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366화 (366/538)

366. 챕터49. 성장하다 (8)

‘하긴 세종이 음악에도 재능이 있었지.’

연오랑은 그리 생각하다가, 문뜩 누군가가 떠올랐다.

그간 엮일 일이 없어서 관심도 없었는데, 이 시대에는 조선음악사의 기틀을 잡은 인물이 있지 않나.

“아... 박연이 악학정비를 주도하고 있나?”

“예? 예. 박 제조를 아십니까?”

“몰라. 그냥 들어는 봤어.”

연오랑이 시큰둥한 표정을 짓자, 모두가 그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박연이라... 그 친구는 어때?”

“뭐... 어르신께서 눈여겨보실 만큼 특별한 부분은 없지만, 그래도 음율에 관해서는 천재가 맞습니다. 성품이 조금 모나긴 했지만, 전하께서 직접 관리하고 계셔서 특별히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었습니다.”

“음.”

그가 박연에 대해서 궁금해 한다고 생각했는지, 정인지가 간략하게 인적사항을 풀어냈다.

정인지보다 박연이 나이가 많지만, 조정에선 직급이 깡패 아닌가. 녀석은 줄줄이 박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놨다.

‘하긴 근육세종이 됐는데, 까불다간 뒤지게 얻어맞겠지.’

그는 물끄러미 정인지를 보다가 피식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정인지를 이겨먹겠다고 세종이 운동과 무술을 배우기 시작한 지 벌써 십년이 넘었고, 모르는 사람이 보면 왕인지 장군인지 헷갈릴 경지에 이르렀다.

박연이 아무리 까불거려도, 세종과 직접 독대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상 눈밖에 벗어날 짓을 할 리가 있나. 조정에서 말이 나오기 전에, 세종이 먼저 두들겨 패버릴 지도 모른다.

‘확실히 박연도 인생이 바뀌었나 보네.’

정인지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원래 역사에서. 이 시대의 음악은 궁중 및 조정에서 쓰는 아악雅樂과 당악唐樂, 민간에서 쓰는 한반도 고유 음악인 향악鄕樂으로 나뉘었다.

아악은 송나라의 대성아악大晟雅樂을 고려 때 받아들였으나 불완전했고, 박연은 성리학자답게 이를 주자가례에 맞춰 완전한 아악으로 만들려고 했지.

오히려 세종이 “한족은 한족음악을 듣고 살았으니 제사 때 한족음악을 들어도 괜찮겠지만, 조선은 조선음악으로 제사를 지내는 게 맞지 않냐?”라고 말하면서 향악과 아악을 섞으려고 노력했고.

또한 이 시대엔 중국을 보통 당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당악은 당나라 때 이후로 조선으로 넘어온 중국음악을 통칭하는 말로서 궁중과 조정에서 사용했었다.

하지만 지금 역사에선 정반대다.

박연은 근본성리학자에 가까운 인물이었으니, 운석핵꿀밤으로 인해 머리가 쪼개지는 고통을 느꼈을 터... 그 반작용으로 근본성리학을 떨쳐내고, 자주화 쪽으로 확 기울 수밖에 없지 않나.

아악과 당악 모두 지금 조선에게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고, 거꾸로 향약을 중심으로 둘을 흡수해서 변형시키는 중이었다.

원래 역사에서의 종묘제례악 또한, 지금 역사에선 전혀 다른 형태로 완성되고 있었지.

“헌데...”

“뭐? 왜?”

정인지는 말을 잘하다가 말고 슬쩍 눈치를 봤다.

“박 제조가 어르신께 관심이 있다는 소문을 얼핏 들어서 말이죠.”

“나를 왜?”

“그야 군가를 만들지 않았습니까. 악학에 재능 있는 인물이니, 당연히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죠.”

“아...”

‘하긴.’

연오랑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고 말았다.

군가는 그냥 제식훈련할 때 심심하지 말라고, 더불어 귀화인들이 빠르게 조선말을 익히게 하려고 만든 것 아닌가.

그게 여기까지 불똥이 튀었나보다.

“그런데 왜 연락을 안 했지?”

“딱히 만난 적도 없는데 연락하기가 뭐하지 않습니까. 박 제조는 착호군 출신도 아니니까요.”

“음...”

연오랑은 이해가 안 되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모두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제멋대로 살아서 그렇지, 연오랑의 이름값은 무겁고 위세도 엄청나다. 그런 인물을 아무리 세종의 총애를 받는 관원이라고 한들, 쉽게 만나려고 할 수 있을까.

그를 겪어본 사람들이야 편하게 대하는 거지, 모르는 이들에겐 조정대신보다 더 무서운 게 연오랑이다.

“뭐. 정 궁금하면 연락하겠지.”

“예.”

“그러겠죠.”

“아. 그러고 보니 하나 빼먹었다. 역사와 지리도 넣어야겠군. 택리부와 금석학당이 그간 열심히 일했는데, 그걸 아무도 몰라주면 곤란하지 않냐. 조선화교육을 위해서라면 역사를 아는 게 도움이 되겠지.”

“음.”

“흐응...”

연오랑의 덧붙이는 말에, 호위기병들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시대는 당연히 역사를 가르치지 않았고, 크게 관심 있는 이들도 많지 않았다.

중국의 고서를 읊으며 은,주,춘추,전국시대는 줄줄 외우면서 한반도의 역사를 모르는 게 웃기긴 하지만... 어쩌겠나. 유학을 배우고 따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는데.

그렇다보니 착호군을 따라다니면서 수많은 유적과 유물을 발견한 금석학당에 대한 관심은 꽤나 높았고, 조정에서는 금석학당을 정식부서로 만들 정도였지.

다만 관원들과 학자들 사이에서나 관심이 높은 거지, 민간백성들이 관심 있는 건 아니지 않나.

과연 이게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 의문이 드는 게 당연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연오랑은 이런저런 말을 풀어냈고, 다들 고개를 까닥거렸다.

“뭐... 이 정도면 다들 이해하는 거냐?”

“그렇습니다.”

다들 자기도 모르게 흥이 돋아 하나둘씩 풀어가자, 대학의 설립문제는 생각보다 쉽게 진행될 걸로 보였다.

“문제는 재원인데... 연구소는 돈벌이가 있으니, 크게 문제되진 않겠군요. 더불어 대학에 입교하려는 이들에게 돈도 조금 받고요.”

“아마 그렇게 될 거다.”

연구소는 기업장인을 위탁교육하고, 새로운 발명품을 만들어서 기업에 저작권을 파는 식으로 자체적인 재원을 마련하고 있었다.

말이 연구소지, 어쩌면 연구기업이라고 불러도 틀리지 않다.

“문제는 대략 5년간의 기초교육과정에 있어서, 어떤 걸 가르칠지 분류하는 문제. 이건 너희가 고민했던 것과 같은 건데... 다른 점은 학문이 아니라 실생활에 밀접한 기술이 중점이 되는 거지.”

“음...”

“장인을 조정의 지도하에 키우시겠다는 거군요.”

“장인이라고 하면 조금 그렇고, 적어도 장인이 될 만한 기초를 닦는다고 봐야겠지. 아니면 직업 선택의 기회를 준다고 봐야할지도.”

“음...”

다들 눈썹을 찌푸리며 고민에 빠져들었다.

‘쩝... 이놈들이 이런 반응을 보일 정도면, 조정에선 더 하겠군.’

바로 답이 나오지 않는 이들을 보고 있자니, 듣지 않아도 머릿속이 읽어진다.

여전히 “대학은 좋은 계획인데, 과연 재원을 엄청 잡아먹을 향교가 필요할까?”,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굳이? 그렇게 까지 해야 할까?”라는 의구심을 해소하지 못했나 보다.

“왜? 아직도 긴가민가하냐?”

“솔직히 조금...”

“너희 생각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

“...?”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내자, 눈동자가 둥글어졌다.

“잊지 마라. 우리의 경쟁상대는 중국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저력을 가진 대국.”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사실은 사실 아닌가.

“지금은 비록 연맹으로 쪼개져 있다지만, 중국의 성 하나하나가 조선본토와 맞먹는 크기에 조선보다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다.”

조선은 이 시대 기준으로 전 세계적으로 봐도 작은 나라가 아니지만, 안타깝게도 바로 코앞에 있는 중국은 앞으로 수백년간 선두자리를 놓치지 않는다.

“...”

“대리와 사천이 떨어져 나가고, 섬서에 몽골이 들어서고, 광서가 이족의 손에 떨어졌어도, 그 사실은 여전히 변하지 않지.”

미래의 중국과 비교하면 따로 떨어져 나간 지역이 많지만, 이 시대의 중국은 여전히 강남 및 화북지역이 중심이다. 애초에 다른 쪽은 변방 취급을 당했으니까.

“또한 연맹으로 쪼개졌다고는 허나 교류가 없는 건 아니지. 오히려 중국의 바다를 아국의 바다로 만든 이상, 저들은 군비를 아껴 내치에 치중할 수 있지 않겠냐?”

“예.”

“그건 그렇습니다.”

이렇게 자유무역의 형태로 경쟁하다보면, 자연스레 관의 통제를 받는 것보다 더욱 활발하게 경제적으로 통합될 터...

정치군사적으로 쪼개진 건 맞지만, 경제적으론 쪼개진 게 아닌 꼴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애초에 연맹의 수뇌부들은 죄다 상인출신이니까.

결국 원래 역사보다 경제력이 더욱 강해질 수도 있는 거지.

“그렇다고 군력이 약하냐 하면, 솔직히 그것도 아니지. 섬서몽골을 막기 위해서 산서,호광,하남,사천은 적지 않은 인력과 재원을 군비로 지출하고 있다. 비록 무장수준은 우리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머릿수 하나만큼은 엄청날 거다.”

“아...”

“흠.”

조선이 하도 중국을 두들겨 패서 약해 보이지만, 진짜 정예들은 조선이 갈 수 없는 전장에서 여전히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몽골의 대륙침공이 돈좌된 건, 그들의 역량 이상으로 집어삼켜 배가 터지려고 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반대로 그만큼 중국이 격렬하게 저항한 까닭도 있다.

지금의 중국군대는 호족중심의 편제이고, 이러한 향토방위군은 원정전쟁을 수행하는 건 어렵지만 수비전만큼은 뛰어나지 않나.

고향에서 싸우는 거니 지리적 이점을 가져가는 건 당연한 말. 또한 여기서 밀리면 자기 가족과 친지, 자기 재산이 다 날아가는 거니... 말 그대로 목숨 걸고 사수하는 거지.

연맹의 호족군대는, 온 사방에서 긁어모은 옛 명나라 군대와는 정신무장 부터가 다를 거다.

이 때문에 조선이 중국연맹에게 군사력을 행사하는 걸 자제하고, 변두리나 마찬가지인 조차지만 조금 뜯어먹고 만 거고.

“결국 땅 크기도 밀리고 머릿수도 밀리는 아국이, 앞으로 중국시장에 잡아먹히지 않고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어쩌야겠냐? 답은 하나 밖에 없어. 조선인 한사람 한사람이 한족 열사람 몫을 하는 수밖에.”

“허...?”

“헉.”

너무 거창한 말에 다들 헛기침을 내뱉었지만... 이해는 됐다. 이건 지금껏 이어온 개혁의 기치와 같은 맥락이었으니까.

개혁을 하려는 이유 자체가 의주를 통한 자유무역을 진행하면서, 중국의 저력을 제대로 느꼈기 때문 아닌가.

“이게 힘들다고 해서, 꽁꽁 문 닫고 우리끼리만 살까?”

연오랑이 비릿하게 웃으며 바라보자.

“... 이미 때는 지났죠.”

“그게 우리 뜻대로 되겠습니까.”

다들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무역이나 교류 같은 거 없이, 그냥 각자 평화롭게 살면 좋겠지만 그게 되겠나.

명나라 시절만 봐도 가만히 있는 조선에게 온갖 지랄을 떨었고, 여진이나 왜구는 조선의 사정을 봐주면서 쳐들어왔던가.

나아가 지금 당장 조선이 거두는 세수와 재원의 상당수가 무역을 통해서 얻고 있는데, 문을 닫는 건 퇴보하자는 말과 동의어다.

“전조가 원나라 시장에 종속되었다가 망했던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서, 중국시장에 대항하기 위해 아국의 체급과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말이군요.”

“그걸 위해서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거고요.”

“불을 보듯 명확한 사실이지. 애초에 수많은 중국물산과 아국물산을 비교했을 때, 아국의 우위가 명확히 드러나는 품목이 몇이나 될까.”

특산물을 제외하면 없다고 봐도 무방할 거다.

중국은 산업혁명을 이룩해 생산한 유럽산 물품을, 오롯이 인력으로 버텼던 나라다.

“머릿수로 밀고 들어오는 중국물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술을 발전시켜 보다 상품성 좋은 물산을 만들거나, 보다 손이 덜 가게 해서 가격을 낮추거나, 일인당 생산량을 높이는 수밖에 없지.”

“아...”

“그렇군요.”

호위기병조차도 무슨 뜻인지 알아듣고선, 고개를 끄덕여댔다.

“다른 이유도 있다. 아국은 중국시장에 종속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고, 그러다보니 강역이 너무 넓어지고 다른 민족을 많이 받아들였어. 예전 조선의 방침으로 통치하기에는 사정이 너무 많이 달라졌지.”

“음.”

“하긴...”

이건 몸으로 겪은 거라서, 모두가 침음을 흘리며 동의를 표했다.

십수년 전만 해도, 조선의 땅덩어리가 이렇게 커질 줄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개혁 전을 떠올려봐라. 과연 양민백성들 중에서 남주도로 선뜻 이주하려는 이가 있었을까? 그럴 리가 없지.”

양전사업이 진행되기 전만해도, 대부분의 백성들은 자기 고향 땅을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을 사는 게 보편적이지 않았나.

지금과 같은 사태는 감히 상상도 못해봤다.

“그런데 고작 십여년 만에, 왜 백성들의 생각이 바뀌어서 이렇게 움직였을까? 이유는 간단하지. 보고 들은 게 많아지고, 눈으로 본 게 많아지고, 작은 조선땅을 벗어나 세상을 보는 눈이 뜨였기 때문이다.”

“맞습니다.”

“옙!”

이런 흐름의 선두주자가 바로 착호군이었으니, 호위기병들의 대답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하지만 이주작업이 모두 끝나고 나서도 과연 이러한 기조가 유지될까?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없을 수도 있지. 이에 대비하기 위해선 적어도 간접적인 경험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 간접경험이라면 자고로 책이 최고고, 그걸 개개인에게 맡기지 않고 조정이 직접 지도하면 효과는 더욱 커지겠지.”

“아...”

“오...”

모두는 오뚝이마냥 고개를 마구 끄덕여댔다.

과연 생각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연오랑답게, 이 시대 조선인이 생각하기 힘든 고정관념을 가볍게 부수고 나아간다.

교육을 통해 세상 보는 눈을 뜨게 한다는 건, 기존관원이나 옛 시절 사람들이 떠올리기에는 너무 급진적인 의견이었으니까.

“같지만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아까 말했듯이 조선의 강역은 너무 넓어졌다. 과연 북방백성들과 이곳 남주도백성들이 스스로를 같은 조선인이라고 여길까?”

“그건...”

“끄응.”

매섭게 꼬집고 들어가자, 모두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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