알아들었나 보다.

‘하긴... 이런 몰개성한 모습이 나쁠 건 없잖아? 오히려 지금까지가 너무 제멋대로였지.’

그는 수레마차가 오가는 거리를 보며 조용히 생각을 가다듬었다.

조선. 아니다. 나라를 불문하고 이 시대에 정확한 설계도에 입각해 정교하게 지어지는 건물이 몇이나 되겠나.

물론 성곽이나 다리를 건설할 때는 정교하게 지어야 맞겠지만, 일반 가옥을 지을 때는 그렇게 까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건축을 총괄하는 우두머리인 대목장의 실력이 중요했던 것. 그가 눈짐작과 경험으로 그때그때 때려 맞춰서 건물을 짓다보니, 같은 한옥이라도 그 형태와 크기가 제각각일 수밖에.

허나 지금은 효율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최대한 빠르게 건물을 지어야 하는데, 장인정신이 웬 말인가.

다 똑같은 공산품처럼 빠르게 찍어내는 게 우선이니, 당연히 원자재를 가공할 때부터 죄다 똑같은 크기와 모양으로 만들어 버린 거지.

‘나름 조립식, 어쩌면 모듈형 가옥일지도 모르겠네.’

나아가 효율도 효율이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원주민이든 한족이주민이든 이들은 조선에 대해 알지 못하는데, 모든 걸 조선식으로 강요받고 있다. 지금까진 당근과 채찍을 함께 부리며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었고, 꽤 잘 먹히고 있는 상황.

이러는 까닭은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동질성을 심어주기 위함인데,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다 똑같은 가옥은 일체감을 형성해 주지 않겠나.

집이라는 건 누가 봐도 바로 알아볼 수 있는 일차원적인 물건이니, “원주민과 본토조선인을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대한다.”는 눈에 보이는 상징이 될 수 있는 거지.

“저쪽 뒤로 가보자. 일반 가옥을 보고 싶군.”

“예. 이쪽으로.”

이순지는 자신이 설계한 도시답게, 앞장서서 시장거리 뒤쪽에 자리 잡은 주거지역으로 걸음을 옮겼다.

‘흠... 여기도 똑같네.’

눈앞에 펼쳐진 건, 조선본토에서 지겹도록 본 한옥집들.

머리만 삐죽 튀어나올 정도의 낮은 토담 너머로 솟아 있는 2층 한옥이 눈을 사로잡았다.

여긴 난방걱정을 할 필요가 없으니 집을 높이 올려도 되지만, 일반 가정집을 3층 이상으로 높일 필요가 없지 않나.

그런 건 시장거리의 상가건물만 그렇게 지으면 그만이다.

ㄴ자 형태로 두동으로 나눠진 기와집인데, 방은 꽤 여러 개가 있어 보였다.

가옥 옆에는 지붕만 깔린 창고 비슷한 게 있었는데, 그건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마구간이다.

남주도에서도 말박이의 나라를 꿈꾸는 의지는 이어졌고, 계속해서 본토에서 말을 가져와 이곳에 풀고 있다.

빠른 시일 내에, 집집마다 말이나 소를 키우는 날이 찾아오지 않을까.

‘화장실도 잘 만들었네.’

마구간 반대쪽에는 우두커니 홀로 떨어져 나온 화장실이 서 있었다.

원주민들은 전염병 소문에 질겁해 잔뜩 겁을 집어먹는데, 그걸 조선이 간단한 방법으로 해결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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