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3. 챕터49. 성장하다 (5)
허나 마냥 헛소리만도 아닌 게, 이 시대 사람들도 애벌레가 날개달린 벌레로 변태하는 걸 모르는 건 아니었다.
간단한 예시로. 누에고치를 풀어 비단실을 만드는데, 그 누에고치가 누에나방으로 변하지 않나.
“그러니 별 수 있냐. 날아다니는 모기를 잡는 것보다 물에 사는 모기새끼를 잡는 게 더 쉬우니까 고인 물웅덩이를 없애라는 거지.”
“그게 농수로를 파서 물을 흐르게 하려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겁니까?”
“물론이지.”
무게도 안 느껴질 정도로 가벼운 모기유충이니, 물의 흐름에 쓸려 움직이는 건 당연한 말.
수로를 점검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괜히 아직 다 완성되지도 않은 수로를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물을 순환시키는 게 아니었다.
“그 논리라면, 이미 만들어 놓은 저수지에 민물고기를 풀어놓으려는 것도 마찬가지겠군요. 민물고기가 모기 물벌레를 잡아먹을 테니까요?”
“어.”
이순지 또한 뭔가 감을 잡았는지 의견을 덧붙였다.
논에 물을 대기 위해선 당연히 저수지가 필요하고, 지금도 크고 작은 저수지를 강 근처에 무수히 만들고 있었다.
또한 원주민들도 강에 가서 민물고기를 잡는 게 일상이었으니, 저수지에 민물고기를 풀어놓으면 그게 곧 낚시터가 되는 꼴 아닌가.
헌데 그게 끝이 아니라, 다른 의도도 숨겨져 있던 모양이다.
“이해했냐?”
“예.”
“헛짓거리로 보인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어차피 전부 개간을 해야 할 땅 아니냐? 미리미리 정리한다고 생각하면 편할 거다. 너흰 그래도 여기서 삽질하고 있지만, 다른 연대는 숲을 해치고 다니면서 습지와 물웅덩이를 제거하고 있어.”
“예...”
또 저렇게 비교를 해버리면 중대장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괜히 타박만 더 들을까봐 냉큼 고개를 숙였다.
“가서 부하들에게 잘 알려줘라. 뭐... 제대로 안했다가 학질에 걸리면 니들이 고생이지 내가 고생이냐. 남주도의 학질은 본토보다 훨씬 독해서, 아무리 개똥쑥을 물처럼 퍼먹어도 고생하는 건 피할 수 없을 거다.”
“...”
무시무시한 말에 다들 얼굴에 해쓱해지고 말았다.
연오랑은 대만섬에 진출할 때부터 학질(말라리아)를 극도로 경계하며 치료약인 개똥쑥과 항생제 대용으로 쓰이는 각종 약재를 구비해 왔다.
나아가 조선에서 쓰이는 방충향과 중국강남과 원주민이 쓰는 방충향까지 찾아서 더 나은 방충향을 만들고 있다.
육군 주둔지는 눈에 보일 정도로 향냄새로 가득 찰 지경이었지.
그럼에도 말라리아에 걸리는 사람이 나왔다. 이건 전염병이 아닌 터라 어떻게 막을 수도 없지 않나.
그 환자들이 죽을 고생을 하는 걸, 연대병은 물론이고 원주민들 또한 눈으로 똑똑히 봤기 때문에... 연오랑의 엄포가 마냥 겁을 주려고 하는 소리는 아니었던 거지.
“그나마 약이 있어서 버틴 거지, 없었으면 진짜 죽었을 정도로 남주도의 학질은 독해. 귀찮다고 생각하지 마라.”
“알겠습니다.”
다시금 단단히 엄포를 놓자, 중대장은 얼굴을 잔뜩 굳히고선 답을 하고 말았다.
휙휙 손을 내저어 중대장을 보내자 그는 죽다 살아났다는 듯이 냉큼 몸을 날렸고, 일행은 계속해서 걸음을 이어갔다.
“그런데 어르신.”
“엉?”
“그런 이치라면 수전도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맞아. 그래서 애매해.”
정인지의 날카로운 질문에, 연오랑은 답답한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고인물이 문제인데, 그 고인물의 대표적인 게 바로 논 아닌가.
아무리 논의 물을 갈아준다고 해도 매일같이 갈아주는 건 아니니, 재수 없으면 모기가 창궐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 거지.
그렇다고 논을 포기한다? 이건 애초에 선택사항이 아니다.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는데, 솔직히 명확한 해법을 모르겠더라고. 어쩌겠냐. 그냥 버텨야지. 그래도 사람 손이 닿는 논은 오래 버려진 습지나 물웅덩이보단 낫고, 귀찮더라도 안하는 것보단 하는 게 나으니까.”
연오랑은 답답한 마음에 그냥 투덜거리고 말았다.
미래에 흔히 말하는 친환경농법. 예컨대 오리농법, 미꾸라지농법, 우렁이농법 등이 있지만... 그것도 막상 하려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일이 허다하다.
나아가 원주민들은 제대로 된 수전재배를 몰라서 조선농부들이 알려주고 있는 판국인데, 조선농부들도 어색한 유기농법을 접목하면 농사가 제대로 되기나 하겠나.
‘이 시대엔 화학비료가 없어서 어차피 죄다 친환경인데, 이게 다 뭔 필요가 있겠어. 모기유충을 잡는 데 효과가 없다곤 할 수 없겠지만, 애초에 목적자체가 다르잖아.’
“지금 당장은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고, 이런저런 농법을 시험해 보면서 지켜봐야겠지. 본토에서도 열심히 연구하고 있으니, 하다보면 뭐라도 하나 걸리지 않겠냐.”
“예. 그러길 빌어야겠네요.”
“모기라... 답도 없네요.”
결론은 이렇게 허무하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사실 논과 관련해선, 모기가 아니라 다른 게 더 큰 문제인데 말이야.’
논 이야기가 나와서 일까? 연오랑은 문뜩 다른 걸 물었다.
“그보다. 개간하고 있는 논에 정자랑 화장실은 잘 만들고 있냐? 그것도 쓸데없는 짓 한다고 불만이 있을 것 같은데?”
“... 아니라고는 말을 못하겠지만, 그래도 억지로라도 만들곤 있습니다.”
“원주민들은 잘 따르고?”
“어차피 만들었는데 써먹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연대병과 이주한 조선인들이 앞장서서 독려하고 있습니다. 오물수거기업이 만들어졌으니, 그게 다 돈이 된다고 열심히 바람을 넣고 있죠.”
“음...”
연오랑은 이순지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논의 진짜 문제는 수인성 전염병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밭일 하러 온 농부들이 똥을 가려가면서 싸는 건 아니지 않나. 길 지나가는 행인들도 마찬가지고.
물이 고여 있고 또 물이 흐르는 농수로는, 똥 싸기에 딱 적합한 곳이고 뒤처리를 하기도 편하지 않나.
그렇게 대충 아무데나 싸고, 제대로 안 씻은 손으로 일을 하고, 또 밥을 먹고 그러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병원균이나 바이러스에 걸리게 되는 거지.
원래 역사에서도 이앙법의 전파에 맞춰 수인성 전염병의 발병 빈도가 증가했고, 특히나 모내기철이나 추수 때와 같이 사람들이 잔치라도 벌이는 날에는 그런 경우가 더욱 빈번했다.
연오랑은 이걸 알고 양전사업을 진행하면서 백성들의 의식구조를 바꾸려고 했지만, 말처럼 쉽게 됐겠는가.
이질이나 염병染病(장티푸스)과 같은 전염병에 걸려서 개고생을 했던 게 여러번 있었고, 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조선관원들이 대만섬에서 이질이 창궐했을 때에 나름 재빠르게 방역조치를 취할 수 있었던 거지.
그나마 이걸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공중화장실을 만들어서, 가급적 논과 오물을 분리하고 손을 열심히 씻을 수 있도록 편의를 봐주는 것.
그래서 논 곳곳에 정자와 화장실을 만들어놓은 거다.
뭐... 그렇게 모인 오물의 양도 적은 게 아니라서, 오물수거기업이 꽤 짭짤하게 챙겨가긴 했지만 말이다.
“그게 다 쓸데없는 짓이 아니라는 걸, 빨리 납득해야 하는 데 말이야.”
“그렇다고 본토에서처럼 역병이 휩쓸고 지나가기를 바랄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뭐든 처음이 귀찮고 낯선 법이니, 쓰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익숙해질 겁니다.”
“역병이 또 터지고 수습하면, 저희의 방침이 옳았다는 걸 증명하는 꼴이지만... 그게 마냥 좋은 건 아니겠죠. 빠르게 정착하는 데 장애물이 될 수도 있고요.”
“맞아. 그러니 꾸준히 감시하고 교육해야겠지.”
“...”
결국 일거리는 늘어날 거라는 말에, 둘은 자기도 모르게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차밭을 비롯해서 개간하고 있는 논과 과수원 부지를 살펴본 후엔, 다시 수참마을로 발길을 돌렸다.
돌아본 거리가 꽤 되기 때문에 마을을 따로 분리해서 만들어도 충분하지만, 그래서야 관리가 되겠는가.
조선화 집체교육을 시키기 위해서라도 한자리에 뭉쳐 있는 게 낫고, 이렇게 먼 거리를 출퇴근 하다보면 원주민들에게 낯선 말과 마차에도 익숙해지지 않겠나.
해서 한참을 빙 돌아오자, 공업도시 반대편 주거지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건, 죄다 똑같은 건물 틈 사이에서 유독 허허벌판으로 남겨놓은 대지다.
‘운동장이군.’
재빨리 파악하고 냉큼 발을 옮겨 향교로 향했고, 소리도 없이 조용히 담벼락 안으로 들어가 향교를 구경했다.
운동장 한편에는 조랑말을 번갈아가며 타면서 꺅꺅거리는 애들이 뭉텅이로 뭉쳐 있었고, 또 다른 한쪽에선 나무막대기를 들고 춤을 추면서 우다다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승마하고 무기술 교육인가?’
그는 보모나 다름없는 무사부의 고충이 절로 느껴지는 듯해서, 슬쩍 미소를 머금었다.
“귀찮게 하지 말고 멀리서 보자.”
“예.”
괜히 갔다가 부산스러워지면 귀찮을 것 같아 그리 말하자, 모두는 냉큼 망원경을 들고 향교를 살폈다.
운동장 옆에는 아직 완공하지 못한 가건물 교실이 있었는데, 꼬맹이들이 땅바닥에 앉아 모래통 위에 나뭇가지로 글씨를 쓰고 있는 게 보였다.
“글을 읽히나 보군.”
“예. 저건 예전부터 하던 거라서 큰 문제는 없습니다.”
정인지는 교육을 담당하러 대만섬에 온 터라, 묻기 무섭게 답변이 흘러나왔다.
화선지나 붓, 하다못해 혼합지나 연필을 쓸 법도 하지만... 가르쳐야 할 사람이나 조정관원이 어디 한둘인가.
미안한 말이지만, 애들에게 나눠줄 정도로 많이 생산되는 게 아니었다.
“진도는 어때?”
“북방에서와 크게 다를 건 없죠.”
“이곳엔 한족 출신이 꽤 있는데도 그러냐?”
“한어를 쓰는 한족이라고 해도, 능수능란하게 한자를 쓰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 정도 학식을 쌓을 정도면, 이 먼 곳까지 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것도 그렇군.”
연오랑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한자는 더럽게 어려운 글자가 맞고, 조선백성이나 중국백성이나 문맹률이 떨어지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한족은 한어를 쓰지만, 정작 한자를 읽거나 쓰지 못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래도 얼추 아는 게 있긴 할 테니, 어른들은 조금 사정이 다르겠군.”
“그렇긴 한데... 엄청나게 차이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아는 게 많아서 더 어려워하는 부분도 있고요.”
뭔가 모순되는 말 같지만 충분히 이해가 됐다.
외국어를 애들보다 어른이 더 배우기 힘들어 하는 경향도 분명히 있으니까.
‘그래도... 큰 문제는 없겠어.’
미래에는 전반적으로 교육수준이 높고, 사회가 발전하면서 새로운 용어가 엄청나게 불어났지만... 이 시대엔 고급어휘를 쓰려면 무조건 책을 읽어야 했다.
당연히 한자를 많이 모르는 일반백성들이 쓰는 어휘와 단어라는 건 한정될 수밖에 없어서, 일상회화와 단어를 암기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다.
“뭘 교과서로 쓰고 있는 거냐?”
“노동요하고 잡설. 용비어천가 등을 배우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딱딱한 번역고서보단 가벼운 게 더 낫더군요.”
“당연히 그러겠지.”
미래에도 재미없는 원서로 공부하는 것보다는 노래와 소설을 통해 공부하는 게 흥미가 돋지 않나.
북방귀화인들처럼, 원주민 훈련병이 괜히 군가를 가장 먼저 배우는 게 아니다.
“흐음...”
원래 역사라면 유렵에선 인쇄기의 발달로 인해 출판시장이 확대되고, 아무나 책을 찍어내기 시작하면서 문학은 물론이고 사회전반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 나갔다.
서로간의 생각과 사상을 개별적으로 찍어낸 책들이 여러 사람에게 두루 익혀지면서, 전에는 교류하지 않았던 이들이 엮여 거대한 의식의 집합이 교차하게 되는 거지.
라틴어로 쓰인 성경을 일상 언어로 바꿔 인쇄기로 찍어내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해석이 등장해 종교개혁의 물꼬를 트지 않았나.
허나 조선에선 거기까지 가지 못했고,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했다.
‘출판시장이 엄청나게 커지진 않았고, 조정에서 찍어내는 여러 책들이 관원들에게는 배포되고 있는 정도니까...’
금속활자를 이용한 인쇄기는 진작 만들어져 쓰이고 있지만 민간시장으로 퍼지지 않았고, 애초에 조정에선 그럴 생각도 여유도 없었다.
수많은 고서를 훈민정음으로 바꿔서 책을 찍는 것도 바쁘고, 기존에 없던 온갖 신학문 저서를 찍어내는 것도 바쁘다.
그렇다고 민간에 맡기자니, 그들이 어떤 불온서적을 찍어낼지 모르지 않나. 나아가 서책의 수출조차 하지 않는 터라, 출판이 딱히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일부러 막은 거긴 하지만 잘못된 선택은 아냐. 아직은 먹고사는 걸 해결하는 게 더 중요하니까.’
출판시장의 개방은 분명 혁명과 같은 영향을 끼치게 될 텐데, 안 그래도 나라를 뒤집어엎고 있는 조선이 이것까지 감당하는 건 무리다.
나아가 연오랑으로부터 시작된 온갖 기술과 노가다반복작업을 통해 얻어낸 신학문은, 그대로 서책으로 변해 각 지방의 장서각과 관아에 비치되고 있다.
애초에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일반백성들에게 어떻게 기술을 교육시키고, 전문화가 진행된 각 부서의 관원들이 또 어떻게 업데이트 된 학문을 접하겠는가.
당연히 누가 읽어도 이해하기 쉽게 집필할 수밖에 없지.
문제는 학문과 기술의 깊이가 깊지 않아서, 정치 사상적 문제만 아니라면 어떤 나라든 쉽게 따라할 수 있다는 점.
해서 서책을 맘껏 찍어내서 자유롭게 배포하는 건, 위험부담이 너무 클 수밖에 없었다.
‘신문도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굳이 필요는 없지.’
신형인쇄기하면 당연히 신문이 떠오르기 마련이지만, 이 또한 같은 이유로 포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