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395화 (395/538)

395. 챕터52. 판을짜다 (9)

교황청의 경우에도 멀리 떨어져 있는 건 마찬가지겠지만... 이미 획일화된 조직이 구축된 이상, 사제들을 데려가더라도 자신들의 입맛대로 바꿀 수 없으니 거부하는 것일 테다.

‘하지만... 마냥 이상하게 볼 것도 아니군.’

신앙의 문제를 조금 미루고 정치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정교회 교구들은 조선에 자신의 종교가 퍼지는 걸 결코 마다하지 않을 거다.

안 그래도 중동아랍, 중앙아시아의 이슬람교와 서유럽의 카톨릭 사이에 껴서 밀리고 있는 정교회다.

교세는 가뜩이나 줄어들고 있고, 본산이라 할 수 있는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제국에게 직접적인 위협을 받고 있는 지금.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를, 저 먼 동방의 나라에 자신의 종교가 들어간다는 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진 않더라도, 적어도 기세를 올릴 수 있는 희망쯤은 되지 않을까.

“봐라. 저 낯선 동방인들도 우리의 종교가 뛰어남을 알고 받아들였다!”라고, 외부에 떠들어 댈 순 있을 테니까.

“그래서 정교회 사제들을 그렇게 많이 끌어들인 건가?”

“어차피 로마국의 문물을 확인해 봐야하니, 겸사겸사 진행한 겁니다. 교황청의 사제들도 같은 맥락으로 불러들였고요. 둘을 같이 모아두니 난리도 아니던데... 아국이나 귀국에게 나쁠 건 없지 않습니까?”

“음...”

태연자약하게 무서운 말을 늘어놓고 있다.

동로마와 서로마가 분리되고 카톨릭과 정교회가 쪼개진 후에, 원수사이나 다름없게 된 두 종파 아닌가.

헌데 그들을 한 자리에 모아뒀다는 말에, 고개가 절로 내저어졌다.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그런 그들이 한 걸음에 여기까지 마중 나와야 할 정도로 조선물산이 매력적이라는 뜻이자, 하나라도 더 자신의 편이 되어줄 동맹을 찾는 거겠지.’

이인의 말처럼 이건 종교문제를 떠나서 정치문제와도 엮여 있는 터라, 킵차크 칸국에게도 결코 나쁜 상황이 아니었다.

“귀국도 아국의 방법을 따라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겁니다.”

“어차피 사제들의 권력을 빼앗고 찍어 눌러야 하니, 기존 교구보단 우리만의 교구가 있는 게 낫단 말이군?”

“그렇죠. 이건 교리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의 문제 아닙니까? 나아가 로마국의 체제와 학문을 뽑아먹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그들이 좋아할만 한 미끼를 던져주는 것도 결코 나쁘지 않을 겁니다.”

“고심해보지.”

“예.”

이인은 다시금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도 말했듯이... 이미 칸과 조정이 결정을 한 이상 더 논의할 필요가 없는 문제지만, 바카스는 다음 대 칸이 될 인물.

그의 마음을 돌려놓는 건 정책의 연속성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었기에, 이인은 혀가 아픈 걸 마다하고 열심히 입을 놀려댔다.

“그리고... 다른 사안도 들으셨겠지요?”

“...”

앞뒤 다 자르고 하는 말이건만, 바카스는 속뜻을 알아듣고선 이를 갈았다.

이인은 바카스가 노기를 억누르기를 기다리며 침묵을 지켰고.

“후...”

이내 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선 씹어 먹듯 말을 내뱉었다.

“티무르 칸국과의 화친을 말하는 거겠지?”

“예. 칸께서 결정하신 일입니다.”

“알고 있다.”

“...”

“...”

‘다행이군. 역시 사리분별을 못하는 인물은 아니야.’

이인은 못마땅해 하면서도 입을 다문 바카스를 보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티무르 제국은 일 칸국이 분열된 후에 티무르가 등장하면서 생겨난 나라고, 일 칸국과 킵차크 칸국은 오래된 은원이 있었다.

형식적으로 남아 있던 일 칸국이 완전히 분열되어버린 것도, 킵차크 칸국의 침공 때문이기도 했으니까.

반대로 티무르가 등장하고 나서부턴 킵차크 칸국이 박살났고, 그 덕에 바카스의 선조인 에디구가 권력을 잡게 됐지.

문제라면 에디구는 티무르의 후원이자 지배를 받으며 권세를 키웠고, 이 때문에 킵차크 칸국의 혼란을 어느 정도 제어했음에도 배신자 소리를 듣지 않았나.

티무르 사후에는 누르알딘이 등장해 티무르제국의 그림자를 지워내긴 했지만, 둘 다 난장판이던 시절에도 충돌은 계속해서 이어져 왔었다.

그리고 지금. 둘은 각자의 영역에서 내치를 하기 바빠서 냉전 비슷한 상황을 유지하고 있었으니... 이제 와서 티무르제국과 손을 잡는 건,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던 거지.

“이는 방금 말했던 로마국과의 연계와 이어지는 사안입니다.”

“...”

“이곳에서 정세를 살핀 우리가 판단하기로, 귀국이 가장 가깝게 손을 잡아야 할 나라는 로마국과 해상국가입니다.”

이인은 그렇게 서두를 떼고서, 회의석상에서 나왔던 이야기를 세세하게 풀어냈다.

지속적인 식량 확보, 중앙집권을 위한 행정망 구축, 이를 위한 학문, 체제를 흡수하고 정비하는 일.

이 모든 걸 가능케 해줄 수 있는 기본 전제는 동로마제국 및 해상국가와의 연대다.

“종교에도 영향을 줄뿐더러, 중앙집권에 가장 큰 도움이 될 거라는 건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맞다.”

“허면 안타깝게도 귀국의 선택지는 하나밖에 남지 않습니다. 로마국,해상국가와 손을 잡는다는 건, 그들이 맹렬히 적대하는 오스만국과도 적대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

바카스도 아는 이야기인터라,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어차피 남의 나라일인데 굳이 깊게 발을 담가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오스만제국은 절대 콘스탄티노플을 포기 하지 않는다.

그들은 술탄에 즉위할 때. “콘스탄티노플을 수복하여 정당한 로마의 후계자가 된다.”라고 아예 선언을 하고서, 술탄 직에 오르지 않나.

그 자리를 지키게 해주는 명분이니, 전쟁은 절대 끝날 수가 없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완전히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귀국이 오스만국을 적대할 마음이 없다고 한들, 오스만국은 그렇게 보지 않을 겁니다.”

“끄응... 그들이 보기엔 꺼져가는 심지에, 우리가 불을 붙이는 걸로 보일 테니까?”

“그렇지요.”

이인은 현실을 깨닫고 앓는 소리를 내는 바카스를 보며, 기세를 얻고서 얼른 말을 이어갔다.

“타나항이 개방되어 무역이 시작된다는 건, 그들의 이문은 물론이거니와 흑해의 주도권이 완전히 해상국가에게 돌아간다는 걸 뜻합니다. 나아가 귀국이 크림 일대를 완전히 복속시키면 서쪽에 대한 영향력 또한 커져가겠지요. 벌써부터 해상국가가 아닌, 다른 나라의 상인도 오고 있지 않습니까?”

“불가리아와 왈라키아, 몰다비아를 말하는 거겠지?”

“맞습니다.”

이인은 이 조그마한 땅덩이에 뭔 나라가 이렇게 많은지 어지러웠지만, 바카스는 그가 직접 겪었던 역사이기에 바로 집어낼 수 있었다.

왈라키아와 몰다비아는 미래에 루마니아와 몰도바 지역에 위치한 나라다.

킵차크 칸국 입장에선, 크림반도의 서쪽에 바로 붙어 있는 곳이지. 배타면 한나절이면 올 수 있는 거리에 위치에 있다.

이 세 공국은 오스만제국의 침공으로 인해 다 박살나서, 속국이 되었었는데... 티무르가 등장해서 오스만제국을 빈사상태로 만들어버렸으니, 속국이었던 이들이 당연히 꿈틀거리지 않겠나.

오스만제국은 혼란기를 거쳐서 다시 부활하고 있는 중인 터라, 강하게 압박하면 튀어나올 걸 우려해서 상당히 느슨하게 대해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헌데 해상국가와 귀국이 거래를 지속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

“나아가 세 공국과의 거래도 확대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더 말해 뭐할까.

해상국가가 동방물산을 팔아서 돈을 벌면 벌수록 흑해의 제해권은 강력해지니, 반대로 흑해 건너편에 위치한 세 공국에 대한 오스만제국의 영향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오스만국은 결코 그걸 좌시하지 않을 테니, 귀국은 어쩔 수 없이 이 정세에 끼어들 수밖에 없을 겁니다. 허면 편을 정해야 하는 데... 해상국가의 편을 들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휠씬 이득일 테니까요.”

“어차피 손을 잡을 거 어중간하게 잡지 말고 제대로 잡아서, 오스만국의 흑해 북부에 대한 영향력을 줄이자는 거군? 기왕이면 세 공국이 다시 독립하는 게 최선일 테고.”

“그렇습니다.”

이인은 알아서 잘 따라오는 바카스를 보며, 다시금 히죽 미소를 지었다.

“또한 타나항에서 무역을 허락함으로서 세 공국을 지원하는 건, 단순히 오스만국을 견제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바다 건너 서방으로 가는 무역로를 열 수 있게 되는 거니, 해상국가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선택지가 생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인은 은근한 목소리로 부추겼고, 바카스는 자기도 모르게 또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해상국가는 어차피 이곳에서 물건을 사서 서유럽에 가서 팔았다.

만약 세 공국을 거쳐서 육로로 무역로를 완성하면, 곧장 헝가리, 신성로마제국으로 연결될 수 있지 않겠나.

새로운 무역로가 완성된다면, 물건을 사가는 해상국가에게 목줄이 묶여 끌려 다닐 필요가 없어지는 거지.

갑과 을이 한순간에 뒤바뀌는 상황이 펼쳐질 거다.

“더불어 리투아니아와 루스국을 공략하는 작업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요.”

“음...”

갑자기 단호해지는 어투에, 바카스는 살짝 짓눌린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

이건 꼭 “노예무역은 반드시 유지되어야 하니, 방금 말한 제안은 권고가 아니라 통보다.”라고 들렸으니까.

크림반도 및 우크라이나를 놓고 대립하고 있는 리투아니아의 힘을 빼기 위해서라면, 양면전선을 만들어내는 게 최고.

동쪽에서 킵차크 칸국이 압박하고 서쪽에서 세 공국이 독립하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리투아니아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마지막으로 오스만국을 견제해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아국에서 가져오는 동방물산 중에서, 오스만국이 서방으로 파는 물산과 겹치는 품목이 꽤 되기 때문입니다.”

“그건 익히 아네.”

조선이 이곳에 오기 전엔, 이곳과 루스국으로 흘러들어가는 동방물산은 전부다 오스만국을 통해서 수입한 물건들이었다.

지금은 그걸 끊어버리고 조선이 등장한 상황.

“물론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가 해상국가와 직접적으로 거래하며 동방물산을 팔고 있긴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오스만국 또한 많이 팔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바카스는 불퉁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동의했다.

이 시기에는 향신료를 비롯한 동방물산을 오스만제국이 전부 독점하지 못했고,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가 홍해를 통해 더 많이 사들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인도를 거쳐 가져온 물건을 지중해로 옮겨 놓으면, 해상국가가 맘루크 왕조와 거래해서 유럽에 푸는 식이었지.

오스만제국은 이 무역선을 장악하기 위해서, 해상국가 및 맘루크와도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었고.

“헌데 이미 해상국가와 손을 잡은 맘루크 왕조를 건드리는 건 명분이 없고, 현실적으로 지중해 건너 반대편에 위치한 나라를 무슨 수로 견제하겠습니까.”

“그렇겠지.”

“아국이 이득을 보기 위해선 귀국이 이득을 보아야 하고, 귀국이 이득을 보기 위해선 결국 가까이에 위치한 오스만국을 견제해야 합니다. 군사, 정치적인 문제를 넘어서 재정과 관련된 사안이죠.”

“음.”

이 또한 이해가 되는 말.

초원길을 통해 넘어오는 동방물산 덕분에 이렇게 중앙집권을 진행할 수 있는 거니, 이건 절대로 멈추거나 줄어들어서는 안 된다.

“티무르 칸국과 화친을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칸께서도 그걸 납득하셨기에 그런 결정을 내리신 거고요.”

“...”

“과거의 원한청산과 미래의 번영. 둘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어느 쪽이 더 중요하겠습니까.”

“...”

바카스는 무거운 선택지를 던지는 이인을 보며, 표정이 일그러져서 부드득 이를 갈았다.

저런 식으로 말을 하면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당연히 미래를 택할 수밖에 없지 않나.

“그렇게나 이득이 된단 말이지... 확신하나?”

“확신합니다. 그래야할 이유가 한두개가 아니니까요.”

“...”

바카스는 이미 서신으로 보고 받아 알고 있음에도, 계속 말을 해보라는 듯 날카로운 눈빛을 뿌렸다.

“아까 말했듯이 오스만국의 재정이 충만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동방물산을 서방에 팔아서지요.”

“...”

서방의 귀족들이 향신료에 미쳐 사는 건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가 아닌가. 거기에 면직물 또한 고급의류였고, 비단은 더욱 말할 필요도 없지.

그 외에 중국 및 조선, 동남아시아에서 흘러들어오는 진짜 동방물산도 있었고.

“허면 그 동방물산이 어디에서 오고 있습니까.”

“인디아(인도)...”

“맞습니다.”

이인은 그렇게 말을 끝마치고서, 어설픈 지도의 남쪽을 손으로 짚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의 손가락은 타나항에서 시작해 티무르 제국을 지나, 인도 북부에 닿았다.

티무르 제국은 미래의 이란, 아프가니스탄, 북쪽의 투르크메니스탄 등을 전부 장악하고 있는 나라다.

그 말인 즉.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미래의 파키스탄 지역에 닿는다는 뜻이지.

“티무르 칸국이 여기에 끼어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 오스만국과 맘루크 왕조로 흘러들어갈 동방물산이 티무르 칸국으로 흐르겠군.”

“정답입니다.”

이인은 착실히 잘 따라오는 바카스를 보며 가볍게 박수를 쳤다.

이 시기의 인도는 티무르에 의해 북부의 델리 술탄 왕조가 망해서 분열된 상태.

남부와 동부 또한 온갖 소왕국으로 갈라져 있었다.

허나 이런 상태에서도 무역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었는데, 특별히 거창한 까닭이 있는 건 아니었다.

인도는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수많은 소왕국들이 생겼다가 망하면서 통합과 분열을 거듭해왔기에, 아이러니 하게도 델리 술탄 왕조가 망한 건 무역에 있어서 큰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

사실 델리 술탄 왕조라고 칭하기는 하지만, 그 안에서도 왕족이 계속 바뀌던 게 인도의 왕국들이기도 했고.

“알아보니 서방 면직물의 최대 생산지가 천축... 아니. 인디아라고 하더군요. 비단 또한 오스만국에서 생산하는 게 있지만, 인디아에서 생산하는 게 더 많고요.”

“그럴 거야.”

“향신료는 어떻습니까. 후추야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가 거대농장을 구축해 팔아넘기고 있지만, 인디아나 인디아를 거쳐 오는 양이 훨씬 많지 않습니까? 기타 인디아 남부지방에서 나는 향신료는 더 말할 필요도 없고요.”

“음...”

바카스도 조선인들에게 붙어 다니는 부하들로부터 꾸준히 보고를 받아왔었다.

다 보고 배우라고 붙여놓은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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