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386화 (386/538)

386. 챕터51. 뽑아먹다 (8)

“아교를 대체할 물건을 찾았다는 뜻이지요?”

“대체하는 건 불가능할 거요. 어차피 아교의 재료는 거기서 거기일 테니까, 다만 더 효율이 좋은 방법이 있겠지요.”

“그렇지 않겠소이까? 이곳에서도 복합궁을 널리 사용하니, 당연히 이곳에 맞는 아교가 있을 겁니다.”

“허나 이곳과 아국의 기후가 달라, 아국에서도 써먹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군요.”

다들 흥분해서 한마디씩 곁들였다.

애초에 복합궁은 말 위에서 사용하기 편하려고, 작은 크기로 큰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 발달한 물건. 유목민족에 바탕을 둔 이곳 사람들이 복합궁을 사용해 온 건 당연한 말.

여기에 몽골제국이 등장하면서 동,서방의 교류가 이어져 더욱더 발전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 결과. 미래의 터키활이나 몽골활, 조선활등이 죄다 비슷한 형태와 구조를 갖추게 되지 않나.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었고, 그 대안책을 조선이 흡수할 수 있게 된 거지.

“맞습니다. 아교에 쓰이는 재료도 차이가 있지만, 들어가는 양이나 만드는 방식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더군요. 이곳 기후가 습하지 않아 신경을 덜 쓴 부분도 있지만, 반대로 워낙 다양한 기후에서 사용되다보니 아국이 알지 못한 방법이 그만큼 많았습니다. 뭐가 됐든 뽑아내다보면, 효과가 있지 않겠습니까?”

“...”

장호가 그렇게 마무리를 짓자, 다들 오뚝이처럼 고개를 끄덕여댔다.

“아교와 마찬가지로, 방수안료 또한 다른 걸로 알고 있는데 그것도 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교 자체가 습기에 저항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차적으로 활에 코팅을 해서 습기를 차단하는 것도 중요한 법.

이를 위해 옻칠, 주칠朱漆, 흑칠 등을 했는데, 여기서도 비슷한 원리로 사용되는 방수재료가 존재했다.

“...”

“그런데...”

다들 신나서 한마디씩 하고 있는 와중에, 재정부의 정갑손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재정부 관원답게 돈 걱정을 먼저 한 걸까?

그는 강철갑옷이 제식갑옷이 되면 얼마나 많은 비용이 지출될지, 각궁을 전면개량하면 비용이 어떻게 될지 계산하고선 얼굴이 살짝 해쓱해진 모습이었다.

“각궁에 칠을 하면 그 성능과 수명이 떨어지는 걸로 알고 있는데, 강철갑옷은 각궁으로 쏜 화살도 막을 만큼 튼튼하다고 하지 않았소? 헌데 각궁을 그렇게 전면 개량하는 게 과연 도움이 되겠소이까? 물론 개량하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그는 한마디 덧붙이다가, 다른 동료들의 눈초리에 슬쩍 말소리를 죽였다.

“맞는 말씀입니다만 강철갑옷이라고 해서 무적은 아닙니다. 용병기사의 말을 들어보니, 서방의 전장에서도 궁병대를 활용해 기사들을 상대했다고 하더군요.”

장호는 그가 들었던 백년전쟁 당시의 전황을 가볍게 풀어놨다.

마갑을 전부 철갑으로 덮을 수 없는 노릇이라서, 궁병대는 전마를 노려 기사들을 낙마시켰다.

판금갑옷은 둔기류에 약하다는 편견이 있지만, 사실은 어불성설이다.

투구를 때려 뇌진탕을 일으키지 않는 이상, 전투망치나 전투도끼의 뾰족한 정으로 내려찍는 게 아니면 갑옷을 뚫고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건 힘들었다.

그러니 낙마한 기사들을 보병대가 머릿수로 짓눌러 상대해야 했지.

같은 이치로 기사와 기사끼리 맞붙는 경우에는 직접 타격을 주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먼저 쓰러뜨리기 위해서 갑옷레슬링 기술이 발전했고.

쓰러진 적을 쉽게 상대하기 위해서, 단검과 같은 무기가 부무장으로 자리 잡았지.

“다만 모든 병사들이 전부 강철갑옷으로 무장하지 않았고, 병종과 신분계급에 따라 천차만별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니 설령 각궁으로 강철갑옷을 뚫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궁병대의 효용은 분명히 있지 않겠습니까?”

일격필살이 아니어도, 화망을 형성하는 건 분명한 효과가 있다.

“더욱이 아국의 잠재적 적국 중에서 강철갑옷으로 무장한 세력이 없지 않습니까? 강철갑옷은 이곳에서도 이제 막 대량생산을 시작한 신문물이니까요. 각궁은 여전히 효과가 있을 겁니다.”

“음...”

“흠.”

다들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어, 열심히 머리를 굴려댔다.

지금 조선의 잠재적 적이라고 한다면, 몽골,중국,일본,남방소국 정도가 될 터.

몽골,일본,남방소국의 야금술과 기술력, 철광석의 존재유무를 생각하면... 알고 있어도 만드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거다.

‘하지만 중국은?’

‘중국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관원들 모두는 똑같은 상상을 하고 말았다.

군병을 강철갑옷으로 무장시키는 건 천문학적인 금액이 소모될 거다.

허나 지금 중국은 호족중심의 체제로 변하면서, 대규모 군병이 아닌 소수정예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물론 머릿수가 워낙 많아서 소수정예라고 해도, 다른 나라의 정규군과 비슷한 머릿수를 자랑하긴 하지만... 어쨌든 그랬지.

“그렇게 볼 때. 이곳의 강철갑옷이야 말로 어쩌면 중국호족이 반길만한 물건 아닙니까? 정예병인 호족사병은 강철갑옷으로 무장하고, 징집병은 보조군이 되는 형태로 말입니다.”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도 그럴 겁니다. 그곳은 이곳의 체제와 엇비슷하니 오히려 받아들이는 게 더 빠르지 않겠습니까?”

다들 같은 생각을 했는지, 비슷한 의견을 털어놨다.

“그러니 강철갑옷이 중국과 일본으로 흘러들어가는 걸 막아야 하겠군요.”

“생각처럼 쉽진 않을 겁니다. 아국 내에서야 관리 통제를 할 수 있다지만 아국이 타국의 무역을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디서 어떻게 거래되는 지도 알 수 없는 노릇 아닙니까?”

“중국과 일본상인이 창주까지 와서 거래하는 건 불가능하니, 한동안은 비밀이 유지되지 않겠습니까?”

“그럴 겁니다. 오스만국과 해상국가는 적대관계이니 그곳을 통해 기술이 흘러가는 건 힘들 터, 허면 남방의 바닷길을 통해서 강철갑옷이 팔리는 경우도 힘들지 않겠습니까?”

“다 이치에 맞는 말씀이지만, 돈으로 안되는 게 없으니 또 모르는 일 아니오?”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놨고, 이내 곧 다음 우려로 이어졌다.

“만약 중국의 군대가 강철갑옷으로 무장한다면, 조선의 전력이 우위를 점할 수 있는가?” 하는 점.

모두가 같은 상상을 했는지, 서로 눈을 맞추며 한마디씩 던졌다.

“쉽지 않아요. 쉽지가.”

“허나 강철갑옷의 효용은 전마에서 나오고, 그래서 서방에는 기사라는 전문무사가 활약한 것 아닙니까? 아무리 방호력이 뛰어나도 기동력이 부족하면 한계가 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설명을 들어본 바. 강철갑옷은 두정갑에 비해 보수는 쉬워도 관리는 까다로운 것 같은데, 보병 위주의 군대가 강철갑옷으로 무장하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중국의 머릿수를 생각하면 어떻게든 해내지 않겠소? 특히나 섬서몽골과 대립하고 있는 사천,호광,하남의 호족들은 어떻게든 우위를 점하기 위해 발악을 할 겁니다.”

“그렇소이다. 그쪽은 야전은 철저히 피하고 수성에 집중하고 있으니, 강철갑옷의 효용성은 더욱 올라갈 겁니다.”

“음.”

“끄응...”

얼추 지금 당장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뭔가 시원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아서 앓는 소리가 진동했다.

그런 분위기를 용케 알아차린 걸까? 박강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연대병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말이 나왔습니다.”

연대병들은 직접 강철갑옷을 상대해야 했을 테니, 더욱더 머리가 아파졌을 터. “이걸 어떻게 하면 쉽게 처리할 수 있을까?”라고 열심히 머리를 굴려댔을 거다.

“해결책이라고 하긴 뭐 하지만, 간단한 방법이 있었습니다. 서방총통을 사용하니 쉽게 무력화 시킬 수 있더군요.”

“...?”

모두의 시선은 탁자 위에 올려 있던 핸드캐논에 닿았다.

“실험을 해봤는데... 이곳의 화약은 아국은커녕 중국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는데도, 충분히 효과가 있더군요. 아. 그래도 혹시 몰라서 화포장인을 구하면서 화약장인도 함께 구해오고 있습니다.”

박강은 싱긋 웃으며 답을 했지만, 모두의 찌푸린 주름은 쉽게 퍼지지 않았다.

“총통이라...”

“총통은 그 효용에 한계가 있는 물건 아니었소? 유효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사거리가 무척 짧은 걸로 알고 있는데.”

“맞소. 사거리도, 조준도, 소모하는 화약의 양도 그렇소이다.”

“당장 각궁에 미치지 못해서 화기대에서만 사용하는 걸로 알고 있소만...”

화포의 발전에 비하면 총통의 발전은 거의 제자리걸음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

원래 역사에서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욱더 활에 비해 부족한 점이 많았다.

“모두 맞는 말씀입니다만... 이런 갑옷이 있는 줄은 몰랐죠.”

“...”

너무도 당연한 말에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하기야 온몸을 강철로 꽁꽁 감싸는 갑옷이 튀어나올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다른 모든 단점을 상쇄하더라도, 화력만큼은 총통이 활에 비해서 우위를 점하고 있으니... 강철갑옷을 상대하기 위해선, 어떤 식으로든 총통의 개량이 있어야 할 거다.

“끄응...”

모두가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정갑손은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내질렀다.

지금도 화기대가 소모하는 화약을 보충하기 위해서 피똥을 싸고 있는 게 재정부인데, 만약 총통이 화기대가 아닌 일반 연대병에게까지 제식무기로 퍼진다면... 그 보급은 어떻게 해야 할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어찌됐건, 화약무기를 사용하면 강철갑옷도 능히 상대할 수 있단 말이군?”

“예.”

조용히 토의를 지켜보고 있던 이인이 한마디로 결론을 내려줬다.

“여기서 우리끼리 논의를 해봐야 의미도 없지 않나? 우리가 할 일은 하나도 빠짐없이 조사해서 조정으로 보내는 일일세. 결론은 조정과 군부에서 내리겠지.”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할 일을 미루는 것 같아 보이지만 맞는 말 아닌가.

다들 냉큼 고개를 끄덕였고, 다음 수순으로 넘어갔다.

“우선...”

뒤이어 입을 연건 농업부와 축산부를 대표하고 있는 최만리.

이곳은 조선과 완전히 다르니 모든 작물이 낯설고 신기할 따름.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걸 조선으로 가져가 이식할 생각이었고, 그 중에서도 당장 가져가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사안만 입에 올렸다.

“이걸 보시겠습니까.”

그는 천 쪼가리 몇 개를 관원들에게 넘겨줬다.

다들 손으로 쓰다듬으며 살피는 와중에, 최만리는 설명을 이어갔다.

“이곳에서 흔히 쓰는 천입니다. 아마포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아마포?”

“천? 면포란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서방은 생각 외로 목화를 직접 재배하는 곳이 드물더군요.”

“오...”

“하긴.”

다들 한편으론 의아해 하면서도, 한편으론 납득했다.

조선은 고려 말 때 목화를 들여온 후에 면포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개혁이 시작되면서 제대로 성장하지 않았나.

서방에 면포가 없는 건 이해할 수 있는 사안이다.

“그 대신 사용한 물건이 바로 이것입니다. 아국의 대마나 저마와는 품종이 다르지만 꽤 쓸만한 것 같습니다.”

최만리가 소개한 물건은 미래에 린넨이라 불리는 물건으로, 이 시기에도 면과 마 중간쯤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호오...”

“신기하구려.”

“마보다는 훨씬 더 까끌까끌한 것 같은데...”

“그렇소이다. 면포에 비슷할 정도로 촘촘하군요.”

“아국에 쉽게 적응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이곳은 물론이고 서방 어디서든 키우고 있는 작물이라서 기후를 크게 가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목화에 비해 물도 더 적게 먹고요.”

“오...”

아까와 달리 이번 사안은 긍정적인 내용만 가득해서인지, 다들 자기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목화와는 또 다른 특징이 있으니, 키우는 건 나쁘지 않겠구려.”

“그렇습니다. 목화가 마직물에 비해 뛰어난 점이 많지만 그럼에도 없어서 나쁠 건 없지 않습니까? 목화실과 이 아마실, 그 외에 다른 마실과 혼방에서 사용하면 다른 형태의 면포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물을 적게 먹고 기후를 가리지 않는다면, 북방에서 키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고...?”

“그렇습니다.”

다들 냉큼 고개를 끄덕여댔다.

만주 땅에 어떻게든 돈이 되는 작물을 심는 건, 지금 조선의 중점사안이니 충분히 가치가 있는 물건이었다.

“그리고...”

최만리는 뒤이어 웬 종이를 내밀었고, 다들 바쁘게 눈과 손을 놀려 살펴봤다.

색감은 조선의 한지보단 못하지만 그래도 밝은 편이었고, 촉감은 거칠어서 흔히 쓰는 혼합지의 느낌과 닮아 있었다.

“서방에서 쓰는 종이입니다.”

“으음?”

“이곳의 종이는 오스만국에서 만든 걸 최고로 치는 것 같은데, 서방의 종이도 나쁘지 않더군요. 그리고 이 종이를 만드는 데 아마가 들어갑니다.”

“오호!”

“아...!”

다들 뜬금없이 종이는 왜 꺼냈나 싶었는데, 이런 이유가 있었다.

“설마...?”

관원 중 누군가가 화들짝 놀라서 연필을 들고 종이에 글씨를 적어 내려갔는데, 찢어지지 않고 잘 묻어나는 게 아닌가.

“역시 내 생각이 맞았군!”

“오!”

다들 그 모습을 보기 무섭게, 냉큼 따라서 손을 놀려댔다.

서방 상인들이 깃털펜으로 글씨를 쓰는 걸 본 적이 있어서, 혹시나 싶어서 따라해 봤는데... 이곳 종이는 한지와 달라 연필로도 충분히 쓸 수 있었다.

“이거면 혼합지를 대체할 수 있겠군요!”

“그렇지 않겠습니까?”

누군가 품에 끼고 있던, 반쯤 접힌 공책을 흔들며 외치고 말았다.

수첩 정도로 크기를 줄인 혼합지 공책과 연필은 어느덧 관원들의 필수품이 되지 않았나.

이 누리끼리한 공책은 한지에 비하면 뭔가 지저분하고 격이 떨어지는 느낌을 줬는데, 이제 그 미진함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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