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5. 챕터51. 뽑아먹다 (7)
“아무튼 구한다면 구할 수 있다는 뜻이군?”
“그렇습니다.”
이인이 마무리를 짓자, 장호 또한 긍정의 답을 던졌다.
이게 많이 이상한 것도 아닌 게, 훗날 오스만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공략할 때 사용한 우르반 대포는 헝가리 출신의 우르반이 만든 물건 아닌가.
물론 오스만제국은 이거 말고도 다른 작은 화포를 여럿 사용하긴 했지만, 어찌됐건 외국 엔지니어가 봉급을 받고 화포기술을 파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
사석포를 제대로 공성전에 쓰이기 시작한 이 시기의 서방에는, 일확천금을 꿈꾸는 공성엔지니어들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었다.
“지금 서방의 전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그 기사라는 자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상인들의 입에서 많이 나오던데...?”
“음...”
누군가의 물음에 장호는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을 정리했다.
딱 꼬집어서 뭐라 단정 짓기가 힘들었기 때문.
“군사제도와 병종이라는 건 사실 기후, 지리, 국가체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지 않습니까? 이곳 주치칸국이나 티무르칸국, 오스만국이 옛 원나라의 천호제를 변형한 체제를 유지한 것처럼 말입니다.”
“...”
모두는 냉큼 이해하고서 이어지는 말을 기다렸다.
장호의 말이 정답인 게, 유목민족이 괜히 경기병이 주력이 된 게 아니고, 정주민족이 괜히 징집보병이 주력이 된 게 아니다.
더불어 봉건제와 전제정의 차이에 따라 징집병을 끌어당기는 방법도, 이를 운용하는 방법도 차이가 나지.
“해서 아국은 이곳의 군사제도와 병종을 곧장 받아들일 수 없고, 서방의 기사제도 또한 그렇습니다. 그들은 전문무사인 동시에 토지에 대한 자치권을 가진 작은 호족이나 마찬가지니, 아국이 이를 수용할 수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렇겠지요.”
“음...”
사병을 다 때려잡고, 군호를 해체해 징집병 마저 없애버린 조선입장에선, 유럽식 군제와 병종을 받아들이면 오히려 시대를 역행하는 셈이다.
“그들이 전문무사라고는 허나 실질적인 무력에 있어서 과연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 확신할 수 없고... 대규모 군대를 상정한다면, 아국을 능가할 점이 있는지는 의심스럽습니다.”
“흠...”
“그런가?”
“실전경험은 그들이 더 많지 않겠소? 게다가 온몸을 감싸서 화살도 들어가지 않는 강철갑옷으로 무장한 무사들인데...?”
“글쎄요. 소규모 접전이라면 모를까. 대병끼리의 싸움에서 일신의 무력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하겠습니까. 특히나 갑옷이 이렇게 발전한 시대에 말이오.”
“실전경험에 있어서도 아국이 부족할 게 있습니까? 지난 시절동안 꾸준히 전쟁을 해왔고, 오히려 대병끼리의 전투는 아국이 더 익숙하지 않겠습니까?”
착호군 경험이 있는 터라, 두런두런 의견을 내뱉었다.
“다들 맞는 말씀입니다. 이곳까지 흘러들어온 서방기사의 이야기를 듣고 또 대련도 해봤는데, 연대병들의 실력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뒤떨어지는 면모가 적지 않더군요. 개별차가 큰 걸로 보이는데, 군대가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오...”
“일평생 전장을 전전해온 기사들과 비교해도, 연대병의 실력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라...?”
“호오.”
장호의 말에 분위기는 살짝 달아올랐다.
지난날 숱한 전쟁을 승리하면서, 이미 성과로 입증해서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이 낯선 땅에서도 먹혀들 줄은 몰랐으니까.
“하긴 형님이 가르쳤으니까.”
“맞습니다. 무기술 집체교육이라는 건, 그간 있지도 않은 훈련이지 않습니까.”
“무기의 제원을 규격화한 것도 영향이 있을 겁니다.”
“용연군 대감이야 뭐. 천하제일의 무사 아니겠습니까.”
이인이 히죽 웃으며 자랑하자, 다들 착호군 시절의 훈련이 떠올랐는지 고개를 절래절래 내저으며 한마디씩 덧붙였다.
“그렇습니다. 개개인이 알아서 전장에서 살아남으며 성장한 이들과 처음부터 끝까지 명확한 지도하에 실력을 키워온 연대병을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 아니겠습니까? 재능을 가진 이라면 차이가 나겠지만, 대규모 병력의 평균전력을 상정했을 때는 사정이 완전히 다를 겁니다.”
옛 조선군과 개혁 후 조선군을 모두 경험한 장호이니, 그의 말에는 신뢰가 담겼다.
연오랑의 훈련법은 시대를 거스르는 개념이니, 앞서나가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무리 병장기를 다루는 기술이 뛰어나도, 부상을 최대한 줄이고 신체를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훈련에 있어서는 극명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런 커리큘럼을 집체교육을 통해 대단위로 찍어내고, 상비군으로 운용하면서 일년내내 훈련을 시키고 있으니... 과장을 조금 보태면 연대병 한명 한명이 전부 기사급 무력을 가진 셈이지.
“하여튼 한마디로 비유하면, 기사라는 이들은 일본의 가신무사나 중국호족의 사병과 비슷한 처지라고 보면 되겠군?”
“무장상태나 일신의 무용은 차이가 있겠지만, 큰 틀에서 보면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시를 던지자, 장호는 냉큼 받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일신의 무용을 뽐낼 전장을 찾아다니고, 전장에서 눈에 띄어 군주에게 소속되어 땅을 부여받고, 필요할 때 소집에 응해 전쟁에 참가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일본무사나 중국사병과 흡사하고, 조선은 그걸 보면서 “충의 의미도 모르는 후진적인 놈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조선군은 이들을 다 때려잡았기에, 살짝 얕보는 면이 있는 게 사실.
표정이 묘해지는 걸로 보아,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군제나 실력은 그렇다 치고, 무장은 어떤가?”
“말씀드렸다시피 무장에 있어서는 참고할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강철갑옷을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다만 갑옷과 무기는 서로 영향을 주며 발달한 탓에, 이곳의 무기를 아국이 곧장 받아들여 사용하는 건 무리겠지만... 그럼에도 정보를 모아서 옥석을 가릴 필요는 있습니다.”
“음...”
유럽은 판금갑옷을 상대하기 위해서 아밍소드나 롱소드로 대표되는 무장을 사용했고, 또 그 형태도 시대에 맞춰 변형되고 있다.
개혁이 진행되면서 두정갑을 중심으로 통일된 조선의 무기에 비하면 장단점이 확실하니, 뭐가 낫다 모자르다를 판단하는 건 시기상조다.
“병장기를 구입하는 건 큰 문제가 안 될 거고... 무기술 교본이나 기술도 배울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상인들이 고용하는 용병들의 경우에는 어중이떠중이들이 많아 보이는데, 바다 건너 서방에서 흘러들어온 기사출신도 상당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은 돈을 받고 일하는 이들이니, 모집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겁니다.”
“로마국이나 해양국가가 오스만국과 싸우기 위해 고용한 이들이 이미 있을 테니까?”
“예. 어차피 같은 돈을 준다면 목숨 걸고 전쟁터에 나가는 것보다, 차라리 이곳으로 와서 몸 편히 있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거참.”
“흐음...”
용병이야기가 나오자 다시금 표정이 묘해졌다.
다만 장호의 말이 틀린 게 아닌 것이, 프리랜서라는 말은 주군을 찾지 못해 떠도는 용병기사, 방랑기사에서 비롯된 말 아닌가.
그만큼 떠도는 칼잡이가 꽤 있다는 뜻이고, 전장을 찾아서 동유럽, 동로마제국까지 흘러들어오는 서유럽기사들이 은근히 있었다.
다만 이곳은 그들에게 낯선 이교도들의 땅이자 미지의 땅이니 쉽게 넘어오진 않겠지만... 어차피 몸뚱이 하나 믿고 전장을 떠도는 이들이라면 모험심도 충만할 터, 마냥 부정적인 제안은 아닐 거다.
“좋아. 그건 지금처럼 계속 진행하면 될 거고... 다른 특기할 부분은?”
“쇠뇌와 활. 마차와 수레입니다.”
“쇠뇌라...”
“여긴 아국과 비슷한 활을 쓰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로마국을 비롯한 서방은 쇠뇌가 중국이나 아국보다 발달해 있더군요. 갑옷이 튼튼해서 일수도 있고, 활을 다루는 게 힘들어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됐건 쇠뇌가 발달한 건 사실입니다.”
“하긴 아국은 쇠뇌를 잘 안 쓰긴 했으니...”
“전함에 달린 대형쇠뇌는 사실 쇠뇌라고 부르기도 뭐하지 않습니까?”
장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반론의 의견은 나오지 않았다.
옛 신라시대에 천보노가 있었다곤 허나 기술이 실전된 지 오래. 중국에서 흘러들어온 쇠뇌가 있긴 한데 활에 밀려서 자리를 잃어버렸다.
반대로 타나항의 원래 주인이었던 제노바에는 아예 전문 쇠뇌병으로 구성된 용병단까지 있을 정도 아닌가.
배워서 나쁠 건 전혀 없다.
“활의 경우에는 서방에선 장궁을 주로 사용하고, 이곳에선 아국의 각궁과 비슷한 활을 사용하더군요.”
“장궁이라... 일본활이나 중국활과 비슷한 건가?”
“형태는 비슷하나 서방의 활이 더 나은 걸로 보입니다.”
이 또한 이미 실험을 해봤기 때문에, 장호는 확신을 실어 답을 했다.
“호오...”
“흠. 연대병이 장궁을 쓰는 게 효과가 있겠소? 기병이 쓰는 건 무리가 있을 텐데?”
“맞소이다. 일본활조차 연대병이 쓰기 힘들어서 폐기한 것 아니오?”
“하지만 각궁보다 목궁이 훨씬 싸고 편하지 않습니까?”
활에 진심인 민족답게, 다들 한마디씩 덧붙였다.
잉글랜드 장궁병이 워낙 유명해서 그렇지, 유럽에서도 장궁은 널리 쓰이는 무기였다. 당연히 운용법도 발달해서, 기후와 풍토가 다른 일본,중국의 장궁보다 훨씬 나은 위력을 보였지.
“다 맞는 말씀입니다만 그래도 손해 볼 건 없지 않습니까? 바다 건너에서 큰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곳에서 장궁병의 활약이 크다고 들었습니다.”
“나도 듣기는 했소만, 그리 큰 전쟁은 아닌 것 같던데?”
백년전쟁에 대한 소문은 당연히 여기까지 퍼져 있었으니, 조선인들이 아는 게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다만 동방과 서방의 병력동원수는 워낙 차이가 많이 나지 않나.
조선조차도 지금까지 만 명이 넘는 기병을 동원하면서도 대전쟁, 큰전쟁이라는 말을 안 했으니, “고작 그거 가지고 호들갑이야?”라는 어처구니없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그야 아국 시선으로 봐서 그런 거고, 나라가 잘게 쪼개진 서방인들이 체감하는 건 다르겠지요.”
“그럴 겁니다. 특히나 봉건제를 취하고 있으면 병력동원이 쉽게 되겠습니까.”
자기들끼리 또 토론이 이어가려고 하자, 장호는 얼른 말을 이어 붙였다.
“하여튼 전쟁이 벌어졌는데, 이곳에선 적목(주목朱木)을 주로 사용한다고 하니 살펴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적목이라.”
“민간에서 사용하는 목궁 중에서 적목으로 만든 활이 있다고는 들었소만...?”
“그래도 다른 좋은 용처가 있는 적목을, 굳이 활을 만드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고 들었소이다.”
영국 장궁의 주재료가 주목이었는데, 조선에서도 주목은 자생했고 이걸 보통 적목이라 불렀다.
활로 만들어 쓰긴 했는데, 그보다는 붉은색 빛깔이 아름다워서 일반적으론 가구나 관을 만드는데 주로 사용됐지.
“나쁠 건 없지 않소이까? 어차피 온갖 나무로 죄다 목궁을 만들어서 쓰는데, 이곳의 목궁제조기술을 배워가는 것도, 이곳에서 자생하는 적목을 가져가는 것도 나쁠 건 없을 겁니다.”
누군가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지금 역사에서의 조선도 활에 진심인 나라라서, 연대병이 아니더라도 민간에서는 활을 유희삼아서 쏘고 있었다.
주목으로 만든 장궁이 여기에 끼어드는 건,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지.
“다만... 전장에서 유용함을 드러낸 무기라면, 쉽게 구하기 힘들지 않겠소?”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누군가 반문을 던지자, 장호가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영국 장궁이 효과를 발휘한 건 다른 나라들 모두 알고 있었고, 전쟁이 오래 진행되면서 장궁제조기술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본격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건, 장궁병을 숙련시키는 게 힘들었기 때문. 활 기술자와 활 자체를 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아 보였다.
“다음으로 주목할 점은 이곳의 각궁입니다. 지금도 주치칸국의 장인들을 통해 활제작기술을 배우고 있는데, 아국의 제작방식을 보완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스만국이나 티무르칸국의 장인도 얼추 수소문하고 있는데, 이 또한 어렵지 않을 걸로 보이고 있습니다.”
“오...!”
“호오?”
“정말이오?”
이번 건 나름 충격을 줬는지, 하나같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장호를 바라봤다.
군부가 창설된 후. 각궁은 조선군의 제식무기가 되어 통일된 규격으로 생산되고 있었다.
그간 문제가 되었던 건 물소뿔과 아교.
다만 물소뿔은 수입이 자유로워지면서 수급의 어려움은 없어졌고, 남주도에서 물소를 직접 키우는 이상 앞으로도 문제될 건 없었다.
아교는 접착제인데 보통 어교라고 하여 물고기 부레를 주로 사용했다. 민어 부레를 최상으로 쳤는데, 무지막지하게 불어난 각궁의 수요에 맞춰 민어를 잡는 게 될 턱이 있나.
천만다행으로 대안이 된 건 수산기업. 무지막지한 양의 생선을 잡아들이면서 챙긴 생선 부산물을 어교로 만들어서, 각궁을 만드는 데 써먹었지.
“각궁이 제식무기가 되고, 저격연대의 주도하에 각궁의 유지보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오지 않았습니까.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
“허허.”
다들 아는 사안이라서 감탄만 절로 나온다.
각궁은 다 좋은데, 습기에 취약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습기가 많으면 아교의 접착력이 떨어져서 장력이 줄어들고, 재수가 없으면 활 몸체가 분해될 수도 있기 때문.
이걸 해결하기 위해 그간 백방으로 노력했고, 저격연대 소속 저격병들과 활장인들은 얼추 해결책을 찾아냈다.
몽골과 여진의 활은 같은 복합궁이면서도 각궁과 조금 달랐고, 그 구조나 제작방식도 다르지 않았나.
이들은 활에 옻칠을 하고 마감질하는 방식을 달리해 습기에 대한 저항력을 높였는데, 그걸 적용해 각궁의 약점을 보완해 왔었다.
여기에 추가로 또 다른 해결책이 등장했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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