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370화 (370/538)

370. 챕터50. 기틀잡다 (2)

“평안도와 황해도에 투입된 남주도민에, 내년에 갈 경애도민까지 합치면... 못해도 십이,삼만명이 넘는 유민이 바글거리겠군.”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몸뚱이 하나만 덜렁 가지고 온 이들이니 만큼, 의식주 모든 걸 조선에서 챙겨줘야 할 터.

보나마나 태종의 착호군은 블랙홀이 되어, 조선의 모든 물산을 빨아들이게 될 거다.

“사람이 그렇게 많이 모이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발버둥 치게 될 수밖에 없고... 모든 기업이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날뛰게 되겠군.”

“대감께서 군부를 창설하면서 이미 진행한 일이지 않습니까. 이번에도 한 번 더 도약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

성억은 공치사를 늘어놨지만, 연오랑은 대답도 없이 머릿속에서 열심히 주판을 튕겼다.

지금 조선은 체급에 비해 과할정도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상비군이 돈을 퍼먹는 집단인 걸 떠나서, 덩치 자체가 너무 큰 거지.

일을 이렇게 진행한 건, 군부의 존재로 인해 조선의 모든 기업 및 산업이 활성화를 이루기 때문.

간단한 예로. 병장기를 만들기 위해선 광산에서 광석을 캐야하고, 그걸 옮겨서 강철로 제련하고, 강철괴를 다시 각 공작기업에 넘겨 무기로 만들어야 한다.

강철부품 말고 온갖 부자재도 마찬가지.

갑옷은 또 어떨까. 가죽이 필요하니 농장이 필수적, 도축을 전문으로 하는 도축기업이, 생가죽을 무두질할 피혁기업이, 염색작업도 필요하니 염료기업이 추가.

안감으로 들어가는 면포가 필요하니 면직기업이, 각종 부자재를 제공할 공작기업이, 자재를 모두 모아 하나로 합쳐야할 포목점 장인이 필요하다.

오죽했으면 군부의 수요를 빠르게 맞추기 위해, 재봉틀을 다량으로 구입해 손재주 좋은 아낙네들을 사원으로 고용한 포목점이 등장했을까.

중요한 건.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군수물자와 민간제품의 차이는 없는 것과 다름없다는 점.

군부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비대해진 기업들은, 제 덩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민간에 제품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던 거지.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평안도와 황해도를 완전히 갈아엎고, 의주대로를 중심으로 육상교통로를 새롭게 정비하게 될 테니... 그 여파는 결코 작지 않겠지요.”

“기업들이 더 늘어나고 커지는 건 물론이고, 온갖 물산을 운반하기 위한 물류기업과 행상들도 정신없어지겠군. 기존의 역참이나 수참도 정비 및 확장될 거고, 오가는 상인을 상대할 객주도 늘어날 테고... 시장전체가 활황을 이루겠어.”

“그렇습니다.”

“오...”

따라가기 힘든 고급정보를 귀담아 들으며, 이정은 조용히 감탄을 토해냈다.

‘하지만... 뭔가 부족해.’

다시금 이해는 됐지만, 한편으론 뭔가 놓친 게 있는 것 같다.

자극을 주는 건 물론 좋은데, 막말로 그렇게 자극을 더 주지 않아도 남주도 원정으로 인해 이미 바빠 죽는 상황 아닌가.

‘아직도 속내는 따로 있어. 굳이 평안도와 황해도를 블랙홀로 만들어서, 모든 걸 끌어오게 하려는 의도가 뭘까.’

“물류와 유통을 자극한다라...”

그가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잠자코 듣고 있던 이정이 조용히 첨언을 던졌다.

“계획은 어련히 잘 진행되긴 하겠지만 보통 일은 아니겠네요. 의주에서 강남쌀을 받아오고 조운선을 통해 삼남쌀을 옮겨와도, 그 양이 엄청날 것 아닙니까. 그거 옮기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네요.”

“그렇겠지.”

‘쌀이라... 하긴 쌀이 보통 무겁나.’

연오랑은 쌀가마니의 무게를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가, 불현듯 번쩍 해답이 떠올랐다.

‘하! 이것 봐라? 진짜 목적은 이거였어? 하기야 한이 맺혀 있는 태종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하지.’

연오랑은 자신을 시험하듯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성억에게 눈을 흘기며, 피식 웃고 말았다.

“네 말대로 쌀을 옮기는 건 보통 일이 아니지.”

“그렇죠?”

“문제는 그런 쌀이 단순히 식량으로만 쓰이는 게 아니라는 거지. 평안도와 황해도로 조선의 모든 물산이 몰려들면, 그만큼 돌아다니는 사람도 많아지기 마련. 나아가 한곳으로 식량이 쏠릴 테니, 반대로 다른 지역으로 옮겨지는 미곡의 양도 엄청날 거다.”

“...”

연오랑이 핵심으로 접근해 가는 걸 알아차렸는지, 성억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해보라고 눈을 반짝였다.

“이 일에 투입되는 백성들이 한둘이 아닐 터, 그들이 조선팔도가 좁다하고 돌아다니려면 뭐가 가장 문제가 되겠냐?”

“운송수단이야 얼추 충분하니... 그야 숙박과 취식 아니겠습니까.”

온녕군 이정 또한 스무고개 놀이에 흥미가 생겼는지, 냉큼 질문을 받아 답을 했다.

“그럼 숙박과 취식의 대금은 어떻게 해결할 거냐? 그 외에 각 기업 간의 거래 또한 엄청나게 활발해 질 텐데, 그 거래 대금은?”

“그야 쌀과 면포로... 아앗!”

이정은 다시금 쉽게 답을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답을 찾아내고선 박수를 치고 말았다.

“계획을 잘 세웠어. 조정이 강제하지 않아도 민심이 들끓겠군? 이 무거운 쌀과 면포를 대체 언제까지 돈으로 쓸 거냐고 말이야.”

“감복했습니다. 대감.”

“감복은 무슨.”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헤실헤실 웃는 성억에게 연오랑은 손을 내젓고선, 다시금 감탄을 토해내고 말았다.

“아마 민간에선 화폐에 대한 소문이 솔솔 풍기고 있을 거야. 맞지?”

“그렇습니다.”

화폐개혁은 조용히 하지만 꽤나 거창하게 진행된 일이다.

조정에선 조폐부와 은행이 아예 정식부서로 창설됐으니, 관원을 가족으로 둔 집안들이 소문을 못 들었을 리가 만무.

뭔가 대단한 일을 조정이 꾸미고 있는 중이니, 남들에게 뽐내듯 열심히 소문을 퍼트렸을 거다.

눈에 보이는 증거도 있다.

남한산에 아예 성을 축조해 거대한 음행금고를 만들어 놓고, 전국의 광산에서 채굴한 은,금이 전부 그곳으로 들어가 나오질 않는다.

수년에 걸쳐 금군이 직접 호송하는 금고마차를 본 백성이 한둘이 아니고, 지방에 건설한 곡물창고마다 은행금고가 만들어진 것 또한 눈으로 봤다.

지난날 화폐유통과 달리, 이번 일이 보통 열심히 준비한 게 아니라는 걸 직감했겠지.

‘일을 이렇게 크게 벌린 이유가 따로 있었어. 이건 단순한 성장을 넘어서서, 조선의 체질을 개조시키는 것에 가깝겠지.’

그렇기 때문에 벼랑 끝 전술을 사용해서, 일반 백성들의 민심까지 자극하는 모양이다.

“예전 화폐유통의 실패를 기억하고 있는 백성들이 적지 않지만, 반대로 화폐를 사용하길 바라는 백성들도 적지 않을 거다. 특히나 지금처럼 물산이 자유롭게 이동하고, 장사를 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말이야.”

“그렇습니다.”

“그럼... 은행은 이미 준비가 끝난 모양이군?”

“이미 각 현의 곡물창고를 은행소유로 돌려 편제를 완료했고, 은행관원들 또한 지방에 파견되어 실사를 하고 있습니다.”

“설마... 이번에 강남에서 쌀을 엄청나게 사들이려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나?”

“겸사겸사 얻어 걸린 일입니다. 어차피 유민에게 제공할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건데, 다행히 풍작이 예상되어 더 많은 곡물창고를 채울 수 있게 됐습니다.”

“참파와 대리의 제안이 불꽃을 튄 꼴이 됐군?”

“그 영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주가 되진 않았습니다.”

연오랑은 세상이 참 자기 손에서 머무르지 않는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참파의 향신료, 염료, 과일, 종자등의 특산물도 분명히 값어치가 있지만, 당장이 급한 참파는 조선의 철괴를 최대한 빨리 받고 싶어 한다.

결국 내밀 수 있는 건 어디에서나 값어치를 인정받고, 이미 보유하고 있는 광물자원. 즉 은,금이지.

대리 또한 마찬가지로 화포대금은 물론이고, 무역을 시작하려면 시장조사부터 해야 할 터... 그 기간을 줄이고 싶으면, 역시나 은,금 말고는 딱히 없지 않나.

어쩌다보니 아귀가 딱 맞아 떨어진 모양이고, 세종과 태종은 냉큼 주워서 패로 써먹은 것 같다.

“앞으로도 꾸준히 참파와 대리로부터 은,금을 수입하려는 생각이군?”

“일단은 그렇습니다.”

“상왕전하께서 평안도의 광산을 추가 개발하려는 것도 같은 이치일 거고?”

“그 또한 겸사겸사입니다.”

“하...”

‘이 영감 보게. 예전에 화폐개혁을 말아먹은 게, 진짜 한이 됐나 보네. 이렇게까지 지독하게 판을 짰단 말이지?’

화폐유통이 시작되면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 또 모르는 일.

이미 수년간 준비를 해왔지만 문제가 터질 수도 있기에, 태종과 세종은 아득바득 은,금 보유량을 늘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게 잘못된 방향인 건 절대 아니지. 오히려 열심히 긁어모아야 중국에 대응할 거 아냐.’

연오랑은 절로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은행이 그렇게 준비 중이면, 당연히 조차지와 무역관에서의 왕실은행 또한 개점 준비가 끝난 모양이군.”

“의주와 창주에서는 이미 진행 중에 있습니다. 효과는 꽤 좋더군요. 서역에서 출발한 상단이 하나둘씩 도착하고 있는데, 개중에선 색목인 포로가 아닌 서역왕국의 은,금을 가지고 오는 이들도 꽤 됐습니다.”

“아! 벌써 왔어?”

“돈만 가지고 온 걸 보면, 누구보다 빨리 아국의 물산을 사서 되돌아가려는 속셈이지 않겠습니까.”

“하...”

과연... 이문을 위해서라면 지옥까지 찾아간다는 상인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다를 게 없는 모양이다.

‘살다 살다 조선땅에서 두카트 은화를 보게 될 줄은 몰랐네.’

그는 자기도 모르게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새롭게 만들어진 비단길의 종착점 킵차크 칸국은 흑해를 끼고 있다. 이 흑해에 점점이 박힌 항구들은 베네치아, 제노바 공화국과 같은 이탈리아 반도의 해상왕국 소유였지.

이들은 오스만제국이 득세하기 전부터 동방과 무역을 해왔을 터, 당연히 티무르제국이나 킵차크 칸국과도 연이 닿아 있었다.

‘조선사절단이 킵차크 칸국에 도착한지 한참 지났을 테니, 당연히 해상국가의 상인들 또한 동방의 변고를 알아보고 비단길이 새로 열렸다는 걸 알아차렸을 거야.’

머릿속에 지도를 그려놓고 떠올리자, 왠지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지금껏 그로 인해 많은 역사가 뒤집어졌지만, 저 멀고먼 유럽의 역사까지도 바뀌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오스만제국의 북진을 동로마제국을 비롯해 해상왕국 및 다른 소국들이 막고 있을 텐데... 이 판국에 동방의 비단길이 열렸단 말이지. 과연 어떤 영향을 줄지 감도 안 잡히는 군.’

이미 러시아제국의 모태인 루스공국을 박살내는 계획이 진행 중에 있는데, 어째 서유럽의 역사까지도 영향을 끼치게 될 지도 모르겠다.

‘돈이 흐르는 곳에 곧 전쟁과 힘이 따라오게 될 테니까... 흑해의 무역로를 놓고 오스만과 동로마제국,해상왕국이 더욱 거세게 부딪칠지도 모르겠어. 당연히 티무르제국 또한 꿀을 빨기 위해 손을 내밀 테니... 어쩌면 대 오스만 동맹이 만들어질지도?’

안 그래도 티무르제국과 킵차크칸국이 부활해서 건재해지고 있는 상황이니, 원래 역사처럼 오스만제국이 거침없이 팽창하는 건 힘들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렇게 되면 정말 한치 앞도 모르겠군.’

그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저 먼 곳의 일을 예측하는 건 아무리 미래를 알아도 불가능한 일.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조선을 열심히 부강하게 만들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나.

“그래서... 결론은 이번 일은 결코 무를 수 없고, 대리와의 계약 또한 무조건 체결되겠군. 경애도(해남도)의 공략 또한 반드시 진행될 거고.”

“그렇습니다.”

“음... 안 그래도 연대 하나를 경애도로 파견해서 분위기를 보려 했는데... 시간이 촉박해졌으니 하나 더 보내야겠군.”

“가능하시겠습니까?”

“음... 아마?”

연오랑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며, 각 신도시에 주둔하고 있는 연대를 떠올렸다.

지금 조선에는 대략적으로 각 도에 하나의 사단이 주둔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면 남주도에는 1개 사단, 5개 연대가 주둔하는 게 방침에 맞다.

다만 아직 안정화가 덜 되었기 때문에 남아 있는 거고, 원주민과 조선이주민이 정착을 끝마치게 되면 나머지 2개 사단은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야 하지.

“어차피 슬슬 회군할 연대와 주둔할 연대를 정해야 했는데, 겸사겸사 진행하면 될 거다.”

“그렇게 빨리 되겠습니까?”

“어. 당장 자동과 광주에 파견할 연대도 챙겨야 했거든. 광주로 보내는 김에 함께 보내게 되면, 본토의 해군보급대 도움이 없어도 움직일 수 있을 거다.”

“오...”

해적들에게 넘겨준 배가 수십척이니, 그걸 이용하면 남주도 함대가 번거롭게 왔다갔다 하지 않아도 충분할 거다.

‘녀석들의 배를 전부 동원하면... 적어도 전마 오백필 정도는 한 번에 옮길 수 있을 거야. 병력과 기타 군수품은 남주도함대를 이용하면 될 거고.’

“아. 해적들이 있었군요. 하긴 그치들은 지금도 물소를 옮기는 중이니, 전마를 옮기는 건 크게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제 해적도 아니잖아? 돈을 조금만 줘도 냉큼 받아들일 거다. 더불어 남해의 해적들이 박살났다는 소문도 쫙 퍼졌으니까, 남주도 함대가 순찰을 잠시 비워도 문제가 없을 테고.”

“예.”

“헤헤. 제가 대리에 가서 일을 잘해야겠군요. 경애도의 이족을 빼려면 대월이 힘을 꽤 써야할 테니까요.”

이정은 괜히 어깨를 으쓱거리며 한마디 덧붙였다.

“뭐... 사실 이족들이라고 해도 이곳 산악부족하고는 처지가 많이 다를 거야. 경애도가 멀다고는 허나 한족문화권에 속한 지 오래됐으니, 말이 안 통하는 야인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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