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365화 (365/538)

365. 챕터49. 성장하다 (7)

‘돈이야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인식이 문제군. 아직은 시기상조였나...?’

그가 향교에 신경을 쓴 건, 정인지의 말대로 북방의 여진인을 효과적으로 복속시키기 위해서였다.

조선인으로 빠르게 만들려면 한곳에 뭉쳐놔야 했고, 아직 여진습성이 완전히 몸에 배어 있지 않은 어린 시절부터 집체교육을 진행하는 게 효과적이니까.

또한 그는 무사부 제도가 정착해서 조선이 무를 경시하지 않는 풍토를 만드는 동시에, 향교의 지대를 활용해서 다양한 수익수단이자 민심통합수단으로 삼으려는 의도가 있었다.

어찌 보면 불공보단 잿밥에 더 관심이 많았던 거지.

‘그렇다고 해도... 생각해보면 어차피 터질 문제긴 하잖아?’

북방의 일이 본토로 흘러들어오면서 조금씩 불평등, 불합리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이곳 남주도의 일까지 퍼지면 불길에 기름을 끼얹는 꼴.

본토의 백성들은 “자신들에게는 왜 교육의 기회를 안주냐?”라는 말이 흘러나올지도 모른다.

“흐음...”

연오랑이 장고에 빠져 있자, 둘 뿐만 아니라 뒤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호위기병들 또한 귀를 기울였다.

지금껏 그가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특이한 생각과 주장으로,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한 게 한두번이 아니지 않나.

이번에도 또 뭔가 색다른 해결책이 나올지, 기대하는 눈빛을 흘려댔다.

‘하나씩 집어보자.’

이 시대는 돈 좀 있는 집안이라면 7,8살이면 보통 글공부를 시작했다. 일반양민가정에선 그 때쯤 되면 사리분별을 하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집안일을 돕기 시작한다.

‘그리고 12,13쯤 되면 본격적으로 손을 거들기 시작하지.’

미래에 초등학교를 졸업할 나이쯤 되면, 사회의 구성원까진 아니어도 0.5인분의 몫을 하는 노동력으로 취급받았다.

밖에 나가서 밭일이나 기타 잡일을 도와주는 건 물론이고, 학문을 배운 이라면 어느 정도 성과가 나와 싹수가 있는지를 결정할 나이가 되지.

‘그리고 15,16세면 미숙하긴 하지만 성인취급을 받기 시작하고.’

중학교를 졸업할 나이쯤 되면 관례를 거쳐 성인취급을 받아, 1인분 몫을 하는 노동력으로 판단.

학문을 익혔다면 향교에 입학해, 관원이 되기 위해 제대로 공부를 시작하는 나이가 된다.

‘다만 지금은 성인기준이 17세로 미뤄줬으니까. 일년의 여유가 더 생긴 꼴...’

“법정나이가 생겼지만, 민간에서의 기준은 딱히 달라진 게 없지? 애들의 활동사항이나 노동력으로 활용되거나 하는 것들 말이야.”

연오랑이 조용히 질문을 던지자, 모두는 서로에게 눈빛을 뿌리며 무언의 대화를 나눴고 이내 이순지가 입을 열었다.

“그게... 과거를 볼 수 있는 나이와 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 나이는 법정성인나이에 걸려 있지만... 그 외에 민간에서 벌어지는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아. 군입대와 혼례나이가 미뤄지긴 했지만, 그건 별개고요.”

“그 말은 성인이 되지 않은 아이들도 일을 하긴 한다는 거군? 맞냐?”

“예? 예. 저희가 보기론 그러했습니다. 대감.”

연오랑의 눈빛이 둘을 넘어 호위기병에게 향하자, 호위를 맡은 중대장이 눈치를 보면서 답을 던졌다.

연대병은 본토에서 주둔할 때 훈련만 주구장창 한 게 아니라, 건축, 건설, 개간, 등등. 모내기철이나 추수철에는 농부를 도와 대민작업도 함께 했다.

그러니 현실을 눈으로 직접 본 게 많을 터... 연오랑은 중대장과 호위기병에게 꼬치꼬치 캐물었고, 그들은 오래된 기억을 박박 긁어서 끄집어 내야했다.

“결론은 비공식적으론 예전처럼 15세 전후가 되면 한명의 일꾼으로 취급받는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비록 기업에 들어가진 못하더라도, 밭일이나 가업을 배우는 건 당연한 거니까요.”

일반양민가정에서 부모가 기업에 취업해 일을 한다고 해도, 보통은 작게나마 자기 땅을 일구는 이들은 부지기수 아닌가.

밭일을 하는 건 보통 조부모나 자식들이니, 일꾼이 되는 건 당연한 이치. 만약 기업을 일군 집안이라면, 어려서부터 기업 일을 배우는 것 또한 마찬가지일 거다.

‘그럼 남는 시간은 대략 8살부터 13살정도. 대충 초등학교에 다닐 나이와 비슷해지는군. 그럼 가르칠 것도 비슷해질 수밖에 없겠네.’

어쩌면 이 시대의 교육과 비슷한 면이 있으니, 그 때부터 교육을 시키는 건 큰 무리가 아닐 거다.

‘다만 학문을 익히는 건 모든 양민백성에게 사실상 너무 먼 이야기고, 향교로 끌어들이기 위한 유인책은 필수. 그럼... 결국 이공계를 밀고 나갈 수밖에 없는 건가?’

그는 그런 결론은 내리고선,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어째 유학의 나라, 선비의 나라라 불렸던 조선이, 지금 역사에선 공돌이의 나라가 될 지도 모르겠다.

문호를 대폭 넓힌 향교에서 의무교육을 실시하는 건 무리. 나아가 무상교육으로 하는 것도 무리다.

작게나마 돈을 받아야 유지가 될 테니, 많이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오히려 유지비는 적게 나갈 거다. 그러려면 양민백성들을 유혹하고 끌어들일 유인책이 필요한데, 남는 건 기술밖에 없지 않나.

지금껏 보아온 것처럼, 부모가 가르치는 생활기술보다 향교에서 장인이 가르치는 생활기술을 배우는 게 이득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거지.

‘처음에는 바느질, 수공예, 요리, 기타 단순한 망치질 톱질, 농사일 정도를 배우는 수준이겠지만... 여기에 흥미를 가지고 깊게 들어간다면 공돌이가 되는 거지.’

이론보다는 당장 실생활에 직접 적용할 수 있는 기술과 실습을 학습하는 거다.

“어떻게 생각 하냐? 과목은 지금처럼 십학과 신학문, 무예를 합쳐서 진행하면 되겠지. 조선어 교육을 예로 들면, 훈민정음을 익힌 후엔 방금 말했던 것처럼 각종 설화나 민담, 시나 시조 등을 익히면 되겠지.”

“허...?”

정인지는 연오랑이 가볍게 한말에,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게 진짜로 진행된다면, 백성들 모두가 누군가의 시나 시조를 배우게 된다는 말인데... 그런 영광을 놓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글줄 꽤나 읊을 줄 안다는 사람이라면, 이미 백골이 된지 오래된 조상들까지 끄집어 와서 난리를 피우게 될 거다.

“산학이야 구구단을 비롯해서 주판과 산가지를 익히는 방법 정도만 익히고, 고급산학은 배우고 싶은 사람만 배우고 아닌 사람은 그만두면 되겠지. 실생활에서 필요한 건 고급산학이론이 아닐 테니까.”

“...”

“한자 또한 상위경서보단 천자문 정도면 되지 않겠냐? 무려 4,5년을 배우는데, 그 정도면 천자문의 이치를 탐독하는 건 힘들어도 단순 암기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문맹률이 떨어지는 조선백성이나 중국백성 나아가 한자문화권에 속해 있는 상인들이 쓰는 글자는 보통 천자문 안에서 해결 된다.

적어도 필담으로 대화를 나눌 정도는 되니, 이 정도는 백성들에게 알려줘도 아깝지 않다.

뒤이어 계속해서 십학의 기초를 줄줄이 늘어놨다.

의학의 경우에는 먹어도 될 식물과 먹지 말아야할 독초를 알려주는 정도면 될 거고, 역학譯學은 이미 외국어를 할 줄 아는 2세들이 많으니 굳이 기초교육에 포함시킬 필요는 없을 거다.

“무학武學의 경우에도 문제없겠지. 승마와 무예, 궁술이 주가 될 텐데, 승마야 누구나 배워야 할 거고, 궁술은 육예 중 하나이니 문제없고, 무예도 배워서 나쁠 건 없겠지. 백성들 입장에선 이게 쓸데없는 짓으로 보일수도 있지만, 반대로 배워서 손해 볼 건 없잖냐? 엄청나게 큰돈이 들어가는 고급품을 사야하는 것도 아니니까.”

“...”

“어때. 가능성이 있다고 보냐?”

“음...”

“흐응...”

그가 생각을 풀어놓자, 다들 답을 바로 하지 못하고 장고에 빠졌다.

“결국 말이 향교지, 실상은 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교육기관이군요?”

“그렇게 되겠지.”

지금껏 향교는 유학적 지식을 익힌 관원을 만들기 위한 엘리트 교육기관이었으니, 연오랑이 주장한 것과는 완전히 정반대다.

“그럼 원래 향교는 어쩌려고...?”

“기존에 있던 향교 및 지방에 여럿 새운 연구소, 연수원과 연계해서 대학을 만들어야지.”

“대학이요?”

“호...”

이어지는 말에 먹물을 먹고 사는 정인지와 이순지 모두 눈빛을 반짝였다.

역사적으로 나라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고등교육기관이 있어왔으니, 이 시대 사람들도 대학이라는 명칭과 개념을 모르는 게 아니다.

“성균관과 비슷하려나...?”

“지금의 성균관은 사실상 잠정휴업상태이니 넘어가고, 오히려 성균관과 유사한 고등학관을 지방 곳곳에 여럿 세우시겠다는 거군요?”

“어. 향교에서 교육을 받은 아이들 중에선 분명히 학문을 더 깊게 배우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을 거다. 그걸 통해 관원이 됐든, 기업 장인이 됐든, 연구원이 됐든, 뭐든 되겠지만 말이야.”

“적어도 과거시험에 붙을 정도가 되려면, 대학에 들어가서 진짜 학문을 배워야 한다는 말이군요.”

“그래.”

연구소와 연수원을 들먹이자, 모두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여댔다.

정확한 명칭과 구별이 없을 뿐이지, 실은 이미 조선에는 고등교육기관이 존재하고 운용되고 있지 않나.

“그럼 자연스럽게 특성에 따라 대학이 분류되겠군요. 지금도 연구소는 각자 익히는 분야가 따로 존재하니까...?”

“맞아.”

이미 연구소는 건설,의학,조선,광업,과실,농업 등등으로 세분화 되어 운용되고 있는 상황이니, 여기에 교육과정을 신설하면 그대로 대학으로 변할 수 있는 거지.

“율학律學의 경우에는 연수원이 있으니까 이걸 바꿔서 율과대학으로 만들면 될 테고...”

“택리학은 따로 만들어야겠군요. 다만 원래 있던 게 있으니 조금만 바꾸면 되겠습니다.”

기존에는 음양학陰陽學이라 하여 천문,지리,명과학이 섞인 학문이자 잡과시험이 있었다.

이중 천문과 지리는 착호군 지리감을 통해 그 위치가 격상되었는데, 반대로 명과학은 자리를 잃고 주저앉았다.

명과학은 쉽게 말해 길흉화복을 점치는 방법으로, 타고난 복록과 수명을 예측하는 녹명祿命, 길흉과 성부를 예측하는 복서卜筮, 관혼상제를 비롯한 주요 행사에서 길일을 택하는 추택推擇등이 있었다.

미래에도 은연중에 영향을 끼치는 이 잡학이 힘을 잃게 된 건, 이 모든 게 중국에서 왔기 때문.

어찌 보면 이것도 통계학과 흡사하고, 중국의 역사를 담고 있지 않나. 조선으로서는 조선만의 통계학을 만들기는 벅차다보니, 그냥저냥 뒷전으로 얼렁뚱땅 밀리고 말았다.

게다가 왕실에선 왕권강화를 위해 종묘를 높이고, 사직의 권위를 떨어뜨리려고 노력 중.

조정에선 운석핵꿀밤과 조선통치기조인 유학과의 연관성을 떼어내기 위해서, 인간의 도와 하늘의 도를 분리하여 기우제와 같은 제사를 중요성을 줄이고 있다.

학문적으로는 실사구시를 입에 담으며, 관찰,실습,반복을 통해 자연과학적 탐구론으로 만들어진 신학문이 대두되고 있는 상황.

이 모든 게 결합되어, 명과학의 입지는 신앙과 믿음의 영역에서 흥미의 영역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는 중이지.

“지리감은 무려 택리부로 격상됐고, 당연히 천문 지리와 관련된 수많은 결과값이 나오고 있으니까... 이것만 본격적으로 파 들어가는 대학을 만드는 건 조정에서도 반길 겁니다. 신입을 교육시키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니까요.”

“무학은... 군부가 있으니 문제될 게 없겠군요. 병장기를 쓰는 데 재능이 있는 이라면 군부에 지원하면 될 거구요.”

“그렇지.”

“악학樂學, 화학畵學의 경우에는... 손이 많이 들어가긴 하지만, 그래도 가능해 보이는 군요.”

“악공과 화공이라... 요즘 그치들도 나름 바쁘다고 들었으니, 백성들이 흥미를 가질 법도 하겠네요.”

정인지와 이순지는 본토에의 분위기를 일러주며 설명을 이어갔다.

원래 역사에서의 악사, 화가등의 예체능 계열의 관원들은 사실상 반쯤 신량역천인과 다를 게 없었다.

물론 과거에 합격한 관원이 부서를 지휘하지만 그건 극히 소수고, 대다수는 잡직관원으로 남아 대대로 가업을 이어받는 게 보편적이었다.

이러니 양반집에서 흥미이자 취미로 악기나 그림을 배우는 건 용납해도, 전문 악사나 화가로 나서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지.

“하지만 요샌 양민백성들도 나름 먹고 살만 하지 않습니까? 그럼 당연히 그간 지주나 양반들만 향유하던 것에 관심이 쏠리기 마련이죠.”

“오...”

연오랑도 충분히 이해가 되어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집도 있고 먹고살 걱정도 없으면, 이제 슬슬 놀거리를 찾고 상류층 문화생활을 찾는 게 인간의 본성 아닌가.

이래서 연오랑이 석전을 대신할 놀거리를 제공해 주기 위해, 온갖 대회 등을 조정에 제안했던 거고.

이와 별개로 백성들이 가장 쉽게 접근하고 오랫동안 뿌듯함을 느낄 수 있던 건, 집을 꾸미고 치장하는 일.

오래전 옛날에 지주집안이나 양반집안에 갔을 때 봤던, 멋들어진 족자나 그림. 병풍 등.

그때는 꿈에서나 상상했던 일이, 이젠 돈만 있으면 가능해진 세상이 찾아오지 않았나. 다른 귀중품들도 많이 있겠지만, 보는 눈이 낮은 양민백성이 보기엔 이것보다 더 좋아 보이는 건 없었다.

“그래서 요새 족자나 그림을 사들여서 집에 걸어놓고 자랑하는 백성들이 꽤 늘었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악공과 화공 또한 부수입이 엄청나게 늘어났으니, 여기에 관심 갖는 백성들도 점점 늘어가고 있고요.”

잡직관원이 전부 정식관원이 되어, 실권 없는 허울뿐인 양반이 된지 오래.

그 말은 이제 악사나 화가가 된다고 해서, 손가락질을 받을 일이 없어졌다는 뜻 아닌가. 그 결과 조정에 출사하지 않는 민간 악사, 화가가 알음알음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그래?”

“예. 그래서 악과대학이나 화학대학이 생기는 건 크게 거부감이 없을 거고, 조정에서도 나쁘게 보진 않을 겁니다. 안 그래도 궁중, 조정의 음악이나 그림이 민간의 풍속과 다른 점이 꽤 되지 않습니까?”

“그렇겠지.”

“전하께서도 이걸 학문화시키길 바라고 계시고, 또 성과가 없는 건 아니니 대학을 만드는 걸 반기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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