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371화 (371/538)

371. 챕터50. 기틀잡다 (3)

“...”

“게다가 우린 한족이 아닌 조선인이잖아? 우리가 한족을 거침없이 다루고, 반대로 이족,한족,조선인 모두를 공평하게 대우한다면 우리에게 호감을 갖게 될 거다.”

“자신들 땅을 빼앗으러 왔어도 말입니까?”

“엄밀히 말하면 빼앗는 것도 아니잖냐? 더 좋게 만들어주는 거지. 뭐. 그래도 우리의 통치가 싫으면 대월로 보내버리면 그만이니, 큰 분란은 벌어지지 않을 거다.”

“해안가에 살면서 광주를 약탈하던 해적부족은 해군전함이 등장만해도 알아서 짐을 챙겨서 대월로 떠날 겁니다.”

“그렇게 만들어 줘야지.”

여차하면 함포 사격까지 해서 쓴맛을 보여줄 테니, 굽히고 들어오든 도망치든 알아서 선택을 하게 될 거다.

“후... 안 그래도 일이 많은데, 더욱 바빠지겠군. 한동안은 계속 여기에 있어야겠네.”

“...”

연오랑의 푸념 아닌 푸념에, 모두는 얼른 입을 다물고 눈치를 살폈다.

그가 원해서 온 거긴 하지만, 정식관직도 없는 연오랑을 여기에 계속 묶어 두는 건 왠지 눈치 보이는 일 아닌가.

그럼에도 조정대신들을 보내는 것보다 연오랑을 보내는 게 효율은 또 엄청나게 좋으니, 세종과 태종이 포기할 수 없는 패였다.

“저...”

“응?”

‘뭐야. 아직 안 끝났어?’

허나 아직도 골치 아픈 일이 남아 있는 걸까?

미간을 찌푸린 연오랑의 표정을 살피며, 성억은 또 다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본에 관해서 의견을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말입니다.”

“아...”

밑에 관원들 보내도 될 법도 했는데, 인수부윤인 성억이 왜 직접 왔나 했더니... 밀명 아닌 밀명을 받고 온 모양이다.

“일본이 왜? 거긴 조차지. 아니 무역항을 놓고 막부랑 협상 중이지 않냐?”

“그게 막부의 제안과 대명들의 제안 중에서 꽤 흥미로운 게 많아서 말입니다. 조정에서도 말이 많고, 상왕전하와 전하께서도 대감의 의견을 들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셔서 말입니다.”

“호...”

두 왕이 조언을 청할 정도로 인정해주는 건 좋은데, 어째 일거리 지옥으로 떠미는 느낌이 절로 들었다.

“음... 일단 이거부터 보시지요.”

성억이 직접 가져왔는지, 일본 북부해안이 그려진 해도를 꺼내 펼쳐보였다.

‘전보다 조금 더 나아진 거 같은데? 그래도 큰 차이는 없는 거 같고.’

해군은 일본북부해안을 돌면서 측량했고, 해도를 만들지 않았나. 일전에 편전에서 봤던 것과 거의 흡사하지만 작게 축소한 지도였다.

물론 일본 내부지리는 하나도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해안선만큼은 제대로 구연한 새로운 해도지.

“일전에 들어서 아시겠지만, 막부에 제안을 하기 전에 먼저 각 대명들과 접촉했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거대한 배가 해안에 나타났으니, 당연히 “저게 뭔가?” 싶어서 확인하는 게 인지상정.

다이묘들은 그게 조선전함인 걸 알고 화들짝 놀랐고, 선진문물을 잔뜩 가져온 조선전함에 매료되어 여러 제안을 던졌다.

“물론 아국은 막부와의 협약을 통해 무역항을 열거라는 말을 전했고, 대명들은 손익을 계산하고선 막부에 압력을 넣은 모양입니다.”

“당연히 그랬겠지.”

“그래서...”

막부가 무역항을 빌미로 중앙집권을 이루든 말든, 외부세계와의 통교에 목이 마른 동북부 다이묘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아예 조선에게 직접 후한 제안을 던져서, 조선이 막부를 압박해 자신의 영지에 무역항이 생기게끔 손을 쓴 거지.

“오...? 그 정도로 적극적이었다고?”

“예. 그들로서는 일본북부 바다는 미지의 영역 아니겠습니까. 그곳을 뚫고 등장한 아국전함을 반기면서도, 한편으론 경계해야 할 테니까요.”

“일 리가 있군.”

‘맞는 말이야. 뭣도 모르고 일방적으로 얻어맞을 바에는, 차라리 끌어들여서 가까이 두는 편에 더 낫잖아?’

일본은 섬나라지만 해군력이 약하고, 실제로도 이 시기의 일본북부 바다는 쪽배를 타고 어부들이나 돌아다니는 곳이었다.

애초에 각 영지로 쪼개져 있는 판에, 엄청난 자금과 인력이 필요한 함대나 전함 등을 만들 여력이 있을 리가. 전국시대가 아닌 터라, 군비의 지출 또한 상대적으로 적고 말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나온 대명이 있는데, 이곳과 이곳입니다.”

“호오?”

연오랑은 자기도 모르게 흥미를 보이며 눈을 빛냈다.

성억은 바다에 홀로 떨어져 있는 섬 두 곳을 가리켰는데, 미래에는 오키섬, 그리고 사도섬이라 불리는 지역이기 때문.

“설마...?”

문뜩 떠오른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말을 흐리자. 성억은 히죽 웃으며 속마음을 대신 읽어줬다.

“해군 측에서는 아예 이곳을 아국 강역으로 차지하는 게 어떠냐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정확히는 넌지시 대명에게 의견을 제시했더니, 대명이 받아들였다고 하더군요.”

“오!”

‘하? 이게 이렇게 된다고?’

그는 자기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말았다.

해군은 북부항구를 돌아다니면서 이미 다이묘들과 접촉했고, 막부에 사절이 가기도 전에 이미 다이묘들이 먼저 선제안을 한 상황.

더불어 직항로를 찾기 위해 해안가에서 벗어나 점점 먼 바다로 나갔을 테니, 자연스럽게 오키섬과 사도섬을 찾아낼 수 있었을 거다.

“들어보니 이곳은 사람도 얼마 안 살고, 산다고 한들 유배지로나 써먹었다고 하더군요.”

“당연하겠지.”

그는 흥이 나서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래의 오키섬은 독도와 가깝다는 걸 이유로, 일본이 독도를 자기 거라고 우기던 배경이 되었던 섬인데... 지금 역사에선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는 셈.

허나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게, 영해라는 개념이 없는 이상 이 시대와 미래의 섬을 동일선상에 놓으면 곤란하다.

막말로 이 시대의 섬은 관리하기 귀찮은 애물단지에, 괜히 행정력과 재원을 낭비하고, 걸핏하면 해적들과 같은 불순분자가 생겨나는 곳이다.

더욱이 상선조차 돌아다니지 않는 탓에, 일본북부 바다는 중요도가 한참 떨어진다.

자연스레 섬에는 행정력이 제대로 미칠 수가 없고, 슈고다이묘가 생겨나면서 아예 섬의 소유권 자체가 막부가 아니라 다이묘에게 있었지.

‘막말로 다이묘 입장에서도 무시무시한 조선군이 바로 코앞에 있는 것보다, 그나마 바다 건너에 있는 게 훨씬 낫지 않겠어?’

다이묘 땅에 조차지가 생기는 것보단, 애초에 유배지로 쓰고 대충 소유하고 있는 애물단지 섬을 던져주는 게 훨씬 이득이지 않나.

“이곳 은주섬(오키섬)은 그렇다 쳐도, 좌도섬(사도섬)은 그 크기가 작지 않은데도 그랬다는 건가?”

섬이니 쓸 만한 땅이 적긴 하지만, 어찌됐건 크기만큼은 제주도의 절반쯤 되는 큰 섬.

그런데도 이런 선택을 했다는 게 놀랍다.

“좌도섬에는 대명이 있긴 한데, 일본본토의 대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해서 지방호족 수준도 못 된다고 하더군요. 해서 막부에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서로 관계가 깊지도 않고요.”

“음.”

“유배지로 쓰인 역사가 깊어서 그런지 공가와 귀족의 후손들이 꽤 살기는 하지만 생활수준은 아국양민보다도 못했고... 애초에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여긴 금이 나는 섬으로 유명할 텐데?”

“그런 말이 떠돈다고 하긴 했는데, 해군이 보기엔 광산을 찾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대부분 고기잡이를 하며 산다고 하더군요.”

“호오...”

‘아직 시대가 이른가 보군.’

사도의 금광은 훗날 엄청 유명해지는데, 에도 시대에 가면 막부재원의 한축을 이곳이 담당했을 정도. 전성기에는 이와미 광산에 버금갈만한 채굴량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허나 지금은 사금이나 대충 채취하는 정도고, 금맥 또한 제대로 발견하지 못해서 금광을 본격적으로 운용하지 않는 모양이다.

‘애초에 그러니까 사도섬의 대명이 우리에게 넙죽 엎드려 신속한 거겠지. 막부 또한 떨거지를 그냥 던져준 꼴일 테고.’

“이곳 사정이 그리 좋은 게 아닌 건 확실한가 보군.”

“그렇지 않겠습니까? 오죽했으면 대명이 직접 아국에게 신속할 뜻을 표했겠습니까. 본토와 쉽게 거래하면서 생활했다면, 낯선 아국 해군을 오히려 반길 정도로 궁핍한 생활을 하진 않았을 겁니다.”

척박하지만 차라리 대마도가 더 나았을 지도 모른다.

거긴 해적질을 핑계로 사람들이라도 오가지, 사도섬은 상인은커녕 어부들도 별로 오가지 않는 곳 아닌가.

“크흠. 그놈들이 생각하는 신속臣屬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신속은 많이 다를 텐데?”

연오랑이 피식 웃으며 묻자, 성억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를 이어갔다.

“흐... 연대병이 상륙하면 오해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되겠지만, 그래봐야 바뀔 게 있겠습니까. 그치들도 조선인이 되어야겠지요. 그래도 명색이 대명이니, 기업을 일굴만한 재산은 있지 않겠습니까.”

“뭐. 알아서 살 길을 찾겠지.”

“예.”

‘그나저나 섬을 이렇게 떼어준다라...’

일본 막부와 대명의 속내를 파헤치자, 간단히 답이 나왔다.

“일본 본토의 무역항을 최대한 적게 만들려는 건가?”

“그렇지 않겠습니까? 무역항이 만들어지면 보나마나 아국의 영향력이 강해질 겁니다. 더욱이 조선군이 파병되면 혹시 모를 불안감이 더 커질 수도 있으니까요.”

“어차피 해군이 돌아다니는 건 똑같겠지만, 그래도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건 클 테니까?”

“예. 대명 입장에서는 같겠지만, 일본백성들 입장에선 또 다르지 않겠습니까.”

“충분히 그럴 거야.”

뭣도 모르는 영지민들이 보기엔, 난데없이 조선군과 조선인이 튀어나와 자기 땅에서 살고 있는 꼴.

다이묘의 위신이 어떻게 될지는 또 모르는 거고, 풍족한 조선의 물산에 물들어 버릴 수도 있지 않나.

이것저것 다 따져봤을 때, 차라리 그냥 섬을 내어주는 게 낫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막부에서 받아들일까?”

“육지항구라면 모를까. 섬을 두고 벌어진 일인데, 막부가 대명과 각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그들 또한 아국 군대가 일본본토에 많이 주둔하는 걸 부담스러워하지 않겠습니까.”

“흠... 그건 그렇긴 하네.”

막부가 다이묘를 통제하지 못하니 오히려 조선군이 다이묘를 통제할 목줄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다이묘가 조선군을 이용해 막부를 압박할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거니 줄타기를 잘해야 하고, 그런 측면에서 섬을 넘겨주고 무역항을 만드는 게 꼭 나쁜 선택만은 아니지.

무역이라는 이득은 챙기면서도, 서로가 손을 쓸 수 없게 떨어뜨리는 전략이니까.

물론 전쟁 발발 시 전선 코앞에 보급기지가 생겨난다는 위험이 있지만... 전쟁은 선택지에 없다.

싸우기로 마음먹는다면, 조선해군에게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것 밖에 없으니까.

“흠... 생각해보니 막부는 손해 볼 게 없잖아? 자신이 손을 쓰기 힘든 대명의 영지가 아국의 소유가 되는 건, 결과적으로 대명의 땅이 줄어든다는 말이잖아?”

“예. 아마 막부에서도 그걸 생각했을 겁니다. 대명이 힘이 줄어드는 건,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겠지요.”

땅을 뜯어내는 대신, 돈을 챙기는 걸 허락하는 꼴이다.

“호오...”

‘머리를 열심히 돌린 거 같은데... 이게 얼마나 큰 폭풍이 될 줄은 감히 예상도 못하는 모양이야.’

그는 자기도 모르게 또 다시 함박웃음을 짓고 말았다.

일본 어부가 울릉도 근처까지 온다고는 허나, 그건 사서에 남을 정도로 드물고 특별한 경우다. 자주 드나들었으면, 수백년의 역사 동안 그에 관한 자료가 수북하게 쌓였겠지.

이 시대엔 먼 바다로 나가는 어업이 없다시피 하니, 다이묘나 막부 입장에선 이 섬들의 존재감이 확실히 없다시피 한 모양이다.

허나 시간이 조금만 더 흐르면 어떻게 될까.

조선보다 일본에 더 가까운 섬을 조선땅으로 만들어버리면, 동해는 완전히 조선바다가 되는 꼴 아닌가.

조선전함이 중국바다를 순찰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명실상부하게 아예 조선바다로 인정되는 거지. 그것도 조선이 우기는 게 아니라, 일본이 먼저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나쁘지 않아....”

‘이러면 굳이 무역항을 거쳐 가지 않아도, 직항로를 더욱 깔끔하게 만들 수 있겠는데?’

연오랑은 자기도 모르게 지도에 손가락을 올리고 죽죽 그어봤다.

‘가장 크게 연결해 볼까?’

쓱쓱 움직이는 손가락은 큰 반원을 그리며 지도를 훑었다.

손가락이 지나간 경로는 무려 설주(블라디보스토크)-울릉도-오키섬-사도섬을 거쳐 혼슈 끝자락. 훗카이도의 남단에 닿는 게 아닌가.

“오...!? 이러면 일본 땅을 밟지 않고도, 일본열도의 최북단까지 갈 수 있는 겁니까?”

“그렇게 되지 않을까?”

연오랑의 손가락을 지켜보던 이정이 화들짝 놀라 감탄을 표했다.

‘이렇게 움직이면 일본의 눈치를 보지 않고서, 훗카이도로 진출할 수 있겠지. 다만...’

빈 땅이나 마찬가지인 훗카이도에 진출하는 건 큰 문제가 없을 테지만, 당장은 무리다.

안 그래도 할 일이 첩첩산중인데, 여기까지 일을 벌일 수가 있나.

남방이야 그나마 해군의 순찰경로가 엇비슷하니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뻗어나가는 건데, 동해로 전력을 투사하는 건 완전히 반대방향 아닌가.

지금의 해군전력으로는 꿈도 못 꾼다.

‘그렇겠지?’

연오랑은 그리 생각을 했지만, 혹시나 싶어서 묻고 말았다.

땅따먹기에 맛을 들린 조정이라면, 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설마 조정에서 여기도 욕심내고 있는 건 아니지?”

그가 지도에 얼핏 표시된 훗카이도를 짚자, 성억은 슬쩍 눈치를 살피며 말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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