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396화 (396/538)

396. 챕터52. 판을짜다 (10)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무역이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물산이 어디서 생산되어 어떻게 흘러들어왔는지 알고 있었다.

“티무르 칸국을 키워서 오스만국과 맘루크 왕조의 무역로를 약화시키겠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티무르 칸국 또한 이걸 간절히 바라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들이야 말로 사실 비단길의 원래 주인이었으니까요. 괜히 그들이 먼저 허리를 굽혀서 화친을 청해 온 게 아니죠.”

티무르 제국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일칸국-호라즘 왕조-셀주크 제국-페르시아로 이어진다.

그 말인 즉. 고대의 초원길이 지나가던 구역은 조선이 새로 만든 초원길이 아니라, 티무르제국의 영토를 지나갔었다는 뜻.

안 그래도 이것 때문에 배알이 꼴린데, 더 약을 올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티무르제국이 분열하던 시기에, 동쪽에 위치한 부족들이 떨어져나가더니 소칸국으로 합쳐졌고.

동방의 파도를 타고, 새로 만든 초원길 연합에 붙어버린 거지.

“티무르 칸국은 동쪽에 대한 영향력을 잃어버렸고, 귀국 및 동방 소칸국들의 연합을 경계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대치 상황이 유지되는 건, 무역에 있어서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지요.”

“그대들에게도 손해고?”

“아국이 이득이 곧 귀국의 이득이죠.”

바카스가 따끔하게 꼬집었지만, 이인은 미꾸라지마냥 능숙하게 빠져나갔다.

“이 또한 원한을 잊고 무역이라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결코 나쁠 게 없지 않겠습니까? 귀국으로서는 새로운 시장이 하나 더 열리는 셈입니다.”

“티무르 칸국이라는 시장과 어쩌면 서쪽과 남쪽의 인디아 시장과도 연결될 수 있겠지.”

“맞습니다. 그곳이 비록 험한 땅이기는 허나, 무역로는 고대로부터 이어져 오지 않았습니까.”

“음...”

이번에도 이인의 말에 홀린 바카스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병이 이동할 수 있는 행군로는 곧 도로나 상인이 오가는 무역로와 다를 게 없다.

그리고 활발하게 정복활동을 벌인 티무르가 있던 시절에, 동,서,남,북으로 전부 이어지는 도로가 만들어진 거나 다름없지.

“이미 인디아 왕국 수도인 델리에서부터, 티무르 칸국의 수도인 헤라트까지는 무역로가 연결된 상태 아닙니까. 헤라트에서 카스피해까지 이어지는 도로 또한 이어져 있고요.”

카스피해 북부는 킵차크 칸국의 영역.

여기서부턴 새로 만든 초원길과 이어 붙여도 되고, 아니면 카스피해를 배타고 건너서 직영지의 핵심도시 중 하나인 아스트라한으로 곧장 올수도 있다. 아스트라한에선 릭강을 통해 타나항으로 올 수 있고.

“허면 티무르 칸국 또한 중개무역을 통해 이득을 많이 보게 될 텐데?”

바카스는 역시나 배가 아픈지 떫은 표정을 버리지 못했고, 이인은 그걸 보면서 슬쩍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런 그에게 딱 어울리는 예시가 떠올라서다.

“아국과 중국과의 관계라고 보면 될 겁니다.”

“...?”

“중국이 이득을 보는 것보다, 아국이 곱절로 이득을 보면 되는 거죠.”

“아...”

바카스는 행간을 읽고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티무르 칸국을 통해 인디아의 물산이 올라온다고 해도, 결국 서방에 파는 건 귀국이 될 겁니다. 최종목적지가 타나항이 될 터이니, 어찌됐건 이득을 더 많이 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하나를 주는 대신 둘을 취하라... 이거군? 어차피 아무것도 취하지 못할 바에는 그게 이득일 테니까?”

“그렇습니다. 시선을 바꿔서, 빼앗겼다고 생각하지 말고 더 많이 얻었다고 생각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흐음...”

감언이설이긴 허나,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 아닌가.

만약 이게 가능해진다면, 해상국가가 쥐고 있는 주도권을 더욱더 빼앗아 올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은 맘루크 왕조와 거래하면서 독점을 유지하고 있으니, 그걸 깨기 싫다면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타나항에 풀리는 인도산 물건을 죄다 사들일 거다.

‘지금 해상국가들 또한 경쟁을 하고 있는 사이. 베네치아와 제노바뿐만 아니라, 다른 해상국가 또한 타나항으로 와서 거래를 요청하게 되겠지.’

바카스는 돌 하나로 새 여러 마리를 잡는 미래가 절로 떠올랐다.

서방 상인들도 서로 경쟁관계이니, 독점을 깨기 위해서 발악하는 이들이 분명 나오지 않겠나. 킵차크 칸국 입장에선 뭐든지 더 뜯어먹으면 그만인 거다.

‘만약 일이 이렇게 된다면, 오히려 우리가 서방 무역로의 핵심거점으로 성장할 수도 있겠지.’

그는 물끄러미 지도를 보며 머리를 굴려댔다.

해상국가는 지중해를 거쳐 이탈리아 반도나 프랑스에 동방물산을 팔았고, 거기서부터는 서유럽 국가의 상인들이 움직이는 식이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바카스가 머릿속에 떠올린 곳은 헝가리와 신성로마제국이 위치한 중부유럽 및 북유럽.

그곳은 해상국가 입장에서도 직거래를 하는 곳이 아닐뿐더러, 거리가 너무 멀어서 값이 곱절로 뛰는 곳.

‘허나 세 공국을 이용하면, 오히려 우리가 더 무역로를 단축시킬 수 있겠지.’

이쪽은 비록 산넘고 물건너 가야하지만, 배타고 흑해와 지중해를 빙빙 돌아가는 것보다는 빠를 것 아닌가.

“그렇지 않겠나?”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바다 건너 서방 사정은 더 면밀히 살펴봐야 알겠지만... 지금도 이곳에 북부지방에 대한 소문이 퍼질 정도면, 나름 국가와 시장이 형성된 곳 아니겠습니까? 아예 대륙 건너 저편이라면, 귀국과 더 가까울 지도 모르겠군요. 그게 설령 육로라고 해도 말이죠.”

“충분히 일리가 있어...”

바카스는 물론이거니와 킵차크 칸국 사람 중 누구도 리투아니아를 넘어서 가본 적이 없지만, 거꾸로 서유럽인들은 크림반도에 위치한 카파항에 들락거리지 않았나.

카파항의 상인들을 타나항까지 끌어오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거다.

‘여건이 된다면 아국 상인들이 서쪽으로 갈 수도 있는 거겠지... 이렇게 되려면 또 종교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야겠군.’

불가리아를 비롯한 세 공국은 오스만국의 속국이면서도 정교회를 따르고 있고, 그 너머 서,북유럽은 카톨릭이 강세인 곳.

여길 그냥 무작정 간다면, 이교도로 대하면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다만 걸리는 게 있는데...”

“무엇입니까?”

“티무르 칸국이 타나항을 최종목적지로 삼지 않을 수도 있는 것 아니겠나? 흑해에 닿아 있는 항구는 이곳만 있는 게 아니니까.”

바카스는 그렇게 말을 하고선 손가락으로 지도의 한 부분을 짚었다.

“흐음. 캅카스 산맥 남쪽이라...”

이인은 그걸 보고선 재빠르게 보고된 기억을 긁어모았고... 이내 슬쩍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생각만큼 쉽진 않을 걸로 보입니다. 그곳이 비록 티무르 칸국의 영향력 하에 있다지만, 완전히 복속된 게 아니니까요.”

“흑양 왕조와 백양 왕조를 말하는 거겠지?”

“예.”

이인은 다시금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드는 소아시아의 정세를 떠올렸다.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캅카스 산맥이 위치해 있고, 이곳에 조지아 왕국을 비롯한 캅카스인들이 살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 남쪽에는 티무르 제국의 속국인 흑양왕조가 서쪽에, 백양왕조가 동쪽에 위치해 있었다.

둘은 티무르가 오스만제국을 두들겨 팬 후에, 점령지에 대한 자치권을 부여받고 성장했는데... 티무르 사후 혼란기에 이르자 독립을 쟁취하려고 노력했었다.

비록 지금의 티무르 칸인 샤 루흐가 흑양, 백양 왕조를 두들겨 패면서 기를 죽여 놨지만, 여전히 독립운동의 불길을 꺼지지 않고 있는 상황.

“만약 티무르 칸국이 직접 흑해의 항구를 통해 거래하겠다면, 어떻게든 두 왕조를 완전히 굴복시켜야 할 겁니다.”

“지금도 반쯤 속국인 상태이니, 무역항을 열수도 있지 않겠나?”

이인은 바카스의 반문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역시나 고개를 내저었다.

원래 역사와 마찬가지로, 지금 역사에서도 샤 루흐는 흑양 왕조를 공략해 왔었다.

이건 동방의 파도 여파와 상관없이, 샤 루흐가 정권을 잡기 위해선 반란세력을 무조건 때려잡아야 했으니까.

“만약 그곳이 번성한다면 결국 흑양왕조가 가장 큰 이득을 얻게 될 겁니다. 안 그래도 티무르 칸국의 칸은 무력으로 흑양왕조를 굴복시키려 하고 있는데, 그 숨통을 일부로 열어둘 필요가 있겠습니까?”

“아국과 같은 상황이군.”

티무르 제국도 이득을 보겠지만, 흑양왕조가 더 많이 이득을 얻을 게 분명.

이런 상황이라면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 또한 이득을 못 보게 하는 게 낫다.

“그리고...”

“...?”

“만약 귀국과 티무르 칸국이 화친을 맺고 병력을 빼게 된다면, 그 힘을 어디에 쏟을 생각입니까?”

“그야...”

바카스는 “당연한 걸 왜 묻냐?”고 말을 하려다가, 그 속뜻을 알아차렸다.

지금 칸인 샤 루흐는 후계전쟁을 끝내고 칸이 된 인물.

그럼에도 티무르 제국 내부에는 아직도 독립을 꿈꾸는 자들이 남아 있으니, 샤 루흐 입장에선 그들을 먼저 밟아놔야 하지 않겠나.

“첫 번째 목표는 당연히 흑양, 백양왕조가 되겠군.”

“그렇지 않겠습니까? 가장 세가 강력한 세력이니 본보기를 보일 필요도 있고, 티무르 칸국이 무역항을 원한다면 더욱더 그렇겠지요.”

“하지만 전쟁이 그리 쉽게 끝나지는 않을 거라는 거고?”

“항구를 재건하는 것도 시간이 걸릴 테고, 정세가 혼탁할 테니 아무리 돈을 좇는 상인이라도 쉽게 가긴 힘들겠지요.”

“...”

‘그 틈에 타나항을 키워서 최대한 입지를 다져놓고, 무역 상인들을 선점해 놓으면 된다는 거군.’

바카스는 앞으로의 미래가 그려졌다.

“더불어 캅카스의 조지아 왕국 또한 흑양 왕조의 침공을 받고 있으니, 귀국 입장에선 정리가 되어 조용히 있는 게 낫죠.”

둘은 바로 붙어 있으니, 사이가 좋을 리가 만무.

안 그래도 조지아 왕국이 분열된 것 또한 흑양 왕조의 공격 때문이 아니었나.

“티무르 칸국도 그건 마찬가지겠지?”

“그럴 겁니다.”

조지아 왕국을 정복해 캅카스 일대를 흑양 왕조가 장악하면, 흑양 왕조가 킵차크 칸국과 국경을 맞닿는 상황이 벌어질 터...

만약 킵차크 칸국이 흑양 왕조를 뒤로 지원하기 시작하면, 일이 엄청나게 복잡해 질 거다. 그런 변수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서쪽을 공략하지 않을까.

여기에 무역을 통해 수익을 얻는다면 군비를 증강시킬 수 있을 테니, 전력은 순식간에 두 배를 뛰어넘을 거다.

‘남쪽에는 큰 세력이 없지만... 거길 정리해야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거야.’

인도와의 무역을 정상화시키려면 당연히 남쪽 무역로도 정리를 해야 할 터...

고원과 사막이 가득한 그 땅을 전부 장악하는 건 힘들더라도, 적어도 무역로가 지나가는 지역만큼은 어떻게든 정리해야할 거다.

‘하지만... 이들이 그저 이걸 바라고 화친을 바라는 건 아니겠지.’

바카스는 웃고 있는 이인이 괜히 얄미워 보였다.

만약 남쪽의 전선이 해방되면, 킵차크 칸국은 당연히 서쪽과 북쪽에 집중할 수 있게 될 터.

지금 진행되고 있는 코사크와 루스국의 침공에, 더욱더 전력을 다하게 되지 않겠나.

‘결국 우리보고 더 많은 노예를 끌고 오라는 뜻이겠지.’

바카스는 이인을 비롯한 모든 소칸국들의 속마음이 읽어졌지만... 이게 나쁜 건 아니지 않나.

역시나 이번에도 알고도 넘어갈 수밖에 없는 술책이었다.

하지만 조선의 암계는 킵차크 칸국에만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 티무르제국까지 엮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만약 티무르 칸국이 서쪽으로 진출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그야...”

이인은 히죽 웃으며 말을 마쳤고, 이내 바카스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져나갔다.

“오스만국과 맞닿게 되는 거군.”

“그렇습니다.”

짝! 이인은 가볍게 박수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앙숙사이인 두 나라다.

티무르가 오스만제국의 술탄을 죽여 버리면서, 오스만제국을 빈사상태로 만들어버린 전력이 있지 않나.

“오스만국의 전력이 분산될 게 분명하니, 자연스럽게 로마국에 대한 압박은 물론이고, 흑해 너머의 세 공국에 대한 영향력도 줄어들겠군.”

“그 뿐이겠습니까. 귀국이 활발히 무역을 하면 할수록 그런 흐름은 더욱더 격해질 거고, 적어도 수십년 간은 서로 다투지 않고 평화를 맞이하게 되겠지요.”

“그러면서 아국이 중앙집권을 이루고, 힘을 키울 시간을 벌 수 있다는 뜻이겠지?”

“맞습니다.”

이인은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고, 바카스는 속으로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놀랍군. 아예 다른 땅에서 온 이들이라서 그런가?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

종교와 체제 문제에서 떨어져서 판을 짜내려 가는 걸 보고 있자니, 바카스는 조선의 심계가 무서워질 지경이다.

‘아예 분쟁에서 빗겨나 있던 두 나라가 끼어들면, 숨통이 확실히 트이겠지.’

원래 역사에선 티무르제국과 킵차크 칸국은 아나톨리아 반도와 소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싸우는 전쟁에 끼어들 처지가 못 됐고, 결국 오스만제국이 승리자가 되지 않던가.

헌데 지금 역사에선, 판세가 완전히 뒤집어지기 직전이다.

‘로마국과 해상국가는 자신들의 이권을 침해당하더라도 결코 반대하지 못할 거다.’

해로로 옮기는 것과 육로로 옮기는 건, 수송량에 있어서 분명히 차이가 날 거다.

그럼에도 어찌됐건 해상국가는 독점무역을 침해받겠지만, 그것보다는 오스만제국을 막는 게 우선이지 않겠나.

동로마제국은 풍전등화인 상태.

만약 킵차크 칸국이 자신의 편에 서주기만 해도, 누르알딘과 바카스가 바라는 중앙집권을 위해 물신양면을 다할 거다.

‘일이 이렇게 된다면 티무르 칸국 또한 손을 잡을 수밖에 없겠지.’

무역을 통한 이득을 얻는 건 둘째 치고, 모든 나라가 함께 손을 잡고 오스만제국을 견제하기 시작하면... 결국 티무르제국도 어느 쪽이든 손을 잡아야 한다.

헌데 서쪽의 소아시아로 진출한 이상, 아나톨리아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오스만제국과의 전쟁은 기정사실이 된 거나 마찬가지.

양면전쟁을 벌일 생각이 없다면 당연히 킵차크 칸국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고, 그럼 결국 동로마제국 및 해상국가와도 손을 잡는 형태가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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